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 히브리서 7:11-21

구약의 율법을 지켜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기독교인들에게 던진다면 어떤 대답들이 나올까요? 더 좁혀서 기독교인들은 모세 율법의 핵심인 십계명을 지켜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한다면 거의 모든 기독교인들은 당연히 지켜야 한다고 응답을 할 것이며 그런 질문을 한 사람을 두고 오히려 이상한 교회에 다니는 사람인가보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신앙을 갖는 첫 걸음부터 십계명을 외우기 시작했으며 교회로부터 모세 율법과 새 언약에 대한 구분을 바로 배워본 기억이 없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물론 지금도 많은 교회들이 모세의 율법과 새 언약을 분명하게 구분하지 않고 오히려 혼용하여 신앙에 부담을 주고 있는 실정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런 종류의 질문에 상당히 명확하게 답을 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본문을 통해 확실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 믿은지 수십년씩 되어가는데 이제야 구약과 신약에 대한 구분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면 순서가 잘못된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근본적으로 성경을 중심한 신앙이라기 보다도 교회에서 가르쳐주고 실행하고 있는 것만을 따르다보니 이런 수준에 이르고만 것입니다. 히브리서 성경이 최근에 나온 책이 아닌데도 이런 결과를 보면서 우리들이 얼마나 전체적인 성경을 중심한 신앙을 갖는 것이 아니고 성경 한 두 구절을 뽑아 그 구절에 많은 말을 붙여 들려준 설교에만 의존했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하게 됩니다. 성도들에게 올바른 신앙을 소개하기 위해 우리 교회는 강해 설교 그것도 성경 한 책씩 선택하여 연속적으로 강해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 따라 우리들은 요사이 히브리서 강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려고 예비하신 말씀을 귀담아 듣고 귀한 말씀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고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멜기세덱 반차를 좇는 제사자의 필요(11-15) [2]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과 무궁한 생명의 법(16-19) [3]맹세 없이 된 제사장과 맹세로 된 영원한 제사장(20-21)입니다.

 

[1]첫 번째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의 필요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인간이 지은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켜서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하는 것이고 반대로 죄는 사단과는 친구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인간의 죄를 용서받는 방법밖에 없는 것입니다. 죄를 용서받는 방법을 구약시대에는 율법에 기록된 대로 동물제사를 통해을 가능했으며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제사장이라는 직분 자를 통해 이뤄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제사장은 오직 레위지파로 태어난 사람만이 될 수 있도록 제한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레위 지파가 아니라 유다 지파에 속한 분이신데 그가 십자가를 지심으로 대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제사장은 마땅히 레위 계통의 사람들만 되도록 율법에서 제한했고 유다 지파의 사람이 제사장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전연 없음에도 하나님께서 유다 지파의 계통에서 제사장이 되게 하셨으니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거입니다. 바로 그 이유가 율법에서 정한 레위 계통의 제사장 직분을 통한 속죄는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온전한 제사장 직분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은 온전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첫째는 제사장이 역시 사람이라 사람인 제사장도 죄를 지을 수 있어서 남의 죄를 용서해주는 제사를 드리기 전에 자기 죄를 용서받는 제사를 먼저 드려야 하는 불완전한 사람 제사장이라 그렇습니다. 두 번째는 동물의 제사를 가지고는 죄를 지을 때마다 제사장을 찾아가 속죄를 위한 제사를 계속 드려야 하기 때문이며, 세 번째는 사람 제사장은 늙으면 죽고 또 다른 제사장이 또 대를 이어 가야하는 유한 성 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죄를 짓지 않는 순결한 제사장이 필요했으며 또한 단 한 번으로 제사를 끝 낼 수 있는 제사 방법이 필요했으며 수명에 한계가 없는 영원한 제사장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즉 그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 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는 죄를 한 번도 짓지 않았던 순결한 제사장이었으며 십자가를 지심으로 단 한 번에 모든 인류의 죄를 사하셨으며 그는 영원한 제사장이 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레위 제사장 직분이 온전했으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된 제사장 즉 유다 지파에서 된 제사장이 왜 따로 필요했겠느냐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이제 새로운 제사장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제사장이 난 것은 그 이상 레위 계통의 제사장은 필요 없다는 의미이며 더 나아가서 이 이상 레위 계통의 제사장이 필요 없게 된 것이라면 그들을 세웠던 율법도 또한 그 이상 필요 없게 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필요 없다고 결론이 내려진 것은 우리가 아는 대로 율법을 다 지키므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인데 어떤 인간도 완전하게 율법을 다 지킬 사람이 없으므로 결국 어떤 사람도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받을 자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율법이 있으므로 율법을 지키지 못한 사람들에게 죄를 드러나게 해주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요? 율법의 완성이요 율법의 기본 정신인 새 언약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복음은 어떤 행위에 으해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믿고 순종하므로 의롭게 되어지는 것으로 이것을 두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한 것입니다.

