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참으라 – 야고보서 5:7-11

야고보서의 마지막 장인 5장은 주님의 재림에 초점을 맞추어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오늘의 본문 7절부터 12절까지는 마지막 때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주님 오실 때까지 끝까지 모든 시련을 인내하며 살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운동 경기를 앞둔 운동 선수는 운동 경기가 끝날 때까지 참아내야 하고 시험을 앞둔 사람은 그 시험에 합격할 때까지 모든 어려움을 참아내야 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고 참아냈더라도 끝까지 참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한 사람은 그 동안 참고 애썼던 일들이 아무런 빛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일들을 이루기 위해서도 모든 고난을 참아가며 마지막까지 참아 목적한 바를 해내야 함같이 주님께서 다시 오시어 고난을 참고 견디어 낸 자들에게 상주실 때까지 참기 어려운 모든 일들을 참고 견디어 나가도록 본문에서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소개받는 우리 모두는 본문의 권고를 받아드려 믿음에 따른 모든 고난을 길이 참아내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7-9) [2]선지자들로 본을 삼아 오래 참으라(10-11) [3]맹세하지 말라(12)입니다.

 

[1]맨 먼저 7절부터 9절까지의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들 각자의 몸무게를 재듯 우리들이 얼마나 참을 수 있는 지 참을성을 재는 기구가 있다면 우리들 각자의 참을성은 얼마나 될까요? 며칠 전 신문에 보니 시각장애자 즉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잘 보이는 눈을 가진 자도 정복하기 어려운 눈발이 날리고 기상 조건이 나빴던 날 세계적인 높은 산을 정복했다는 기사였습니다. 그 시각장애인이 험하고 높은 세계적인 산을 정복하기까지 참아야했던 많은 고비를 한번 상상해 본다면 우리가 다 일어나서 큰 박수를 보내줄 수 있을만할 것입니다. 이 사람이 모든 고난을 참아낼 수 있었던 것은 눈은 비록 보이지 않지만 높은 산을 기어이 정복하겠다는 큰 목표가 분명히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야고보는 우리들도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도록 우리들이 이뤄 내야할 목표를 주고 있습니다. 그 목표는 주님의 강림하심입니다. 참아내야 할 이유는 믿는 자들에게 보상해주실 주님의 강림이 가깝기 때문이요 언제까지 참아내야 하면 주님의 재림시기까지입니다. 성경에서는 여러 곳에서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믿는 자들에게는 상을 주시고 불신자들에게는 벌을 주실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은 보상의 약속을 받은 자들이므로 그 약속이 이룰 때까지 모든 어려움을 참고 견디어야 함을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농부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농사해보셨습니까? 요사이 한국에는 비가오지 않아 비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농부는 비가 오지 않으면 하루 종일 하늘만 처다 보면서 비를 기다려야 하며 반대로 또 농사 다 지어놨는데 홍수가 나면 또 하루 종일 하늘만 쳐다보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홍수가 지나고 나면 홍수로 흙에 덮인 농작물을 손으로 일일이 다시 세워줘야 하는 것입니다. 또 병충이 생기면 그 병충을 막느라 많은 수고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농사 때에 너무 바빠서 미쳐 손이 가지 않은 밭은 풀이 많이 자라서 피곤해도 그 밭으로 가야 합니다. 더워도 일을 해야 하고 피곤해도 일을 해야 하며 비가와도 일을 해야 하고 비가 오지 않아도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름에 모심기를 해보았는데 얼마나 허리가 아픈지 몰라요. 그러나 줄을 지어 함께 심어나가야 하기 때문에 혼자 조금 쉬고 싶어도 쉴 수도 없고 더워도 땀도 닦지 못하고 못줄이 옮겨질 때마다 밀려서 옮겨져야 함을 경험했습니다. 본문에서 농부는 가을 추수기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모든 고난을 참아낼 수 있듯이 모든 성도들도 주님의 재림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모든 고난을 길이 참으라고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김포가도에 있는 논에 모심기가 한창인가 하면 언젠가는 벼가 익어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것을 연상합니다. 그런 것이 매년 반복되는 것을 보면서 심었다하면 또 거두는 때가 머지 않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야고보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너무 힘들더라도 조금만 더 참으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더구나 믿는 자들끼리 원망하지 말기를 권고하고 있습니다. 어려울 때는 서로 원망하기가 쉽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을 피하여 도망갈 때에 시므이란 자가 다윗을 향하여 돌을 던지며 저주할 때에 다윗을 따르는 자중에 시므이를 죽이려고 하자 다윗은 그를 말리며 말하기를 ‘만일 내가 잘못이 있어서 조롱을 받으면 그것은 마땅한 것이니 그를 해쳐서는 안되거니와 만일 내가 지금 당하는 억울함의 원인이 내게 있는 것이 아니면 주께서 나의 억울함을 인하여 나를 돌보실 것이라’ 고 했던 것입니다. 즉 자기를 조롱하는 자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던 사실입니다. 이와 같이 어려움을 당할 때에 서로 원망하고 시비하므로 믿음에서 떨어질 수 있을 것이므로 주님 오실 때에 상주실 자에게 상주시고 벌주실 자에게 벌주시는 때까지 길이 참아야 하는 것입니다.

