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하라, 영광을 돌리라 – 고린도전서 6:12-20

어린 아이가 태어나자 마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는 것입니다. 왜? 태어나자 마자 우는지 확실히는 모르지만 무엇을 요구하는 것으로 저는 풀어봅니다. 자기 보호의 본능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배고프니 무엇을 달라든가? 추우니 덮어달라든가일 것입니다. 아이가 자라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을 때에는 울 필요가 없이 먹고 싶으면 먹으면 되는 것이고 추우면 덮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사람이나 모든 생물들은 기본 적인 본능을 다 가지고 있는데 본능이란 아주 자연스러운 것들임에 사실입니다.

 

어린아이가 우유를 먹는 것을 보고 비난을 하거나 주책이라고 말하는 자는 하나도 없을 정도로 본능 그 자체가 비난받아야할 일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기본적인 본능에 따라 하는 행동한 모든 것은 비난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억제되지 않는 본능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비난을 받게 되며 신앙 차원에서도 어긋나는 것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성적인 문제인 음행에 대해 권면을 쓰고 있는데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낼 당시의 사회에서는 성적인 음행 문제는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럽게 용납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풍조가 교회에 까지 들어와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하다’는 주장을 내 걸고 무엇이든 마음대로 먹어도 되고 성적인 일로 몸을 어떻게 하든 상관이 없다는 잘못된 주장이 전염되어 성도들을 혼동시키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즉 그들은 성도들이 주님 안에서 얻은 자유, 믿음 안에서 얻은 자유를 잘 못 이해해서 방종도 믿음 안에서 얻은 자유라고 착각을 한 것입니다.

 

이런 폐습을 아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써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해도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유익을 가져 오는 것이 아님을 전제하고 만일 내가 무엇을 함으로 내 자신에게나 남에게 유익을 가져오지 못하고 또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는 결과가 온다면 그것을 자제해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내게나 남에게 불이익이 되는 일은 피하고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충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소개받는 우리 모두가 우리의 몸으로 보다 더 많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알아보고 본문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을 찾고 그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모든 것이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님(12-14) [2]우리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15-18) [3]값으로 산것(19-20)입니다.

 

