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에 대한 소망 – 데살로니가전서 4:13-18

며칠 전 어떤 사람이 주식 투자에 많은 돈을 날리고 화가 나서 총기를 난사해 많은 사람을 죽게 한 비참한 일이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도저히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는 사건들이 신문 방송을 통해 연일 보도되고 있습니다. 한국 정치의 부정 부패는 완전 밑바닥까지 갔는지 국민들은 경찰의 말을 믿으려하지 않고 오히려 탈옥수 신창원의 말을 믿으려하고 있는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또 크게 도적질한 사람을 대도라고 부르는데 그들이 높은 사람들이나 부자들의 돈을 크게 도적질 한 것을 죄로 여기기보다는 그들이 어떤 의로운 일이라도 한 것 같이 동정을 하게 되고 자신들도 오히려 떳떳하게 자기들이 저지른 범죄를 들어내는 정도가 되어 버렸습니다.

 

왜? 이런 사회가 되어버렸을까요? 세상이 이렇게 되어버린 것은 오늘 만 있고 내일에 대한 소망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이 세상만 있고 이 세상이 끝난 다음의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갖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주신 본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주님 재림에 대한 소망 때문에 현세의 어려운 핍박과 고난을 잘 참아 내고 있는 그들이 주님 오시기 전에 이미 죽어 버린 자기들은 재림하신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으로 잘 못 알고 근심하는 그들에게 사도 바울이 재림에 대한 바른 지식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소개받는 우리 모두는 주님의 재림에 대한 열망을 더욱 뜨겁게 하여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재림하실 주님의 신부답게 꿋꿋하게 살아남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주신 본문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고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자는 자들에 관한 바른 지식(13-15) [2]주께서 하늘로 좇아 강림하심(16-18)입니다.

 

[1]먼저 13절부터 15절까지의 자는 자들에 관한 바른 지식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복음을 받아드리고 주님께서 재림하시되 자기들의 생전에 재림하실 것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곧 재림하실 것을 확신한 그들은 어떤 핍박도 고난도 견딜 수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순교까지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재림에 대한 소망, 즉 이 세상의 삶이 끝나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천국이 있음을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서 누리게 될 큰 영광을 생각하며 이 세상에서 받는 고난을 넉넉히 이겨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슬프게 만든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지금 까지 살아 남아 있는 자들은 주님을 영접하겠지만 이미 죽어 버린 사람들은 주님을 영접하지 못할 것으로 알고 이미 죽어버린 자기들을 생각하며 슬픈 생각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디모데를 통해 전해들은 사도 바울이 그들에게 바른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13절에서 말하기를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일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자는 자들이란 죽은 자들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미 죽은 자들도 주님 오실 때에 다시 살아 일어날 것이므로 죽은 자들을 자는 자들이라 표현한 것입니다. 부활에 대한 소망이 없는 불신자들은 죽은 자들을 두고 슬퍼하겠지만 믿는 자들은 죽은 자들을 놓고 슬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 번 죽으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살리심 같이 주님 재림시에 죽은 자들도 주님과 함께 하나님께서 살려서 데리고 오실 것이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 오시기 전에 이미 죽은 자들이나 주님 오실 때까지 살아남아 있는 자나 하늘 나라의 영광에 참예하는 일에 어떤 차이가 전연 없음을 밝히기 위해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고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불신자들 같이 이미 죽어버린 자들을 두고 슬퍼하지 말라는 권고인 것입니다.

 

