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 – 유다서 1:1-4

오늘부터 유다서를 강해하게 됩니다. 유다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들이 신약 성경에 8명이 있는데 유다서는 예수님의 형제인 유다에 의해 쓰여진 책입니다. 유다서는 1장 25절로 된 짧은 편지인데 1장을 세번으로 나누어 강해할 것입니다. 방금 함께 봉독한 1절부터 4절까지에는 이 편지를 쓰게 된 목적이 기록되어 있는데 거짓 교사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으므로 그들과 힘써 싸워 믿음을 지키라고 권면하기 위해 이 편지를 쓴다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유다가 이 편지를 쓸 당시에 거짓 교사들이 거짓 진리를 가지고 성도들의 믿음을 혼란스럽게 했던 것과 같이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여러 가지의 거짓 가르침으로 성도들의 믿음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거짓 교사들과 힘써 싸워 믿음을 지키라는 권면을 받는 우리들은 현 시대에 우리들의 교회 주변에서 우리들의 신앙을 위협하는 거짓 가르침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성경과 대조해보고 성경에 어긋나는 것을 가르치는 거짓 가르침과 힘써 싸워 우리들의 믿음을 지켜나가시기를 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편지를 보낸 자와 받는 자의 소개(1-2) [2]편지를 쓰는 목적(3-4)입니다.

 

[1]먼저 1절과 2절의 편지를 보낸 자와 받는 자의 소개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절에 보면 편지를 보낸 자가 자기를 소개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의 형제라고 하면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이 그 야고보가 누구인지 다 알 정도라고 한다면 그 당시에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였던 야고보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의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다서를 기록한 유다도 예수님의 동생이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6장 4절에 보면 예수님의 형제가 소개되는데 야고보, 요셉, 유다, 그리고 시몬 이라고 소개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예수님께서 살아 계신 동안에는 그의 형제들인 야고보나 유다가 자기의 형인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메시야인 것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돌아가신 후에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야고보서를 기록한 자가 되었고 유다도 자기를 소개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하며 또한 이 유다서를 기록하는 큰 일꾼이 된 것입니다.

유다가 자기를 소개하기를 구세주 되신 예수님의 동생이라고 소개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의 종이란 주인의 소유물에 불과한 존재였는데 자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자기의 관계는 형과 동생의 관계가 아니라 죄인과 죄를 사해주는 메시야와의 관계요 주인과 종의 관계인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편지를 받는 자에 대해 소개하기를 부르심을 입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편지를 받아 읽을 자들이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세상에서 나와 하나님께로 온 자들이라 했습니다. 즉 죄 값으로 죽어 마땅한 죄인들이었으나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입어 그리스도를 통해 죄 사함을 받고 그리스도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는 자들이며 또한 교회 안에 슬며시 들어온 현재의 이단자들에게 미혹되지 않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철저한 보호를 받는 성도라는 것입니다. 2절에서 유다는 이 편지를 받아 읽을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긍휼과 사랑 그리고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참 평화를 풍성하게 해 달라고 기원하고 있습니다.

 

[2]두 번째는 3절부터 4절의 편지를 쓰는 목적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유다는 3절에서 편지를 쓰게 된 경위를 밝히기를 본래는 성도들이 얻은 현세의 구원과 주님 재림시에 누리게 될 영원한 구원에 대해 더 자세히 써보내기를 간절히 원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본래 마음먹었던 계획을 바꾸어 성도들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내용으로 써보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4절에서 이렇게 주제를 바꾸어 써보내게 된 이유를 밝히고 있는데 그 이유란 교회 안에 몇몇 이단 사상을 가진 자들이 들어왔기 때문이라 한 것입니다. 모든 사단의 세력들이 다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런 자들은 심판을 받기로 정해진 자들인데 이들은 경건한 삶을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이 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왔다고 하였습니다.

 

