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속한 성소 – 히브리서 9:1-10

교회가 세워지고 기독교가 널리 전파됨에 따라 유대인 중에도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은 같은 분이심에도 하나님을 섬기는 예법과 수준이 다른 기독교 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율법에 따른 유대교는 그 차원이 세상적이요, 물질적이며 외적인 육체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기독교는 그 차원이 하늘나라요, 영적이요, 내적인 심령적인 것이 되므로 현실적인 면으로만 본다면 기독교가 주는 떡보다는 유대교가 주는 떡이 더 커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기독교가 심한 박해를 받게 되므로 다시 기독교 신앙에서 빠져 나와 유대교 신앙으로 돌아가려고 주저하는 자들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를 아는 히브리서 기록자는 첫 언약인 율법에 따라 아론의 후손 제사장에 의해 성막에서 드려진 제사로는 속마음까지 정결케 할 수 없는 연약한 임시 예법이므로 기독교 신앙을 굳게 지켜나가도록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옛 언약에 따른 성막 안의 예법을 소개하면서 그런 예법이 심령을 거듭나게 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하기에는 불완전함을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소개받는 우리들은 이 본문을 통해 율법에 따른 성막 예배의 실상을 바로 이해하므로 우리들의 예배가 보다 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성막 안에 있는 것들(1-5) [2]제사장과 대 제사장이 행하는 예(6-7) [3]성령이 보이신 것(8-10)입니다.

 

[1]맨 먼저 1절부터 5절까지의 성막 안에 있는 것들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절에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고 하면서 성막 안에 있는 기구들과 구조를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이 성막을 ‘세상에 속한 성소’라고 표현하므로 주님에 의해 제사 드려지는 ‘하늘에 속한 성소’와 구별해주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옛 언약인 율법에서 요구하고 있는 하나님께의 제사를 이해하므로 새 언약인 신약에서 요구하고 있는 하나님께의 제사가 보다 영적인 면으로 달라져야 함을 깨닫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노릇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누구를 통해 그들을 애굽에서 탈출하도록 하였던 가요? 모세입니다. 모세를 통해 애굽에서 빠져 나올 때에 애굽 왕 바로 왕이 탈출을 한사코 반대할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과 함께 하신다는 증거를 보이기 위해 여러 가지의 이적이 일어나게 했는데 아론이 가지고 있던 매 마른 나무 지팡이에서 싹이 나게 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애굽을 탈출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기간이 40년 동안이었는데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양식을 아침마다 내려주셨는데 그 양식이 바로 만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기 백성을 삼으시고 이 백성들을 주님 오시기 전까지 하나님의 우리 안에 잘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 임시 법을 주셨는데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이 법이 바로 첫 언약인 율법이었으며 이 율법의 요점인 십계명이 적인 돌 판을 받아 가지고 40일 만에 시내산에서 내려왔던 것입니다. 모세는 자기가 받은 모든 율법을 백성들을 다 모아놓고 이 법을 지키도록 선포하였던 것입니다. 선포된 이 법안에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예법도 자세하게 들어 있었으며 또 제사를 드릴 장소인 성막은 어떤 크기로 어떻게 지을 것이며 그 성막 안에는 어떤 기구들을 둘 것인지 등 자세히 들어 있는 것입니다.

 

제사의 종류도 제사의 목적에 따라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가 있었으며 이런 제사마다 드려지는 제물이 다르고 또 신분과 지위와 죄질에 따라 다른 제물을 드렸으며 제사 방법도 불로 태우는 화제도 있었고, 흔들어서 바치는 요제 나 거제가 있었고, 포도주나 독주를 다른 제물과 함께 부어드리는 전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이 본문에서는 속죄제가 언급되어 있는데 하나님과의 단절되었던 관계가 회복되도록 죄 사함 받는 방법으로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동물을 죽게하여 불사르고 피는 단 주변에 뿌리는 제사가 시행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제사 드리는 장소를 성막이라 불렀는데 이 성막의 크기는 길이가 약 50미터, 폭이 약 25 미터 높이가 약 높이가 약 2.5 미터 인 것입니다.

 

이 성막은 다시 성소와 지성소로 나누어지며 성소를 오늘의 본문에서는 첫 장막이라 했는데 이 곳에는 등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다고 했습니다. 등대는 밤에 불을 밝히기 위한 것으로 7촛대가 붙어 있는 등대이고 진설병이란 누룩 없는 떡을 매 안식일 마다 12지파를 의미하는 12개의 떡을 6개씩 두 줄로 떡 상에 놓아두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떡은 거두어 드린 다음에는 제사장만이 먹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맨 안쪽에는 지성소가 있는데 이 지성소 안에는 금향로가 있고 언약궤가 있는데 언약궤 안에는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들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언약궤를 덮는 뚜겅 위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지성소와 성소를 갈라주는 휘장이 있는데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에 예루살렘 성전의 이 휘장이 갈라진 것입니다. 예수님 이후에는 성소와 지성소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주님을 통해 나아갈 수 있다는 증거를 보이신 것입니다. 이 본문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성막안에는 제사장들이 몸을 씻는 물두멍이 있고 동물을 불사르는 번제단이 있으며 제사장들이 머물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 성막뜰이 있습니다.

