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 간의 소송 문제 – 고린도전서 6:1-11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내에 일어난 여러 가지의 문제들을 풀어주기 위해 권면의 편지를 써 보내고, 디모데를 고린도에 보내고 또 직접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려고 하는 다각적인 방법을 동원하고 있음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편지를 보내든, 사람을 보내든, 아니 직접 본인이 고린도를 방문하든지 그에게는 분명한 목표가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 목표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미래에 하나님의 나라에 입성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에는 하나님의 백성만이 들어가므로 모든 성도들은 일상 생활에서 마땅히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일관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교회내의 성도들간의 분쟁이 있을 경우에 이 분쟁을 세상 재판관에게 맡기지 말고 교회 내에서 이를 해결하라는 교훈입니다. 교회 내에서 일어난 성도들간의 문제를 교회 내에서 형제들끼리 사랑으로 해결이 불가능하여 세상 재판에 맡겨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면 비록 세상 재판에서는 그 중 한 사람이 승리한다고 할 지라도 하나님의 심판에서는 낙방이 될 것이므로 하나님의 나라에 진정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성도답게 서로 사랑하고 양보하고 용서하여 교회 내에서 충분히 풀 수 있어야 한다는 강력한 호소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 강력한 호소의 의미를 더욱 강조하기 위해 세상 재판관에게 가느니 차라리 상대방에게 속임을 당하고 자기가 손해를 보라고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는 소송 관계의 교훈을 통해 실지로 우리들의 교회 환경에서 일어날 수 있는 제반 소송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바라심이 무엇인지 분명히 배워 세상에서는 지더라도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주신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고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성도간의 문제를 세상 재판관에게 맡기지 말라(1-5) [2]차라리 불의를 당하라(6-8) [3]불의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9-11)입니다.

 

[1] 먼저 1-6절까지의 성도간의 문제를 세상 재판관에게 맡기지 말라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교회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당파가 생기고 당파간에 분쟁이 심했음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당파간의 분쟁이 있는 교회의 분위기이므로 성도들 개인적인 분쟁이 또한 가능했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사회 분위기는 로마 법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크고 적은 일을 로마법에 호소하는 경향이 있었고 또 그 당시의 법이 많은 배심원들로 구성되도록 하여 자기의 재판 일로나 아니면 배심원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법정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형편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사회적 습관으로 교인들끼리의 문제를 가지고도 세상 법에 호소하여 자기의 이익을 보호하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생활하고 있는 고린도 교회에 사도 바울은 너무나도 분명하게 몇 가지의 질문을 던짐으로 그들의 잘못을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 질문은 왜? 성도들끼리의 일을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고 불의한 자들 앞에서 하느냐? 입니다. 여기에서 불의한 자들이란 재판관들의 판단이 불의하다는 뜻이 아니고 불신자들임으로 하나님 앞에서 불의한 자들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전도해야 하겠는데 교회의 수치를 세상에 공개를 하는 일이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는커녕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결과가 된다는 뜻이겠지요. 다른 의미로 본다면 불신자를 어떻게 교회 문제에 개입하도록 하느냐는 말도 되겠습니다. 우리 교회 문제나 우리 교인들끼리의 문제는 우리 교회가 스스로 해결해야지 우리 교회내의 문제를 세상 사람에게 관여하여 풀도록 한다면 부끄러운 일이 되겠지요.

 

두 번째의 질문은 성도가 세상을 심판하는 것을 너희는 알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마태 19:28을 보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한 것 같이 성도들이 세상을 심판할 위치에 있는 자들인데 세상더러 성도들을 심판하도록 맡기니 자신들의 신분을 너무 깍아 내릴 뿐 아니라 그 신분을 우리들에게 주신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뜻입니다. 세 번째의 질문은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에서의 천사란 타락한 천사를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천사 아니 누구라도 하나님께 불의한 자들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네 번째의 질문은 문제가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에게 맡기느냐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다는 것은 세상의 불신자 심판관들을 교회로서는 성도들을 심판할 수 있는 자로 존경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다섯 번째의 질문은 너희 가운데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성도 중에서도 형제들간의 일을 충분히 판단할 자가 있을 터인데 세상 법정으로 가지고가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는 말입니다.

 