[1]맨 먼저 12절부터 14절까지의모든 것이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님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일에나 또는 우리들의 행동에 있어서 우리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주어진 자유에 따라 한 모든 행동이 내게 다 유익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며, 또 자유로 시작한 어떤 행동에 결국에는 내가 그것의 종이 되어 끌려 다니는 결과가 되어서는 아니된다는 것입니다. 주어진 자유에 따라한 행동이 결과적으로 나 자신에게나 또는 남에게 불이익을 가져온다거나 또는 자유로 시작한 행동이 결과적으로는 그것에 끌려다녀야만 한다면 그 자유는 마땅히 통제되었어야 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에게 불이익을 가져다 주거나 또는 나를 그 무엇에 얽메이게 만드는 것이라면 그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거나 아니면 오히려 날 얽어매는 것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들의 자유는 어떤 기준과 목표에 따라 통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기준과 목표를 13절 14절에서 밝혀주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게 될 것이고 주님을 살리신 하나님께서 우리들도 부활하게 할 것이므로 부활을 소망하는 자 답게 우리들의 몸을 음란하게 관리하지 말고 주를 위해 헌신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주님 오실 때에 생명의 부활로 덧입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2]두 번째로 15절부터 18절까지의 우리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15절에서는 우리들의 몸이 큰 몸체이신 주님의 지체라고 했습니다. 주님께 붙어있는 지체 즉 주님의 가지라면 이미 주님과 연합된 자 이므로 주님과의 연합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창녀와 연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된다는 것입니다. 창녀와 연합하는 자는 이미 스스로 주님과의 연합을 포기한 자이므로 창녀의 지체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창녀의 지체가 되든지 주님의 지체가 되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겠는데 주님과 연합하여 주님의 지체가 되기 위해서 음행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거룩한 몸이므로 음행한 자는 거룩한 자와 한 몸을 이룰 수 없는 것이므로 거룩한 자와 한 몸을 이루고 그 분의 지체가 되기 위해서 음행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3]세 번째로 19절로 20절까지의 값으로 산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들은 나 자신의 주인은 바로 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가끔 우리들은 이런 말을 종종 듣게 될 것입니다. 내것을 가지고 내 마음대로 하는데 누가 간섭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관연 우리들이 가진 것 중에서 내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아니 정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바로 내것이 어떤 것일까요? 심지어 어떤 부모는 자기 자녀들이 바로 자기것인양 자기 마음대로 해보려고 시도하지만 자녀들은 자기들이 부모의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큰 마찰을 빚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19절 20절애 보니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오 값으로 산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의 주인이 바로 우리들 자신인줄 알았는데 오늘 본문을 보니 우리들은 이미 어떤 값을 치루고 팔린 몸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값을 치르고 누가 우리들을 샀을까요? 주님의 피값을 치르고 하나님께서 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집이 이미 팔렸고 새 주인이 우리의 집에 살고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새 주인이 누구인가요? 성령입니다. 옛날에는 내 몸이었는데 이젠 내 몸이 아니라 성령의 전 즉 성령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혹시 자기 것이라면 자기 마음대로 하여도 무방할지 모르나 우리들의 몸이 이미 팔린 몸이므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주인이 바라는 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들의 몸을 가지고 우리들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이 바라시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7절에서 음행을 피하라고 했는데 음행을 피하는 일 즉 죄를 짓지 않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우리들의 몸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들은 우리들의 몸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배웠습니다. 새로운 사실이란 우리 몸에 성령이 사시는 성령의 집이라는 사실과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저는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우리 집만 Rent 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이 몸도 내 것이 아니라 주인이 하나님이시오 나는 Rent하여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Rent를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Rent해 주시되 조건을 주시어 주를 위해 사용하라고 Rent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남에게 집을 세를 내주는 주인의 눈에 못마땅한 사람이 누굴까요? 셋집을 남의 집이라고 더럽게 함부로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반면에 주인이 퍽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은 남의 집을 자기 집같이 아끼고 깨끗하게 쓰는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몸을 렌트하여 살고 있는데 우리들의 주인 보시기에 어떤 편에 속한 자들일까요?

 

우리들의 몸을 렌트해 주신 주인의 부탁은 무엇인가요?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 깨끗이 사용하고 관리한 자에게는 더 좋은 집에서 살도록 할 것이므로 소극적으로는 집을 더럽히지 말것이요 적극적으로는 집 주인에게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오늘 주신 본문은 우리들의 행실을 통제하라는 것입니다. 주어진 자유에 따라 무엇을 하더라도 그것이 내게 유익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나에게는 유익할지 몰라도 남에게는 부덕을 주는 일이거나 또 하나님앞에 영광을 돌리지 못하는 이리라면 차라리 그 자유를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즉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내게 유익하고 이웃에게도 도움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인지를 확인하고 획신이 차면 행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내 스스로 내 마음에 가책을 느끼거나 남에게 비방을 받을 가능성이 있거나 하나님께 욕을 돌릴 일이라면 행동을 중지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만 일생을 살고 끝내버릴 사람들이라면 이 세상에서 하고 싶은대로 살아야 하겠지만 우리 모두는 주님의 재림시에 부활하여 영원히 살게될 자들이기 때문에 일시적인 향락을 뿌리치고 영원한 소망의 길을 택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이 일생 사는 동안 한번만 죄를 피하므로 영원히 죄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아니요 하루에도 몇번씩이라도 좌의 유혹이 우리들을 노리고 있는 것이므로 우리 모두는 천국의 가치를 더욱 높이 평가하고 천국의 생활을 소유하기 위해 시시때때로 찾아드는 죄를 강력하게 퇴치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삶은 첫째로 우리들이 죄를 피하는 것이며 둘째로는 우리에게 렌트해주신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는 길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우리의 몸으로 산제사를 드리는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며, 더 나아가서 전도하며 구제 봉사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몸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가장 선하게 사용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