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장 멜기세덱 – 히브리서 7:1-10

오늘 제사장 멜기세덱 이라는 제목으로 성경을 강해할 수 있는 제가 매우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경 말씀 중 비록 기본적이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멜기세덱에 관한 말씀을 증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말하기를 아무 것도 몰라도 믿기만 하면 된다고 하여 진리를 이해해나가는 노력을 포기해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무조건 믿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믿는지 왜? 믿는지를 분명히 성경 말씀에 따라 이해하고 확신한 바를 믿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를 받아 읽을 유대인들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조상적부터 대대로 율법을 지켜왔고 레위인 제사장 제도에 의해 동물 제사를 지켜왔던 그들이었습니다.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난지 8일 만에 할례도 행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그 이상 할례도 행치 아니하고 레위 계통을 따른 제사장직도 그 이상 없고 동물 제사도 지내지 않으니 왜? 이래야 하는지? 이래도 되는 것인지를 알고 하던지 안 하던지 해야하지 않았겠습니까? 모든 기독교인들은 이 히브리서를 반드시 이해하고 믿어야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인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현재 가지고 있는 믿음에 확신이 덜하고 또한 구약 율법과 새 언약에 대한 혼동 속에서 신앙생활하고 있는 현실이 된 것입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본문에서는 구약의 율법이 더 이상 지켜질 필요가 없고 그에 대한 어떤 미련도 갖지 않도록 분명하게 율법보다 더 좋은 새 언약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런 소개의 서론으로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을 소개하므로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이 그 이상 존재해야할 필요가 없음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소개되는 말씀들을 정신을 집중하시어 들으시고 또 말씀을 개인적으로 읽어보시어 지금까지 확실하게 알지 못했던 그러나 꼭 필요한 진리를 확실하게 이해하므로 마음에 감사가 넘치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고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예수 그리스도에 비유된 제사장 멜기세덱(1-3) [2]레위 계통의 제사장보다 우월한 제사장 멜기세덱(4-10)입니다.

 

[1]먼저 1절부터 3절까지의 예수 그리스도에 비유된 제사장 멜기세덱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히브리서 전체는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우월하신 분이시오 그를 믿는 믿음은 하나님 앞으로 우리들을 인도하는 유일한 길임을 증거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든지 신약 시대에든지 죄인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으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죄의 용서가 선행되어야 한 것입니다. 바로 이 죄 문제를 구약 율법에서는 제사장을 통한 동물 제사에 의해 이뤄졌으며 신약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중간에서 인간의 죄 문제를 도와 줄 수 있었던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이나 예수님의 제사장 직은 사람들에게는 꼭 필요하고 중요한 직분인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레위 계통의 제사장보다도 더 우월한 새로운 제사장 예수그리스도를 소개하므로 레위 계통의 제사장을 세운 율법에 더 이상 미련을 갖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1절부터 3절까지에서는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을 예수님의 제사장 직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록자는 멜기세덱의 이름을 통해 그를 예수 그리스도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의 뜻을 풀어보면 의의 왕이요 살렘 왕이라는 뜻인데 살렘이라는 말은 평화라는 뜻이므로 그는 의의 왕이요 평화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 23장 6절에 보면 메시아에 대해 예언하기를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했는데 히브리서 기록자는 이 말씀에 의의 왕이신 예수님과 연결시켜 예수님의 이름과 멜기세덱의 이름이 같다고 했습니다. 또 이사야 9장 6절에 보면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고 했는데 멜기세덱의 이름인 평화의 왕인 것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도 평강의 왕이므로 두 이름이 같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록자는 멜기세덱의 출생과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을 중심하여 또 멜기세덱을 예수 그리스도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제사장이란 마땅히 레위 계통의 족보에 따라 제사장이 될 수 있었으며 다른 족보의 사람은 제사장이 절대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만일 레위 족보가 아닌 사람이 제사장이 되었다고 한다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세우신 제사장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멜기세덱은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다 하여 그의 족보가 레위 계통의 그런 족보와 상관이 전연 없었던 제사장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멜기세덱은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다고 하였는데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다는 말은 언제 나서 언제 죽었는지 전연 기록이 없는 존재이므로 달리 말을 한다면 세상 창조 이전부터 계셨고 지금도 하늘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영원한 존재이리라고 영존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2]다음으로 4절부터 10절까지의 레위 계통의 제사장보다 우월한 제사장 멜기세덱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율법에 의해 레위 계통의 제사장이 세워졌는데 율법에 의해 세워진 제사장 보다 더 우월한 제사장이 세워졌다고 한다면 이젠 율법에 의해 세워진 제사장이 그 이상 필요가 없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율법도 그 이상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므로 논증하기 위해 레위 제사장 보다 더 우월한 제사장 멜기세덱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레위의 조상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에 살렘왕이요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전쟁에서 빼앗아 온 노략물의 10분의 1일을 드렸고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빌어주었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이스라엘 12지파 중에 레위 지파는 땅을 분배받지 아니했고 나머지 11형제들이 얻은 소산물중 10분의 1을 받아 생활하도록 율법에서 정했으며 또 제사장들은 례위사람들이 얻은 10분의 1중 또 그것의 10분의 1을 레위 사람들로부터 받아 생활하도록 정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10분의 1을 받는 직분은 제사장이며 축복을 하는 자가 제사장인데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여주었고 또 10분의 1을 받았으니 제사장임에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10분의 1을 받은 멜기세덱 제사장은 레위의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10의 1을 받았으므로 다른 말로 말을 한다면 10의 1을 받는 직분인 제사장으로부터 10의1을 받았다는 결과가 되므로 같은 제사장이라도 멜기세덱은 레위 계통의 제사장보다 더 우월한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또 레위 계통의 제사장의 조상이신 아브라함에게 복을 빌어준 멜기세덱은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아브러함의 후손인 레위 계통의 재사장들에게 복을 빌어준 결과가 되므로 멜기세덱은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논증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원칙적으로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복을 빌어주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또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었으나 멜기세덱은 출생과 사망의 기록이 없는 거와 같이 그는 살아 있는 존재일 것이므로 멜기세덱의 제사장 직은 레위 계통의 제사장 직에 비해 더 우월하다는 것입니다.

