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을 위해 있는 존재 – 고린도전서 11:1-16

오늘부터 시작되는 11장부터 14장까지는 예배에 관한 여러 가지의 문제들을 교훈하고 있는데 방금 봉독한 11장 1절부터 16절까지는 예배 때에 여자들이 머리에 수건을 쓰는 문제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현대의 일반 기독교의 예배 시에 여자들이 머리에 수건을 쓰고 예배드리지 않고 있어서 전연 관심이 없는 것이 되었지만 카톨릭 교회에서 여자들이 예배 시에 손수건 같은 것을 머리에 쓰고 예배한다거나 또 수녀들이 머리로부터 발 아래까지 가리는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우리들이 보고 있는데 오늘 주신 본문과 연관되는 연유에서 인 것입니다.

 

바울 당시의 헬라에나 근동 지방의 풍습으로는 여자들은 예배시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머리에 긴 너울을 쓰고 다니는 것이 여자의 정숙한 모습이었는데 이 너울의 뜻은 남자에 대한 복종을 나타내며 자신은 남자의 보호아래 놓인 존재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수건을 쓰지 않은 여인은 창녀밖에 없었고 정숙하고 존경을 받는 여인들은 머리에 수건을 쓰고 공중 앞에 나서는 것이 풍습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 당시 여인이 수건을 쓰지 않는 것은 자기의 남편을 업신여기거나 다른 남자의 시선을 끌기 위한 것으로 간주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의 일부 여인들이 사회의 통상적인 관습에서 벗어난 모습으로 교회에 나타나므로 공동체에 덕이 되지 못하고 사회의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주신 본문에서 사회적인 풍습 즉 유전이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이 된다고 한다면 사회적인 풍습을 따라야 함을 강조하고 있으며 각자가 누리는 자유가 공동체의 질서를 파괴하고 부덕이 된다면 그런 자유는 마땅히 사양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적인 풍습이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며, 여자의 머리는 남자라고 하는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에 부합되는 것이므로 여자들이 머리에 수건을 써야 마땅하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단 여자의 긴 머리는 쓰는 것을 대신하므로 긴 머리 있는 자는 수건을 쓰지 않아도 되나 혹시 라도 짧은 머리나 민 머리를 한자는 수건을 써야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여자와 남자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새롭게 깨닫게 되어 각자가 하나님 안에서 질서를 지키는 충성된 일군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주신 본문을 네 부분으로 나누어 [1]여자의 머리는 남자(1-3) [2]권세 아래 있는 표(4-10) [3]남녀의 상호 보완 관계(11-12) [4]본성의 증거(13-16)입니다.

 

[1]맨 먼저 1절부터 3절까지의 여자의 머리는 남자에 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고린도 교회의 일부 여인들이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고 예배에 참석한다는 사실을 알고 고린도 교회가 꼭 알아야 할 진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진리란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란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인 것입니다. 아들과 아버지와 성령이 한 몸이요 하나인 가운데도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람의 형상으로 땅에 내려오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므로 아들은 아버지께 순종하며 창조의 질서에 대한 모범을 보이셨는데 이와 같이 부인도 남편과 한 몸을 이루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으나 그리스도의 머리가 하나님이시듯 여자의 머리는 남자라는 것을 강조하여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바로 잡아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창조의 질서란 남자는 존대를 받고 여자는 천대를 받아야 한다는 남존여비의 사상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그의 몸인 교회의 머리됨과 같은 사상입니다. 교만이나 우쭐댐, 또는 무시나 천대의 개념이라곤 전연 없고 사랑과 존경으로 하나되어 위아래의 감정이 전연 없는 한 몸 안에서의 질서의 관계를 강조하는 뜻인 것입니다. 쉽게 말을 한다면 우리 몸에도 머리가 있는데 우리의 머리가 교만하거나 우쭐대거나 무시하거나 하지 않고 머리로서의 자기 역할을 다하여 몸의 각 지체를 보호하며 또 몸의 각부분은 머리의 지휘를 거부감 없이 자동적으로 받아드려 몸인 공동체가 온전하도록 하고 있음과 같은 성질의 것입니다. 자동차에서 핸들이 다른 모든 부품과 같은 위치에서 자기의 기능을 잘해내므로 차가 잘 굴러가고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자동차의 핸들이 다른 부품보다 높고 다른 부품은 낮다는 정서가 전연 있을 수 없듯이 남녀 관계도 그런 차원에서 여자의 머리는 남자라는 질서를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부인이 머리가 더 좋고 똑똑해도 호적에서 남편이 가장이 되는 사회적 통념과 같은 것입니다. 머리는 하나여야 하므로 한 가정의 남편은 그 가정의 머리요 남자는 여자의 머리라는 것입니다. 남녀란 말 대신 여남이라고 하므로 여자가 더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해내야 할 자신의 기능을 잘 해내므로 여자는 존경을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2]두 번째로 4절부터 10절까지의 권세 아래 있는 표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와는 아담의 갈빗대로 지음을 받았고 아담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도록 배필로 하와를 주셨던 하와의 창조의 역사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즉 하와는 아담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연유에서 여자는 정숙한 자신의 신분을 지키므로 남자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 도리라는 것입니다. 여자가 여자의 정숙한 도리를 벗어나 자유 분방한다면 남편을 부끄럽게 하는 것이요 스스로 자신을 부도덕한 여인으로 낮추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자신을 정숙하게 지키고 남편을 영광스럽게 해야하는 창조의 질서에 따라 여자는 권세 아래 있다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이런 의미에서 여자는 수건을 쓰고 예배를 드려야 하나 남자가 예배 시에 머리에 무엇을 쓰고 한다면 그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3]세 번째로 11절로 12절까지의 남녀의 상호 보완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옛날 우리 선조들 때를 생각한다면 여자들은 너무 천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뿐 아니고 전 세계적으로 다 같은 환경이었던 것입니다. 유대에서는 인구 조사를 해도 여자는 계산에서 빠질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사도 바울은 11절과 12절에서 잘못된 남존여비의 사상을 교정해 주고 있습니다. 여자의 머리가 남자임에는 틀림없지만 남녀는 서로 없어서는 불완전한 상호 보완관계라는 것을 강조하여 누가 누구보다 더 높고 더 귀하다는 잘못된 사상을 고쳐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영리하다는 남자도 결혼 대상으로는 여자를 택하지 자기보다 더 똑똑한 남자를 택하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이 말은 남녀는 부족을 서로 메워 줄 수 있는 상대적인 존재라는 사실인 것입니다. 하와가 아담의 갈빗대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지만 이 세상의 남자들은 모두 여자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났다는 것입니다. 남자이든 여자이든 주님 안에서 하나를 이루는 반쪽일 뿐이라는 주장인 것입니다.

