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난 자의 생활 – 야고보서 1:19-27

환원 운동사에 보면 환원 운동에 공헌한 인물들 중 감리교 출신의 제임스 오켈리 목사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감리교가 감독 제도로 여러 교회를 지배하는 것을 반대하여 1793년에 감리교를 탈퇴하고, Christian Church 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교회가 성서대로 각 교회를 치리 할 장로들을 세워야 함을 강조했으며, 신약만이 그리스도인들이 따를 유일한 책임을 선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1810년 세례에 관한 토론을 했는데 침례가 유일한 세례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즉 그가 성경으로 환원해야 함을 주장한 환원 운동가였으나 세례에 관해서는 평소에 자기가 가졌던 견해를 버리지 못했음을 알게 됩니다.

 

마르틴 루터는 우리가 아는 대로 로마 카톨릭 교회가 한창 부패할 당시 돈으로 속죄권을 팔고 사므로 죄가 사함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던 시기에 로마서 10장 9절, 10절의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실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라는 말씀을 읽고 비 성서적인 실행에 도전하여 종교 개혁을 단행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믿음으로 되어진 것이지 또 다른 것이 있을 수 없다는 확신 가운데 종교 개혁을 단행한 그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행함을 강조한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혹평을 했던 것입니다. 그는 믿음으로 구원되는 사실은 깨달았으나 그가 주장한 믿음과 그가 경멸한 행함이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행함은 하나라고 하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위의 사실을 두고 얻을 수 있는 결론은 훌륭한 기독교 지도자도 완전할 수 없고 완전한 것은 성서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라면 구원받은 자 다운 행실이 자기의 믿음을 증거해 주어야지 마음으로 믿기만 하고 행실이 따르지 못한다면 온전한 믿음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구원받은 성도의 삶은 어떤 삶이어야 하는 지 교훈 해주고 있습니다. 즉 믿음을 가진 자는 행함이 있어야 함이 강조된 말씀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귀한 교훈을 받아 성도가 지녀야할 마땅한 행함이 뒤따르는 믿음 생활을 하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길(19-21) [2]도를 행한 자가 되라(22-25)

[3]경건의 길(26-27)입니다.

 

[1]맨 먼저 19절부터 21절의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길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롬 10장 10절에는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고 되어 있는데 오늘의 본문 야고보서 1장 20절에는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즉 마음으로 믿는 믿음만 가지고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으로 믿은 믿음이 몸을 통해 나타나는 행함이 일치되어야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19절부터 21절까지에서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 수 있는 방법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고 했습니다. 듣기를 속히 하라는 말은 세상의 잡다한 소리를 속히 들으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속히 들으라는 말입니다. ‘듣기는 속히 하라’는 말씀의 뜻을 21절에서 풀어주고 있습니다.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한 마음으로 받으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말씀을 받아 담을 마음 그릇으로부터 모든 더러운 것과 죄악을 쏟아버리고 그 깨끗한 마음 바탕에 우리의 영혼을 구원할 말씀을 기쁨으로 감사하게 받으라 한 것입니다. 속히 하라는 말씀은 늘 말씀을 받으라는 말입니다. 세상 소리는 제쳐두고 하나님 말씀 듣는 일에 열심을 내라는 말씀입니다.

 

말하기는 더디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 듣는 일을 주로 하고 자기의 의견이나 주장을 펴는 일은 뒤로 미루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자기의 의견과 주장으로 따져드는 일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일을 방해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이 자기의 요청대로 되지 않거나 하나님의 말씀이자기의 의견과 다르다고 성질을 내지 말고 참고 기다릴 줄 알라는 말씀입니다. 문둥병자 나아만은 엘리사 선지자의 지시가 마땅치 않아 화를 내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자기 부하의 권유로 엘리사 선지자의 지시대로 순종함으로 문둥병이 나음을 받았던 것입니다. 기독교는 자기의 생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시대로 따르는 것이라는 진리를 증거 해주는 교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과 귀로 받고 순종하는 마음 자세로 실천해 나가라는 교훈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게 된다는 교훈입니다.

