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의 질서 회복 – 고린도전서 14:26-40

오늘 설교 제목은 예배의 질서회복입니다. 우리는 고린도 전서 11장에서 고린도 교인들 중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업신여기고 부자들이 애찬을 준비해와 가지고 가난한 자들이 오기 전에 자기들끼리 먼저 먹어버릴 정도로 부자와 가난한 자들 간의 분파가 있었음을 소개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 내에 이런 분파가 있고서야 어떻게 한 떡에 참예할 수 있겠느냐고 주의 만찬을 함께 들 수 있도록 예배의 본질적인 질서회복에 대해 교훈을 준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은사를 받았다는 많은 사람들이 예배시에 각자가 받은 은사를 가지고 동시에 떠들어대므로 고린도 교회의 예배는 완전히 무질서해졌고 집단적인 혼란에 빠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방언을 하는 자들이 떠들어대지요 예언을 하는 자들이 떠들어대지요 찬송의 특별 은사를 받은 자들이 떠들어대지요, 은사를 받았다는 신령한 여자들은 예배시에 예배와 상관없는 아무 쓸데없는 주제를 가지고 질문을 하게 되므로 예배는 심히 무질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을 고린도 교회에 보내서 질서 있는 예배를 드리도록 처방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주는 처방의 핵심적 교훈은 하나님께서는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므로 모든 것을 적절하고 질서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본질적으로 질서와 화평의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의 예배는 마땅히 질서 있게 원칙에 따라 예배드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소개받는 우리들도 우리들의 예배를 돌아보아 우리들의 예배가 보다 더 질서 있고 화평하게 드려질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주신 본문 말씀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고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예배 요소의 본질과 질서(26-33) [2]여자들과 예배 질서(34-35) [3]주의 명령(36-40)입니다.

 

[1]맨 먼저 26절부터 33절까지의 예배 요소의 본질과 질서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우리 교회의 예배 요소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찬송, 기도, 만찬, 말씀, 헌금이 있습니다. 26절에 보니 고린도 교회가 모여서 예배드릴 때에 있었던 예배 요소 중에서 신령한 은사를 중심한 예배 요소를 몇 가지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찬송시, 말씀, 계시, 방언, 통역이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찬송시라면 시편이나 또한 그 당시에 신령한 자들이 작시한 것이겠으나 본문을 중심한 뜻으로는 찬송의 신령한 은사를 받은 자들의 찬송으로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개중에는 방언으로 하는 찬송도 포함되리라 봅니다. 말씀이라면 성경을 풀어주는 것이며 계시란 그 당시에는 신약 성경이 아직 없을 때이므로 신령한 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전달되거나 또는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 어떤 사람에게 왔기 때문에 계시라는 요소가 들어 있으며 방언이란 지금 우리들이 이해하고 있는 것이요 통역이란 이 방언을 통역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여기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어떤 예배 요소가 있더라도 그 예배 요소는 마땅히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덕을 위해서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예배의 요소의 본질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어야 하고 결과적으로 교회의 덕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리 신령한 은사를 받았고, 자기가 받은 은사를 나타내야 할 권리와 자유를 가졌다하더라도 덕을 위해 질서를 지켜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각자가 받은 방언도 중요하고 예언도 중요하지만 교회 모임에서는 원칙과 질서에 따라 행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방언을 말하려면 한사람씩 순서대로 해야 할 것이며 방언마다 통역이 꼭 따라야 하고 만일 통역이 없다면 방언은 혼자 하나님과만 할 것이고 교회 모임에서는 잠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예언을 한다하더라도 한사람씩 순서대로 할 것이요 혹시 누가 예언을 하고 있는 중에 다른 사람에게 계시가 전달되었다고 한다면 지금하고 있는 예언은 잠시 중지하고 계시 받은 자의 계시를 전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에 만일 어떤 계시가 성령을 통한 계시라고 한다면 예언하는 자들이나 계시를 받은 자들의 영끼리 서로 통제를 하기 때문에 질서 있게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바꾸어 말을 한다면 만일 예배시에 방언 하는 자들 몇 명이 동시에 떠들어대고 또 예언이나 계시를 받았다는 자들 몇 명이 똑같이 떠들어대고 있다면 그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다른 영의 역사 즉 마귀의 역사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방언과 예언이나 또 계시가 주어졌다면 그것들이 주어진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주어진 목적이란 31절에 기록된 대로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동시에 떠들어댄다면 방언이나 예언하는 자들의 말씀을 어떻게 전달받아 배우고 권면을 받겠습니까?

 

지금 사도 바울이 주고 있는 원칙은 너무나도 상식적인 처방인데 왜? 이런 상식적인 교훈을 주고 있을까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자기가 받은 성령의 은사가 남이 받은 신령한 은사보다 더 중요하고 더 우선적이어야 한다고 뽐내기 위해 모두가 동시에 떠들어댈 정도의 수준이었기 때문입니다.

