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실 – 데살로니가전서 4:1-12

오늘부터 강해하게 될 4장부터 5장까지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넣어주고 재림을 소망하면서 사는 성도들의 올바른 삶의 태도에 대해 소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중 오늘 소개되는 4장 1절부터 12절까지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행실에 대한 교훈입니다.

 

수년 전에 예수님께서 어느 날에 재림하신다고 시끄럽게 했던 사건이 있었는데 데살로니가 교회에도 그 당시 예수님 재림에 대한 열망이 지나쳐서 주님 오시기 전에 더 많이 봉사하고자 직장을 그만둔 사람도 있었고 재산도 팔아 교회에 바친 사람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예상했던 시기에 주님께서 오시지 않으므로 수입이 없는 그런 사람들은 교인들의 가정을 돌면서 얻어먹고 살게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형편에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실을 소개하며 성도로서의 마땅한 삶을 살도록 충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고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더욱 많이 힘쓰라(1-2) [2]거룩하라(3-8) [3]형제를 사랑하라(9-12)입니다.

 

[1]먼저 1절부터 2절까지의 더욱 많이 힘쓰라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편지를 쓰기 이전에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사는 생활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인지를 이미 권면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데살로니가 교회에 준 이 권면을 주님의 명령이라고 무게를 높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사도 바울이 가르치고 권했던 대로 잘 행하고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다시 주 예수의 이름으로, 주 예수의 권위로 권면하며 부탁하기를 더욱 많이 힘쓰라고 했습니다. 현재의 믿음으로 만족하지 말고 더욱 많이 힘쓰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쁘게 해드리는 삶을 잘 실천하고 있는데 거기다가 더욱 많이 힘쓴다면 하나님께서 더욱 기쁘시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2]3절부터 8절까지의 거룩하라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절부터 2절까지에서는 더욱 많이 힘쓰라는 권면을 주었는데 3절부터 12절까지에서는 더욱 많이 힘써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중 첫 번째가 거룩하라입니다. 여기에서 말한 거룩은 성적으로 순결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윤리와 도덕의 기준에 따라 부부관계가 아닌 다른 성적인 행위는 음란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편지가 쓰여지고 있는 1세기의 이방 사회에서는 우상을 섬기는 제사에 음난한 행위가 행해졌기 때문에 부부 이외의 성적 행위가 허용되었고 음난에 대한 죄의 관념이 전연 없었던 사회였던 것입니다. 그런 사회에서 오래 생활을 해오던 사람들이 기독교로 개종을 해와도 한참 동안은 죄의식 없이 과거의 습관에 따라 부부관계가 아닌 성적 문란한 행위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환경에 있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기독교에서는 심각한 죄임을 지적해주면서 거룩한 삶을 살도록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성도가 음난에서 벗어나 거룩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세상에서 불러내신 것은 음난한 생활을 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라 거룩하도록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의해 불리움을 당한 성도들은 자기의 정욕에 따라 음난한 생활을 한다거나 성도로서의 자기 분수를 지키지 못하고 내 이웃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결혼 관계가 아닌 성적인 행위는 상대방 본인에게 해를 끼칠 뿐 아니라 그 상대방의 가족에게도 해를 끼는 일이 되므로 결과적으로 이웃 형제에게 피해를 주는 그런 행위를 삼가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음난이 내 이웃에게 해를 끼쳐 내 이웃을 저버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저버리는 큰 범죄가 되므로 자기를 지켜 거룩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3]마지막으로 9절부터 12절까지의 형제를 사랑하라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형제 사랑에 대해서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더 쓸것이 없다고 전제하면서 말문을 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알기로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자기 교회 성도들끼리 내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심지어 다른 교회나 불신자들에게까지도 사랑의 폭을 넓혀 실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형제 사랑에는 끝이 없나 봅니다. 사도 바울은 형제 사랑을 잘하고 있는 그들에게 더 많이 하라고 권하면서 형제 사랑에 대해 그들의 부족한 점 두 가지를 지적하고 권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종용하여 자기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현대 교회도 마찬가지지만 교회들이 어떤 이유로 시끄럽습니다. 서로 헐뜯고 다투는 이유로 교회란 본질적으로 평화여야 함에도 평화 대신 싸움이 자리를 차지하곤 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도 남의 일에 참견하여 자꾸 말을 만드는 자들로 인해 성도간에 갈등과 불화가 있었으며 심지어는 사도 바울을 헐뜯는 일까지도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을 향해 종용하고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고 자기 일에 충실하라는 권면을 준 것입니다. 자기 입을 다물어 종용해주고 각자 자기가 할 일만 열심히 해주는 것이 형제를 도와주는 일이 되므로 더 종용해주고 더 자기 일에만 열심을 내 달라는 권면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입을 다물고 종용해주는 것이 형제를 사랑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종용해주지 못하고 함부로 입을 벌려 형제들에게 큰 상처를 주는 경우를 생각하면 그 말이 이해가 될 것입니다.

