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유익을 구하라 – 고린도전서 10:23-33

우리들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를 통해 차원 높은 사도 바울의 교훈을 계속적으로 전수 받고 있습니다. 문제가 많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진 이 편지는 문제가 많은 현세 교회에도 꼭 필요한 교훈이라고 믿습니다. 모든 사도들이 다 예수님을 닮은 신앙 생활을 했으리라 믿지만 다른 사도들에 관한 글이 별로 없으나 사도 바울의 경우에는 그가 써보낸 여러 편지를 통해 그의 신앙과 생활을 잘 소개받고 있는 데 그가 가르친 교훈들은 그가 스스로 실천한 것들이어서 교훈을 받는 이들에게 크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며칠전 신문에 어떤 침례교 연합회 회장이란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는 물론이요 자기 부인이 아닌 다른 여자의 이름으로도 롤스로이 자동차와 빌딩이 몇 채가 된 사실이 들통이 났다고 했는데 예수님을 팔아 자신들의 명예와 부를 축적하고 이기적인 삶을 추구하는 종교 지도자들과 비교해본다면 사도 바울의 삶은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 값진 예수님을 차지한 고귀한 믿음을 우리들에게 실생활에서 보여준 것입니다. 자신은 죽고 예수님을 높이는 생활이나 자신은 희생하고 성도들을 섬기는 그의 삶의 가치가 우리들로부터 다시 한번 새롭게 조명되어져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설교 제목은 ‘남의 유익을 구하라’입니다. 이 설교 제목은 바로 예수님의 삶이나 사도 바울의 삶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알맹이입니다. 예수님과 사도 바울의 삶은 철저히 하나님의 영광과 남의 유익을 구하는 삶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삶 때문에 현재의 우리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의 삶에 보답하는 의미에서 우리들도 남의 유익을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하리라 봅니다. 몸소 실천한 것들을 편지를 통해 고린도 교회에 글로 전달한 그의 진실한 교훈을 받는 우리들의 삶이 그를 닮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오늘 주신 본문을 네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다(23) [2]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24-30) [3] 무엇을 하던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31) [4]나와 같이 되라(32-33)입니다.

 

[1]맨 먼저 23절의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다 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8장부터 10장까지에서 우상에 드려진 제물 문제에 관한 교훈을 주고 있는데 오늘은 우상에 드려진 제물 문제에 관해서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그 결론 부분의 일부인 23절에서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라 한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말일까요? 우리들이 누리는 모든 자유가 우리들에게 언제나 유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며 또 그 자유가 언제나 나에게나 남에게 덕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주어진 자유를 마땅히 누려야하겠지만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누리는 과정에서 내게나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음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누리는 자유가 남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면 그런 자유는 억제되어야 함을 전제하고 주어진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의 참 자유란 내가 누릴 수 있는 것을 다 누리는 것이 자유가 아니고 내가 누리는 자유 때문에 이웃에게 피해가 간다면 내 자유를 억제하는 것이 참 자유요 가치 있는 자유라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억제하는 자유가 참 자유라는 것은 진실 된 신앙인이나 수준 높은 교양인이 아니면 그 뜻도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실천이 어려운 고차원적인 처세일 것입니다.

 

[2] 두 번째로 24절부터 30절까지의 남의 유익을 구하라 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24절에서 우상에 바쳐진 음식을 먹는 것과 연관해서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그렇게 하는 것인지를 예로 들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의 예는 시장에서 파는 음식은 그것이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인지 아닌지를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사서 먹으라고 했습니다. 땅에 충만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이 주신 음식은 먹지 못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는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진 고기를 제사장들이 시장에 내다 판 이유로 시장에 많이 나와 어떤 고기가 제사에 사용된 것이고 어떤 것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란 말은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음식은 다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내가 믿는다면 그 음식이 우상에게 드려진 음식인지 아닌지를 물을 필요도 없을 것이고 또 내가 그것을 묻고 제사에 드려진 음식인줄 알고 사서 먹는 것을 믿음이 약한 사람이 본다면 그 사람이 생각하기를 우상을 섬기는 일은 전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라고 오해하거나 또 그 사람이 제사 음식을 먹어서는 아니되는데 먹는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에게 거리낌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시장에 가서 고기를 살 때에 그런 것을 묻지 말고 사서 먹으라는 말인 것입니다.

