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 – 고린도전서 7:25-40

고린도 교회는 고린도 교회가 당면한 여러 가지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사도 바울에게 편지를 보내 사도 바울의 답을 얻고자 했던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7장부터는 고린도 교회의 질문에 대한 사도 바울의 대답을 기록하고 있는 것인데 7장은 결혼문제에 대한 것입니다. 러시아 속담에 바다에 나갈 때에는 한번 기도하고, 전쟁에 나갈 때에는 두 번 기도하며, 결혼할 때에는 세 번 기도하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의 말에는 결혼을 해도 후회할 것이고 안해도 후회할 것이니 기왕 결혼을 하고 후회하겠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말들은 결혼의 중요성이나 결혼 생활이 쉽지 않음에 초점을 맞추어 표현된 말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주신 본문의 결론은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는 결론을 내리는 사도 바울이 결혼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결혼하든 하지 않든 주님께 초점을 맞추어 주님 중심의 생활을 해야 한다던가, 주님의 재림을 위해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내려진 결론인 것입니다. 즉 세상일에 빠져 세상 재미로 인생을 살아서도 아니되겠고 세상 슬픔에 빠져 낙담으로만 세상을 살아서는 아니된다는 교훈을 주기 위함인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세상도, 아니 아무리 힘든 이 세상의 삶도 어느새 지나가고 주님께서 통치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이 곧 우리들 앞에 나타날 것을 소망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기 위해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는 말로 우리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소개받는 우리 성도들이 사도 바울이 가진 기본적인 삶의 원칙과 믿음을 본받아 우리들의 하루하루의 삶이 주님 중심의 삶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삶이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네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고 그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25-28) [2]때가 단축하여 진고로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29-31) [3]주의 일을 염려하기 위해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32-34)

[4]시집보내는 것도 잘하는 것이나 시집 보내지 아니한 자가 더 잘하는 것이다(35-40)입니다.

 

[1] 맨 먼저 25절부터 28절까지의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자기가 주는 교훈은 주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계명이 아니라 주님의 자비하심을 받아 주님의 충성된 사도로서 자기 개인 의견임을 전제하면서 처녀나 총각의 결혼 문제와 재혼 문제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즉사도 바울의 결혼관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28절에서 사도 바울은 처녀가 시집가도 죄짓는 것이 아니고 장가가도 죄짓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죄짓는 것은 분명히 아니나 자기의 생각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좋겠다고 했으며 그 이유를 ‘임박한 환난을 위하여’라고 했습니다. 그냥 지내는 것이 좋겠다는 것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처녀 총각은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로 그대로 지내라는 것이고, 이미 결혼한 사람이라면 결혼한 대로 그대로 지내고 어떤 이유로 혼자된 사람은 혼자 그대로 재혼하지 않고 그냥 살라는 것입니다. 그냥 지내는 것이 좋은 이유를 ‘임박한 환난을 위하여’라고 했는데 임박한 환난이란 곧 닥쳐올 핍박이나 다른 여러 가지의 고난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 당시에 예견되었던 특별한 고난이나 주님 재림 전에 있게 되는 여러 가지의 재난을 말하는 것이리라 봅니다. 앞으로 곧 닥쳐올 재난을 인하여 결혼을 하지 않고 그냥 지내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눅 21:23 에 ‘이러한 환난은 전무후무한 것으로서 이때에는 특히 아이 벤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고 한 말씀과 같은 의미인 것입니다. 전쟁이 나서 피난을 가야한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누가 제일 움직이는데 불편하겠어요? 아이밴 자들이나 젖먹이는 자, 또는 환자나 노인들일 것입니다. 28절에서 ‘시집가고 장가가도 죄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했는데 결혼을 하여 좋은 점들이 많이 있겠지만 결혼하므로 혼자 살 때보다 더 많이 수고를 해야하고 또 파생될 수 있는 여러 가지의 고난을 사도 바울은 예측을 하며 차라리 그냥 지내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결혼하고서 자기의 책임을 회피하는 자들이 있는데 자기의 책임을 감당할 마음이 없으면 그냥 지내야 합니다. 그러나 결혼하므로 파생될 여러 가지의 책임 즉 여러 가지의 고난을 달게 지기를 다짐할 수 있는 자들은 결혼을 해도 될 것입니다. 희생의 각오가 없이 결혼만 덜렁해버리고 고난이 생기면 회피해버리는 자들에게 주는 교훈이기도 하겠습니다.

 

[2]두 번째로 29절부터 31절의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 당시만 해도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음을 믿고 있었으리라 봅니다. 물론 지금도 예수님께서 오늘 오실지 내일 오실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요 분명한 것은 주님의 재림 시기가 작년보다, 지난 달 보다, 또 어제 보다 시기가 더 단축된 것이 사실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기 때문에 세상일에 정신이 빠지면 안되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모든 것은 다 헛것이 되기 때문에 주님의 재림에 초점을 맞추어 살라는 말씀입니다. 재림에 초점을 맞추어 사는 삶이란 아내가 있는 자도 없는 자 같이 사는 생활이요 부유한 자도 그 물질에 큰 뜻을 두지 않고 사는 생활이며, 심지어 슬픔에 잠긴 자나 또는 기쁨이 충만한 자도 세상적인 그 슬픔이나 기쁨에만 빠져 있지 아니하고 주님의 재림에 소망을 두고 살라는 교훈입니다.

