할렐루야! – 요한계시록 19:1-10

오늘 설교 제목을 할렐루야라고 붙였습니다. 왜냐하면 신약 성경에 할렐루야란 단어가 네 번 나오는데 바로 오늘 봉독한 19:1-10 안에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에는 시편에 약 30여 회 나와 있으나, 신약에서는 지금까지 침묵을 지켜오다가 바로 오늘에야 계시록이 끝나 가는 마지막 부분에 네 번이나 터져 나오고 말았습니다. 세상 축제의 절정을 이루는 순간에 불꽃놀이, firework이 터지듯 오늘부터는 축제 분위기가 시작되고 절정에 이르게 되므로 할렐루야가 네 번이나 연발하게된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헨델의 메시야 곡을 많이 연주하게 되는데, 이 대곡이 첫 번 연주되게 되던 1759년에 연주를 듣던 자리에 있던, 영국의 유명한 King Georgia가 메시야 곡 중 할렐루야 합창이 나올 때 벌떡 일어났다고 해요. 그것이 유래가 되어 할렐루야 합창이 나올 때는 모두 일어나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게 됐다고 합니다. 오늘도 그 누군가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하여 벌떡 일어나 할렐루야을 외치게 되기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할렐루야”란 희랍어 단어는 히브리어 음역으로 라틴어로는 “알렐루야”입니다. 알렐루야, 할렐루야는 같은 말이며, “할렐루”는 너는 찬양하라며, “야”는 하나님을 말하는 것으로, 즉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란 의미로 활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대로 신약 성경에 유일하게 네 번 나타난 이 할렐루야란 단어가 시편에서는 세상에서 외치는 할렐루야이며, 계시록에 나타난 할렐루야는 하늘 나라에 외치는 할렐루야임을 마음에 두시고 할렐루야가 외쳐진 배경에 대해 소화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본문에 의하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던 다섯 가지의 내용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1] 완성된 구원(1)

[2] 완성된 심판(2,3)

[3] 하나님께 예배(4,5)

[4] 하나님의 통치(6)

[5] 어린양의 혼인잔치(7-10)입니다.

 

[1] 완성된 구원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1).

1절에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라고 할렐루야를 외치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 시점은 일곱 대접 재앙이 쏟아져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들을 대적한 사단의 세력이 완전히 파멸된 상태입니다. 그 이상 사단의 유혹이란 있을 수 없는, 즉 지금 승리한 자는 영원한 승리자로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와 천국 천사들과 함께 영생을 누릴 수 있게된 상태인 것입니다. 진리를 지키고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고집한 연고로 순교 당한 자들도 있고, 그리스도 때문에 많은 눈물과 고통과 가난과 핍박과 조롱과 수치를 당했던 자들이 끝까지 믿음 지켜 왔는데 드디어 세상은 끝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시작된 순간입니다. 뒤를 돌아보며 구원해 주신 역사를 생각하며 하나님을 찬양한 것입니다. 할렐루야를 외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이적의 효과는 길지 못해 한 평생으로 끝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암이 나았던 기적도 별 의미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 믿지 않던 사람이 예수를 믿었다고 기적이라고 말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이 시작되므로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형벌을 받고 예수 믿은 사람은 영원히 살게됨으로 어느 순간에 예수를 믿었던 그 사건은 절대적인 기적이었음이 증명이 될 것입니다 죽을 사람이 영원히 살게 되었다면 기적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시면서 까지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계획이 실현되어 있으니 우리가 구원되어 있는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또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이심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죽을 자가 살아났으니 “할렐루야”입니다. 이때 외친 할렐루야는 영원한 할렐루야 인 것입니다.

 

[2] 완성된 심판에 대한 할렐루야입니다(2,3).

2절에 보니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셨으니, 음녀 때문에 순교 당하고 어려움을 당한 모든 원수를 갚아 주셨으니 감사하여 “할렐루야” 한 것입니다.

3절에 보니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고 했습니다. 불의가, 악이 계속 존재할 줄 알았는데 악의 세력이 멸망되고 형벌의 연기만 하늘로 계속 올라가는 것을 본 구원받은 자들이 악에 승리했던 쾌거를 생각하며 감사, 감사, 찬양하게 되므로 “할렐루야”가 터져 나온 것입니다.

 

[3] 하나님께 예배하므로 할렐루야입니다(4,5).

4절에 보니 24장로들과 네 생물이 하나님께 경배한다고 했습니다.

5절에 보니 하나님께 찬양하라는 음성을 들려줍니다. 하늘 나라에서 하나님과 어린양이 함께 한 자리에서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이 새 노래로 할렐루야를 합창하게 되니 이 감격 어떠하겠습니까? 할렐루야가 터져 나오지 않겠어요? 그 많은 수가 질서 정연하게 같은 노래를 부르게 되니 세상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Event가 아니겠습니까?

