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로 판단하지 말라 – 야고보서 2:1-13

우리들은 앞장인 1장을 통해서 지나칠 정도로 철저하게 강조한 “행함” 에 대한 여러 가지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1장에서 ‘너희는 도를 행한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는 권면을 주었는데 2장에 들어서도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또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고 행함이 따른 믿음이 강조되어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야고보서를 기록한 야고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면 믿는 자답게 실생활에서 행함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실천이 따른 삶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말한 것을 행동으로 옮겨달라는 주문을 성도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2장의 앞부분인 오늘의 본문에서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되는데 하물며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섬기는 성도들은 어떤 경우에도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소개받는 우리 모두는 오늘의 교훈을 받는 대로 지켜나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외모로 판단하는 태도(1-4) [2]외모로 판단하는 것의 잘못(5-7) [3]외모로 판단한 것의 결과(8-13)입니다.

 

[1]맨 먼저 1절부터 3절까지의 외모로 판단하는 태도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돈 없는 사람은 교회도 다니기가 어렵다는 말을 들어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사람들의 명함에 박사가 몇 개씩 붙어 있고 무슨무슨 총재, 회장 등 감투가 수두룩한 것을 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이 사회가 돈 있고 높은 명예를 가진 자를 높이고 돈 없고 학식이 없고 명예가 없는 사람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 그룹 명예 회장이신 정 주영씨가 어느 날 험한 자동차를 타고 어떤 호텔에 갔더니 호텔 안내원이 차를 보고 차를 탄 사람이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판단하여 손가락질을 하면서 저 쪽으로 갔다 차를 세워라고 했다는 실화는 현 시대를 잘 설명해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금도 그렇지만 이 야고보서가 쓰여질 당시의 사회도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는 일이 심했던 모양이고 그런 사회적인 풍조가 심지어는 교회에까지 침투되어 교회에서도 돈 있는 자는 대우받고 가난한 자는 천대를 받았던 모양입니다. 이런 분위기가 교회 안에 번져나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차단하려고 본 편지를 써 보낸 것입니다.

1절에 보니 세상 사람들이야 어떻든 주님을 주로 고백한 믿는 자들이라면 영광의 주님을 주로 모시고 사는 형제와 믿는 자답게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여 대우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2절부터 예로 든 것은 만일 어떤 사람이 아름 다운 옷을 입고 손에 금가락지를 끼고 오면 그 사람을 특별히 대우하여 자리를 챙겨주고 혹 가난한 자가 더러운 옷을 입고 들어오면 자리를 챙겨주지 않고 어디든지 앉으라고 하면 이것이 자기의 이익을 노려 악한 생각으로 사람을 구별하여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한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나, 금가락지를 낀 자란 돈이 많고 높은 지위를 가진 자나, 또는 많이 배운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가졌거나 경제적으로 부유한 자를 말하는 것이며, 가난하고 더러운 옷을 입은 자라고 하는 자들은 돈도 없고 명예나 지식이나 사회적 지위가 없는 자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사람의 외적 사정에 따라 사람을 존대하거나 천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 사람을 위한 다기 보다는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악한 생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냐고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2]두 번째로 5절부터 7절의 외모로 판단하는 것의 잘못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만일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여 가난한 자를 천대한다면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부자이거나 가난하거나 지위가 높고 지식이 많은 자이거나 천한 신분의 사람이거나 상관하지 않고 그를 사랑하는 자들을 다 아들딸로 삼으시고 하늘 나라를 유업으로 약속하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한 가정을 두고 볼 때에 한 부모의 자녀들 중 어떤 자녀는 혹 가난하고 사회적으로도 변변치 못하다고 다른 형제들이 변변치 못한 형제를 깔보고 무시하며 천대한다면 형제로서 할 일이 못될 뿐 아니라 그 변변치 못한 자식을 낳은 부모를 깔보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외적인 것을 보시고 판단치 않으시고 속마음만을 보시고 아들딸 삼아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도록 이미 허락하셨는데 하나님의 기준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종들이 사람이 만든 기준을 가지고 하나님께 속한 종들을 판단한다고 한다면 그들을 지으신 창조자 하나님을 깔보는 결과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이 빚을 갚지 않으면 법정에 끌고 가고 또 자기들이 가진 권력을 이용하여 가난한 자들에게 불이익을 가져다 준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또 믿는 자들을 핍박하므로 교회에 불이익을 가져다 준 부자나 권력자들이 들어오면 특별 예우해 준다면 이는 전연 논리에도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권력자들이나 부자들이 주로 사두개파 출신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기독교를 핍박하고 가난한 자들을 무시했던 자들이었는데 그런 자들이 교회에 들어오면 대우해주고 가난한 성도들을 푸대접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지적인 것입니다.