[2]두 번째로 6절로 8절까지의 차라리 불의를 당하라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 니다. 사도 바울은 6절에서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소송하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교인들끼리의 재산 문제이거나 다른 문제라도 있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함을 주님의 교훈을 통해 알고 있나요? 사랑과 용서로 문제를 풀고 화해를 해야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두 사람만으로 할 수 없다면 교회내의 다른 사람이 개입하여 양쪽이 서로 양보하고 용서하여 화목을 이루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아무리 화목을 권해도 문제를 풀려고 하지 않고 기어이 법정에서 풀겠다고 한다면 세상 사람들에는 보통일 이지만 주님께서는 원치 않는 문제요 심히 부끄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법정에서는 자기가 승리하기 위해 상대방의 약점을 사정없이 폭로하게 되어 세상이 교인들의 썩어 있음을 알게 되어 결과적으로 당사자들도 만신창이가 되고 교회의 권위도 땅에 떨어져 결과적으로 하나님 앞에 책망 받을 일이 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불신자 앞에서 소송을 하는 그 자체만 가지고도 이미 하나님 앞에 허물이 된다고 했습니다. 재판정에서 이기고 지게 되는 결과가 오기 전에 소송 사건을 시작함으로 하나님 앞에는 불의한 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차라리 소송을 안하고 자기가 주장한 권리를 포기하므로 불이익을 당하고 속는 것이 낫겠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기 때문에 현세적인 어떤 이익은 포기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겠다는 큰 뜻을 펼치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재판을 통해 권리와 재산을 되찾고 승리한 자들 가운데 재판 과정을 통해 이미 성도가 가져야할 기본 자태를 다 버리고 오직 재판에 승리해야 한다는 일관된 목표만을 향해 일하다가 하나님의 나라를 영원히 잃어버린 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겠습니까? 아니 그런 과정을 미리 포기치 아니하고 끝까지 재판정에까지 간 그들을 두고 하나님께서 너희가 둘 다 허물이 있다고 하여 천국 입성권을 빼앗겨 버린 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3] 세 번째로 9절로 11절까지의 불의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에 대해 여러 곳에서 명백히 밝히고 있음을 우리들은 잘 압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5장에서 언급한 것을 다시 강조해 주고 있습 니다. 즉 소송 사건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허물이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함을 명백히 밝히면서 혹시 라도 미혹을 받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누구더러 허물이 있는 자들이라고 본문에서 지적하고 있습니까? 음란한 자입니다. 성적인 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상 숭배하는 자, 간음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더러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마음에 간음했다고 하셨는데 우리들에게 정결을 요구하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입니다. 이들은 동성 연애자를 말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사회적으로는 동성 연애자들도 모든 권리를 찾을 수 있을 지 모르나 하나님 나라에는 그들의 몫이 없다는 것입니다.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입니다.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는 자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몫이 없다고 했습니다. 술 취한 자나 남의 것을 약탈하는 자나 남을 중상 모략하는 자들도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들 생각에는 이런 것들은 별것이 아닌데도 하나님께서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유업이 없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 경고는 하나님의 경고인 것입니다.

 

경고는 분명하게 주어졌고 그 경고는 변경되거나 취소되지 않을 것이므로 우리 모두는 이 경고를 엄히 받아드려 모두가 소송 사건을 중심해서 일상 생활을 통해 무엇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인지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기에 합당한 자들이 다 되어야 할뿐인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어떤 다른 선택이나 우리가 메꿀 수 있는 공백을 주시지 않은 것입니다. 어떤 일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임을 이미 경고 받고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내가 내 스스로에게 변호사가 되어 내가 바친 큰 헌금 때문에, 내가 바친 큰 봉사 때문에 나의 많은 허물이 덮어질 수 있다고 믿는 잘못된 믿음이 우리들의 허물에 대해 너그러운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허물이 씻음을 받고 죄인이 의로워지는 것은 오직 진정한 회개뿐입니다. 그 나머지 어떤 선행과 봉사가 우리의 허물을 덮어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고 그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경우에도 성도끼리의 일을 가지고 소송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소송을 하므로 두 사람은 영원히 갈라지게 될 것이고 돈도 많이 축나고 피차 망신을 당하고 더욱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결과가 되어 소송 당사자는 뭐라고 변명을 충분히 가지고 있겠지만 하나님은 허물이 있다고 판정하시어 세상에서도 큰 손해를 보고 하나님의 나라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결과가 오기 때문입니다. 성도간의 소송 사건은 절대 피하라는 것입니다. 교회 문제를 가지고 재판하는 교회들이 많이 있음을 신문을 통해 보는데 그들더러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소송을 취하하고 교회 내에서 풀도록 하고 합의가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차라리 손해를 당하라는 교훈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이 사랑이신 데 기독교의 기본 사상인 사랑이 부재한 어떤 성도에게 하나님께서는 허물이 있다고 판정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재물로나 다른 권리가 많이 포기 되더러도 세상 사람에게 성도들의 수치를 공개하는 재판을 피하라는 것이 첫째 교훈이요

 

둘째는 어떤 허물이든지 하나님께서 허물이 있다고 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교훈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죄가 무엇이라고 생각되십니까? 아마 각자가 자기가 가장 싫어하는 죄가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죄에 대해서는 아부 너그러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성도들끼리 재판한 사람을 두고 허물이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일에 대하여 아무리 관용해도 하나님께서 허물이 있다고 하신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본문에서 강조한 어떤 악을 행했다면 비록 그것을 나 스스로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다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허물이 있다고 판정하실 것이므로 어떤 허물이든지 우리들은 허물을 하나님 앞에 고하고 용서를 빌고 씻음을 받아 의로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불의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함을 새롭게 명심해야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전해들은 우리 모두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내게 어떤 허물이 있는지 스스로 점검하여 어떤 허물이라도 생각나거든 하나님 앞에 내놓고 회개하여 온전히 씻음을 받아 언제라도 하나님께서 부르시더라도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