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성전 – 고린도전서 3:1-17

사도 바울은 자기가 전도하여 개척했던 고린도 교회에 분쟁과 시기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시정하기 위해 편지를 써보냈는데 오늘 본문은 그의 일부입니다. 고등 학생이라면 마땅히 고등 학생으로서의 행동을 해야하는데 고등 학생이 국민 학생 정도의 행동을 하고 있다면 그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그에게 고등 학생 다워라고 책망을 할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세상적인 모든 것들을 다 포기하고 모든 위협과 희생을 무릅쓰고 고린도에 복음을 전해 교회를 개척했고 그들이 복음을 받아드린 이후 세월이 흘렀으므로 마땅히 믿음이 자랐어야 할 터인데 믿음이 아직도 처음 믿을 때와 같은 그들을 책망하고 성숙한 믿음이 무엇인지 성숙한 믿음의 상태를 소개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숙한 믿음이란 본래 인간의 생각과 소망과 행동이 세상적이요 육체적인 존재였지만 복음을 받아드림으로 우리들의 생각과 소망과 행동이 영적이요 하늘나라에 소망을 둔 자답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자라면 자랄수록 세상적인 본질이 점점 영적인 본질로 변해가야함을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소개받는 우리들도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주는 교훈대로 우리의 생각과 생활속에 육적인 요소를 점점 줄이고 영적인 요소를 키워나가 하늘 나라 백성으로서 미리 갖추어야할 영적인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원합니다.

 

오늘 주신 본문을 네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육신에 속한 자(1-4) [2] 농부(5-9) [3] 건축자(10-15) [4] 성령의 전(16-17)입니다.

 

[1] 맨 먼저 1절부터 4절까지의 육신에 속한 자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1년 6개월 동안 개척 전도를 할 때에 교인들의 영적 수준이 너무 낮아 보다 더 깊은 진리를 가르쳐 주지 못하고 아주 초보적인 것밖에 가르쳐 주지 못했었는데 그후 수년이 흘렀으므로 마땅히 믿음의 진보를 보였어야 함에도 자라지 못한 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육신에 속한 자 또는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서 전도하고 가르칠 때에도 갓난 아이 정도밖에 안되어 젖만 먹이고 딱딱한 음식을 먹이지 못했는데 아직까지도 단단한 밥을 먹일 수 없다고 그들의 믿음이 전연 자라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6-6살짜리에게 아직 밥을 먹일 수 없다면 그 부모가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이 답답한 심정으로 사도 바울이 글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들을 향해 말하기를 영적인 자들을 대하듯이 하지 못하고 아직 젖만 먹는 어린아이와 같은 육신에 속한 자들을 대하듯이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은지 수년이 되었는데도 믿음이 전연 자라지 못하고 아직도 모든 생각과 소망이 세상적이라면 이들을 육신에 속한 자라 할 것이며 모든 생각과 소망이 영적이면 신령한 자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3절부터 5절까지에서 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아직 육신에 속한 자들이며 또 젖만 먹는 어린아이들인지 그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즉 교회 안에 시기와 분쟁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육신에 속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문제를 가지고 서로 다투고 파를 나누고 서로 시기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바울파, 나는 아볼로파, 나는 베드로파라고 나누어지고 서로 시기와 다툼을 일삼은 다면 마땅히 세상적이요 육적인 사람들이라고 하지 않겠어요? 성도들이라면 직업이 다르고 지식이 다르며, 재산이 달라도 그런 것을 다 초월하여 하늘 나라의 소망아래에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교회 내에서 재산 자랑, 자기 출신학교 자랑, 자기 고향 자랑 때문에 분위기가 나누어지면 그 교회는 세상적인 차원을 벗어나지 못한 교회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지금 어느 상태에 있습니까?

