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 받으라 – 요한3서 1:9-15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을 크게 둘로 나누어 본다면 하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과 다른 하나는 마귀에게 속한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을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 받으라고 붙였는데 이 설교 제목과 연관하여 구분해 본다면 선한 것을 본 받는 사람과 악한 것을 본받는 사람으로 구분할 수도 있겠습니다.

 

성경에는 악한 길과 선한 길,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과 마귀가 원하는 길을 계속적으로 소개해주면서 우리들로 하여금 악한 길을 가지 말고 선한 길을 가도록 인도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도 두 인물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두 사람 중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사람이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란 것입니다. 차라리 예수를 전연 믿지 않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를 지르는 무리 속에 있었던 사람이었다면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구분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교회 안에서 교인으로써 생활하고 있고 더욱 교회의 지도자로서 행세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사람으로 분류가 되었으니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의 본문이 주는 교훈대로 오늘의 본문에서 소개해 주고 있는 두 인물 중 하나님께 속한 인물을 본 받아 우리 모두 하나님의 사람으로 계속 인정받게 되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악을 행하는 디오드레베(9-11) [2]선을 행하는 데메드리오(12) [3]마지막 인사(13-15)입니다.

 

[1]맨 먼저 9절부터 11절의 악을 행하는 디오드레베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요한은 디오드레베가 어떤 인물인지 상당히 구체적으로 소개해 주고있습니다. 9절에서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게 썼으나’ 라고 말한 것은 사도 요한은 요한 3서를 가이오에게 써 보내기 전에 가이오와 디오드레베가 속한 교회에 다른 편지를 써보낸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리고 그 편지의 내용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전도 여행 다니는 나그네들을 잘 대접하여 복음 전파에 협력 해달라고 부탁하는 편지였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디오드레베는 복음 전도자들을 접대하기는커녕 악한 말로 사도 요한과 그의 복음의 동지들을 근거 없는 말로 비난하고 깎아 내렸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복음의 나그네들을 대접하고자 하는 교인들을 못하도록 막고 또 나그네들을 대접하려고 하는 열성파 성도들을 교회에서 쫓아냈다는 것입니다.

 

디오드레베의 마음에 어떤 중병에 걸렸으면 이 정도가 되었을까요? 9절에 보니 그는 으뜸되기를 좋아한 사람이라 소개하고 있습니다. 으뜸 되기를 좋아한 사람이란 말은 교회에서 또는 교계에서 제일 높아지고자 하는 병에 걸린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교회에서 자기가 제일 높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다 결정하며 자기가 반대하는 것은 아무 것도 되지 안아야 직성이 풀리는 인물을 말합니다. 디오드레베가 이런 사람이므로 이런 사람은 자기 주변에 자기 보다 더 권위 있고 또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을 원할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그 교회에 편지를 보내고 사람을 보내어 자기 교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원하지 않아 사도 요한에게 정면 도전하여 그가 보낸 편지를 묵살하고 사도 요한이 보낸 사람들을 푸대접하였던 것입니다. 더욱 사도 요한과 그의 일행들을 비난하여 디오드레베가 속한 교인들이 사도 요한을 따르지 말고 자기만을 따르도록 한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3대 제자중의 하나였던 권위 있는 대단한 지도자였음에도 그의 권위를 깎아 내리려고 그런 못된 짓을 한 것을 보면 디오드레베가 그 당시에 교회 내에서나 교계에서 상당한 지위를 확보하고 있었던 인물이었으리라 짐작이 갑니다. 상당한 지위가 없이는 감히 사도 요한에게 그렇게 정면 도전을 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0절에 보면 사도 요한이 가이오와 디오드레베가 속한 교회를 방문하면 디오드레베가 행한 일을 기억하고 그가 행한 일을 잊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아마 징계를 내리고 출교 시킨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교회 안에는 마땅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며 복음이 널리 전파되기를 원하여 자기를 헌신하는 자들이 모인 곳이어야 하는데 반대로 하나님의 사도와 그의 일행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헐뜯고 복음 전파를 위해 돕고자 하는 자들까지 돕지 못하도록 막고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교회에서 쫓아 낼 정도였으니 그는 하나님께 속한 자가 아니라 마귀에게 속한 자였기 때문입니다. 마귀에게 속한 자가 교회의 지도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그런 자들을 교회에서 추방해야 교회가 교회답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디오드레베가 행패를 부리던 그 교회에 속하여서 나그네를 잘 대접했던 가이오가 얼마나 미움을 받고 힘들었겠습니까? 사도 요한은 11절에서 가이오에게 분명한 길을 안내하며 격려하고 있습니다. 그의 분명한 안내란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선을 행한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한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한다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디오드레베가 아무리 교회에서 권위를 부리고 권세를 부리고 있다할지라도 그렇게 악을 행한 자들은 사단에 속한 자이므로 하나님을 볼 수 없는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 보지도 못한 자라면 하나님과 전연 상관이 없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디오드레베는 교회 안에 있는 악한 불신자이므로 그런 악을 행한 자들을 본받지 말고 선을 행한 자를 본받으라고 좋은 길을 안내하고 있는 것입니다.

