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권면 – 데살로니가전서 5:16-22

오늘의 본문은 지난주의 형제 사랑에 대한 권면에 이어 데살로니가 전서로서는 마지막 권면이 되겠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주님의 재림을 뜨겁게 열망했던 교회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뜨겁게 소망했던 그들에게 꼭 필요한 권면을 주었던 것입니다.

 

며칠 전 터키의 지진은 지진 그 자체가 세상 끝이나 다름없이 느껴질 정도로 피해가 심각했습니다. TV에서 지진 참사 현장을 보셨지요. 모든 빌딩이 다 무너져 버린 현장의 모습도 그러려니와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만 1만 명이 넘었고 지금 무너진 현장에 깔려 있을 숫자가 3만 명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으니 앞으로 사망자 숫자가 얼마나 더 늘어나겠습니까.

 

밤에 도적같이 오시겠다는 주님의 말씀과 같이 수 만명이 밤에 도적같이 임한 지진으로 인해 그들의 세상은 끝이 나고 이젠 주님의 재림시의 심판을 위해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 자리에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지진 나서 죽고, 더워서 죽고, 홍수가 나서 죽고, 강도에 죽고, 인종 차별로 죽고, 병으로 죽고, 교통사고로 죽고 하여 지금 살아 남아 있는 우리들을 두고 생각해 보면 기적적으로 살아 있다고 말해도 좋을 지 모르겠습니다. 비록 주님께서 지금 재림하시지는 안 했지만 어떤 사고로 세상을 떠난 사람에게는 주님의 재림이 이미 임한 거와 똑같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밤에 도적같이 임하시겠다는 주님 맞을 준비를 언제나 하고 있어야 하고 또 비록 주님께서는 지금 당장 오시지 않는다 할지라도 언제 어떤 일로 개인적으로 세상의 종말을 맞을지 모르는 위급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오늘의 교훈은 꼭 필요한 교훈이 되겠습니다. 말세에 처해 있던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주어졌던 이 교훈이 우리들의 여생을 살아가는데 늘 생활의 안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고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생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16-18) [2]성령을 소멸치 말고 예언을 멸시치 말라(19-20) [3]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21-22)입니다.

 

[1]맨 먼저 16절부터 18절까지의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항상 기뻐하고, 항상 기도하며, 항상 감사하기를 바라신다는 말인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만 바라본다면 항상 짜증나고 항상 불평하고 항상 불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우리들을 두고 하나님께서는 항상 기뻐하고 항상 기도하며 항상 감사하기를 바라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께 내 생활을 온전히 맡기는 삶에서 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살아 계신 우리의 아버지이시오,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창조자이시며, 모든 약속을 철저히 지키시는 하나님이심을 온전히 믿을 때에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어떤 것에 소망을 두지 아니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둘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이 세상 무엇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기를 진정으로 소망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누리게 될 큰 기쁨을 생각하면서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이며, 믿음이 약해 질 때에 기쁨이 작아 질 수 있을 것이므로 다시 그 기쁨을 회복하기 위해 항상 기도하므로 기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모든 일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하나님을 신뢰할 때에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쁨, 기도, 감사는 믿음이 있는 자의 몫이고 슬픔, 낙담 불평은 믿음이 없는 자의 몫이 되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항상 기도하고 항상 감사할 수 있다는 말은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한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예물이 되는 것이고 반대로 슬픔, 낙담, 불평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능력만을 의지하는 결과가 되므로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예물이 될 것입니다.

 

[2]두 번째로 성령을 소멸치 말고 예언을 멸시치 말라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령을 소멸치 말라는 말은 성령을 충만케 한다는 말의 반대말이 되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령을 충만케 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을 때에 성령을 소멸케 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예배나 성경 공부에 빠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고 기도나 찬양을 하지 않을 때에 성령이 점점 소멸될 것입니다. 또 더 적극적으로 소멸되는 방법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알면서도 오히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길을 갈 때에는 성령이 소멸되고 마는 것입니다.