 

[2] 두 번째로 5절부터 9절까지의 농부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바울파 아볼로파로 나뉘어서 시기와 분쟁을 일삼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농부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예로 들어 문제 해결을 위한 처방을 주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와 아볼로를 농부에 비유한 것입니다. 바울은 씨를 심은 농부, 아볼로는 물을 준 농부나 다름이 없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들고 개척을 했으니 복음의 씨를 고린도 교회에 심은 농부요, 아볼로는 복음을 받아드린 교인들에게 말씀을 풀어 가르쳤으니 물을 준 농부라는 것입니다.

 

씨를 심은 농부나 물을 준 농부는 둘이 맡은 일은 다를지라도 다 같은 농부일 뿐이므로 누가 더 높다든지 누가 더 중요하다고는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 중요하고 다 쓸모가 있으며 서로 협력이 꼭 필요한 일꾼들임에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바울도, 아볼로도 다 존경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존경이 지나쳐서

둘 중 하나를 지나치게 존경한 나머지 두 파로 나뉘어지거나, 또는 존경이 지나쳐서 우상시해서는 아니된 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의 사역자들은 하나님의 종이지 우상시되어서는 아니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역자라할지라도 교회 내에서는 언제나 하나님을 중심해서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셔야 하고 하나님만이 높임을 받아야지 인간들을 중심한 모임으로 타락해서는 아니된다는 것입니다. 씨를 심는 것도 중요하고 물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라게 하신 하나님과 비교가 되지 않으므로 하나님아래서 서로 키재기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내의 여러 지도자가 있다할 지라도 각기 가진 은사를 가지고 각각 서로 동역자들끼리 협력해서 하나님의 집을 지어나가는 것이지 목수가 더 중요하다 미장이가 더 중요하다 설계자가 더 중요하다고 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인들은 씨가 떨어져 싹이 나고 많은 열매를 맺게 될 밭이라 한다면 전도자들은 씨를 뿌리거나 물을 주는 평등한 일꾼이요, 하나님은 자라게 하시는 절대적인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어떤 직분에 있든지 다 평등한 관계를 갖는 것이요 각자의 은사로 맡은 일에 충성하므로 각자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상을 받는 것임을 9절에서 명백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즉 어떤 일을 맡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맡은 일에 어떻게 충성했느냐가 상급을 받는 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3] 세 번째로 10절부터 15절까지의 건축자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육적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시기와 분쟁 속에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건축자에 대한 교훈을 통해 문제를 시정하도록 하는 처방을 주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했는데 이를 건축에 비교한다면 건물을 세울 터를 닦아 둔 것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 터를 예수 그리스도의 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믿기 전에는 우리들의 터는 세상의 지식과 세상의 권력과 세상의 습관이었겠는데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들의 가치관이나 생각과 행동이 예수 그리스도에 뿌리를 두게 된 터를 받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해 받은 성도들이 자기가 전달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각자가 건축을 하게 되는데 어떤 자는 영적인 집을 짓기도 하고 어떤 이는 세상적인 집을 짓기도 하게 될 터인데 주님 오실 때에 각자가 어떤 집을 지었는지 지은 집에 따라 상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주신 본문에서는 우리들이 집을 짓되 심판시에 인정을 받을 건축은 불에 타지 않는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지은 집으로 비유를 했고, 인정받지 못할 건축은 불에 타버릴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지은 집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부귀 영화, 재물 등 세상적인 것들은 주님 오실 때에 다 불에 타고 없어질 나무나 풀이나 짚에 비유한 것이며, 하나님에게 공력이 인정될 영적인 신앙은 불에 타지 않을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교회 지도자들을 놓고 누가 더 키가 크냐? 누가 더 능력이 있느냐? 누가 더 위대하느냐? 누가 더 중요한 인물이냐는 등 그런 세상적인 구분은 다 불에 타 없어질 나무나 풀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그런 육적 수준에서 벗어나 하늘 나라에서 인정이 될 영적인 믿음 생활을 하라는 충고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의 신앙 생활과 교회 생활은 불에 탈 재료로 짓고 있는 건축물입니까? 영원히 불에 타지 않을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짓고 있는 건축물입니까? 영적인 집을 짓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4]네 번째로 16절부터 17절까지의 하나님의 성전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16절에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해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 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예루살렘 성전을 성전이라 한 것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임재하셨기 때문에 거룩한 집 즉 성전이라 했는데 이제는 성도들을 두고 하나님의 집 또는 하나님의 성전이라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성령이 성도들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이란 하나님의 영이므로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므로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17절에서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그 사람을 하나님이 멸하시리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므로 성도들도 거룩해야 할 이유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예배당에만 들어가면 엄숙해 지려는 생각을 갖게 되는데 실은 예배당 안에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고 바로 내 안에 계시므로 내 마음이 언제나 엄숙하고 거룩해야 하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평소에는 엄숙해야 한다던가 경건해야 한다던가 하는 생각을 못하다가도 예배당 건물을 두고는 엄숙해지게 된다면 아직도 구약시대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어디가 성전이라고요? 예배당? 아니면 우리? 우리가 바로 성전입니다. 예배당을 두고 성전이라고 쉽게 말하는 교역자나 교인들의 신앙 수준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어느 수준이라 말 할 수 있을까요? 예루살렘 성전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 우리들 각자는 내가 육에 속한 사람인가? 신령한 사람인가?를 반성해 보라는 것입니다. 만일 아직도 내 속에 시기와 미움과 불화와 나눔의 본질이 남아 있다고 한다면 아직 육에 속한 사람이라 볼 수 있을 것이며, 시기의 문제, 미움의 문제, 나눔의 문제, 불화의 문제를 넉넉히 이겨내서 이런 문제들을 어렵지만 해결하고 있는 성도들이라면 신령한 자에 속한 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즉 믿음에 진보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있겠지요. 해가 지나도 내 속에 있었던 미움, 시기, 불화 또는 세상 욕심의 문제들을 해결 못하고 있다면 내가 아직 젖 먹는 어린아이의 신앙을 갖고 있음을 인정하고 돌이켜 딱딱한 음식을 먹는 장성한 자들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미움, 갈등, 시기, 분쟁이 내 속에 있다면 우리가 거룩한 성전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멸하시겠다고 했으니 우리들이 받은 성전을 우리들 각자가 거룩하게 보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들은 내 마음 속에 있는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세상 욕심을 추방해야 합니다. 내 힘만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넉넉히 이겨내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원합니다.

