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언약의 필요성 – 히브리서 8:7-13

우리들은 매주 연속 강해 되는 히브리서 강해를 통해 구약과 신약을 옛 언약과 새 언약 또는 모세의 율법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 자세히 비교하여 소개받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새 언약이 왜 생겨났으며 어떻게 약속되었고 그 특성이 무엇인지를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소개를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죄 사함 받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길은 옛 언약인 모세의 율법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인 새 언약임을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오늘의 강해를 통해 구약과 신약의 구분과 차이점을 더 분명하게 깨닫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되시기를 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새 언약의 필요성(7) [2]새 언약에 대한 약속(8-9) [3]새 언약의 특성(10-13)입니다.

 

[1]먼저 7절의 새 언약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7절에 보니 ‘첫 언약’과 ‘둘째 것’ 이란 말이 나옵니다. ‘첫 언약’이란 옛 언약을 말하는 것으로 애굽에서 종노릇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종살이로부터 이끌어 내어 자유인들이 되게 해 주신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었던 계약 즉 모세의 율법과 규례와 계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것’이란 새 언약을 말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지심을 통해 성취되고 사도들에 의해 선포된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새 언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과 이방 사람을 구별하지 않고 온 천하의 만민인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었던 계약입니다.

 

7절의 뜻은 만일 첫 언약인 모세의 율법이 흠이 없었다면 둘 때 언약인 새 언약이 나왔겠느냐는 질문식의 증거인 것입니다. 즉 새 계약서를 썼다는 것은 첫 번째 계약서가 흠이 있었기 때문에 썼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록자는 복음이 율법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을 설명하기 전에 율법 말고 복음이 존재한 다는 그 자체가 율법으로서는 인류의 죄를 온전히 용서받게 하는데 흠이 있기 때문이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구약 말고 신약이 또 성경 전서에 붙어 있다고요? 사람인 모세가 주인공인 구약은 흠이 있기 때문에 신약이 뒤에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2] 두 번째로 8절부터 10절까지의 새 언약에 대한 약속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의 본문 8절부터 12절까지는 예레미야서 31장 31절부터 34절까지의 인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새 언약을 주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내려오시어 십자가를 지심으로 이뤄지게 되어 있는 것이었으나 오래 전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미리 예언된 것이었습니다. 이 중 8절부터 9절까지에는 새 언약을 주실 것에 대한 약속이 소개되어지고 있는데 새 언약이 언제 세워질 것이지, 누구에게 약속될 것인지, 그리고 그것은 어떤 것인지를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8절에 보면 “날이 이르리니”라 하여 새 언약이 세워질 때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 날은 10절의 “그 날 후에”와 같은 날로 메시아 시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주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시어 십자가를 지심으로 만민의 죄를 감당하신 그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약속한 대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집과 유다의 집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예레미야 당시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로 나뉘어져 있다가 북쪽 이스라엘은 망하고 남쪽 유다만 존재하고 있었던 때이며 본문에서 말하는 ‘이스라엘의 집과 유다의 집’이란 이스라엘과 이방인 모두를 상징하는 말로서 영적 이스라엘 백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9절에서는 새 언약이 어떤 것인지를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즉 새 언약은 모세의 인도에 따라 애굽에서 탈출했던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세운 언약과는 같지 않다고 하여 새 언약은 옛 언약과 다르다고 구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첫 언약을 이스라엘 백성들과 세웠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언약을 지키지 않아 결과적으로 그 언약은 쓸모 없이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지키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그들과 세우신 약속을 지키지 않은 이유로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를 다른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게 하고 그들의 나라가 멸망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조상들과 언약하시기를 법을 잘 지키면 그들을 축복하실 것이요 법을 지키지 않으면 벌을 내리시기로 언약하셨는데 이스라엘 조상들이 법을 지키지 않으므로 약속대로 벌을 받은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키지 않으므로 그들과 맺은 옛 언약은 폐기 된 것입니다. 약속을 어느 한쪽이 지키지 않으면 그 약속이 폐기되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입니다.

