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의 파송 – 데살로니가전서 3:1-5

오늘 본문에서 소개되는 사도 바울의 일생을 돌아보면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에는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편안함과 개인적인 욕심을 챙기는 일에는 전연 무관심하고 오직 남의 일만을 위해 매맞고 옥에 갇히고 남에 대한 걱정만 하고 살았던 인생이었습니다. 남의 눈에 비친 그는 정말 너무 힘든 인생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많은 부귀 영화를 누린 자들 중에서 사도 바울이 맛보았던 만큼의 행복을 맛본 자가 과연 있었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자기가 복음을 전했던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행여나 사단의 공격을 받고 넘어져 구원의 자리에서 탈락될까 하여 많이 염려하는 그의 마음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자나깨나 자녀 생각에 젖어 있는 부모님들의 마음과 같이 사도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파하여 구원해 낸 영적 자녀들을 늘 염려하고 기도하는 것이 사도 바울의 마음인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남의 영혼을 많이 걱정하며 일생을 바쳤던 사도 바울은 시련과 고통중에서도 하나님께서 안겨주신 큰 행복을 누리며 그가 받을 면류관을 소망하면서 여생을 마친 인물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소개되는 사도 바울의 행복을 배워서 우리 모두도 행복한 여생을 지낼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그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사랑(1-2) [2]환난을 견디어 내도록 격려하는 바울(3-5)입니다.

 

[1]먼저 1절로 2절까지의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사랑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본문의 배경을 사도 행전 17장에 있는 내용을 통해 소개하겠습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는 데살로니가에 도착하여 회당에서 3주 동안 복음을 전한 결과 큰 무리와 귀부인들이 복음을 받아드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이를 시기하여 시장에 있는 불량배들을 동원하여 사도 바울이 전도 근거지로 삼고 있는 야손의 집에 와서 사도 바울 일행을 끌어내고자 했으나 이미 피신하여 화를 면했고 형제들이 밤에 바울 일행을 베뢰아로 보내서 그 곳에서 또 많은 믿는 자가 나왔으나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베뢰아까지 몰여와 무리들을 선동하여 소동케 하므로 형제들이 또 바울과 일행을 아덴으로 피하게 했던 것입니다. 아덴은 우상의 도시요 철학자들이 많아 복음 전하기에 많이 힘이 들어 디모데와 같은 동역자가 꼭 필요하였지만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위해 아덴에서 디모데를 데살로니가에 보냈던 것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1절에서 3절까지를 보면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고 디모데를 데살로니가에 보내어 너희 믿음을 굳게하고 위로하여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려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라고 하면 바울과 실라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데살로니가에 직접 방문하여 핍박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격려하고자하는 그 마음이 가득차 있으나 그들이 방문한다면 오히려 핍박이 더 심하여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함을 알고 할 수 없이 함께 가지 못하고디모데 혼자 보내게 되는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보내는 이유는 핍박받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믿음에 굳게 서도록 격려하여 그들이 주님 오실 때까지 믿음을 굳건하게 지켜 바울의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목표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복음 전파의 목적은 이 세상에서는 비록 매맞고 또는 순교를 당한다하더라도 주님 재림시에 부활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므로 사도 바울 자신뿐 아니라 자기가 구원해 낸 많은 영혼들도 장차 영원한 삶을 살기 위해 현재의 어떤 고난도 견디고 이겨내며 심지어 순교를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믿음을 지키도록 격려하는 것이 사도 바울의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목적으로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방문하고자 하였으나 사단이 이를 막아 가지 못하였고 자기 대신 디모데를 보내는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2]다음은 3절부터 5절까지의 환난을 견디어 내도록 격려하는 바울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들은 예수를 믿어 가는 동안 유별난 핍박을 받아보지 못해 예수 믿는 이유로 당하는 환난에 대해서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반대로 잘 믿으면 환난을 당하지 않을 것으로 믿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믿는 자에게 환난은 필연적인 것으로 믿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환난을 당하도록 세우셨다는 사실을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친히 체험하여 알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믿기를 시작할 때에 믿는 자들에게는 핍박과 고난이 오게 될 것을 그들에게 이미 말했는데 그 말대로 지금 핍박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이런 체험을 통해 믿는 자는 핍박을 받늗다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해하고 있는 사단 즉 시험하는 자는 한사코 믿는 자가 믿음을 떠나도록 하는 것이어서 데살로니가 교회에도 그 사단이 들어와 그들이 가진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도록 할 것은 당연한 것이므로 사단의 어떤 유혹과 공격에도 이겨내어 사도 바울의 수고가 열매를 맺어 온 성도들이 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기를 바라는 그의 소망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하여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첫째, 우리 교회와 성도들의 목적과 목표는 영혼구원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새로 개척된다면 그 이유가 당연히 하나님을 모르는 영혼을 하나님께 인도하기 위함이어야 하고 또 우리가 누구를 인도하여 교회에 데려와도 그 목적이 순수하게 영혼구원이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교회는 그 목적과 방향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교회 지도자들은 그 목적과 목표만을 위해 앞만 보고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현대 교회는 대 기업과 같이 교회 기능이 모든 것을 다 해내는 종합쎈터로 발전하고 있으며 그런 교회는 번성하고 작은 규모의 교회들은 점점 줄어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교회 형태가 교회의 본래의 모양이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교회가 내 가려운 곳을 긁어주지 못한다 해도 영혼 구원을 위한 바른 방향을 가지고 있다면 좋은 교회라고 평가할 수 있는 수준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반대로 교회가 나의 육적 욕망을 많이 채워준다고 하더라도 진리가 빠진 교회라면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또 누구를 전도해냈다면 같은 목적으로 전도해 낸 사람의 영혼이 끝까지 믿음을 지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도록 그 영혼에 관심을 가지고 돌보고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들이 교인 쟁탈전을 해도 그 영혼의 구원을 위해 쟁탈전을 한다면 잘하는 것이어니와 자기 교회 몸을 불리우기 위해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뜻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교회를 두고 바라는 성도들의 요구나 또한 성도들을 향한 교회의 요구가 일치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교회를 향한 요구는 마땅히 하나님의 나라에까지 잘 인도해달라는 요구여야 하며 교회가 교인들에게 바라는 요구도 하나님의 나라에 다 가주기를 바라는 것이어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육은 죽고 영혼이 구원받는 것을 위함인데도 교회나 성도들은 주님의 십자가의 의미인 자기가 죽는 것이나 고난에는 관심이 없고 십자가 말고 편함과 육적 번영만 달라고 하고 그런 것을 받아야 복 받았다고 하니 도대체 기독교의 현 주소가 어디에 있습니까? 어떤 교회를 찾아야 좋은 교회를 찾은 것일까요? 예수만 강조하고 말씀을 그대로 전하며 교회의 목적을 영혼 구원에만 두는 교회가 좋은 교회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바라나 넓은 문을 소개하는 교회를 좋아하니 교회들이 새로워져야 할 것입니다. 어떤 설교가 잘하는 설교인가요? 듣기에 편하고 아무런 마음에 부담을 주지 않는 설교가 잘한 설교일까요? 아니면 비록 나에게 부담을 주지만 나의 잘못을 뉘우치게 하여 하늘 나라에 들어가도록 하는 설교가 잘하는 설교일까요?