 

앞부분에서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에 비유된다고 했는데 결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율법에 따라 되어진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에 비해 더 월등하다는 결론인 것입니다. 한 발 더 나아가 말을 한다면 레위 계통의 사람만 제사장으로 세웠던 율법은 이젠 사라지고 레위 계통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제사장으로 세운 새 언약만이 계속 존재해야 한다는 암시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의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그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율법도, 사람이 만든 어떤 법도 미련 없이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따라야 한다는 교훈인 것입니다. 조상적부터 지켜온 율법을 버린다는 것은 어찌 보면 자신을 버리는 것 같이 느껴질지 모르겠습니다. 조상적부터 지켜온 교파의 전통을 버리는 것 또한 자신을 완전히 버린 것 같은 애착심을 갖게 하리라 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결론은 더 좋은 것이 왔으면 덜 좋은 것은 버리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인간들이 지은 죄를 용서받아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한 길은 동물 제사를 통해 그 때 그때 죄 사함을 받는 율법적인 죄 사함을 받는 방법보다는 예수님이 제사장이 되시어 죄 사함을 얻게 하는 길이 가장 좋은 길이라는 것입니다. 왜? 더 좋은 길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율법적인 죄 사함은 죄를 지을 때마다 매번 동물 제사를 통해 제사를 지내 죄 용서를 받게 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제사는 단번에 또 영원히 드려진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더 좋은 그리고 영원한 죄 사함은 율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새 언약에 따라 되어진 것이므로 율법적인 미련을 완전히 버리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새 언약에 기록된 진리가 있으면 세상 어디에 기록된 그 무엇이 있다하더라도 그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오직 새 언약 즉 진리만을 따르고 순종하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율법은 행위를 요구하므로 행위에 의해 구원을 얻을 자가 없었으나 새 언약은 은혜로 구원을 얻게 되어 있으므로 많은 이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는 구원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진리 말고 세상의 그 무엇도 우리의 죄를 영원히 사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씀 말고는 다 버리고 오직 진리만을 고수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소원은 하나님이 주실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길을 따라 가야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전해들으신 모든 성도님들이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들을 하나님 앞에 인도하실 온전한 제사장이심을 믿고 오직 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말씀을 듣고 그의 말씀에 순종해 나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