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합하라 – 고린도전서 1:1-17

고린도서 강해 설교를 할 수 있게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강해 설교를 수용할 수 있는 우리 교회 성도들게 감사를 드립니다. 주일 낮 설교를 강해 설교를 할 수 있는 교회가 아주 소수인줄로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강해 설교는 청중을 늘리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지 몰라도 설교자는 마땅히 본문 중심으로 하는 강해 설교여야 하기 때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라 믿습니다. 이번 시작되는 고린도서 강해 설교를 통해 전하는 자나 듣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감동이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린도 전후서는 바울을 통해 기록된 편지로 고린도 교회에 보내진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그리스의 중요한 항구도시, 상업도시인 고린도에 사도 바울의 제 2차 전도 여행을 통해 전도받고 세워진 교회이며, 고린도 도시는 세계에서 가장 타락한 도시중의 하나로, 항구 도시나 상업도시가 갖는 공통적인 타락성인 우상 숭배, 성적 문란, 무질서한 도시였다고 합니다.

 

고린도전서를 쓰게된 동기는 고린도 교회내에 분열이 있고, 성적 부도덕과 법정 소송문제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고 또 고린도 교회로부터 혼인 문제, 우상에 바친 제물문제, 예배와 관련된 무질서한 행위, 부활에 관한 질문 편지를 받았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을 풀어주기 위해 쓰여진 것입니다. 이 편지는 에베소에서 썼고 대략 주후 55년 전후로 보며 고린도서의 특징은 로마서나 갈라디아서가 교리서신이라 한다면 고린도 전후서는 실생활에 관한 문제를 다룬 서신으로 로마서 설교에 이어 잘 어울리는 말씀이라 생각되어집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분열된 고린도 교회의 모습을 소개해 주며 이에 대해 시정해야 할 방향이 제시된 것입니다. 오늘의 설교 제목은 온전히 합하라입니다. 한번 따라서 하시기 바랍니다. 온전히 합하라.

 

오늘 주신 본문 말씀을 세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내용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문안(1-3) [2] 감사(4-9) [3] 분열에 대한 소식과 권면(10-17)입니다.

 

[1] 먼저 1절부터 3절까지의 문안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1절부터 3절까지에서는 평범한 인사말 같이 보여지지만 짧은 인사말 안에 편지를 보낸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사도가 되었을 뿐 아니라 고린도 교회 성도들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성도가 되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를 또 다른 말로 무엇이라고 말하지요? 12 사도라 합니다. 사도 바울은 12 사도 속에 들지 않음이 사실이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사도 바울이 무슨 사도냐고 반 바울 운동이 교회 안에 들어와 교인들에게 바울의 권위를 깍아내리는 바람이 거셌습니다. 그런 분위기에 있는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 첫마디에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에 대해 분명히 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1절에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지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분명히 못을 박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사도 된 것은 자신이 만들어낸 사사로운 작품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도록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부르셨다는 확신을 전달하므로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함을 보게 됩니다.

 