유다가 이 편지를 쓸 당시에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이단 사상이 바로 영지주의(Gnosticism)란 것이었는데 이들은 누구보다 영적으로 많이 알고 누구보다 신령하여 많이 깨달았다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은 은혜가 크신 분이시므로 인간이 어떤 죄악을 저질러도 다 용서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이 육체가 원하는 본능대로 살아도 된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죄가 커야 은혜가 더 크다고 하여 오히려 비도덕적인 삶을 살도록 조장했으며 육체적 범죄행위를 그들의 이론으로 정당화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육신의 행위는 인간의 고귀한 영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육체적인 쾌락을 즐기는 방종의 생활을 하였고 다른 사람들을 이러한 죄악의 구렁텅이에 끌어드렸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들은 성도들이 살아야 할 정결한 삶과 정 반대 되는 사상을 가지고 교회 안에 들어와 성도들을 미혹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이단 사상을 가진 자들은 주님께서 육신으로 오신 자체를 부인했으므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도 믿지 않았고 죄를 사해주는 구세주로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즉 교회 안에서 성도들과 함께 신앙 생활을 하고는 있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불신자였으며 오히려 신자들이 불신자가 되도록 믿음에서 끌어내리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죄 값으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죄인들을 주님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으로 죄 사함을 얻어 구원되었으니 이 귀한 은혜를 귀히 알고 자신을 모든 죄로부터 지켜 주님 재림시까지 흠 없고 티없는 정결한 삶을 살아나가야 하는 것이 성도들의 마땅한 삶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할 성도들을 향해 오히려 육신이 원하는 것을 자제하지 말고 본능대로 살아도 된다고 가르치는 자들이 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 왔으니 유다는 이 일을 교회가 당하는 큰 위기로 알고 그런 이단자들의 정체를 폭로하고 성도들이 그런 이단 세력과 힘써 싸워 이미 받은 구원을 지켜나가도록 편지를 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우리에게 주신 본문 말씀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온 이단 사상을 경계하고 단번에 받은 믿음을 지켜나가라는 교훈입니다. 유다는 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온 이단 사상의 정체를 폭로하고 믿음을 지켜나가도록 이 편지를 써 보냈는데 우리들은 어떤 편지를 써서 보내야 할까요?

 

첫째는 교파주의 위기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다 같은 말을 하고 분쟁이 없이 다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장과 교리를 달리하는 교파는 날로 늘어만 가고 있으며 나눠지는 자체를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리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파가 존재하는 사실을 마음 아파하는 것이 아니라 교파가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드리고 있는 현실이 바로 큰 위기인 것입니다. 성경에 어긋나는 구원관이나 예배관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교회 조직과 다른 이론을 가진 모든 교파주의는 단번에 받은 믿음에 큰 위기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무엇이라 말하고 있는 지에는 상관없이 각 교파에서 가르치고 있는 모든 가르침을 성경을 통해 걸러보지 않고 그대로 믿고 받아드리는 일은 정말 큰 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몸이 하나요 성령이 하나입니다. 그리고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한 소망 가운데 온전히 합해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에 의해 믿음이 하나를 이뤄나가야 한다고 우리들은 편지를 써보내야 합니다.

 

둘째는 세속 주의의 위기입니다. 세속 주의란 영적인 교회를 세상적으로 몰고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믿음의 목표는 죄 사함 받아 현세에도 구원받고 주님 재림시에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 영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생의 복보다는 이 세상의 세속적인 복을 강조하여 하늘나라의 소망보다는 세상에의 소망을 심어주는 사상이 바로 세속주의 신앙입니다. 그리고 세속주의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로 따라가는 사상입니다. 예배도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바꾸어 가는 것입니다. 이런 세속주의는 결국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피아노를 드려오게 하였고 요사이는 오케스트라까지 동원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속주의는 내가 다시 올 때까지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는 주님의 명령인 주의 만찬을 예배에서 빼내고 헌금은 더 많이 강조되어 영적 공동체인 교회에서도 돈돈돈 하도록 영적 교회를 부패시킨 것입니다. 요사이는 여성 파우어가 강한 이 세상 추세에 밀려 여자들을 목사와 장로를 시키며 동성연애자를 교회에서 추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도 목사 안수를 해주어야 하는지를 토론하고 있는 실정에 이른 것입니다. 이런 세속주의는 예언 기도를 끌어들여 예언을 해주고 돈을 받기에 이르렀으며 병 낫도록 기도해주고 돈을 받기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을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 무슨 일보다도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하는데 이런 세속 주의는 불가피하다는 본인의 판정에 따라 예배를 등한히 할 수 있는 것으로 믿게 하고 예배의 내용 자체를 열린 예배라는 명목으로 사람 중심으로 점점 세속화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세속 주의는 다시 말씀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우리들은 편지를 써서 보내야 합니다.

 

셋째는 율법주의의 위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이후에도 구약의 율법 사상을 끌어드리는 위기입니다. 만인 제사장이 선포된 이 때에 목사가 까운을 입고 제사장같이 계속 남아 있으면서 목사에게만 축복권이 있다고 주장해오고 있는 것은 기독교의 진리를 파괴하는 위험한 사상입니다. 또 예배당을 성전이라 부르며 신성시하는 것은 성도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는 복음의 기초를 무너뜨리는 위기인 것입니다. 헌금을 많이 내게 하기 위해 말라기서나 구약의 사상을 끌어드리는 것은 성도들이 복음으로 얻은 구원의 은혜를 율법의 속박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는 위기인 것입니다. 교회 안에 율법적인 사상들이 들어와 있음에도 전연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 바로 큰 위기인 것입니다. 복음이 아닌 율법적인 것은 교회에서 다 추방되어야 한다고 우리들은 편지를 써서 보내야 합니다. 교파주의의 신앙, 세속주의의 신앙, 그리고 율법주의와 힘써 싸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단번에 주신 귀한 믿음을 지켜나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