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좋은 인물들이 맞은 일들 – 히브리서 11:33-40

우리들은 지난 몇 주 동안 믿음이 좋은 구약의 인물들을 소개받았습니다. 오늘의 본문에는 이름을 밝히지 않고 믿음이 좋은 이들과 연관된 사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결같이 끔찍한 고통과 처절한 상황들이 언급되어 있을 뿐 이들 믿음의 선조들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인해서 크게 축복 받고 영광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별로 없습니다. 단지 34, 35절에 전쟁에서 이방인들의 진을 물리쳤다는 것과 죽은 자를 부활로 다시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을 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으로 이 세상을 이긴 자들이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갔으며, 어떠한 종말을 맞이했는지를 생각해 보고 현재 우리의 신앙을 돌이켜봐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고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는 이들(33-38) [2]증거는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한 이들(39-40) 입니다.

 

[1]먼저 33절부터 38절까지의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는 이들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 소개되는 믿음의 사람들은 그들의 이름을 밝히지는 않고 있으나 그 사건을 통해 그들이 누구인지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33절 앞부분을 보니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라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 시대부터 시작된 이스라엘 민족의 정복 사업은 사사시대를 거쳐 다윗 왕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절정에 달하여 그들이 차지한 영토는 이집트 국경에서부터 유브라데스강까지 확장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싸운 믿음의 인물들은 전쟁에서 승리하였고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따라 나라를 통치하므로 의를 행한 자들이 된 것이며 그들이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받은 자들이 다 된 것입니다.

 

또 33절 뒷부분에 보니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라 했습니다. 다니엘이 믿음을 지키다가 사자굴에 던져졌으나 신체적으로 아무런 해를 받지 않고 거기에서 나올 수 있었음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34절을 보니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라 했습니다. 누가 믿음을 지키다가 풀무불에 던져졌으나 죽지 않고 풀무 불에서도 살아났나요?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였습니다. 믿음을 버리고 우상에게 절을 했다면 풀무불에 들어가지 않했을 터이나 우상에게 절하지 않은 죄목으로 풀무 불에 던져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풀무 불에 이 세 사람을 던져 넣은 사람은 불길에 타 죽었고 세 친구를 묶은 줄은 타버렸으나 풀무 불에 던져진 다니엘의 세 친구는 털끝하나 타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울 왕은 다윗을 죽이려고 여러 번 창을 던졌으나 그때마다 다윗은 그 창을 피할 수 있었으며, 또 엘리야 선지자나, 엘리사 선지자는 이세벨의 칼을 피할 수 있었으며, 또 예레미야 선지자는 여호야김 왕의 칼을 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가진 믿음 때문에 하나님께서 칼날의 위험에서 그들을 일시적으로 피하게 하신 것입니다.

 

또 에스더같은 연약한 여인은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 가운데 강하게 되어 이스라엘 모든 백성을 구원할 수 있었으며, 기드온 같은 사사는 300명의 연약한 군사만 가지고도 바다의 모래와 같은 강한 적군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소년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이긴 일도 연약한 자를 들어 강하게 만드신 하나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35절을 보겠습니다.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라 했습니다.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죽은 아들을 부활로 받았으며, 수넴 여인이 엘리사 선지자를 통해 죽은 아들을 부활로 받았던 것입니다. 이들은 믿음 때문에 죽은 아들이 살아나는 이적을 체험한 것입니다. 그런데 대조적으로 어떤 믿음의 용사들은 더 좋은 부활을 소망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고난과 순교를 피하기 위해 구차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기독교 순교사에 보면 믿음을 지키다가 끔찍하게 순교당한 순교자들의 죽음을 이긴 강렬한 믿음을 보게되는데 그들은 주님 오실 때에 더 좋은 부활을 믿기 때문에 순교를 달게 받은 것을 보게 됩니다.

 

36절과 37절을 보겠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라 했습니다. 이 모든 표현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당한 여러 모양의 고난을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스테반이 돌에 맞아 순교 당한 사실이나 세례 요한이 목 베임을 받은 일이나 사도 바울이 옥에 갇히고 수없이 매맞고 돌에 맞았으며, 야고보도 칼로 순교당한 사실을 잘 압니다. 그리고 엘리야나 엘리사 선지 같은 모든 선지자들은 세례 요한이 입었던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광야에서, 굴에서 생활한 것을 보게 됩니다. 믿음을 위해 안락하고 풍부한 삶과 생명까지라도 포기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이사야 선지자가 톱으로 잘려 순교 당했다고 합니다.