 

[2]두 번째로 6절과 7절의 제사장과 대 제사장이 행하는 예법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소에는 제사장들이 매일 들어가 봉사를 해야 하는데 그들이 성소에서 하는 일이란 저녁에는 등대에 불을 붙이는 일이요 아침에는 둥불을 끄는 일이었습니다. 등불을 밝히고 끌 때마다 분향단에 향을 피우므로 향불이 계속 타오르게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매 안식일마다 진설병을 새 것으로 바꾸어 놓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지성소에는 일년에 하루 속죄일에 대 제사장이 향로를 가지고 들어가 향을 피우고 동물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 속죄소 위에 뿌리는 것이었습니다. 성막뜰에서는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려 올 때에 죄인이 자기가 가져온 동물의 머리에 손을 얹게 한 후 제사장이 잡아 껍질을 벗기고 몸둥이는 번제단에 불사르고 피는 번제단 주변에 뿌리는 일을 행했던 것입니다.

 

[3]마지막으로 8절부터 10절까지의 성령이 보이신 것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8절부터 10절까지에서는 성령을 통해 첫 언약에서의 성막 제사에 대해 3가지의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하나는 첫 장막인 성소가 있는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는데 성소에 들어가는 길은 오직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길이므로 보통 사람은 옛 언약 아래에서는 전연 들어갈 수 없다는 말로서 옛 언약 아래에서는 보통 사람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는 이 성막 제사는 하나의 그림자요 비유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성막 제사의 예물이나 제사가 드리는 자의 양심까지 온전케 할 수 없기 때문에 양심까지 온전케 할 수 있는 예수님을 통한 제사의 비유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이 옛 언약은 무슨 음식은 더러운 것이요 어떤 음식은 깨끗한 것임을 소개하는 음식의 예법이요, 또 옛 언약은 부정한 것을 만지므로 부정탄 몸을 씻는 예법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므로 육체의 법에 불과하지 영적인 법이 되지 못하므로 이 예 언약을 개혁할 때까지 임시로 맡겨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옛 계약서를 새 계약서로 바꿀 때까지의 기한부의 법이라는 것이라는 사실을 성령이 일러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 말씀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세상에 속한 성소적 신앙에서 벗어나고 양심을 온전케 할 수 없는 육체적 예법에서 벗어난 신앙을 가지라는 교훈입니다. 어떤 교회이던지 간에 하나님 앞에 제사드리기 위해 양을 가지고 오라고 하여 예배당에서 그 양을 잡아 불사르고 피를 예배당 안에 뿌리는 교회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양 꼭 그대로는 아니지만 아직도 옛 언약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세상에 속한 성막을 벗어나지 못한 신앙을 갖고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신앙에서 온전히 벗어나라는 교훈입니다.

 

어떤 것들이 아직도 구약의 그림자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신앙일까요? 목사나 성가대원들이 까운을 입는 것이 제사장들이 입었던 옷의 그림자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될 수 있으며 예배당을 두고 성전이라고 부르거나 예배당 안의 물건들을 거룩한 물건이라고 하여 성물이라고 부르는 신앙이 옛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는 신앙입니다. 십일조를 바쳐야 한다고 구약을 갖다 대는 신앙이거나 무엇을 먹으면 안되고 무엇을 먹어야한다고 음식을 가지고 신앙적으로 해석하려는 신앙이 그렇습니다. 예배당 안에 촛대를 두고 촛불을 밝혀서 옛 성전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 신앙이 그렇습니다. 죤 칼빕은 종교 재혁자인데 그의 주석책중 시편 35편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악기 음악은 분향이나 촛불을 켜는 거나 또 구약의 그림자 속으로 되돌아가는 것 보다 더욱 적합치 않다”고 했는데 예배시에 악기를 사용하는 이유를 구약에서 악기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에 사용되었고 찬양하라고 했다고 구약을 끌어드리는 신앙이 바로 구약의 그림자로 돌아가는 신앙입니다. 또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하므로 주일은 거룩한 날로 알고 몸과 마음을 지키며 다른 날은 거룩하지 않는 날로 알고 아무렇게 지내도 된다고 생각하는 신앙이 바로 그런 신앙입니다. 즉 구약시대와 같이 어떤 날과 어떤 장소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신앙이 구약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는 신앙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자기가 직접 하나님을 찾아가기보다는 목사를 제사장으로 알고 목사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찾아가려는 신앙이 그렇습니다.

 

우리의 양심을 온전케 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구약적인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는 신앙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은 딴 데 있거나 회개 없이 몸만 드리는 예배가 그렇고, 세상적인 복만을 얻기 위해 믿어나가는 신앙이 그렇습니다. 말씀의 순종보다도 자기의 선한 행위로 의로와지려는 믿음이 그렇고, 말씀을 따르기보다는 자기의 생각대로 또는 어떤 교파의 교리에 따라 믿어나가는 신앙이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믿음의 결과는 우리들의 영혼이 의로와지는 것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들은 모두 세상에 속한 성소적 신앙이며 육체의 예법만 되는 신앙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 예수를 통해 영혼이 거듭나는 신앙을 갖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