 

또 예언을 멸시치 말라고 했는데 예언이란 미래에 일어날 하나님의 일을 미리 예고해주는 일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주는 일을 말하는 것으로 데살로니가 교회의 경우에는 아직 신약 성경이 있지 않을 때였으며 방언이나 예언중 신비스러운 방언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예언을 멸시치 말라고 한 것으로 풀어 봅니다. 예언이란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고 풀어주는 일이므로 방언과 비교할 때에 전연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나 그 의미에서보다는 외형상의 어떤 신비스런 점에 더 관심을 두고 방언을 선호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3]마지막으로 21절과 22절의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좋은 것이란 진리를 말하는 것이며 악이란 비 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좋은 것이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며 악이란 사단이 좋아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들은 말씀을 연구하고 분별하여 성서적인 것을 취하고 비 성서적인 것을 버려야 합니다. 성도들은 마땅히 말씀을 연구하여 진리를 택하고 비 진리나 진리 비슷한 것까지도 버리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성경을 열심히 상고하여 무엇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인지를 파악하고 무슨 일에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취하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은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우리들은 어떤 교훈을 받았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면서 사는 성도답게 항상 기뻐하고 항상 기도하며 항상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때로는 세상 일로 슬프고 실망된 일을 만난다 하드라도 하늘 나라에서 누리게 될 기쁨을 생각하여 현재의 슬픔과 실망을 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한사코 현재의 슬픔과 실망을 더욱 확대시키려할 것이므로 항상 기도하여 성령이 마귀의 생각을 물리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택하고 마귀의 길을 물리칠 수 있는 자에게는 모든 일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것이므로 범사에 감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세상에서 그 무엇을 얻었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을 것이며 또 세상에서 그 무엇을 잃었기 때문에 슬플 것입니다. 또 무엇이 다급해지면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고 다급한 것이 없어지면 기도가 뜸해질 수 있습니다. 또 좋은 일을 만나면 감사하고 좋은 일을 만나지 않으면 감사를 모르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교훈은 보통 사람들이 갖는 그런 수준의 믿음을 넘어서, 어떤 환경에서든지 항상 기쁘고 항상 기도하며 항상 감사하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항상 기도하며 항상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래의 천국을 보여주시며 그 소망 가운데서 이 세상에서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안내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세상 것을 다 이루고도 기쁘지 못하고 감사를 모르며 행복을 모르고 사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에서는 세상의 그 무엇을 다 이루지 않은 어떤 상태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한 것입니다. 다 이루어도 행복하고 다 이루지 못해도 행복하고 또 이루어 나가는 과정중에도 행복한 길을 안내 받은 것입니다. 그 길은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는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맡기고 사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일 일을 모르는 인생이기에 온전히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성령을 소멸치 말라는 교훈이 있었습니다. 그 말은 자기 생활이 바쁜 자일수록, 즉 시간이 없는 자일수록 신앙 생활에 많은 시간을 내야 하는 것입니다. 바쁘면 바쁠수록 바쁜 생활 가운데서 성령이 소멸되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소모되면 소멸 될수록 덜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생활이 바쁜 사람은 성령을 충만케 하는 어떤 처방이 따로 있어야 합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많은 시간동안 일에 시달리거나 많은 시간 동안 세상 재미에만 빠져 있다면 자신도 모르게 성령이 소멸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충만한 자는 성령이 소멸된 자신을 쉽게 발견하지만 성령이 많이 소멸된 자는 자신에게서 성령이 빠져나간 것을 모르게 될 것입니다. 터키의 지진이나 세상에 흔히 있는 사건들이 남의 일만은 아님을 우리들은 알고 신앙적으로 늘 준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길은 현재의 내 삶을 세상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의 배에 실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많은 시간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배우고 하나님과 의논하고 하나님이 가라는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늘 기쁠 수 있고 늘 감사할 수 있는 행복한 삶을 이 세상에서도 살고 또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행복한 삶을 사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