 

[4]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할렐루야입니다(6).

6절에 보니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라는 환호성이 소개됩니다. 민주화를 이루고 잘 살게 하겠다던 많은 대통령들이 최선을 다했다 해도 사람 통치자라는 만족할 만한 유토피아를 가져다주지 못했는데, 이젠 만 왕의 왕이시고 최고의 통치자 하나님이시며 어린양이 되시므로 그 누구도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을 것이며, 그 어디도 그늘진 곳이 없게 되었으니 할렐루야가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통치하시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인간들이 사람 통치자 사람 왕을 세워달라고 하여 세워진 첫 왕이 사울 왕이었는데 악정을 베풀어 국민들을 못살게 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주님오시기 전까지 유능하다는 인물들 심지어는 사담 후세인, 김일성 같은 독재자들까지 백성들을 괴롭혔는데 하나님이 왕이 되시며 통치하는 나라 그런 나라에서 백성 노릇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 첫날부터 아무런 착오 없이 편안하게 살게 해 주시는 나라 그 나라를 보게 되었으니 그 입에서 할렐루야가 나온 것입니다.

 

[5]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대한 할렐루야입니다(7-10).

계시록에서는 일곱 가지의 복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일곱 가지의 축복은 표현만 다르고, 그 내용은 같은 것이라 해도 될 것입니다. 일곱 가지 복 중 넷째 복이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가 복이 있다고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누가 복이 있다고요?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가 복이 있습니다. 7절에 보니 그 아내가 예비 되었다고 되었으며, 그 아내는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는데 세 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신랑으로, 성도들은 신부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 몸으로서 불가분의 관계를 강조한 것입니다. 지상에서 신앙 생활하고 있는 우리 모두는 예비된 신부, 결혼식을 기다리는 신부로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혼식에 신부로서 등장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좋은 신랑 만나려면 열쇠를 몇 개 가지고 가야 한다던데, 주님 신랑, 어린양 신랑은 아파트 열쇠도, 자가용 열쇠도, 지참금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을 나의 신랑으로 나의 구주로 받아드리는 믿음이면 됩니다. 돈도, 학벌도, 명예도, 가문도, 키, 뚱뚱함도, 빼빼함도, 인물도 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믿음만 보시겠다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보석으로 꾸미지 아니해도 좋답니다. 옳은 행실로 자기를 단장하는 사람이면 된답니다. 주님 오실 때 남자도, 여자도, 젊은이도, 늙은 사람들도 신부로서 새 신랑을 만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할머니들, 멋있는 신랑이 여러분들을 신부로 맞아들이겠다니 살맛 나지 않아요? 우리 집 아내는 늘 남편 잘 못났다고 억울해 하는데, 인간 남편 말고 주님 남편 맞아드리는 때가 곧 옵니다. 고생 조금만 더 하면 됩니다. 결혼식에 신랑, 신부 서있으면 정말 아름답지요? 그런데 주님 오실 때 세상에서 구원받은 수많은 성도들이 늙고 젊고 구별 없이 아름다운 의로운 행실로 꾸민 사람들의 신랑을 맞는 신부 마음으로 주님 영접하러 모여있는 모습이니 멋쟁이 신랑 맞는 신부, 할렐루야가 나오지 아니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을 통해 우리가 무슨 교훈을 받게됩니까?

 

하늘 나라의 복된 소망을 갖고 어려워도 참고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 그 잔치에 꼭 참예하여 영원히 행복한 생활을 하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주님 오셨을 때 구원받은 자들이 눈물, 근심, 걱정, 아픔, 배고픔이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에 입성하여 할렐루야 하는 그 환호를 생각하며 세상에서 원수갚고 싶었지만 하나님께서 원수 갚아 주실 것을 믿고, 참아왔는데, 주님 오셔서 철저히 원수들의 잘못을 지적하며 벌 줄자를 벌주는 것을 직접 보면서 공평하신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보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도들을 연상해보며, 하나님이 왕 되신 나라에서 살며 천국에 온 모든 성도들이 한 목소리로 새 노래한 것을 연상하며, 그 성도들이 신랑을 맞는 신부같이 기쁨으로 주님 영접하며 신랑의 대우를 받는 장면을 연상하며, 그 구원의 자리에 그 예배의 자리에 하나님 통치하시는 나라에 주님이 신랑 되신 혼인집 잔치에 초청되도록 세마포 옷, 즉 의로운 행실을 가지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복된 자리에 다 초청되는 할렐루야 “할렐루야”로 연발하는 성도들 되시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