 

[2]두 번째로 34절과 35절의 여자들과 예배 질서에 대해 상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이미 우리들이 아는 대로 여자들이 교회 내에서 자기들이 지켜야할 최소한의 예의마저도 지키지 못한 자들이었기 때문에 이미 바울로부터 예배시에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아니하고 예배드린 사실을 책망 받은 바 있습니다. 그런 수준의 여자들이 이젠 은사를 받았다고 교만해져서 심지어 예배시에 예배와 상관없는 불필요한 질문까지 하므로 예배의 질서를 파괴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런 여인들을 깨우쳐주기 위해 34절과 35절을 통해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교회들이 다 그렇게 하듯 고린도 교회 여자들도 교회에서 잠잠 하라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요 혹시 라도 물을 것이 있다면 집에 가서 남편에게 물으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여자들은 교회에서 입을 벙긋해도 안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여자들이 심지어 예배까지 방해를 하므로 예배의 질서를 파괴하고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모든 행동으로부터 자제하고 교회에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여자이건 남자이건 예배의 질서를 위해서는 교회에서 잠잠해야 하며 또한 교회의 평화를 위해 복종해야 함에도 고린도 교회는 여자들이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에 여자 문제가 강조된 것입니다.

 

[3]세 번째로 36절부터 40절까지의 주의 명령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36절부터 40절까지에서 고린도 교인들이 자기들이 받은 신령한 은사에 스스로 도취되어 지나치게 교만한 것을 꼬집어 책망하고 있습니다. 예언이나 계시나 방언이 자기들에게만 임한 것으로 착각하지 말라고 책망을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신령한 은사를 받았다고 사도 바울의 권위마저도 무시할 가능성이 있는 그들에게 사도 바울은 자기가 그들에게 편지로 제시한 모든 교훈과 책망이 주님으로부터 받은 명령임을 밝혀줍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의 책망을 거역한다면 바로 주님의 명령을 거역한 결과가 되는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말의 권위를 밝힌 후에 방언이나 예언에 대한 결론적인 말을 제시함으로 방언에 관한 14장을 끝맺고 있습니다. 예언하기를 사모하라,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모든 것을 적당히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 한 것입니다. 이 결론 부분에서도 예언의 은사를 사모하라고 했습니다. 말씀의 은사는 나를 가르치고 또 남을 가르침으로 유익된 것이나 방언은 방언 하는 자도 모르는 것이요 또한 통역이 없다면 또한 듣는 사람에게도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방언도 통역 없이 교회에서 하는 것은 금하지만 개인적으로 하는 것은 금하지 말라고 하므로 방언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오늘 주신 본문의 시작인 26절과 마지막 절인 40절은 오늘 주신 말씀의 결론이 되고 있습니다. 모든 예배 요소는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덕이 되도록 해야하므로 모든 예배 요소는 마땅히 알맞고 질서 있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오늘 본문을 통해 받은 교훈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서 이 교훈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예배를 적당하고 질서 있게 드리므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교회에 덕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 교훈을 받은 우리들은 우리들의 예배가 적당하고 질서 있게 드려지며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교회에 덕이 되고 있는가 우리들의 예배를 점검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져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예배드리는 모두에게 유익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외적이고 내적인 질서가 유지되어야 할 것입니다.

외적 질서란 예배를 방해하고 예배 분위기를 깨는 외적 요소를 제거해야할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와 같이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방언이나 예언을 하듯 예배를 시끄럽게 하는 모든 행위를 중지시켜야 합니다.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대표기도를 하고 있는데 소리를 내서 혼자 기도하거나 찬송하는 것을 삼가해야 합니다. 회중 찬양하고 있는데 소리를 내서 혼자 기도하는 것을 삼가야 합니다. 교회가 모인 것은 사적인 예배가 아닌 공동체적인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였기 때문에 예배의 모든 순서에 모두가 연합해야 합니다. 설교를 하는데 소리를 내서 기도를 하거나 남과 이야기하거나 또는 소리를 내서 성경을 읽는 것은 시정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시끄럽게 하거나 주변이 시끄러워 예배 분위기가 분산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모두 협력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모두가 협력해야 하지만 예배 안내자와 사회자는 책임감을 갖고 그날 예배가 방해되는 모든 요인을 제거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내적 질서가 잘 유지되어야 합니다. 내적 질서란 성서적이고 영적으로 드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책망을 보낸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들의 예배 요소 하나 하나는 성서적이며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에 합당한가를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들이 드리는 찬송은 마음으로 영으로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지고 있는가? 아니면 사람 귀를 위해 노래를 잘하는 정도인가?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내가 드리는 헌금은 은밀하게 그리고 감사하여 하나님께 바쳐지는 향기로운 예물인가? 아니면 사람의 칭찬을 위해 바쳐지는 것인가? 를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매주 하고 있는 만찬은 우리를 죄 가운데서 건지시기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영적인 예식인가? 아니면 예배 때에 늘상하는 순서인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대표 기도를 맡은 사람은 교인들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임을 알고 성실히 준비한 기도인가? 또 기도 내용은 성서적으로 알맞은 것인지? 점검해야 합니다. 또 설교자는 지금 본문을 전달하고 있는지 자기 자신의 지식을 전달하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예배의 요소 하나 하나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드려지도록 마음을 온전히 묶어 하나님께 드리는 훈련이 절대 필요합니다. 예배의 절대성과 가치를 극대화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은 최 우선 순위에 두고 예배에 빠지지 않고 늦지 않도록 하는 것이 또한 내적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되겠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 모두가 적당하고 질서 있게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