 

누가 우리 교회 전도자로 일하든지 우리 교회의 목적은 영혼 구원이어야 합니다. 방향을 잃지 않고 성도들의 영혼이 모두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우리 교회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 교인들이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기도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성도들 모두의 삶을 그런 기준에 맞추어 살아야 할 뿐 아니라 누구를 전도해도 그 영혼을 사랑하여 보다 바른 신앙을 갖도록 하여 영원히 구원 얻도록 해야 합니다.

 

두 번째 교훈은 믿는 자들에게는 고난이 따른다는 진리입니다. 잘 믿으려고 한다면 마귀는 시기합니다. 어떤 모양으로든지 그를 넘어뜨리려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걷고 있는 길이 진리라면 비 진리로 도전해오는 사단의 공격을 분쇄해야 합니다. 사단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진리의 길에서 비 진리의 길로 비껴서서는 안됩니다. 선을 행하고 있는데 불의의 세력이 공격해 올 때에는 이 성경구절을 늘 암송하시고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딤후 3:12 에 있는 말씀입니다.

 

사단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를 공격해 올 것입니다. 지금 내가 가진 믿음을 시기하여 나를 끌어내리려 안간힘을 쓸 것입니다. 공격하고 또 괴롭혀서 열심 있는 믿음을 포기하게 만들 것입니다. 때로는 직업을 잃게 하고, 때로는 병이 나게 하고, 때로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게 하여 현재의 믿음에 회의를 가져오게 할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를 영혼 구원에 두는 신앙이라면 현세에 어떤 일이 내 주변에서 일어나든 크게 흔들리지 않지만 조금이라도 이 세상 그 무엇에 믿음의 비중을 두었을 경우에 이 세상 그 무엇이 조금이라도 잘못되어진 경우에는 믿음이 흔들리고 쉽게 믿음을 버리고 세상의 그 무엇을 택하여 사단을 승리하도록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진리여야 합니다. 영혼 구원이어야 합니다. 이 길에서 벗어나도록 사단이 여러 모양으로 도전해 올 것을 알고 있어야 하며 또한 마귀의 도전을 강력하게 물리쳐야 합니다.

 

나이가 많으시든 나이가 젊든 나의 유산은 하나님의 나라에 나를 인도할 나의 믿음뿐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하고 자라게 하기 위해 내가 가진 많은 것을 희생할 수 있는 담대한 성도님들이 되 되셔서 주님 오실 때에 들림 받는 귀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