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 요한1서 1:1-4

오늘부터 요한 1서, 2서, 3서를 강해 하게 됩니다. 본문 강해에 들어가기 전에 요한 1서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요한 1서를 기록한 자는 요한 복음과 요한 계시록을 기록한 예수님의 사도 요한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편지는 어떤 특정한 교회나 특정한 사람에게 보내진 편지가 아니라 일반 성도들에게 보내진 편지이며 이 편지가 쓰여진 연대를 주후 90-100 년경으로 보고 있습니다. 전체 5장으로 된 요한 1서의 내용을 보면 위로는 하나님과의 바른 교제를 유지하며 옆으로는 믿음의 형제들과 바른 교제를 유지하도록 권면과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교회에 침투해오는 이단 사상으로부터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해 기독교의 기본 신앙을 강조해 주므로 하나님과의 바른 교제를 갖도록 하며 성도들끼리 믿음과 소망 가운데 사랑을 실천하므로 성도들과의 바른 교제를 갖도록 하라는 권면이 주어졌습니다. 이 5장의 말씀만으로도 우리들의 신앙을 바로 세워주기에 훌륭한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으므로 앞으로 증거 되는 말씀을 마음으로 받고 행동으로 실천하므로 영생이 보장된 천국 시민들이 다 되셔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생명의 말씀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이단 사상들이 침투되어 이 편지를 받아 읽을 자들 중에는 예수님께서 구원자 되심을 부정하는 자들도 있었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존재로서 이 땅에 사람의 몸으로 오신 사실을 부정하는 자들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무리들과 또 그런 무리들로부터 신앙에 피해를 당하는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해 하나님에 대해서 또 그리스도에 대해서 기본 교리를 강조하고 또 확인해 주는 차원에서 오늘의 본문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오늘의 본문은 요한 1서 전체의 서문에 해당되지만 오늘의 본문에서는 생명의 말씀되신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계시다가 육신의 몸으로 사람들 곁에 나타나시어 사람들과 교제를 나누신 깊은 의미를 바로 알게 되므로 이를 부인하는 자들의 가르침이 거짓임을 쉽게 판별하게 될 것이며 우리의 구원자 되신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신뢰도가 더욱 커지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네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1) [2]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생명의 말씀(2) [3]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이유(3) [4]이것을 쓰는 이유(4)입니다.

[1]맨 먼저 1절의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절을 보니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했습니다. 그런데 요한 복음 1장 1절에도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했습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이나 요한 복음 1장 1절의 ‘태초에 계신 말씀’ 은 성자 예수를 말하는 것으로 예수님께서는 피조물이 아니라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계신 분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자 예수를 곧 하나님이시라 함은 하늘에 계셨던 거룩한 분이심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나사렛에서 나신 이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하던가 또 처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이단 사상이 잘못된 가르침임을 성도들에게 확인시켜주기 위해 독생자 예수는 태초부터 계신 분이시며 하늘에 계신 분이시며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신 분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셨고 태초부터 계신 분이시며 하나님이신 독생자 예수님에 대해 사도 요한은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즉 사도 요한 뿐 아니라 다른 제자들과 주님을 따라다녔던 많은 무리들은 3년 동안 주님의 가르침을 직접 들었으며, 주님을 직접 만나 뵈었고, 많은 병자를 고치신 주님의 사생활 하나 하나를 직접 체험하여 자세하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심지어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도마에게는 손을 내밀어 주님의 옆구리에 넣어보라고도 하신 사실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주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체험한 모두를 종합하여 표현하기를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2]두 번째로 2절의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생명의 말씀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14 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라 하여 하나님이 인간의 형체로 나타내시어 사람들 가운데 사신 사실을 증거 하였는데 같은 내용을 2절에서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의 말씀이신 독생자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가 사람들에게 나타내신 바 된 것이라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존재로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독생자 예수님께서 종인 인간의 형체로 오셨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정녀에게 성령으로 잉태된 사실을 부정하는 자를 겨냥하여 독생자 예수의 존재를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독생자 예수를 1절에서는 ‘생명의 말씀’, 또 2절에서는 ‘영원한 생명’ 이라 표현하고 있는데 주님 자체는 하나님의 존재이시므로 영원한 존재이시라는 뜻이며 또 주님만이 생명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또 말씀이 곧 복음이므로 복음을 받아드리고 말씀을 순종해 나갈 때에 구원과 영생이 있음을 강조해주는 것이 되겠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구원의 말씀되시는 주님을 영접하고 그 안에 거한 자는 영생이 있음을 증거 하는 말씀입니다.

