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의 위대한 기도 – 데살로니가전서 3:11-13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한 설교 제목은 사도 바울의 위대한 기도입니다. 사도 바울의 삶은 오직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전달받은 그들 모두가 주님 오실 때에 하나님의 나라에 다 들어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그 목적을 위해 전도하고 편지쓰고, 방문하며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편지를 두고 느끼는 것은 사도 바울은 사단의 도전을 누구보다도 강하게 받은 경험을 갖고 있는 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힘으로는 이겨 낼 수 없는 사단의 세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기도 요지는 주님 재림시에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한 점의 흠이 없게 지켜주시기를 바라는 기도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소개받는 우리 모두는 사도 바울이 본문을 통해 하나님 앞에 간절히 드리는 기도와 같이 우리 모두도 우리의 삶의 목표를 하나님 앞에 설 때에 한 점의 흠이 없는 삶을 살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나님 앞에 드리면서 사는 삶이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고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직행하게 하옵시며(11) [2]사랑이 더욱 넘치게 하사(12) [3]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3)입니다.

 

[1]맨 먼저 11절의 직행하게 하옵시며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고린도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핍박이 심한 데살로니가를 방문하여 핍박받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방문하여 위로하고 격려하며 더욱 말씀으로 양육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과 우리의 주되신 예수님께서는 사도 바울 일행이 데살로니가에 직행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순교를 각오한 열심 있는 사도였지만 데살로니가에 방문하는 것을 순전한 혈기나 자기 힘으로 하려하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에 따라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서 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기도를 통해 나타내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에 방문하는 것이 사도 바울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꼭 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자기 뜻으로 하지 않겠다는 그의 삶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2]두 번째는 12절의 사랑이 넘치게 하사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 일행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사랑한 것 같은 그 런 차원의 사랑으로 교인들끼리 서로 사랑할 뿐 아니라 교회 밖의 모든 사람들까지라도 사랑하는 그 사랑이 넘치게 되기를 원한다는 기도인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하나님이 우리 죄인들을 사랑하신 그 절대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말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도 사랑이요 남녀간의 사랑도 사랑이란 말로 표현이 되지만 신약 성경의 원문인 희랍어로는 4가지의 각각 다른 사랑이 있는데 신약성경에 나타난 사랑은 아가페라는 단어입니다. 이 사랑은 자기를 희생하면서 남을 사랑할 수 있는 이타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담은 가슴은 퍽 넓어서 사랑을 받을 자격이나 가치가 없는 자들까지도 사랑하는 큰사랑을 뜻하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 내가 싫어하는 무례한 사람, 나에게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손해를 끼친 사람, 내 부모나 내 자식을 죽인 사람까지도 이유 없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이 바로 아가페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 서로 사랑하라고 표현된 사랑은 모두 아가페라는 단어의 사랑이고 다른 사랑의 단어는 사용되지 않은 것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들은 교회 생활을 통해 사랑이라는 단어를 너무 많이 들었지만 그 사랑이 아가페적인 사랑을 요구한 것임을 몰랐거나 아니면 알았다 하더라도 그런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인물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포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가 나에게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권면한다면 나는 예수가 아니요 나는 예수가 될 수도 없는 사람일뿐이라고 대답할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분문에서는 사도 바울이 보통 사람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피차간에 아가페적인 사랑을 할 뿐 아니라 그런 사랑이 흘러 넘쳐 교회 밖의 모든 사람까지라도 사랑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인간도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아가페적인 사랑을 도저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이기 때문에 누가 나에게 점심 한끼 사면 나도 점심 한끼 사고, 누가 나에게 욕을 하면 나도 또한 그에게 욕으로 갚아주고 하는 정도이고 또 내 아들의 실수는 덮어주고 남의 아들이 잘못했다면 소문내고 하는 정도의 사랑을 가진 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정도의 인물인 우리들에게 우리 주님께서는 아가페적인 사랑을 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사로 사랑하라’ 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한 것은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아가페적인 사랑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이 현실적으로, 우리 이성으로 가능합니까? 그러기 때문에 이런 사랑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이런 사랑은 절대 불가능한 것입니다.