[2]두 번째로 10절부터 11절까지의 선지자들로 본을 삼아 오래 참으라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야고보는 농부의 예에 이어서 선지자들의 본을 받아 길이 참으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멧시지를 직접 전달하였기 때문에 늘 생명의 위협을 무릅썼던 것입니다. 모세도 그랬고, 엘리야가 그랬으며 돌에 맞아 죽은 스테반이나 목이 잘린 세례 요한이 그랬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장차 나타날 큰 영광을 소망하며 현세의 모든 고난을 넉넉히 참고 자기의 사역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야고보는 잘 참아낸 본보기로 욥을 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욥은 삽시간에 자기의 모든 재산과 모든 자녀들을 다 잃었으며 몸에는 악창이 났고 심지어는 자기 아내까지도 자기를 조롱하는 고난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상상할 수 없는 고난에 직면했던 욥은 조금도 믿음에 흔들림이 없이 믿음을 잘 지켜 말하기를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은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라 한 것입니다. 이 큰 고난을 믿음으로 지킨 욥에게 하나님께서 갑절로 당대에 갚아주셨음이 욥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의인들이 돌려 받을 상은 주님 재림시에 주어질 것이나 욥은 이 세상에서도 배로 돌려 받았던 것입니다.

 

[3]마지막으로 12절의 맹세하지 말라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야고보는 그 당시 사람들이 쉽게 맹세함으로 저지른 실수를 향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맹세하지 말라는 경고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산상 수훈에서 맹세하지 말도록 권고한 바가 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나느니라” 하셨습니다.

 

야고보도 이를 인용하여 맹세를 금하고 있습니다. 맹세란 자기의 말을 믿어주지 않기 때문에 자기의 말의 신임도를 높이기 위해 무엇을 끌어드리는 화법입니다. 때로는 성경을 두고 맹세하거나, 자기의 부모 형제, 또는 친구를 끌어드려 맹세를 하게 됩니다. 이런 맹세를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내가 거짓말을 하면 네 자식이다’ 말입니다. 사실상 이렇게 맹세를 한다고 해서 아무 것도 변하게 될 것이 없습니다. 거짓 말을 했더라도 그 사람의 자식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라도 맹세를 해주어야 믿기 때문에 별스런 표현을 해가며 자기가 하는 말을 믿게 하기에 힘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말이 많은 것은 진실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해도 좋을 지 모릅니다. 진실은 많은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성경에서는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저 옳다 옳다 아니다 아니다 정도로 사실만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그 이상 지나는 것은 악이라고 했습니다. 진실만 말을 하고 그 진실을 믿게 하기 위해 수식어를 많이 나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하여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우리들의 삶의 목표를 주님의 재림에 두고 날마다의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어려움을 길이 참아나가라는 교훈입니다. 목표가 뚜렷한 사람은 큰 어려움도 넉넉히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자기가 세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어려움을 이기고 살았다는 성공자의 이야기를 쉽게 듣기도 합니다. 그들은 남이 모르는 수많은 조롱과 핍박과 아픔을 잘 참아냈기 때문에 이룬 것입니다. 때로는 춤고 배고픔도, 잠 오는 것도 참았을 것이고 때로는 목표고 무엇이고 다 팽개치고 싶은 역경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역경을 기어이 이겨낸 결과 목표 달성이라는 월계관을 쓰게 된 것입니다.

 

믿는 우리들에게는 분명한 삶의 목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분명한 목표인 주님의 재림에 소망을 두고 사는 우리 모두는 어떤 어려움이라도 이겨내야 하는 이유가 있고 또 성령의 도우심이 있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능력도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어찌 보면 멀리 있는 것 같지만 오늘의 본문에서는 어려움을 기필코 참아 내도록 격려하기 위해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언제 졸업할 것인가 했던 멀리만 보였던 그 목표도 이뤄보았고 언제 제대할 것인가 하는 그 목표도 이뤄본 경험이 있고 이와 비슷한 경험들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적금을 들기 시작하여 언제 찾을 것인가 했지만 몇 번씩 적금을 찾아보았고 언제 미국에 갈 것인가 했던 우리가 이제는 미국에까지 와 있습니다. 이런 경험들을 토대로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다는 것을 충분히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믿어나가다가 때로는 낙심될 일도 많이 만나게 되겠지만 주님의 재림의 소망을 생각하며 낙심된 마음을 녹여야 합니다. 믿어나가다가 보면 마귀가 나로 하여금 믿음을 포기하고 자기와 함께 살자고 여러 모양으로 유혹하다라도 미래의 큰 영광을 얻어야 하는 목표 때문에 강력하게 마귀를 물리쳐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고난, 역경, 아픔, 유혹을 다 이겨낸 자에게만 주어질 주님 재림시의 영광을 굳게 소망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믿고 소망하는 자에게 이루도록 도와주실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면서 믿음 생활해나가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길이 참아서 영광에 다 참여하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