2절에서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하나님의 교회’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고린도 교회 교인들 역시 택함을 받고 거룩해진 신분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옛날 고린도 지방은 어떻게 음란하고 부패했던지 ‘고린도’라는 말은 음란과 부패의 대명사가 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린도가 되었다’는 말은 음란하고 부패했다는 말로 통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라고 말을 하므로 고린도 도시는 썩고 냄새날지라도 그 속에 하나님의 특별하신 부르심을 받고 깨끗해진 성도들의 무리가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썩고 냄새나는 존재들이었지만 누구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입어 거룩해졌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택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으면 아무리 죄인도 거룩해져서 성도라는 큰 이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 중에는 창녀들이나 천한 종들의 신분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전에는 신분이 어떠했을지라도 거룩한 성도로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그들에게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로부터 오는 감격적인 구원의 은혜와 마음의 평화가 있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로부터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받았던 똑같은 편지를 전달받은 한인 그리스도의 교회 우리 모두에게도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참 기쁨과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두 번 째로 4절부터 9절까지의 감사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교회 교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감사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바울이 들추어내고 있는 감사는 고린도 교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은사를 받고 그 은사가운데 튼튼히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들은 말을 잘하는 은사를 받았고 또한 모든 지식이 풍족하기 때문에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말을 잘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하고 가르치는 은사를 받았다는 말이며 모든 지식이 풍족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넓고 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그들이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었다고 했으니 말의 은사와 지식에의 은사 말고도 또 예언과 방언과 병고치는 은사를 받았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9절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모든 은사를 받은 것에 감사하면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 받을 일이 없게 되도록 끝까지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모든 은사를 받았다고 떠들어대고 교만하고 하면 주님 나타나실 때에 책망을 받게될 것이므로 그렇게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한인 그리스도의 교회 성도들도 각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가 있습니다. 내가 받은 은사가 무엇인지 찾고 그 은사를 신중하게 잘 활용하므로 주님의 재림시에 모두 칭찬을 받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세번째로 10절부터 17절까지의 분열에 대한 소식과 이에 대한 권면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11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인편으로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무슨 소식을 들었나요? 고린도 교회의 분열과 분쟁에 대한 소식을 전해들은 것입니다. 교인 숫자가 얼마나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교인들 중 어떤 그룹은 사도 바울파, 어떤 그룹은 아볼로파, 어떤 그룹은 게바파, 또 다른 그룹은 그리스도파로 나뉘어져 서로 자기가 내세운 인물이 더 잘났다고 했겠지요.

 

바울은 당파가 있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까? 누가 너희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셨냐는 것입니다. 바울이냐 베드로냐? 아니면 아볼로냐?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의 파가 되고 그를 따라야지 어찌 사람 당수를 스스로 만들어 그들을 따르고 있느냐는 책망인 것입니다. 또 너희들이 누구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느냐는 책망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으므로 모두는 마땅히 그리스도 당파에만 속한 자들이 되어야 할 터인데 어찌 사람을 중심해서 당파를 만들어 교회를 나누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분이시오 예수 그리스도도 한분이시므로 온 교회가 연합되어야 한다는 교훈인 입니다. 우리 한인 그리스도의 교회 성도들은 누구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까? 누가 우리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나요? 그렇다면 우리들은 누구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마땅히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지요. 사람을 따라서도 아니되겠고 사람들이 만든 당파에 휩싸여도 안될 것입니다.

 