 

[3]마지막으로 10절부터 13절까지의 새 언약의 특성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옛 언약인 모세의 율법이 돌 판에 새겨진 것과 구별하여 새 언약은 사람들의 생각에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에 기록하리라고 했습니다. 새 언약은 사람들의 양심에 기록하겠다는 뜻입니다. 로마서 2장 15절에 보면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의 경우에는 그들의 마음에 새긴 율법인 양심이 그들의 율법이 되어 그들 스스로를 심판한다는 말이 있는데 바로 같은 의미인 것입니다. 그래서 양심을 마음에 새긴 율법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롬1:19 에 ‘하나님을 알만한 것을 저희 속에 보임이라’ 고 한 것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을 알만한 양심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의 피조물인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존재로 태어났다는 뜻인 것입니다. 다만 그 양심이 하나님을 향할 때에는 믿는 자가 되는 것이며 그 양심이 세상을 따라가면 세상 사람이 되는 것일 뿐인 것입니다.

 

10절에서 새 언약의 특성은 마음에 새기는 법이라고 소개했는데 12절에서는 새 언약의 특성을 긍휼과 죄의 사면의 법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 이전에도 세상에는 죄가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객관적으로 그 죄가 죄로 인정되지 않았던 것뿐입니다. 그러다가 율법이 선포되므로 죄가 죄인 것으로 들어 나게 된 것입니다. 즉 율법은 죄를 들어 나게 하는 것이어서 율법이 있는 곳에는 죄가 항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의 값은 사망이므로 죄가 있는 곳에는 사망만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통해 모든 인간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여 주고 그 죄를 사함 받는 방법을 제시하여 주었는데 첫 번째의 언약에서는 그 율법을 지키는 것이었고 두 번째의 언약에서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는 믿음과 순종인 것입니다.

 

즉 율법을 온전히 지킨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얻든지 아니면 자기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원자로 믿는 믿음에 따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든지 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 그 누구도 모든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는 자가 없을 것이므로 그 율법에 의한 구원이란 전연 불가능한 것이 되어 모세의 율법은 인간들에게 구원 얻게 하는 길로서는 연약하고 흠이 있는 것이 되며 오직 새 언약인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받아드리는 믿음에 의한 길만이 온전한 구원의 길이 된 것입니다. 13절에서는 새 언약은 첫 언약 즉 모세의 율법은 낡아지고 쇠해지고 없어져 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그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하나님을 사랑하되 법으로 사랑하지 말고 마음으로 사랑하라는 교훈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억지로 그리고 외형적으로 사랑하지 말고 기쁨으로 마음으로 사랑하라는 교훈입니다. 부모를 효도하되 부모에게는 효도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으로 효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부모가 자기를 어떻게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그 사랑의 원리를 바로 깨닫고 감사하여 진심으로 효도하는 거와 같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독생자까지 십자가에 못박기까지 하시면서 우리들을 사랑하신 그 원리를 깨닫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살도록 사면을 해주신 분에게 어떻게 해드리는 것이 마땅한 도리이겠는지 우리의 양심이 대답한 대로 행동하면 되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시어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기까지 하신 것을 아는 우리들도 진심으로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해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에든지 하나님을 첫째로 대우해드리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무슨 일에든지 첫째로 모시고 대우해드리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역시 그를 첫째로 대우해 주실 것입니다. 늘 마음에 하나님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늘 마음에 두실 것입니다. 반대로 작은 일에도 하나님을 잊어먹는 자를 하나님께서도 그를 기억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신앙 생활하는 우리들은 잘 믿든지 못 믿든지 당장 눈앞에 그 결과가 나타나는 것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잘 섬기는 자에게 먼 훗날 기장 적적한 때에 영육간에 그에 대한 넉넉한 보상을 해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등한했던 일을 하나님께서는 이를 기억하시고 먼 훗날 그가 받아야 마땅한 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 기억하시고 그에 대한 마땅한 보상을 내리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크고 적은 일에 언제나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내가 어렵고 힘들 때에도 그런 어려움을 다 물리치고 하나님을 섬겼던 일을 다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가 급해서 하나님께

부탁할 일이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실 것입니다.

 

그러나 별거 아닌 일에도 하나님을 뒤로 밀어내는 신앙이 급해서 부르짖는 기도에는 귀를 막으실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영육간에 복을 보장받는 자들입니다. 우리들에게 일생을 두고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으로 보상하실 것입니다. 모든 성도님들이 하나님이 내리실 가장 귀한 복을 다 받으시도록 마음으로 깊이 사랑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