 

둘째는 내가 주님의 재림시에 인정받을 집을 짓고 있는지 불타 없어질 집을 짓고 있는지 살펴보고 불탈 집을 짓고 있다고 한다면 이를 돌이켜야 합니다. 어떤 때는 내가 불에 탈 집을 짓고 있으면서도 자시 자신을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알면서도 스스로 변명을 하며 그대로 살아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스스로 속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눈에 가장 가치 있게 보이는 물질이나 명예나 권세나 지식은 다 불탈 나무나 풀이나 짚에 해당되는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 때문에 믿음 생활이 뒤로 밀려난다거나 믿음 생활에 지장이 되서는 아니됩니다. 영원히 불에 타지 않을 금이나 은이나 보석에 해당되는 믿음 생활, 성도의 봉사와 선행을 위해 불에 탈것을 사용하고 그런 것들을 오히려 희생시키는 담대한 성도들이 되셔야 합니다. 불에 타 없어질 집을 짓는 일보다는 불에 타지 않을 집을 짓는 일을 더 중요하고 가치 있게 생각하며 하루하루의 생활을 하나님을 중심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주님 오시기를 바라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 한인 그리스도의 교회 모든 성도들이 다 신령한 자들이 되어 불에 타지 않을 집을 짓는 자들이 다 되어 주님 오실 때에 모두 신부로서 예수 신랑을 맞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