그렌대일 교회나 탬플 교회 교인들은 누구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을까요? 또 누가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까요? 그들도 한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으며 한 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들도 우리들과 나뉘어져서는 아니될 한 몸에 속한 지체인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장로교 교인들, 감리교 교인들, 침례교 교인들, 안식교 교인들, 천주교 교인들, 또 무슨 기독교 당파가 있던지 그들 교파의 교인들은 누구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을까요? 누가 그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을까요? 예 똑같이 한분이신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들 역시 우리와 나뉘어져서는 아니 될 한몸의 지체일 뿐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신학과 주장을 만들어 많은 교파를 만들어내므로 현대판 고린도 교회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교인들은 잘못 인도하는 그들에 의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도 전연 알아차리지 못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는 것으로만 스스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장로교라는 이름이나 감리교 , 안식교, 침례교 교파는 바로 현대판 바울파요, 아볼로파며, 바로 게바파인 것입니다. 성경에 이미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이름이 이미 있는데도 새롭게 교회 이름을 달리 지어 내놓는 것은 성경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와는 같지 않고 무엇인가 다른 것이 있다는 뜻으로 풀이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가르침 말고 사람의 가르침이 있다는 말로 해석이 됩니다. 결과적으로 교파하나가 더 생기면 교회가 하나 더 나뉘어진 것으로 풀면 되겠지요. 즉 성경과 다른 교파 하나가 더 탄생된 것이라 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교파를 자꾸 만들고 순수한 교회 내에 사람의 제도를 심어나가는 자들에게 10절에서 이렇게 권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합니다. 모든 교파나 교회 지도자들은 자기들의 주장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대로 똑 같은 말을 하고 예수님의 마음과 예수님의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교회 이름도 교회의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개칭해야 할 것이며, 예배 형식이나 교회 조직이 신약교회에서 시행한 모습으로 환원하므로 그리스도의 권위가 다시 회복되고 그리스도의 목소리가 사람 목소리를 압도할 수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소명이요 교회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의 편지를 통해 주님의 강력한 호소를 들으시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하시는 호소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에게 소명을 주시어 부르셨다고 확인시켜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특별한 소명을 주시어 부르시고 택하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소명을 주어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한분도 빠짐 없이 주님의 재림시에 책망 받지 아니하고 들림 받도록 말씀에 견고하게 서있기를 호소하고 계십니다. 주님 오실 때에 모두 들림 받게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의 편지를 통해 강력하게 호소하시기를 주님 오실 때에 들림 받게 되기 위해서는 모두가 예수님과 함께 한 목소리를내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세례가 하나라고 했으면 세례가 하나라고만 말을 하지 둘일 수도 있다는 학설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찬을 매주 하는 것이 성경에 기록되었으면 그대로 할 것이지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람 말을 뽑아버리라는 것입니다. 여자 집사가 성경에 없으면 어떤 이유를 만들어 여자 집사나 비성서적 직분을 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시행하게 되면 교회에서 이를 반대하는 자들과 분쟁과 나누임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좋은 교회에 대한 정의를 바로 내려야 합니다.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일까요? 어떤 교파가 좋은 교파일까요? 어떤 자가 신앙이 좋은 사람일까요? 좋은 교회나 좋은 교파란 성경에 있는 말씀대로 온전히 합하기를 바라는 교회나 교파입니다. 즉 인간들이 만든 이론을 뽑아내고 주님의 이론을 심어 뿌리를 내리게 하는 교회입니다. 이런 사실을 믿고 실천하는 자가 바로 믿음이 좋은 사람입니다. 남가주에 있는 모든 한인 그리스도의 교회들을 하나로 합한다하더라도 합할 수 있도록 각 교회들이 시행하고 있는 모든 제도나 예배가 성경적으로 회복되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교회에 다 같은 말을 하고 온전히 합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우리들은 실천을 해야 합니다.

 

감리교, 장로교, 침례교, 안식교, 순복음교회가 이름을 통일하고 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제도나 조직을 성경적으로 고쳐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교파나 교회에 다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입니다. 합할 때에 다수결도 아니며 오직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사명을 새롭게 깨닫고 일평생 온전히 합하는 운동을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닌 교회를 참석하는 것은 본인도 모르게 분리 운동에 동참하는 것이요 이 세상에 온전히 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깨뜨려나가는 결과를 낳는 것이 되며 오히려 연합 운동을 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운동을 약하게 하는 결과를 낳게 하기 때문에 이를 중지해야 합니다.

 

이 부족한 종은 지금 30여년간 이 진리를 위해 일해오고 있으며 듣던지 듣지 않던지 성경으로 회복되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 삶의 목적이요 하나님의 특별하신 부르심인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교인이건 우리 자녀이건 꼭 이곳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더라도 그리스도의 교회에 몸을 담고 그 교회를 위해 봉사하며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웃에게 소개하는 연합운동의 사명자들이 다 되어야 합니다. 이런 자는 나의 형제며 나와 삶을 같이하는 동지가 되겠지만 심지어 내 자녀일지라도 아버지의 뜻을 저버리자는 자는 곧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자요 육신의 아버지의 뜻을 거스리는 자이므로 아무리 육적으로 효도를 한다고 해도 나에게는 불효하고 있는 안타까운 자녀로 알고 마음 아파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들이 온전히 합하라는 본문의 뜻을 깨닫고 교회는 당연히 그리스도의 교회를 선택할 뿐 아니라 혹 그리스도의 교회에서라도 비 성서적인 것은 사양하므로 온 교인이 다툼이나 다른 분쟁의 요소가 없이 온전히 합해지게 만드는 신실한 연합 운동가들이 다 되어야 합니다. 온 교인들이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다 같은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모두가 말씀을 열심히 상고하여 진리에 확신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한분도 빠집없이 우리 성도들 각자가 주님의 말씀대로 온전히 합한 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