 

[3]마지막으로 13절의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큰 시련을 맞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그의 눈은 어려운 현실만 바라보지 않고 주님 재림시에 하나님 앞에 서는 장면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목표는 자기 자신이나 자기가 전도한 모든 백성들이 다 하나님 앞에 설 때에 거룩하고 하나도 흠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신랑을 맞기 위해 잠을 자지 않고 등잔에 기름을 충분히 채우고 신랑 오시기를 기다리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 재림시에 하나님 앞에 설 때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을 잘 아는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다 흠이 없어 합격이 되도록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무엇이 흠이 될까요? 주님 재림시에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은 첫째는 하나님을 영적 아버지로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하고 둘째로는 나를 괴롭히고 나를 헐뜯고 내게 손해 끼친 자들까지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자들이 바로 거룩하고 흠 없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는 바보요 천치요 병신중 상병신이요, 속도 창자도 없는 사람이라는 비판을 받는 자기 희생적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는 흠 없는 자로 판정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지 않고 절대 불가능한 일을 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이런 자들이 다 되어 하늘 나라의 영광을 다 차지하게 되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들은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첫 번째 교훈은 지금 내가 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간섭하시고 운전해 달라고 매사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 맡기는 삶을 살라는 교훈입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험난한 이 세상이기에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도와달라는 기도는 필수인 것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영국의 다이아나가 자동차 사고로 온 세계의 시선을 모았는데 지금은 존 에프 케네디 2세의 자가용 비행기 사고로 많은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내 삶을, 아니 내가 운전하는 비행기나 내자동차, 아니 내 입과 내 손과 발을 하나님께서 친히 운전해 주시라는 겸손한 기도가 하루 종일 이어져야 함을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의 교훈은 내 삶이 아가페적인 사랑을 할 수 있어서 하나님 앞에 설 때에 흠 없게 되기를 기도하라는 교훈입니다. 이 세상에서 누구를 두고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자가용 비행기를 가진 사람을 두고 성공했다거나, 아니면 수백 만원 짜리 수천 만원 짜리 여자 옷을 얻어 입은 장관 부인들을 두고 성공했다고 하거나 비록 감옥에는 가도 도지사나 한 번 해보고 또 도지사 부인이 되어 몇 억의 뇌물이라도 받아본 사람을 두고 성공했다고 할 지 몰라도 우리 교회 성도들은 누가 성공한 자인지 바른 말을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이란 마지막 날에 하나님 앞에 설 때에 흠 없는 자로 판정 받게 되는 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흠 없는 자로 판정 받기 위해서는 ‘나 죽고 남 살리는 삶’을 사신 주님의 삶을 본받는 삶이어야 합니다. 남을 살리기 위해 내가 손해보고, 내 입을 다물어 남의 흠을 덮어주고, 내 육신이 피곤하고 내가 죽는 삶이어야 합니다. 또 남을 살리기 위해 무가치한 인간을 돌아보고 사랑을 베풀고,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삶을 살아나가는 삶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아가페적인 삶을 사는 동안에는 너무 힘이 들겠지만 그런 삶을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설 때에 흠 없는 자라고 선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고 상을 받게 될 것이므로 참고 그런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이기적이고 얌체 같은 삶에 익숙해 있는 우리들이 아가페적인 삶을 사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심판을 받아야 할 우리 모두는 심판에 합격해야 하기 때문에 아가페적인 삶을 살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날마다 애써 살아나가야 합니다. 이런 삶을 살아나가노라면 언젠가는 훈련이 되어 처음보다 많이 익숙해져서 우리의 삶을 위에서 내려다보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너무 이 세상의 삶에 뿌리를 내려서는 안됩니다.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던지 않던지 주님께서는 재림하시어 모든 사람을 선악간에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흠 없고 점 없는 자들이 다 되시기 위해 아가페적인 삶을 사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