 

[3]마지막으로 8절부터 13절까지의 외모로 판단한 것의 결과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야고보서의 기록자인 야고보는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일이라고 지적하면서 법을 어기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명하셨으며 이 법은 세상 무엇에도 비교되지 않는 최고의 법인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어떤 자가 자기의 어떤 목적에 따라 자기에게 이익이 될만한 사람은 대접해주고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은 천대해 나간다면 이런 일은 모든 사람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아니므로 하나님의 법을 어긴 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물론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자가 하나님의 다른 많은 계명을 다 잘 지켰다 할지라도 만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어기면 다른 계명을 다 지킨 것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법을 어긴 자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이 정한대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에 의해 심판 받아야할 모든 성도들은 심판 받을 자답게 살라는 것입니다. 심판 받을 자 닫게 살라는 말은 심판자는 하나님이시므로 사람인 성도들은 남을 외모로 심판하는 자리에 서지 말라는 경고인 것입니다. 심판자도 아니면서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여 남을 심판하는 자는 심판시에 긍휼 없는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경고인 것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를 돌아보고 긍휼히 여긴 자는 그 긍휼이 자기에게로 돌아와 심판을 이기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서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사람을 보실 때에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의 눈을 닮아라는 교훈입니다. 아니 내 이웃이 부자이건 가난한 자이건 외적인 요건에 상관치 않고 둘 다 똑같이 사랑하는 자들이 되라는 교훈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삶은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삶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소망은 이 땅의 어떤 소망과 전연 비교할 수 없는 큰 소망인 것입니다. 그런 큰 소망을 가지고 살아나가는 우리 모두는 이 땅의 어떤 부귀 영화에 현혹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너무나도 일시적인 것이요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돈이 많고 작고나, 명예가 크고 명예가 없고는 믿음의 크고 작고와는 상관없는 것이므로 그것을 가지고 남을 판단하는 자로 사용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재물과 명예는 남을 판단하는 자가 아니고 이런 것이 없는 자와 나누는 나눔물인 것입니다. 어떤 자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천박한 환경에서 산다는 이유로 남들로부터 경멸을 받는 다면 그 모든 수모를 하나님께서 다 갚아주시고 그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나 그에게 눈물을 흘리게 하고 마음 아프게 한 자에게는 그가 받아 마땅한 채찍을 내리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법을 어겼을 뿐 아니라 심판자인 주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중심하여 믿음의 크기란 어떤 결과로 나타나야 할 까요? 믿음의 크기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내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얼마나 차별하지 않느냐가 바로 자기 믿음의 크기가 될 것입니다. 피부색깔, 배우고 못 배운 것, 돈이 있고 없는 것, 가족이 많거나 없는 것, 경상도이거나 전라도 이거나 구별하지 안는 훈련이 쌓아져야 합니다. 우리 속에 그런 것을 가지고 사람을 차별하는 속성이 사라지지 안는다면 심판시에 우리도 그런 것으로 차별 받게 될 것입니다. 아무런 자격이 없는 우리들을 차별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딸로 양자 양녀해 주셨는데 자기가 차별 받지 않는 입장은 잊어먹고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남을 깔보고 차별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심판시에 다 따질 것입니다. 만일 남의 얼굴이 검다고 남을 차별한자가 있다면 심판시에 하나님께서 그의 얼굴이 희거나 노랗다는 이유로 책임을 물으실 것이며, 남이 가난하다고 남을 차별했다면 그가 세상에서 모아둔 돈이 너무 적어서 천국에 들어오기에는 부족하다고 하실 것입니다. 아니 또 전라도 사람, 경상도 사람으로 지역에 따라 차별하였다면 그가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천국 입성을 거절하실 것입니다. 아니 자기가 좋은 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로 못 배운 자를 차별했다면 그가 자랑한 출신학교 가지고는 천국에 들어 올 자격이 없다고 천국 입성을 거절하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실 때에 우리의 피부색, 돈, 지식이나 학력, 남녀, 사회 지위 등 아무 것도 묻지 않으시고 믿는 믿음만을 보시고 자녀 삼아주신 그 은혜를 생각하여 아무 것도 것도 아니고 심히 일시적인 것을 가지고 남을 판단하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마음과 눈과 입을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남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 눈, 오히려 낮은 자를 사랑하는 마음, 그 마음의 사랑을 낮은 자와 나누는 손과 발을 갖는 실천적인 신앙을 소유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