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남다른 희생으로 복음을 전했음에도 그를 시기한 유대주의자들이 퍼뜨린 나쁜 비난의 여론 때문에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고린도 교회에서의 경우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의 상당수가 나쁜 비난의 여론을 그대로 받아드려 사도 바울을 배척한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그런 정도는 아니지만 이 교회에도 바울을 비난하는 말들을 가지고 사도 바울의 복음 사역을 방해하는 무리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비난하는 여러 말들을 염두에 두고 그런 비난의 말들이 사실이 아님을 밝히기 위해 데살로니가 지역에서의 전도할 당시의 사역을 회고하면서 오늘 이 본문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사단의 역사는 많은 주의 종들에게 위선 된 사역을 하도록 유혹하며 또한 진실된 종들에게는 나쁜 소문을 퍼뜨려 전도 사역을 방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단의 이런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당당하게 해 낸 사도 바울의 모범적 전도자 상을 오늘 소개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종다운 전도자 상을 소개받는 우리들은 사도 바울과 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주의 종들이 우리 교회를 통해 많이 배출되도록 해야한다는 사명감을 느껴야 합니다. 이런 특별한 사명감을 갖지 않을 때에 우리 교회 전도자도 세상과 타협할 줄 아는 융통성이 있는 전도자가 되어 교인들과 나눠 먹기 식 세상 교회를 운영하기를 교인들이 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신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이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고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핍박 중에 전한 복음(1-2) [2]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전도자(3-5) [3]희생적인 전도자(6-12)입니다.
[1]먼저 1절부터 2절까지의 핍박 중에 전한 복음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럽지역의 첫 전도 지역인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빌립보 감옥에 실라와 함께 갇히기도 했습니다. 감옥에 갇혔기 때문에 오히려 밤중에 천사에 의해 옥문이 열렸던 기적을 체험하기도 했지만 복음 전하다가 매맞고 감옥에 갇혀야하는 핍박을 받았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 일행은 빌립보에서 쫒겨나 그 다음에 간 곳이 데살로니가였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에 가서 복음을 전했으나 유대인들이 시기하여 동네 불량배들을 동원하여 위협하므로 데살로니가에 있는 형제들이 바울과 실라를 보호하기 위해 밤중에 베뢰아로 피해 가도록 했던 것입니다. 사단은 유대인들을 동원하여 사도 바울이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복음 전도 사역을 포기하도록 방해를 놓았지만 그런 핍박중에도 포기하지 않고 복음을 전한 결과가 바로 빌립보 교회나 데살로니가 교회인 것입니다. 이런 사실들을 데살로니가 교회에 회상시키면서 데살로니가 교회가 태어나도록 산파 역할을 했던 전도자 일행의 희생과 사랑을 생각하게 하고 반면에 이런 진실 된 종들을 모함하는 유대 지도자들의 선동을 차단하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2]두 번째로 3절부터 5절까지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전도자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최근에 말썽이 있었던 만민 중앙 교회 이재록 목사 사건을 계기로 교계와 사회에서는 바른 교회 상과 바른 목회자 상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교회는 어떤 교회여야 하며 목자는 어떤 목자여야 하는지를 말해보라고 하면 누구든지 쉽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교인들은 잘못된 교회와 잘못된 목자들 때문에 피해경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문제에 대해 정답을 주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역자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주의 종이라고 하면서도 하나님보다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 종들이 많이 있음을 전제한 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즐겁게 하는 종과 사람을 즐겁게 하는 종의 차이점이 무엇일까요?
