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징계 – 히브리서 12:4-13

믿음 생활을 잘 해보려고 최선을 다하는 자들이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만나게 될 때에 많이 낙심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보통 생각으로는 잘 믿는 자에게는 아무런 어려움도 없도록 하나님께서 잘 지켜주신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록자는 오늘의 본문을 통해 이런 문제에 대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이 편지를 받는 자들이 핍박과 고난이 견디기 어려워 믿음을 포기하려 했기 때문에 히브리서 기록자가 그들에게 고난의 의미와 목적을 소개하며 고난을 인내하도록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소개받는 우리 모두가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고난의 의미와 고난을 통해 얻어지는 열매를 바로 깨닫고 어떤 어려움을 만나든지 믿음으로 잘 소화하므로 연단 된 믿음들을 다 소유하시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고난의 의미(4-9) [2]고난의 열매(10-11) [3]고난에 대한 권면(12-13)입니다.

 

[1]맨 먼저 4절부터 9절까지의 고난의 의미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누구나 일평생 아무런 시련도 모르고 평탄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지만 그런 삶은 온실 속에서만 자란 식물과 같은 인생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온실 속에서만 자란 식물과 비바람을 맞으며 밖에서 자란 식물과는 많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4절부터 9절까지에서는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고통을 징계라는 말로 표현했으며 이 징계의 가치에 대해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징계는 잘못의 대가로 얻어지는 고난과 잘못과 상관없이 받는 고난 모두를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징계에 대한 교훈은 잠 3:11-12 의 말씀인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같이 하시느니라’를 인용한 말씀입니다.

 

자녀들이 무엇을 잘못하여 부모들이 책망을 하면 그 책망을 잘 받는 자녀도 있고 반대로 책망 받는 것이 싫어서 대항하는 자녀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 본문은 징계나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육신의 아버지가 사랑하는 자기 자녀를 징계하듯 하나님께서도 사랑하는 자기 자녀들을 징계하신다고 했습니다. 남의 자녀가 잘못했을 경우에 책망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훌륭한 부모라면 자기 자녀가 잘못했을 경우에 책망하여 잘못을 고치게 할 뿐 아니라 자녀를 보다 강하게 키우기 위해 자녀가 어려움도 경험해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아무런 어려움을 만나지 않도록 부모가 지나치게 보호한다면 그 자녀는 온실 속의 식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철이 덜든 자녀는 부모가 무엇이든 다 보호해주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과잉 보호로 자란 자녀는 부모의 도움 없이는 어려운 세상을 해쳐나갈 힘을 갖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남의 자녀라면 관심과 책임감이 덜하기 때문에 남의 자녀를 책망하고 철저히 훈련시키겠다는 의지가 적겠지만 자기의 친자녀라면 잘못했으면 즉시 책망하여 고치게 하고 또 더 강하게 자라도록 강한 훈련을 시키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께서도 자기의 자녀를 징계라는 수단을 동원하여 잘못을 깨닫고 고치게 하며 또 강하게 훈련시킨다고 했습니다. 만일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지 않는 다면 하나님의 참 아들이 아니라고까지 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가진 의문에 대한 답을 얻게 됩니다. 믿는 자에게 견디기 어려운 고난이 찾아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버려 돌보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반대로 하나님께서 그를 자기의 친자녀로서 사랑하시고 돌보시고 계시다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난을 참으라는 것입니다. 4절에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라 했는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기까지 고난을 당하셨지만 이 편지를 읽는 독자들은 아직 피 흘릴 정도까지의 고난은 아니니 참아보라는 뜻이기도 하며 또한 피 흘리는 경우가 있다해도 끝까지 인내하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예수 잘 믿으면 아무런 어려움을 만나지 않는 것이 아니고 믿는 자가 하나님의 참 자녀라면 고난을 받을 것이고 아무런 고난을 받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참 자녀가 아니라는 결론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참 자녀였으나 십자가의 피 흘림을 당하신 것이 바로 증거인 것입니다. 또 스테반이나 많은 순교자들이 순교 당하고 사도 바울 같은 사도들이 많은 고통을 당한 것은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참 자녀였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2]두 번째는 10절부터 11절까지의 고난의 열매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부모님들이 자녀를 징계하실 때에는 부모님의 그 당시의 판단에 의해 책망하게 되므로 때로는 부모님의 판단이 잘못되어 그 책망이 유익을 가져오지 못하는 실수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하신 판단을 하시기 때문에 책망마다 책망 받는 자에게 유익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징계를 받더라도 징계를 받는 그 순간에는 마음이 아프고 견디기 어렵겠지만 징계의 의미를 깨닫고 잘 참아낸다면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모든 징계를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내리신 것으로 소화하여 모든 고난을 하나님과 연관을 시키고 그 고통을 긍정적으로 받고 소화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고난이 다 지났을 때에는 자신에게 있었던 모든 죄도 회개하여 의로워지고 하나님께서 내리신 평강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징계는 입에 쓰나 징계의 열매는 영혼에 단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3]마지막으로 12절, 13절의 고난에 대한 권면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4절부터 11절까지에서 징계의 의미와 징계의 열매를 소개하고는 12절과 13절에서 권면으로 결론 짖고 있습니다. 즉 징계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참 자녀라는 증거요, 징계를 통해서 의의 평강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사실을 배웠으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고난이 심하므로 고난을 인하여 지치고 낙담하여 맥이 빠져 있는 데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을 얻어 다시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또 고난을 인하여 어디로 가야할지를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는 입장에서 마음을 굳게 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길을 가고 또한 이웃들에게도 같은 길을 가도록 권면하고 격려하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으로서 기독교인이 되었던 히브리서 수신자들이 어려운 고난을 참지 못하여 기독교를 버리고 다시 옛 길로 돌아가려 했던 그들을 깨우쳐주고 이미 받은 진리의 길을 계속 걸어가도록 권면한 귀한 말씀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믿는 자가 만나는 모든 고난을 긍정적으로 받고 이를 잘 인내하라는 교훈입니다. 믿음이 좋다고 해도 힘겨운 고난을 당하면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이런 큰 시험을 주셨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실망하여 믿음이 약해질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오늘의 교훈은 좋은 처방이 되겠습니다.