 

[3]세 번째로 3절의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이유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요한은 자기가 보고들은 것을 전하는 이유를 3절에서 밝히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 편지를 받아 읽을 자들과 사귐이 있게 하기 위함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귐이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선포하는 이유는 말씀을 받아드리는 자들이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님과 사귐을 갖고 또 같은 믿음을 가진 성도들과도 사귐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라 표현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믿음과 상관없이 취미 생황을 중심으로 또는 사업적으로 사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이 원하는 사귐은 하나님도 함께 하시고 예수님도 함께 하시고 성도들도 함께 사귀는 사귐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귐이란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귐, 영생을 소망하는 자들의 사귐을 말하는 것입니다. 복음 전도의 목표는 하나님과 독생자 예수와 바른 사귐을 갖도록 함이요 이런 자들끼리의 사귐은 성도들의 바람직한 사귐이 될 것입니다.

 

[4]마지막으로 4절의 이것을 쓰는 이유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편지를 쓰는 이유를 4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즉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상황으로는 외부로부터는 핍박이 있고 내부로부터는 이단 사상으로 인해 형제간의 갈등도 있고 말씀에 대한 확신이 없어 불안하고 신앙의 갈등 속에서 기쁨을 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 편지를 써보내므로 잘못된 교리의 혼동으로부터 벗어나서 말씀의 확신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뜨겁게 하므로 기쁨이 충만케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 형제들간에 있었던 갈등에서도 벗어나 서로 다시 뜨겁게 사랑하므로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이 충만하도록 하기 위해 이것을 쓴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행복과 세상의 기쁨은 좋은 일을 접하므로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얻게 될 기쁨은 세상의 어떤 좋은 일이 내게 일어나지 안 했는데도 얻을 수 는 기쁨인 것입니다. 아니 반대로 세상적으로는 오히려 슬픈 일을 당했는데 마음 속 깊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기쁨이요, 세상 어떤 기쁨과 비교가 되지 않는 기쁨입니다. 마음 속 깊은데서 오는 확신과 자신감을 통해,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소망을 통해 참 기쁨이 충만토록 하기 위해 이 글을 서보낸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 말씀을 통해서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받은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올바른 사귐을 통해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을 충만케하라는 교훈입니다. 우리들은 세상에서도 여러 가지의 모임을 통해 사귐을 갖고 있고 교회라고 하는 신앙 공동체 안에서 서로 사귀고 있습니다. 가족 공동체, 직장 공동체, 또는 사회의 여러 공동체에서도 바른 질서와 협조 그리고 화목으로 기쁨을 누려나가야 할 것입니다. 더군다나 완전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하는 가정인 교회 공동체로부터는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참 행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교회 생활 또는 신앙 생활을 통해 세상이 줄 수 없는 참 행복을 느끼며 누리고 살 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우리들 스스로가 자신에게 아니면 성도들끼리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그에 대한 대답이 신앙 공동체인 교회 생활을 통해서 세상이 줄 수 없는 참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머리골치만 아프다고 한다면 그 교회 자체의 문제인지 아니면 나 또는 다른 성도 때문인지 그 원인을 진단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도들간의 바른 사귐으로 회복시키므로 신앙을 통해 얻어지는 참 기쁨을 되찾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목적은 본래의 목적대로 회복되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믿는 성도들의 믿는 목적도 본래의 믿는 목적대로 회복되어져야 합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자신을 희생함으로 세워진 희생과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욕심을 접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구원의 방주입니다. 이런 공동체 안에서 천국을 소망하면서 사는 자라면 나를 희생하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더 나아가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며 내 이웃의 죄를 용서하며 감싸주는 사랑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소망을 가진 자는 목숨을 위협하는 핍박도 두려워하지 않고 몸이 망가지는 질병에 걸렸어도 믿음으로 소화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남이 나를 무어라 헐뜯어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상한 마음을 하나님으로부터 위로 받고자 하나님께 기도할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면서 살아나가며 늘 마음에 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기쁨을 누리시도록 하나님을 생각하며 삶을 살아나갈 것입니다. 이런 자들을 위해 새 하늘과 새 땅이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여 무슨 일에나 주님께서 사신 삶을 본받아 살아보려고 애쓰는 자는 이 세상이 주지 못하는 충만한 기쁨을 누리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어떤 한경 속에서도 기쁨이 충만한 이런 삶을 살아나가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