 

[2]두 번째로 22절부터 25절까지의 도를 행하는 자가 되라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교훈을 받았으면 그 들은 것을 생활에 옮기라는 교훈입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자는 자기 자신을 속이는 자라고 했습니다. 또 거울로 자기 얼굴을 보는 자와 같아서 자기 얼굴을 보기는 보았으나 자기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곧 잊어버리는 자와 같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거울의 질이 좋아서 자기의 얼굴을 그 대로 볼 수 있지만 옛날에는 유리가 아닌 구리로 거울을 만들었으므로 자기의 얼굴을 잘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말씀을 듣고 직접 실행에 옮겨 보지 못한 자는 자기가 들었던 말씀을 곧 다 잊어버리고 만다는 뜻입니다. 말씀은 우리들에게 자유를 누리게 해주며 온전케 해주는 것인데 진리가 우리들에게 자유와 온전을 가져다주도록 하기 위해서는 진리를 듣고 실천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듣고 마음으로 받으며 몸으로 실천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신다고 했습니다.

 

[3]마지막으로 26절과 27절의 경건의 길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야고보서 기록자는 행함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우리가 평소에 알고 있는 경건을 다른 차원에서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즉 우리들은 경건이란 예배당에서나 개인적으로 기도하고 찬송하고 말씀 읽으면서 가질 수 있는 마음의 자세로만 생각했는데 야고보서 기록자는 이런 경건한 마음을 가진 자가 행함이 없다면 그것은 거짓 경건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경건한 자는 마땅히 자기의 혀를 조심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경건한 믿음 생활을 한다면서 입을 마음대로 놀려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면 어찌 그가 경건한 자라 할 수 잇겠느냐는 말씀입니다. 또 경건한 자는 마땅히 고아와 과부와 같은 어려운 환경에 있는 자를 돌아보면서 자기를 지켜서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경건이란 세속에 물들지 않기 위해 수도원이나 기도원에 들어가서 기도만하고 말씀만 보아 아예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험한 세상에 살면서도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늘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고 내 주변에 있는 환난 당한 자들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사는 자가 참으로 경건한 자라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믿음이란 마음으로 믿고 몸으로 실천하는 것임으로 성경을 통해 들은 말씀을 순전한 마음으로 받고 몸으로 실천하라는 교훈입니다. 기독교는 예배당에서만의 종교가 아니며 마음으로만 믿는 종교가 아닙니다. 또 주일날만의 종교가 아니며 365일의 종교인 것입니다. 바른 기독교 신앙은 예배당에서나 일상 생활에서 하나님을 생각하는 경건을 유지하며 또한 내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 이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첫째 되는 계명은 하나님을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고 둘째 되는 계명은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 한 것입니다.

마음으로 믿는 믿음이 없으면서도 몸으로 행하는 행실로 구원받을 것으로 잘못 아는 자나 행함이 없으면서도 마음으로만 경건을 유지하면 구원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신앙은 둘 다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믿음이란 혼자서 자기의 생각대로 믿어 나가는 믿음이거나 어떤 교파에서 가르치는 교파적인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약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믿음을 순전한 마음으로 그대로 받아 믿는 믿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다고 강조하고 행함을 경시하는 자들이 그 믿음마저 성경적 믿음이 아니라 어떤 교파나 아니면 자기 독선적인 믿음이라고 한다면 더욱 문제가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올바른 신앙이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의 본 뜻을 바로 이해하고 그 말씀을 믿고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들을 몸으로 실천하는 신앙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올바른 신앙이란 내가 소원하는 개인적인 것을 하나님을 통해 얻어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참뜻을 알아내기 위해 열심히 성경을 연구하며 성경 연구를 통해 하나님의 참뜻을 찾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손질하여 자기 개인의 생각을 붙이거나 빼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손질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믿고 따른 것이 바른 신앙이지 고쳐나가면서 믿는 신앙은 구원에 대한 보장이 없는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보장된 구원을 이루기 위해 말씀을 받되 마음의 더러운 것을 다 씻어 낸 정결한 마음으로 간절히 받으며 그 말씀이 내 속에서 계속 살아 역사 하도록 경건을 유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경건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 입을 잘 지키며 실생활에서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을 돌아보는 성도다운 성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전해들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사랑하므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