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 있는 생활 – 데살로니가후서 3:6-18

데살로니가서의 마지막 강해가 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후서를 마감하면서 성도들에게 규모 있는 생활을 하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규모 있는 생활이란 열심히 일을 하여 자기가 번 돈으로 생활하는 것을 말합니다. 본문에서 규모 있는 생활을 하도록 권면한 배경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 중에는 주님께서 곧 재림하신다고 믿고 하던 일을 그만 둔 이유로 먹을 것이 없어 다른 교인들의 가정을 빙빙 돌면서 폐를 끼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몇 년 몇 월 며칠에 주님께서 재림하신다고 믿고 재산을 다 처분하여 교회에 바치고 일도 안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도 않고 재림의 날만 기다렸던 한국의 어떤 재림 주의자들과 흡사한 일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일부 교인들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열망하는 것은 좋지만 열망이 지나쳐서 일상 생활의 일들을 다 팽개쳐서 먹을 것이 없어 다른 교인 가정으로부터 얻어먹는 정도는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밤에 도적 같이 오실 주님을 영접할 모든 성도들은 그가 언제 오시든지 간에 오시는 날 까지 일상 생활의 일을 열심히 하면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우리들은 노동의 축복, 노동의 가치, 노동의 신성에 대해 새롭게 깨닫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고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규모 없는 자에게서 떠나라(6, 11, 13-15) [2]규모 있게 행하라(7-10, 12) [3]끝 인사(16-18)입니다.

 

[1]먼저 6절, 11절, 13-15절의 규모 없는 자에게서 떠나라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 중 어떤 이들은 도무지 일을 안하고 이 집 저 집 돌면서 남의 가정에 폐를 끼치고 또 일을 만드는 자들이 있음을 들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자들을 두고 규모 없는 자들이라 했습니다. 남들은 다 열심히 일을 해서 자기 먹을 것을 해결하고 있는데 자기 혼자 잘 믿는 것 같이 일도 안하고 재림하실 주님만 기다린다고 하면서 먹을 것이 없어서 이 집 저 집 성도들의 가정을 돌면서 얻어먹는 교인이 있다면 그 교회 성도들은 그 사람 때문에 얼마나 마음이 불편했겠습니까? 신앙이 깊으면 깊을수록 남에게 덕을 끼치고 유익을 끼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신앙을 핑계 대고 남에게 폐를 끼치고 있으니 이런 사람을 교회에서는 잘 정리해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런 사람으로부터 떠나라고 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서 떠나라는 말은 그런 사람을 멀리하라는 뜻입니다. 좀 냉정하게 대해주라는 것입니다. 친절하게 하면 자기의 잘못을 모를 것이기 때문에 좀 냉정하게 대하므로 스스로 자기의 잘못을 알아차리고 규모 있는 자가 될 수 있도록 하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대하라는 것이 아니고 그들을 권면하고 이 편지를 읽어주어도 변화 없이 이집 저집 돌면서 폐를 끼치고 말을 만드는 자들이 있다고 한다면 그들과 사귀지 말고 따돌려 부끄럽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따돌린다는 한계는 원수같이 하라는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형제이기 때문에 그가 깨닫게 하는 목적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구해주고 고쳐주기 위해 일시로 냉정한 태도롤 보이면서 권면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로부터 냉냉한 대접을 받는 그는 그 이유를 깨닫고 고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2]두 번째는 7절부터 10절, 12절의 규모 있게 행하라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규모 없는 자들을 향해 규모 있게 행하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종용히 일을 한다는 말은 개으르고 말만 만드는 것에 대조되는 뜻으로 입을 다물고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을 뜻하며 남에게 덕을 끼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입을 다물고 열심히 일을 하므로 자기들이 먹을 양식 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을 하지 않게 되고 또 가난한 자를 구제할 수 있는 능력도 갖게 되므로 종용히 일을 하는 것이 성도로서 규모 있게 행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들이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데살로니가 교회로부터 아무런 재정적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일을 하면서 자기들의 생활비를 해결했던 것을 강조하면서 그들이 보인 모범을 본받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생활비를 데살로니가 교회로부터 받을 권리가 없어서 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않고 또 일하는 것을 본을 보여 데살로니가 교회가 본받도록 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보인 본이 무엇입니까?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 전도 일을 하면서도 스스로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하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개척할 당시 그들에게 권하기를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하여 열심히 일할 것을 이미 가르쳤음에도 데살로니가 교회 일부 교인들이 규모 없이 행함을 보고 규모 있는 자들이 되라고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3]세 번째로 16절부터 18절의 끝인사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후서를 끝맺으면서 평강의 주님께서 때마다 일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들에게 있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때때로 풍랑이 일고 비바람이 쳐 믿음이 흔들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평강의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언제나, 어떤 일에도 평강을 주실 것을 기원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 말씀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는 땀흘려서 벌어먹는 노동의 축복에 대해 바로 알라는 교훈입니다. 젊은 나이에 돈이 많아서 일찍 은퇴하고 날마다 집에서 놀고 있는 자를 두고 복도 많은 사람이라고들 부러워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일할 수 있는 나이에 일할 수 있는 건강을 가진 자라면 일을 하지 않고 노는 자보다 일을 하는 자가 더 복된 자라는 사실을 믿으셔야 합니다. 할 수 있는 일거리가 있는 자란 노동의 대가로 받는 돈의 가치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늙어서 은퇴하고도 몇 푼 받지 못한다해도 일을 하고 있는 노인들을 동정심으로 바라보지 말고 다른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할 수 있는 일거리가 있다면 일하는 사람에게 여러모로 상당한 의미를 가져다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는 요즘 일자리를 잃었지만 가족과 이웃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직장에 다니는척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니 그들에게 묻는다면 노동의 축복이 얼마나 큰지 말해주리라 봅니다.