 

[2]두 번째로 12절의 선을 행하는 데메드리오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요한은 선을 행한 데메드리오를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데메드리오에 대해서는 12절 한절에 간단히 소개해 주고 있고 다른 곳에서는 전연 소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더 자세히 알 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12절에서 소개하고 있는 내용은 최상의 소개를 해주고 있습니다. 데메드리오가 행한 선행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있으며, 진리에게도 증거를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진리에게도 증거를 받고 있다는 말은 그가 가진 믿음이 이단 사상에 물들지 않고 순수하고 강한 성경적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며 그가 믿고 있는 바를 입으로 시인하고 몸으로 실천하는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사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풀어 봅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과 그와 함께한 동지들도 데메드리오를 보증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이 보증은 참된 보증이라고 그에 대한 신임을 높이 칭찬해주고 있습니다. 데메드리오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진리를 깨닫고 진리에서 행하며 사도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정도였다면 가이오가 그를 신뢰하고 그를 잘 대접하고 그를 본받을 만한 선한 인물이었음에 틀림없겠습니다.

 

[3]마지막으로 13절부터 15절까지의 마지막 인사 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요한은 편지를 쓸 것이 더 많으나 이만 그치고 속히 직접 만나서 깊은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했습니다. 디오드레베 같은 악한 인물이 교회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위급한 상황이었으므로 이를 막기 위해 우선 급하게 요한 3서를 써보냈으나 곧 직접 방문하여 서로 만나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평강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모든 편지마다 평강을 기원하고 있지만 디오드레베가 나그네를 대접하는 교인들을 핍박하며 교회에서 쫓아내는 분위기 속에 있는 가이오에게 평강을 기원하고 있는 것은 모든 어려운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진정한 평안을 유지하라는 당부로 느껴집니다. 또 이런 분위기에 있는 다른 이들에게도 일일이 문안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때에 있는 그들에게의 문안은 큰 격려와 힘이 되었으리라 생각되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게 되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는 교훈입니다. 우리들이 날마다 듣고 보고 있는 뉴스에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기에 끔찍한 악한 일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그리고 간간이 자기를 희생하며 인류를 사랑한 선한 인물들도 소개되기도 합니다. 이 세상 말고 교회 주변에서도 디오드레베와 같이 정말 악한 자들이 있고 또 데메드리오와 같은 선한 신앙의 인물들이 존재합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우리들의 판단으로도 능히 분별할 수 있는 악한 자를 본받지 말고 선한 자를 본받으라는 교훈입니다.

 

악한 자를 본받으면 하나님과 전연 상관이 없는 하나님을 보지 못한 자와 같이 되므로 늘 하나님께 속해 있기 위해 하나님께 속한 선한 자들을 본받으라는 부탁입니다. 이 부탁은 하나님의 부탁이요 사도 요한의 부탁이며 이 교회 전도자들의 부탁이기도 합니다. 제발 우리 모두가 좋은 것만 본받고 악한 것은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교회 안에 있는 불신자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니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만나보지 못한 자를 말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주님께서 선포하심같이 마음이 청결치 못하고 마음이 겸손치 못하고 화평케 하지 못한 자는 교회는 다녀도 하나님을 만나보지도 못한 자이며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자이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는 있으나 하나님의 자녀가 못된 자들인 것입니다.

 

교회 내에서 교만을 부리는 사람, 그 사람은 자기가 더 높아지기 위해 교회 안에 있는 형제를 쉽게 깔보며 쉽게 헐뜯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를 따르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 쉽게 패를 가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이 자기 마음에 전연 없고 오직 자기 마음에는 교만만 있는 사람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 함같이 이런 자들의 결국은 패망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형제를 깔보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깔보는 일인지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형제에게 한 것이 바로 하나님께 하는 것임을 아는 겸손한 사람은 마음에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생각이 늘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형제를 칭찬하는 사람, 형제의 어려움을 돌보는 사람, 자신을 낮추고 형제를 높이는 사람, 형제의 잘됨을 기뻐하는 사람, 범사에 늘 감사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언제나 높이실 것이며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인생은 언제 하나님께서 부르실지 모르는 나그네 인생입니다. 며칠 전 펜실바니아의 한 탄광에서 탄광 굴이 무너져 9명이 3일 동안 갇혀서 유서까지 써두었으나 기적적으로 다 살아난 일이 있었습니다. 탄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느 날 이런 일이 일어날지 모르므로 날마다 오늘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산다고 합니다. 우리들도 우리가 사는 탄광 갱이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아 하나님과 형제를 사랑하는 귀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