 

[2]두 번째로 16절부터 19절까지의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과 무궁한 생명의 능력의 법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전의 옛 언약을 육체에 상관된 계명이라 했습니다. 이 말은 율법으로는 영적으로 온전히 죄 사함을 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18절에 표현 된 대로 이 법은 연약하고 무익하기 때문에 폐했다고 했습니다. 즉 율법이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기에는 무능한 법이므로 이 옛 언약은 페하고 영원히 생명을 가져다주는 새 언약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이 무궁한 생명을 가져다주는 새 언약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제사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들은 더 좋은 소망이 생겼기 때문에 이 새 언약에 의해 죄 사함을 얻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더 좋은 소망의 법인 세 언약을 주셨으므로 덜 좋은 엣 언약에 대해서는 아무런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3]세 번째 마지막으로 20절과 21절의 맹세 없이 된 제사장과 맹세로 된 영원한 제사장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시 110:4 에 보면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라는 말씀이 있는데 히브리서 기록자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된 제사장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제사장이 되신 것은 하나님의 멩세로 된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맹세로 되어진 것이 아니라 오직 혈통에 의해 레위 집안에 태어나므로 되어진 것과 구별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의 법인 율법과 예수 그리스도의 법인 복음과를 여러 각도에서 비교하며 그리스도의 법인 복음은 모세의 율법에 비해 훨씬 월등함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복음의 가치를 알고 복음에 의해 얻은 구원을 잘 지켜나가라는 교훈입니다. 유대인 기독교인들에게는 조상 때부터 지켜내려 왔던 율법도 중요하고 또 조상 적부터 지켜온 유전도 중요하게 생각이 될 것입니다. 또 우리들에게는 우리들이 전에 믿어왔던 어떤 교파적인 신앙도 중요하고 또 그 교파에서 시행했던 전통도 습관도 중요하게 생각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심지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내리신 율법을 두고 연약한 것, 무익한 것,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한다,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폐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두고는 더 좋은 소망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모세의 율법이 무익하고 아무 것도 온전케 할 수 없는 법이므로 폐했다고 한다면 하물며 사람들이 만들어 낸 각 교파 교리나 신학은 그리스도의 복음 앞에서는 더욱 설 땅이 없다는 교훈인 것입니다.

 

무익한 율법은 폐하고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살아 남아야 함 같이 복음 말고 인간이 만든 어떤 유명한 신학도 이론도 폐해 져야 함이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들이 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께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길을 복음을 통해 제시해 주셨습니다. 오직 복음만이 죄인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이며 진리인 것입니다. 죄인들이 죄 사함 받는 길을 복음에서 분명하게 인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기록된 방법 말고 인간들이 제시하고 있는 구원의 길은 율법이 온전치 못함같이 역시 온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말고는 인간은 온전치 못하기 때문입니다. 늘 조용하기만 한 것 같이 느껴지는 복음은 율법보다도 또 웅변으로 떠들어대는 사람의 법보다도 언제나 절대적으로 대우를 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온전한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제시된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 사람 생각에 그럴 듯하게 보이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라면 미련 없이 버릴 수 있는 강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심판하실 분은 우리들에게 말씀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늘 앞세우는 신앙을 일평생 지니시어 심판 주로 오실 주님으로부터 칭찬 받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