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교사들의 특성과 운명 – 베드로후서 2:10-22

요사이는 가짜 만들어내는 재주들이 좋아서 우리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는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가짜를 가리키며 진짜라고 할지도 모를 정도입니다. 왜냐하면 가짜가 더 빛이 나고 모양새가 더 좋아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 후서를 통해 진리를 굽게 하는 거짓 교사들을 고발하면서 그들에게 속지 말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누가 진짜 교사인지 누가 거짓 교사인지도 구별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가짜가 더 능력 있고 뭔가를 더 줄 수 있을 것같이 풍기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거짓 교사들의 특징과 그들의 운명에 대해 소개해 주면서 거짓 교사들에게 주는 경고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주님 재림시에 거짓 교사도 심판을 받을 뿐 아니라 거짓 교사에게 속아넘어간 자도 거짓 교사와 함께 같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므로 거짓 교사를 경계하고 바른 진리 안에서 끝까지 신앙생활을 하셔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함께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거짓 교사의 특징과 행동(10-16) [2]거짓 교사의 장래(17-19) [3]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20-22)입니다.

 

[1]맨 먼저 거짓 교사의 특징과 행동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거짓 교사의 특징과 행동을 소개하면서 대표적인 예로 발람을 들고 있습니다. 발람은 이스라엘의 선지자가 아니고 이방 나라의 술사였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해 나갈 때에 이방 모압 왕 발락이 이스라엘이 자기 나라를 정복할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술사 발람을 초청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부탁하였던 것입니다. 발람을 거짓 교사의 모델로 베드로가 소개한 것은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이스라엘은 복 받은 백성들이므로 저주하지 말도록 명령을 내렸으나 재물에 대한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나귀를 타고 발락에게로 가려 할 때 하나님께서 나귀의 입을 통해 책망하셨던 재물에 눈이 어두운 사람이었습니다.

 

발람을 거짓 교사의 한 모습으로 소개한 베드로는 거짓 교사나 이단들의 특징과 행동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거짓 교사나 이단들은 바른 길에서 떠나 미혹된 자들이라 했습니다. 바른 길 즉 진리에 선 사람들은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며 육의 욕심을 버리고 늘 경건하게 살지만 바른 길에서 떠난 자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소망이 없이 오직 이 세상에만 소망을 두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들이 얻고자 라는 것을 얻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대담하며, 고집이 세고, 심판이나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진리와 주권자들을 거슬려 훼방하는 멸망 받을 자들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영적인 영원한 삶에는 전연 뜻이 없고 처음부터 잡혀죽기 위해 태어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경건한 삶 대신 불의의 삯을 사랑하고,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불의를 당하는 자들이라 했습니다. 또 육체의 욕심을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않으며 믿음이 약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는 잘 훈련된 자들이어서 그들은 저주의 자식들이라 했습니다.

 

[2]두 번째로 17절부터 19절까지의 거짓 교사의 장래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7절에 보니 거짓 교사나 이단을 두고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라고 했습니다. 샘의 생명은 물인데 샘에 물이 없으면 어찌 샘이 되겠습니까? 거짓 교사들을 물 없는 샘에 비유하며 바람 부는 대로 밀려다니는 안개에 비유하여 하나님께 뿌리를 내리지 못한 이들에게는 어두움만이 예비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어두움이 무엇일까요? 어두움이란 엄한 심판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허탄한 자기 자랑과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믿음이 약한 자들을 미혹해 내는 자들이라 했습니다. 또 자기들이 가르친 교훈을 통해 자유를 얻게 해준다고 미혹해 내지만 미혹 받은 자들에게 자유와 행복을 주기는커녕 미혹 받은 자들과 함께 멸망 받을 종들이라 했습니다. 2장 1절부터 9절까지에서 노아 시대나 롯의 시대에 경건치 못하고 불의한 자들을 물과 불로 심판하심 같이 거짓 교사나 이단의 장래는 심판이요 멸망이라고 한 것입니다.

 