 

29절에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란 뜻이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으므로 아내를 버리라는 말이나 아내를 돌보지 말라는 뜻은 전연 아닙니다. 자신의 중심을 주님의 재림에 두어야지 결혼 생활이나 사업에 두어서는 아니된다는 것입니다. 사업도 열심히 하고 가정 생활에도 자기의 임무를 충실히 하되 이런 일들은 임시적인 것이므로 영원한 나라가 올 때에는 임시적인 일들은 다 끝날 것을 분명히 알고 영원한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라는 말입니다.

 

[3]세 번째로 32절부터 34절까지의 주의 일을 염려하기 위해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냥 지내는 것이 좋겠다는 첫째 이유로 임박한 환난을 인하였고 두 번째는 주님의 재림의 때가 단축하여진고로라 했는데 세 번째는 주의 일을 염려하기 위해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32절에 보니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했는데 이 말은 가지가 많은 나무가 바람 잘 날이 없다는 말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도 되겠습니다. 즉 결혼하게 되면 염려거리가 하나 더 늘어난다는 의미에서 염려거리가 계속 늘어나므로 세상 염려 때문에 주님에 대한 염려는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장가간 사람은 어떻게 해서 아내를 즐겁게 하고 내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줄까 늘 마음을 쓰겠지만 혼자 사는 사람은 오직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더 즐겁게 해드릴까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이미 결혼한 자들은 오직 자기 가족을 돌보는 일에만 전념을 해도 되고 혼자 사는 사람은 주님께 충성을 해야 한다는 말의 뜻은 아닙니다. 아무도 하나님께 충성을 해야하는 일이 면제된 사람은 없습니다.

 

주님께 더 충성할 수 있는 여건을 말한다면 결혼한 자보다 독신이 더 좋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독신이건 결혼한 자들이건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독신으로 살다보니 가족에 메이지 않고 전도하는 일에 전념을 할 수 있는 경험을 통해 남들에게 이렇게 자기 체험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4]네 번째로 35부터 40절까지의 시집 보내는 것도 잘하는 것이나 시집보내지 않는 자가 더 잘하는 것이라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당시에는 딸을 시집보내는 것이 아버지의 권한 아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득이 시집을 보낼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면 시집을 보내되 시집을 꼭 보낼 이유가 없다면 시집을 보내지 않은 것이 더 좋다는 결론입니다. 물론 그 이유는 이미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35절에서 그 이유를 묶어서 ‘분요함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일에 메이거나 세상일로 인해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주를 섬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무슨 교훈을 배웠으며 그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본문이 주는 교훈은 결혼을 하고 안하고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 아니라 결혼 생활의 책임감과 하나님 나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즉 결혼을 하므로 인해서 각자가 감당해야할 의무와 책임감이 무겁게 짐 지워져 있으므로 결혼할 사람은 이 짐을 충실히 감당할 책임감을 가지고 결혼을 하라는 것이며 결혼을 했던 혼자 살던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우리들이 모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삶이 시작될 것이므로 세상일에 대한 근심보다 하나님의 일에 대한 근심의 폭을 크게 하여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행복한 삶을 누려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혼을 해야 할 것인지? 혼자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이 나왔습니다. 답은 하십시오와 하지 마십시오입니다. 하십시오라는 답을 얻은 사람은 결혼을 하되 가족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 상대방을 어떻게 하여 기쁘게 해줄 수 있을까 염려를 할뿐 아니라 그 정도를 잘 조절하여 하나님을 어떻게 했으면 기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빼앗기지 안을 정도로 할 것이며, 만일 결혼을 하지 말고 혼자 사십시오란 답을 얻은 자는 혼자 사는 것이나 결혼해서 사는 것 모두가 임시적인 삶이요 이런 삶은 쉬 지나고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사는 천국 삶이 곧 시작 될 것이므로 이 나라를 소망하며 모든 어려움을 넉넉히 이기고 남편이나 아내에게 빼앗길 수 있었던 모든 수고와 노력을 묶어 하나님께 충성을 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결혼을 한 자들이나 혼자 사는 자들이나 같은 심령으로 주님 중심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고 사는 승리자의 삶, 즉 그냥 지내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결혼을 했다고 아내나 남편에게 너무 무게를 실지 말고 또 혼자 산다고 외롭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있어서는 아니되며 사업이나 다른 세상일에 치중하지 말고 있는 자도 없는 것 같이 없는 자도 있는 것 같이 세상 것에 메이거나 흔들림이 없이 오직 주님을 사랑하며 충성하며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삶이 그냥 사는 삶입니다. 시끄럽게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있다고 시끄러워도 아니되겠고 없다고 역시 시끄러워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그냥 지내는 삶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바라시는 삶이요 승리의 삶인 것입니다.

 

승리의 삶을 다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