 

두 번째의 충고는 자기 손으로 일을 하라는 충고입니다. 서론에서도 밝혔지만 주님께서 곧 재림하신다고 사업도 그만두고 직장도 안나가고 날마다 주님 오시기까지 심방이나 전도만 하고 있으니 그들은 자연히 교인들에게 폐를 끼치는 존재들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형제와 함께 음식을 나누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더군다나 일도 안 하는 자들이 땀흘려 일하는 자의 땀과 수고를 도적질하고 있다면 교회의 큰 문제가 아니었겠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들을 권한 것입니다. 자기 손으로 일을 하여 궁핍함을 면하고 이웃들에게 성도로서의 모범을 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성도들 각자가 자기 먹을 것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이 형제를 도와주는 결과가 된다는 사실은 형제들 몇 사람이 일은 안하고 놀고 형제들 얼굴만 쳐다보고 있는 경우를 생각하면 많이 이해가 되리라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실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실로 두 가지를 소개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거룩하라는 교훈입니다. 이민 교회에서 설교 제목으로 어려운 것이 두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면 하나는 음난을 피하라는 것과 술과 담배를 끊으라는 제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직분을 가진 교회 지도자들부터 시작하여 직분이 없는 교인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것들에 저촉이 될 수 있는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에 가서 음난을 피하라고 설교했다면 당장 매맞아 죽었을 것입니다. 아니 심지어 롯도 자기 처녀 딸들을 불량배들에게 내 보내겠다고 한 것을 보면 그런 설교를 할 자 마저도 없었을 것으로도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런 세대에는 다 음행을 했다는 사회적 분위기나 상황 윤리가 하나님 앞에서는 인정이 되지 않아 불과 유황으로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미국 대통령이 최근 어떤 젊은 여자 하나 때문에 많이 시끄러웠습니다. 이것은 만연되어 있는 이 사회의 문제 중에 들어 난 문제일 뿐입니다. 이 문제를 놓고 이해심이 넓어 대통령이 그 정도 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관용을 베푼다고 한다해도 오늘 본문을 보니 그런 행동은 부부 관계가 아닌 성적 행위로 음난으로 간주하고 거룩하지 못한 것이라고 판정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이민 사회가 다 그런다 하더라도 음난은 음난인 것이요 음난은 죄이며 하나님을 저버리는 일이라고 판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 음난을 피하고 둘째는 그 음난의 대상을 보호하고 그의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음난을 피하라고 했습니다. 더욱 음난은 하나님을 저버리는 일이므로 음난을 피하라고 한 것입니다. 이 사회는 내 죄 때문에 남의 죄를 눈 감아주는 나눠먹기식이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리 세상이 다 음난 가운데 젖어 있다 하더라도 내 크고 작은 음난을 죄로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사회가 다 그런다 하더라도 스스로를 보호하고 내 이웃과 그의 가정을 보호하기 위해 거룩하게 자신을 지키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는 형제를 사랑하라는 권면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실제적인 방법으로 자기 입을 다물고 종용하여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또 자기 일에 열중하므로 남의 일에 참견하여 문제를 일으키는 일이 없도록 하며 또한 열심히 일을 하여 자기가 필요한 경제 문제를 해결하고 또 가난한 자를 돌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주님의 사업에 헌금을 할 수 있도록 하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물론 적극적으로 내 이웃의 필요에 따라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반면에 자기 입을 다물어 종용할 줄도 알고 남의 일에 필요 이상으로 참견하는 일도 삼가고 또한 더욱 열심히 일을 하여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오히려 가난한 자를 돕고 선교 헌금을 할 수 있도록 하라는 권면입니다. 이런 삶이 바로 말세를 맞는 성도들의 행실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행실이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의 명령을 제가 받아 대신 전달해드린 것입니다. 이 말씀을 전달받은 우리 모두가 거룩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해드리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