 

일할 수 있는 나이에 일할 수 있는 건강을 가진 자라면 그 일거리가 무엇이든 감사히 받고 열심히 일을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천막치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했습니다. 광주 그리스도의 교회 고 강 순 명 전도자는 전도 일을 하기 위해 칼을 갈아주는 일을 하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그가 어떤 직업 또 무슨 일을 하느냐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남이야 어떤 관심을 가지던 일을 하는 나 스스로는 현재 나에게 일거리가 있음을 감사하고 만족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었기 때문에 또 아니면 복권이라도 당첨되어 일을 그만 두는 것이 복이 아니라 늙어서라도 할 수만 있다면 끝까지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복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가치는 땀을 흘려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미국에서 65세까지 일을 하게 한 것은 불행이 아니라 복인 것입니다.

두 번째는 돈의 크기로 가치를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받는 보수는 직업에 따라 많은 차이가 납니다. 심지어는 같은 직업에서 일하는 자들도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압니다. 같은 팀의 야구 선수 중에는 천만불짜리도 있고 백만불 짜리도 있고 십만불 짜리도 있다면 좀 이상하겠지만 이것은 현실입니다. 만일 십만불 짜리가 천만불짜리의 선수와 자기 처지를 비교한다면 맥이 빠지고 더 이상 선수 생활을 할 마음이 나지 않겠지요? 그렇다고 자기 인생의 가치가 천만불짜의 인생의 가치보다 100분의 일의 가치밖에 없다는 뜻은 전연 아닌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남이 받는 수입에 자기의 수입을 비교하므로 스스로 맥이 빠지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얼마를 받던 그 받은 돈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감사를 가지고 규모 있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적게 벌었기 때문에 쓰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쓰지는 못하지만 성도로서 남에게 규모 없다는 말을 듣지 않고 덕을 끼치며 사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인생은 돈이 없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남보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이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즉 비교할 남이 없다면 자기가 불행하다는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돈은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잣대가 전연 아님을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돈이 많이 있거나 돈이 많이 없거나 성도의 일은 남에게 덕을 끼치고 기쁨을 주는 규모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노동은 축복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어떤 일거리이든지 주신 일거리를 감사히 받아 성실하게 그리고 열심히 일을 해야 하며 남이 받는 돈과 비교하지 말고 노동의 대가로 받고 있는 그 보수에 감사하면서 성도로서 규모 있는 생활을 하시다가 주님 오실 때에 평등의 나라 천국에서 영원히 기쁨을 누리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