사람을 즐겁게 하는 종은 사람을 대하여 아첨의 말이나 간사한 말을 하는 자이며, 탐심이나 부정의 탈을 쓴 종들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탐심을 채우고 부정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간사하고 아첨하는 말을 하고 술수를 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즐겁게 하는 종은 사람에게 인기를 얻으려는 데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것이고 또 보내신 자의 부탁을 그대로 해내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 사는 종임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유대에서 왔다고 하면서 사도 바울을 깎아 내리는 그런 지도자와 사도 바울을 대조하고 있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3]세 번째는 6절부터 12절까지의 희생적인 전도자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희생적인 전도자에 반대되는 말은 이기적인 전도자가 되겠습니다. 사도 바울을 깎아 내리려 했던 유대 지도자들은 사도 바울을 이기적인 전도자라고 여론을 일으켰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향해 자신들이 얼마나 희생적으로 사역을 했었는지를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앞에서 표현했지만 사도 바울 일행은 심한 핍박을 받으면서 복음을 전한 사도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사람들로부터 희생한 만큼 사람들에게 영광도 받을 만 하지만 그런 대우를 요구하지 않고 부모가 자녀를 양육한 그런 심정으로, 또 유모가 친부모의 부탁을 받고 친부모가 올 때까지 정성껏 아이를 돌보는 심정으로 전도를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사도 바울 일행은 자신들이 희생적인 주의 종들이었음을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확인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부탁하신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자기들의 목숨까지도 그들에게 주기를 즐겨한다고 하면서 그 이유는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교인들을 위해 목숨이라도 즐거이 내 놀 수 있는 전도자라면 과연 희생적인 종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또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다 잘 알고 있는 일이지만 사도 바울이 천막 치는 직업을 가지고 생활비를 스스로 해결하면서 복음을 값없이 전했던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생활비를 벌어가며 복음 사역을 감당했으니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습니까? 생활비를 받아도 마땅한 일인데도 교인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이렇게 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들을 중심하여 사도 바울 일행이 성도들 앞에 얼마나 올바르게 행했는지를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증인이요 하나님께서 증인이 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하여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주의 종이 누구인지 바로 알라는 교훈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드는 전도자는 어떤 사람인가요? 아니 우리 교회 전도자인 저에게 어떤 주문을 하고 싶으십니까? 저에 대한 불평이 있다면 어떤 점이 불평의 초점이 되고 있을까요?
전도자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의 종이란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보내진 일꾼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종이라면 보낸 이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려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주의 종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보다 자기 자신의 유익이나 또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에 치중한다면 부정한 청지기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소개한 훌륭한 전도자 상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그는 마땅히 복음의 순수한 전달자여야 합니다. 사람을 즐겁게 하기 위해 복음을 고치거나 복음 말고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거짓 종이 되는 것입니다. 능력있는 종으로 사람들로부터 대접받고자 무지개를 만들고 금가루 은가루를 뿌려 ㅂ;록 6만명을 모았지만 그런 자는 하나님을 즐겁게 하는 자가 못된다는 말입니다. 세상에서 대접받기 위해 세상과 타협하는 종은 퇴색된 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손질 없이 그대로 전하는 종이어야 하며 복음을 순수하게 전달하기 위해 생명까지라도 내 놓을 수 있는 종을 보내신 이는 바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주의 종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먹는 것이지 먹기 위해 복음을 전하는 자가 아닙니다. 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명예까지라도 버릴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지 명예를 위해 복음을 이용하는 것은 부정직한 종이 되는 것입니다.
주의 종은 믿는 자들을 향하여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한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나 교인들이 증인이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종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주의 종입니다. 우리 교인들이 할 일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그런 종이 되도록 전도자를 위해 기도하고 격려하고 권면하는 일입니다. 반대로 삼가야 할 것은 주의 종으로서 할 일을 하고 있음에도 교인이 자신의 어떤 목적에나 자신의 감정에 맞지 않는 이유로 전도자를 비난하고 물고 늘어지는 것은 전도자에 도전하는 일이요 그를 보내신 하나님을 도전하는 일이 되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이 이렇게 저렇게 손질하는데 우리 교회는 말씀을 왜? 손질하지 않느냐고 불평을 한다면 하나님께 도전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전도자에게 불평이 있어서 불평을 남에게 표현할 때에는 이 불평이 하나님께서 시키는 불평인가 아니면 마귀가 시켜서 하는 불평인가를 생각해보고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가끔 우리들은 자신도 모르게 마귀의 손발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인들이 눈치나 슬슬 보는 전도자를 만들 수도 있고 반대로 말씀대로 전하는 소신이 있는 참신한 전도자를 만들 수 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사명은 말씀을 순수하게 전하는 전도자를 양성하는 사명을 해내야 합니다. 전도자가 그런 전도자가 되도록 힘을 실어주고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 전도자와 함께 우리 모두에게 맡겨진 우리들의 사명을 해내는 담대한 남녀 종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