 

이런 고난을 만날 때에 이 고난을 하나님과 연결시켜 일단 긍정적으로 받아야 합니다. 왜? 고난이 주어졌는지 자신을 돌아보고 이 고난이 자기의 죄 때문으로 풀이되면 그 죄를 회개하므로 고난을 소화해야 하며 죄와 상관이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지면 죄를 짓지 않았는데 왜? 나를 이렇게 고통을 주느냐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을 주신 것은 분명히 나에게 유익 되게 하시기 위해 주셨다고 받아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무거운 고난을 주신 것은 내가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믿고 하나님께 의지하면 풀러나갈 수 있을 것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힘으로 그 고난을 물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주에도 강조되었지만 모든 어려운 고난을 만날 때마다 고난의 십자가를 끝까지 인내하시며 지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견딜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고난은 당할 당시에 너무 힘들지만 고난을 믿음으로 잘 참아낸다면 믿음이 깊어지고 넓어지며 영이 더 맑아질 것입니다. 그런 고난의 시련을 통해 육적인 찌꺼기가 점점 빠져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믿는 자들을 넘어뜨리기 위해 여러 모양으로 고난을 가지고 덤벼들 것입니다. 마귀가 자기 친구를 공격할 이유가 없습니다. 마귀의 공격을 받는 다는 것은 마귀의 길과 반대의 길인 의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마다 이 것이 마귀의 시험임을 알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마귀에게 속아 넘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마귀의 시험을 피하기 위해 마귀와 타협해서는 안됩니다. 만일 마귀와 타협한다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귀를 대적하여 마귀를 물리쳐야 합니다. 그 시험을 승리로 이겨냈을 경우에는 믿음이 더욱 연단되어 마귀가 오히려 나를 도와준 결과가 될 것입니다. 우리 믿는 자가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어떤 이는 가난으로 인해서 고통을 당하나 언젠가는 그 가난이라는 것이 그 사람에게 귀한 것을 가져다주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병으로 인해 심히 고통을 당했던 자들에게도 그 병으로 인해서 많은 것을 얻게 되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 주어진 어떤 고난도 믿음으로 이겨나간다면 다 유익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이 이 세상에만 있는 것이라면 모든 고난을 적당히 모면하기 위해 넓은 길을 택할 수 있지만 우리들의 소망은 하늘 나라이기 때문에 그 곳에 도달할 때까지 자갈밭도 걸어야 하고 가시밭길도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좁고 험한 길을 가려는 자가 많지 않겠지만 오직 그 길만이 천국으로 인도하는 길이므로 피해가지 않고 그 길을 똑바로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 길이 바로 주님께서 쓰신 가시 면류관과 같은 길인 것입니다. 가시 면류관을 쓰셨던 주님께 큰 영광이 주어졌듯이 진리의 길, 가시밭길을 통과한 자에게 주님께서 의의 면류관을 씌어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믿음 때문에 당하는 모든 고난을 믿음으로 이겨내서 하나님이 내리실 영광의 자리에 다 들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