[3]마지막으로 20절부터 22절까지의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22절을 보니 거짓 교사를 두고 개가 토하였던 것을 다시 먹고 또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다시 누운 다는 속담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토한 것을 다시 먹을 바에야 토하지 말았어야 하며 씻은 몸을 더러운 구덩이에 다시 누울 바에야 씻을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 사함 받은 자들이 다시 죄 속으로 되돌아간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 것이 더 났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신 사람에게 다시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그 사람에게 들어간 비유를 들면서 나중 형편이 처음 형편보다 더 심하다고 하셨는데 거짓 교사들의 경우에도 믿기 전의 형편이 거짓 교사가 된 그 때의 형편보다 차라리 더 낫다고 한 것입니다. 불신자 때에 들어 있었던 악의 마귀보다 더 큰 악의 마귀가 거짓 교사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왕 노릇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무엇이 진리인지 알았던 자가 진리를 떠나 비 진리 안에 살게 되면 진리를 헐뜯고 진리 안에 있는 자들을 미혹하여 진리 안에 머물어 있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마귀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런 거짓 교사에게는 차라리 진리의 길을 몰랐던 것이 진리를 안 후에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낫다는 경고인 것입니다. 거짓 교사뿐 아니라 누구나 예수를 믿고 죄 사함 받아 구원에 이르렀으나 다시 죄를 짓고 믿기 전의 옛 모습으로 되돌아간다면 예수를 몰랐던 것보다 나을 것이 없고 오히려 다 악한자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 말씀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거짓 교사를 주의하고 혹시 자기 자신이 거짓 교사에게 미혹 당한 것은 없는지 확인하라는 교훈입니다. 옛날부터 테러범들을 대비하여 모든 나라들이 경계했었지만 뉴욕에서 일어난 911 테러 사건 이후에는 테러범을 색출해 내기 위해 더 세밀하게 검사하여 공항 이용객들에게 상당한 불편을 주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불편하다고 하더라도 철저히 검색하여 테러범이 비행기에 탑승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에 모두가 찬성하리라 봅니다.

 

기독교에도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거짓 교사나 이단이 존재해 오면서 진리를 따르지 못하도록 해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 편지를 쓸 당시가 지금부터 2천년 전인 것입니다. 그 때부터 진리 태러범인 거짓 교사나 이단을 경계하도록 경고하고 있으나 많은 사람들이 거짓 교사나 이단에 빠져들어 갔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미 결론을 내렸지만 거짓 교사나 또 거짓 교사에게 미혹된 모든 영들은 심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심판을 피하는 길은 진리 테러범인 거짓 교사의 미혹에 걸려들지 않는 길이요 지금 현재 내가 거짓 교사에 미혹된 것은 없는지 철저히 자기 진단을 해봐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거짓 교사의 특징과 행동은 어떤 것이라 지적해 주었습니까? 거짓 교사는 하나님의 뜻을 거슬려 불순종하는 자입니다. 진리가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 데도 인간적 이론과 신학을 가지고 진리를 바꾸려 하는 자는 거짓 교사입니다. 또 복음을 통해 구원되고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소망을 갖도록 성도들을 가르치고 권면하는 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재물의 욕심이나 육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가르치는 길을 가고 있는 자는 거짓 교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따먹지 말라한 것을 뱀은 따먹으면 오히려 더 좋아진다고 속인 것 같이 성경에서는 하지 말도록 가르치고 있는 것을 반대로 해도 된다고 거짓 자유를 선포하여 믿음이 적은 자들에게 경건보다는 방종으로 인도하는 자는 거짓 교사입니다.

이 세상에 많은 교사들이 존재하지만 성경을 잘못 가르치는 자들이 있습니다. 참된 축복을 주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얻는 구원과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삶에 두지 않고 세상 것에 초점을 맞추어 성도들을 세상적인 것을 많이 얻도록 축복 기도나 해주고 얻어먹고 더불어 사는 자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구약은 이미 폐해졌음에도 구약의 어떤 권위를 이용하여 교회의 권위나 성직자의 위상을 높이려는 자도 성경을 잘못 가르치는 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성소 휘장을 찢으시고 만인을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셨는데도 자신을 하나님과 평신도 중간에 있는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성직자와 평신도를 나누는 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도의 몸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임에도 예배당 건물을 두고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이라고 선포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예배당을 예루살렘 성전과 같이 신성시하게 하는 자는 그의 가르침이 아직 구약 시대의 교훈에 불과하므로 신약시대의 성도들을 가르치는 자격을 갖추지 못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분명히 가르치기를 믿고 세례 받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했음에도 성경 말씀을 무시하고 믿기만 해도 구원을 받는다고 자기 교파의 가르침이나 자기의 이론으로 구원관을 바꿔치기 하는 자는 엄청난 실수를 하고 있는 교사인 것입니다. 헌금은 매주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시행할 뿐 아니라 또 십일조, 감사헌금, 주정헌금, 월정 헌금 등으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헌금을 하게 하고 있으면서도 주님의 명령인 주의 만찬을 매주 시행하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치고 있는 자는 주님의 명령을 지키지 못하도록 방해한 교사인 것입니다. 사람의 목적에 따라 주님의 명령을 골라잡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 거짓 교사가 되어서도 안되겠지만 거짓 교사에 미혹되는 것도 안됩니다. 또 일상 생활에서 성령의 인도에 따라 성도로서의 마땅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거짓 교사의 잘못된 미혹에도 빠지지 말아야 하겠지만 내 스스로 내가 믿기 전의 옛 습관으로 되돌아가서 육의 삶을 살아도 안됩니다. 우리 모두는 성경을 열심히 상고하고 배워서 잘못되어진 것은 고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소망은 주님 재림시에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 것인데 주님의 심판의 기준은 교파의 헌법도 아니고 교파의 교리가 아니고 내 개인적인 생활 기준도 아닌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늘 말씀을 상고하며 늘 말씀 안에 거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