핍박에 대한 격려 – 데살로니가후서 1:1-12

방금 봉독한 본문 말씀에 들어가기 전에 오늘부터 시작되는 데살로니가 후서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데살로니가 후서도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로 3장으로 된 짧은 편지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데살로니가에 핍박이 더욱 심해졌고 또한 교인들은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 더욱 그릇된 종말론을 갖고 있어서 그들에게 보다 강력한 편지를 보내 그들의 신앙을 바로잡아주기 위해 쓰여진 편지입니다. 내용은 1장에서는 핍박에 대한 격려, 2장에서는 주의 재림에 대한 설명, 3장에서는 교회를 향한 권면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 오늘 주신 1장을 강해하겠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기독교를 박해하는 유대인들의 박해가 아주 심했는데 믿음의 나이가 적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임에도 심한 핍박을 잘 참아낸 것을 두고 사도 바울이 그들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내용이 오늘의 본문 1장의 내용입니다. 예수를 믿어나가자면 어떤 종류의 어려움이든지 많은 어려움을 겪게되리라 봅니다. 혹시 가족이 교회 가는 것을 반대하므로 어려움을 겪게 될 수도 있고, 말많은 세상이라 마귀는 그 사람이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도록 마귀의 손발들을 시켜 말을 만들어내고, 시기하며 질투하는 일을 계속하여 흔들어 댈 것입니다. 물론 죽인다고 해도 믿음을 지켜나가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듣기 싫은 말 한마디만 들어도 교회를 떠나버리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눈으로 보면 많은 시련을 이기면서 신앙 생활을 지속하는 사람이 불쌍해 보이고 바보같이 보이고, 또 적은 일에도 교회를 나가버리는 사람이 아주 잘하는 짓으로 생각되어질지 모르지만 심판 날에는 모든 수모를 다 당하면서도 꾹 참고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상이 주어지고 조금 어려움이 있다고 편하자고 믿음을 버린 사람에게는 벌이 내려질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소개받는 우리들은 다시 주님의 재림시에 받을 영광을 소망하면서 이 세상에서 있을 수 있는 많은 종류의 핍박을 끝까지 잘 참아 내는 강한 믿음을 갖게 되어 주님의 영광에 다 참예 하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고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박해를 이기는 교회에 대한 감사(1-4) [2]박해에 대한 격려(5-10) [3]바울의 기도(11-12)입니다.

 

[1]먼저 1절부터 4절까지의 박해를 이기는 교회에 대한 감사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1절과 2절에서 그의 다른 편지의 시작과 끝에 늘 해오고 있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라는 기원을 하면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두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늘 감사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믿음이 자라고 사랑이 풍성하기 때문이며 그들이 심한 핍박과 환난 가운데서도 인내하면서 믿음을 지켜나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믿음의 나이를 먹어갈수록 믿음이 자라고 사랑이 점점 풍성해 지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성장이려니와 믿어나가는 나이가 많아질수록 믿음과 사랑이 줄어든다면 이것은 병든 신앙이라 하겠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나이가 아주 짧은데도 그들은 점점 세상을 덜 의지해 나가고 반면에 점점 하나님의 능력을 더 의지해 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믿음이 자란다고 한 것이며 또 점점 남의 잘못을 더 용서해 나가고 내가 가진 것을 가지고 점점 더 많이 남에게 나눠주는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두고 사랑이 풍성하다고 한 것입니다. 또 심한 핍박과 환난 중에도 참아내고 믿음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인내를 칭찬한 것입니다. 믿음이 자라고 또 사랑이 점점 풍성해지며 환난을 믿음으로 이겨나가는 것을 스스로 느낄 때에 얼마나 스스로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것이며 또한 이를 본 남들이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겠습니까?

 