 

[4]마지막으로 14절부터 16절까지의 본성의 증거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연예인들 중에는 남자가 긴 머리를 한다던가 남자가 귀걸이를 하는 것을 보는데 14절에서는 바울이 묻기를 남자가 긴 머리를 하면 자기를 욕되게 하는 것임을 자신의 본성이 가르쳐주지 않더냐는 것입니다. 같은 말로 한다면 여자가 머리를 너무 짧게 하여 남자 흉내를 낸다면 이는 부끄러운 일임을 자신의 본성이 말해주지 안더냐는 것입니다. 남자의 짧은 머리는 남자를 영광스럽게 하며 여자의 긴 머리는 여자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어서 여자의 긴 머리는 머리에 쓰는 수건을 대신한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긴 머리를 하던가 아니면 수건을 쓰던가 해야지 짧은 머리로 예배에 참석한다는 것은 자신을 부끄럽게 하며 또한 교회 공동체를 욕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반대 주장이 있겠지만 사회 풍습으로 보다 교회 전통으로 보나 반대 이론은 용납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유가 좋다고 해도 자신과 이웃에게 유익이 되는 자유여야지 자신과 이웃에게 더욱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자유는 마땅히 삼가야 한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 남자와 여자의 질서에 대해 확인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각각 모든 면에서 차별대우를 받아서는 아니되며 동등하게 인격적 대우를 받아야 마땅하지만 남녀가 존재하는 창조의 의미를 바로 파악하여 교회와 가정에서의 올바른 질서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여자의 머리는 남자라는 사실입니다. 여자는 존경을 받게 되고 높아질 수 있는데 그것은 남자를 무시하고 남자를 학대하므로가 아니라 오히려 남자를 자기의 머리로 존경하고 받들므로 자연적으로 높아지게 되는 신분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남자가 여자의 머리라는 개념이 확실치 않다면 남자의 머리가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므로 더욱 남녀의 관계와 질서가 분명해지리라 봅니다. 요사이같이 남자의 위치가 심히 땅에 떨어져 부인더러 물 한 그릇 달라고 해도 간큰 남편에 해당되는 지금도 여자의 머리는 남자인 그 하나님 안에서의 질서는 유지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회 사람들은 어떻더라도 교회 안의 정숙한 여인들은 여자의 머리는 남자라는 그 창조의 질서를 확인하시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정숙한 몸차림을 하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만일 여자가 수건을 머리에 두르지 않는다면 그 남편을 수치스럽게 하는 것이라 했는데 반대로 남자가 여자같이 액세서리를 달고 여자 머리를 하고 다닌다면 역시 그 아내를 수치스럽게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남녀가 다 남자는 남자답게 치장을 하고 여자는 여자답게 치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성인지, 동성연애자이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면 사회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약 율법 신명기 22장 5절에 ‘여자는 남자의 옷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옷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니라’ 했는데 성도들의 옷차림에 참고가 되리라 봅니다.

 

우리 교회에는 남자가 귀걸이 하는 사람이나 또는 치마를 입고 교회에 오시는 분이 한 분도 게시지 않아 남자들에게는 드릴 말씀이 없으나 여자 분들의 경우에는 예배 시에 몸이 너무 노출되는 옷은 물론 삼갈 것이고 가능하면 예배 시에는 남자 옷이 아닌 여자 옷을 입고 오시기를 권장합니다. 남자 옷이란 짧은 바지나 일반 바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자답게 옷을 입고 긴 머리를 갖는 것이 정숙한 여인이 가질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옷입고 치장하는 것이 자유이지만 교회 내에서는 창조의 질서와 또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자기만 좋으면 좋다는 식의 자유는 사양해야 할 것입니다.

 

세 번째는, 우리 조상들로부터 우리들의 피에 섞여있는 남존여비의 냄새를 우리들의 주변에서는 추방하고 동등하고 상호 부조해야하는 꼭 필요하고 절대적인 존재로 여자들의 위치를 높여줘야 하겠습니다. 남자들이 하나님이 주신 남자의 권위를 손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여자를 극진히 사랑하고 존대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는 원리에 맞는 것입니다. 남자의 권위를 손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란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로서의 위치를 확고하게 지키면서도 교회를 그렇게 사랑하듯 남자들이 여자의 머리로서의 위치를 지키면서 여성의 위치를 높여주는데 우리 모두가 기여해야 하리라 봅니다.

 

우리 모두가 남자는 남자로서, 여자는 여자로서의 위치를 잘 지켜 하나님이 주신 창조의 질서를 잘 지켜나가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