[2]두번째로 16절부터 18절까지의 주께서 하늘로 좇아 강림하심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6절에서 주님께서 재림하심을 보다 실감나게 눈으로 상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신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호령이나, 천사장의 소리나, 나팔 소리’란 옛날 왕이나 높은 사람들이 행차하실 때에 길을 비키고 맞을 준비하도록 하는 소리에 연관해서 주님 오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표현한 것이나 오실 때에 세상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주님 재림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고 그곳에서 항상 주와 함께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살아남은 자들이 공중으로 들려서 주를 영접하게 된다고 했는데 여기에서 말한 ‘먼저와 그 후’에 대해서도 많은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들은 그 시간차에 대해 관심을 크게 갖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시간차에 초점을 맞추어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죽은 자나 산 자나 주를 영접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들에 대해 슬퍼하고 있기 때문에 살아남은 자들이 앞서지 못함을 표현하기 위해서 오히려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난다고 표현한 것이라 풀어봅니다. 하늘 나라에서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은 시간을 완전히 초월한 세계이기 때문에 천년 먼저이든 천년 후이든 큰 차이가 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한다는 사실 즉 휴거를 두고도 이런 저런 설이 많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우리들은 현재 이 땅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 땅의 말로, 이 땅의 표현으로 ‘나팔소리, 천사장의 소리, 호령, 먼저, 그 후, 또 공중, 구름’이라 기록되어 있지만 주님 오실 때에는 옛 땅과 옛 하늘은 다 없어지고 온전히 새로운 새 하늘과 새 땅 즉 우리들이 알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과 전연 다른 세계가 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는 어제와 오늘이 구별되고 높은 공중과 낮은 땅이 구별되지만 그 때에는 그런 구별이 되어지지 않는 세계가 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공중으로 들려 올라간다는 휴거의 개념에 대해서도 새로운 생각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말을 한다면 요한계시록에서 천국을 아름답게 표시하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석 이름들을 들추고 있지만 이것은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생각에 천국은 매우 아름답다는 생각을 넣어줄 목적으로 쓴 것이지 천국이 불타 없어지거나 뜨거운 열에 녹아질 세상보석으로 꾸며진다는 말이 아닌 거와 같습니다.

 

이 본문이 주고자 하는 진리는 주님께서 재림하신다는 사실이며, 믿음을 가지고 죽은 자나 주님 오실 때까지 살아남은 믿음을 가진 자 모두를 새 하늘과 새 땅에 초청하여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죽은 자라고 해서 살아남은 자보다 덜 영광스럽지도 않고 또 살아 남아 있다고 해서 조금이라도 더 큰 영광을 차지하는 것이 아님을 밝히는 것이며 믿음을 가진 자는 이미 죽은 자나 아직 살아 있는 자나 차별 없이 주님 재림시에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강조인 것입니다. 이 진리를 깨닫고 죽은 자들은 영광을 누리지 못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으로 슬퍼했던 성도들간에 서로 위로하기를 바란다는 편지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재림의 소망을 뜨겁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 세상의 삶이 전부가 아니므로 재림의 소망을 가진 자답게 행동하고 살라는 교훈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소망이 없고 이 세상이 전부인 사람들은 혹 남을 속이고 남의 것을 강도 짓도 하고 뇌물도 받으며 가난한 자를 누르고 권력과 돈에 눈이 어두워 살지 몰라도 우리들은 비록 이 세상에서는 짓눌리고 가난하고 병들고 못살아도 주님 재림 시에 우리의 신랑 되신 예수께서 모든 눈물과 아픔과 외로움과 마음 속 깊이 응어리진 모든 아픔을 다 위로해주실 것이기 때문에 소망이 있는 자 답게 꿋꿋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소망과 믿음으로 성도들끼리 서로 위로하며 현재의 아픔과 고난을 이겨나가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든지 마귀의 시험에 속아넘어가서는 안됩니다. 마귀는 우리더러 한 세상 뿐인데 세상을 그렇게 살면 되겠느냐고 하더라도 우리들은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고 이 세상이 지나면 주님께서 통치자가 되시고 신랑 되신 새 세상이 있음을 생각하며 마귀의 속임수를 이겨내야 합니다.

 

이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모든 사건들이 재림의 소망이 없는 자들이 저지른 일들입니다. 아니 심지어 교회를 시끄럽게 하는 모든 사건들도 새 하늘과 세 땅에 에 소망을 두지 않고 눈에 보이는 이 땅의 그 무엇에 눈독을 드리고 있는 자들의 소행인 것입니다. 어느 교단 총회장인지 부 총회장인지를 선출하는 선거에 자기 편 사람을 당선시키기 위해 남의 표 묶음을 자기편 사람 표 묶음에 합쳐 넣는 짓이 재림의 신앙이 있는 자들의 행동이겠습니까? 그들 모두 재림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재림이 없기를 바라는 자들일 것입니다. 재림이 없어야 형벌을 면할 것이라 믿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들은 부활의 소망, 재림의 소망을 보다 뜨겁게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재림의 소망을 가진 자답게 언제나 정직하며, 성실하고, 진리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빛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빛의 생활을 하는 자는 이 세상에서도 행복하고 주님 재림 시에도 무한한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들은 우리 모두는 재림의 소망의 열기를 뜨겁게 하여 그 열기로 이 세상의 모든 잘못된 욕망을 다 이겨내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