[2]두 번째는 5절부터 10절까지의 박해에 대한 격려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당하고 있는 환난과 핍박이란 예수 믿는 다는 이유 때문에 육체적으로 매맞고 옥에 갇히고, 심한 욕설과 조롱과 학대와 또 경제적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환난을 믿음으로 인내하고 있는 그들의 인내를 두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으면서도 점점 환난과 핍박의 정도가 험악해 지고 있어서 그들이 더 심한 환난과 핍박을 잘 견디어 나가는데 큰 힘이 되도록 환난의 의미와 환난의 결과에 대해 밝혀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환난의 의미를 두고 공의로우신 심판의 표라고 했으며 환난을 잘 참고 견디는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인정되게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환난이나 핍박을 통해 누가 상을 받을 자인지 누가 심판을 받을 자인지 결판이 난다는 것입니다. 운동 경기를 하지 않고는 누가 1등인지 누가 꼴지 인지를 분간할 수 없기 때문에 운동 경기를 통해 상 받을 자를 가려내듯 핍박과 환난이라는 경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상을 줄자와 벌을 내릴 자를 가려낸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예수의 이름 때문에 환난이나 핍박을 당하면서도 잘 참아낸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편히 쉬게 하는 안식으로 상을 주시고 반대로 예수 믿는다고 믿는 자들을 괴롭힌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내리시고 그러나 환난을 참고이긴 자들에게는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며 그 영광을 주님고 함께 누리게 하신 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에게 상을 주시는 것은 어려운 시련을 믿음으로 잘 참고 이겼기 때문에 내리시는 것이라는 것이며 반대로 형벌을 내리시는 것은 믿는 자들에게 어려움을 안겨 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성도들은 크고 작은 환난을 믿음으로 잘 이겨나가되 이 고비를 다 넘기면 하나님께서 무한한 영광으로 갚아주실 것을 믿고 참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크고 작은 고난을 성도들에게 안겨주는 자들은 주님 오실 때에 그에 대한 무서운 형벌을 받게 될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라는 말은 상을 받을 자에게는 꼭 상으로 갚아주시고 벌을 받아 마땅한 자에게는 반드시 벌을 내리신다는 뜻인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벌은 지금 당장 내리는 것이 아니라 악을 행한 자들이 교만하고 그 악을 중단하지 않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주님께서 재림하시어 선악간에 차별하시고 복 줄자에게 복을 주시고 벌 줄자에게 벌로 다 갚아주실 것입니다. 그런 확신 가운데서 악인이 임시로 번성하는 것을 보고 실망해서도 아니 되고 또 하나님은 불공평하신 하나님이시라고 오해해서도 안됩니다. 공평하게 심판하실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억울한 자의 억울함을 다 풀어주실 때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눈물 흘리는 자에게 계속 눈물만 흘리도록 내버려두시지 않는다는 진리를 확신하여야 합니다. 부자가 거지 나사로를 많이 부러워 할 때가 있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3]마지막으로 11절과 12절의 바울의 기도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목숨을 내 걸고 복음을 전하고 또 이렇게 간절히 편지를 쓰고 있는 그의 목표가 있는데 그가 바라고 있는 목표를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가 바라는 최종적인 목표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심판대에서 하나님 앞에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인정을 받고, 모든 선한 일을 기쁨으로 또 믿음으로 해 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함께 하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의 그 구원이 끝까지 잘 지켜져서 결과적으로 천국에서 주 예수께 영광을 돌리며 그 안에서 또한 영광을 얻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사도 바울의 기도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끝까지 믿음을 지켜 주님의 재림 시에 하나님으로부터 합격 통지를 받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지금도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자가 되고 주님 재림 시에도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시련과 고통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시련과 고통은 당할 당시에는 참기 어렵지만 잘 참아 넘겼다면 이런 것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점수를 얻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어렵다고 포기해 버린다면 하나님께서 천국에 들여보낼 아무런 명분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왜? 나를 하나님께서 천국에 들여보내시겠습니까? 내게 있었던 많은 시험을 합격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시험 때마다 불합격했다면 들여 보내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사단은 시시로 우리를 넘어뜨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그 시험을 어떻게 이겨내는 가를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평생의 삶은 천국에 들어가는 시험대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운동 선수가 상을 받기 위해 운동장에서 뛰는 것 같이 우리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상을 받기 위해 지금 운동장에서 뛰고 있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심지어 교회에서의 삶 자체가 하나님이 내리신 운동장이 되는 것입니다. 아니 눈을 뜬 아침 일찍부터 잠을 잘 때까지 우리는 마귀와 싸우는 운동 경기 중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규칙에 따라 우리가 욕심을 많이 내는가? 교회에 오는 일을 게을리 하지는 않는가?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며 질투하지는 않는가? 하나님의 나라보다 세상 나라를 더 사랑하는가?를 하나님께서는 내려다보시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점수가 하나님앞에 기록이 되어 종합 평점에 따라 상을 받을 것인가? 벌을 받을 것인가? 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시험에 다 합격하여 하나님의 나라에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 안에서 영광을 함께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