 

또 두 번째의 예는 불신자가 자기 집에 초대하여 음식을 대접한다면 혹시 제사를 드린 음식이냐고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그냥 먹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이 음식은 제사 음식이라고 말을 한다면 그 말을 한자와 다른 사람들의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려주는 이유는 제사 음식은 다른 음식과 다르다고 믿기 때문에 말해준 것이고 또 혹시 라도 내 주위에 있는 자 가운데 제사 음식을 먹는 것은 제사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믿는 자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의 약한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먹을 수 있는 귀한 자유를 누리는 일로 어찌 남에게 비판을 받아서야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만 챙기지 말고 남의 유익을 생각하여 자기가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억제하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남을 돌아보는 믿음을 우리들에게 소개하고 있는데 이 시대에 우리들이 간직해야할 아주 귀한 믿음인 줄 압니다.

 

[3] 세 번째로 31절의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바로 앞에서는 내가 이것을 먹음으로 나에게나 남에게 유익이 되고 덕이 되겠는가를 생각해보고 먹든지 마시라는 것이었는데 이 부분에서는 먹든지 마시든지 또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자유를 누리는 것이 물론 중요합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땅에 충만한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들이므로 온 천지가 다 우리들이 마음대로 발을 옮길 수 있는 곳이요, 천지에 우리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널려 있으므로 무엇이든지 먹을 수 있는 자유가 기다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사용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나 하나님께 욕이 되겠나 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할 때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것입니다. 이 직업을 가지므로, 이 사업을 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습니까? 그럼 자유를 누리십시오. 이것을 먹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습니까? 그럼 잡수십시오. 그러나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할 것으로 판단이 된다면 그 자유를 거두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사용하므로 하나님께 불경한 결과를 가져온다면 그 자유는 마땅히 억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4] 네 번째로 32절과 33절의 나와 같이 되라 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자기와 같이 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되는 길은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또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모든 사람에게 기쁘게 하기 위해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모든 이로 하여금 구원을 얻게 하라는 교훈입니다. 이 교훈을 준 사도 바울은 많은 이들의 구원을 위해 그런 삶을 살았고 우리들도 자기와 같이 되라고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에게는 유대인답게, 이방인을 접촉하면 이방인같이,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같이 처세하여 자기를 접촉하는 이들로 전연 거부감이 없게 하고 그들을 구원해 내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 그들의 유익을 위한 삶을 살므로 성공적인 전도의 사명을 완벽하게 감당한 주의 충실한 종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교훈을 매 주일마다 받고 있는 우리 성도들도 그 교훈에 따라 살므로 그를 닮아 우리들도 주 앞에 성공적인 삶을 사시게 되시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 말씀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주신 교훈은 참 자유를 누리는 자유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참 자유를 누리는 자유인이란 어떤 자를 말하는 것입니까? 내가 누릴 수 있는 모든 자유를 누리되 그 자유를 누리므로 내 이웃에게 유익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자유를 누리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이말을 소극적으로 표현한다면 내가 누리는 자유가 내 이웃에게 피해가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게 된다고 판단이 되면 그 자유를 스스로 억제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남에게 덕을 끼치지 못하거나 피해가 되고 하나님을 근심케하는 것들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우리들이 억제해야 할 자유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직업, 사업, 취미 생활, 습관, 입는 것, 먹는 것, 마시는 것, 말하는 것 등 많은 것들을 우리가 들추어 낼 수 있습니다. 교회 내에서도 교회 밖에서도 술과 담배를 하지 말라는 말이 성경에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게 됩니다. 술을 파는 사업이나 도박장 사업에 대해 성경은 무엇이라고 답을 하고 있나요? 그 답은 오늘 주신 본문이 정답이 되겠습니다. 그것이 나에게나 내 이웃에게 유익을 주고 덕이 된다거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면 해야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고 판단이 되는 것이라면 해서는 아니되겠지요. 오늘 설교를 들은 우리 모두는 이젠 우리들의 모든 자유를 실행할 때마다 그 자유가 내게나 내 이웃에게 유익하며 또한 하나님께 영광을 위한 일인지 확인하여야 하겠습니다. 만일 무엇을 하던지 마음에 거리낌이 있다면 과감하게 그 자유를 억제해야 할 것이고 또한 내게나 내 이웃에게 유익한 것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면 과감하게 해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이 주는 교훈은 소극적으로 해석을 하자면 내가 누리는 자유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교훈이요 적극적으로 해석을 하자면 이웃에게 유익을 주는 자유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유를 누리라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사랑을 나누는 자유, 하나님께 헌신하는 자유를 누리시어 우리 모두도 사도 바울과 같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