 

38절을 보면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했습니다. 세상은 믿음의 용사들이 믿음을 버리도록 어떤 형태로든지 핍박하여도 그런 그들의 방법이 믿음의 용사들에게는 먹혀들지 않아 아무 효력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매 때리면 매를 맞고, 돌로 치면 돌을 맞으며, 욕하고 비난하면 비난을 다 받았으며, 죽이겠다면 죽음까지라도 다 수용하였으며 가난과 모든 고통을 다 감당하면서 믿음을 지켰으니 이들은 일시적인 부활보다는 더 좋은 부활인 영원한 부활을 소망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2]두 번째로 39절과 40절의 증거는 받았으나 약속은 받지 못한 이들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39절을 보니 ‘이 사람들은 증거는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 하였으니’라 했습니다. ‘이 사람들’ 이란 11장에서 소개된 믿음이 있다고 칭찬된 모든 이들을 말합니다. 믿음 때문에 고통을 피한 자이건 믿음 때문에 고통을 받은 자이건 믿음이 있다고 인정된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그들은 그들에게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은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33절에는 ‘약속을 받기도 하며’라는 말과 모순되는 것 같이 생각되나 33절의 약속은 이 세상에서 이뤄질 하나님의 약속을 말하는 것이며 39절의 약속은 주님을 통해 이뤄질 약속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약속에 대한 보장은 받았으니 그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직 세상에 오시지 않았던 때이고 더욱 재림의 때가 멀리 있으므로 그들은 믿음의 눈으로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믿음을 가진 자가 받는 약속은 이 세상에 얻어지는 그 무엇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의 재림을 통해 얻어지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약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오시게 하므로 우리들은 예수를 믿는 믿음이 가져다주는 모든 혜택을 다 받고 살지만 구약시대의 믿음의 인물들은 그런 복을 누리지 못하고 멀리서 주님의 때를 바라고만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들에게 주님의 십자가 구원의 사실을 믿는 복을 누리게 하시다가 주님의 재림시에 구약의 믿음의 인물들이나 신약의 믿음의 인물들 모두가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 영원히 살도록 구원의 계획을 세우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그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믿음의 최종 약속에 대해 바로 알고 그 믿음의 약속을 위해 모든 어려움을 인내하고 주님 오실 때까지 믿음을 지키라는 교훈입니다. 이 세상의 대다수의 교회들이 그렇고 대다수의 신자들이 믿음의 바른 약속을 오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즉 우리가 11장 전부에서 보듯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 전쟁에서 이기기도 하고 일시적으로 죽었다 살아나는 이 세상에서의 복을 얻기도 하지만 반대로 믿음이 좋기 때문에 매맞고, 사자굴에 들어가고 풀무불에 들어가며, 옥에 갇히며 굶주리고 헐벗고 순교 당하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기복신앙을 가르쳐서 기독교를 퇴색시킨 교회들은 믿음장 히브리서 11장의 아주 일부만을 가지고 이것이 믿음이 좋은 사람들의 약속이라고 한 결과인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믿음이 아주 좋은 사람에게도 가난과 아픔과 조롱과 심지어는 순교의 박해까지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11장에서 분명히 밝혀주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혹 하나님께서 믿음이 좋은 연고로 현실적인 열매로 채워주셨다 하더라도 그 열매가 믿음의 최종적인 약속이 아니라 믿음의 최종적인 약속은 주님 재림시에 주님과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두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려준 사실은 엄청난 복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복이 일시적인 복이라 다시 그 두 아들이 죽었고 더 좋은 부활을 그들이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믿음을 가진 모든 성도들을 하나님께서는 여러 모양으로 세상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물질과 건강으로, 또 어떤 이에게는 질병과 가난과 억눌림으로 더 나아가서는 순교로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풍성한 물질과 건강과 장수도 일시적이요, 또한 가난과 질병과 억눌림과 순교도 일시적인 것이어서 곧 주님 재림시에는 과거의 풍성함도 과거의 헐벗음도 다 기억되지 않으며 모든 믿는 자들은 주님께서 예비하신 나라에서 큰 영광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전해들은 우리 모두가 믿음의 참된 약속을 바로 깨달아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소망을 가지고 모든 어려움을 넉넉히 이기며 살기 되시기를 원합니다. 다니엘을 사자의 입에서 지켜주시고 다니엘의 세 친구를 뜨거운 풀무불에서 지켜주신 하나님께서 믿음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하는 자들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영원한 약속에 소망을 두며 끝까지 인내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