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부활 – 고린도전서 15:1-19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보내온 여러 주제에 대한 질문에 답을 계속 하고 있는데 오늘의 주제는 부활에 대한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5장은 부활에 관한 장입니다. 하나의 질문을 하겠습니다. 예수를 믿습니까? 믿으시면 예로 답하시기 바랍니다. 모두들 예로 답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대답을 했는데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무엇을 믿는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까요? 아니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한다면 무엇을 믿어라는 말이어야 합니까? 인류의 죄를 감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사실과 그가 다시 살아나신 사실을 믿는 것을 말하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 사실을 믿기 때문에 오늘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고린도 전서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인데 고린도 교회가 세워지도록 바울이 고린도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파했을까요? 예수님의 죽으심과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바울이 전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고린도 교회여야 마땅한데 고린도 교인 중에는 부활이 없다고 믿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부활에 관한 잘못된 믿음을 고쳐주기 위해 써보낸 것이 바로 고린도 전서 15장인 것입니다. 15장을 세 번에 걸쳐 강해하므로 우리 교회 성도들은 부활이 없다는 고린도 교회의 일부 교인들 덕분에 부활에 관해 사도 바울로부터 직접 바른 믿음을 지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주신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고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복음(1-4) [2]그리스도의 부활(5-11) [3]성도의 부활(12-19)입니다.

 

[1]맨 먼저 1절부터 4절까지의 복음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부활을 믿지 않은 자들이 두 부류가 있었는데 하나는 우리가 잘 아는 유대인들의 종파 중 사두개파이며 다른 부류는 헬라인들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영혼 불멸과 육체의 부활을 전연 믿지 않는 자들이며 헬라인들은 영혼 불멸은 믿으나 육체의 부활은 믿지 않고 영생이란 육체를 벗어버린 영혼만의 삶을 의미했던 것입니다. 이런 문화 환경의 영향을 받은 고린도 교인 중에는 부활을 믿지 않은 자들이 있어서 이 사실은 기독교 믿음의 본질을 부정하는 심각한 일이므로 부활에 관한 질서 정연한 논리를 가지고 고린도 교인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1절부터 4절까지에서 고린도 교회를 개척할 때에 고린도 교인들에게 전했던 복음에 대해 회상을 시킴으로 부활에 관한 믿음을 회복시키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1절과 2절에서는 바울이 전한 복음을 고린도 교회가 받았고 또 그들이 그 복음위에 섰으며 만일 고린도 교인들이 이 복음을 믿고 계속해서 굳게 지키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고 복음의 가치와 능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절과 4절에서는 믿고 굳게 지키면 구원을 얻게 하는 복음이 무엇인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복음이란 성경에 미리 예언한 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땅에 묻히셨으나 성경에 예언한 대로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진리인 것입니다. 그의 죽으심과 부활이 성경에 기록된 대로임을 강조하므로 복음이란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에 따라 되어진 것이지 갑자기 되어졌거나 우연히 되어진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사도 바울이 전한 이 복음을 받고 믿음으로 이미 구원을 받았거니와 앞으로 꾸준히 이 믿음을 굳게 지킴으로 영원히 구원을 받게 될 것임을 깨우쳐 줌으로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는 것이 필수적인 것을 강조하면서 부활이 없다는 잘못된 사상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두 번째로 5절부터 11절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이 없다는 자들의 잘못된 사상을 교정해주기 위해 5절부터 11절까지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실 예를 들어 부활이 없다는 사상은 현실적 진리를 거스리는 잘못임을 입증해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사복음서를 통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관한 많은 기록을 볼 수 있으며 이런 성경의 기록을 통해 부활에 대한 확고한 신앙을 가질 수 있지만 고린도 교인들만 해도 그 때까지 아직 신약 성경이 없던 때이었으므로 사도 바울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산 증언을 통해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 가운데도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사실을 추상적이거나 영적으로만 되어진 일로 받고 믿기 쉬운데 예수님께서는 성경의 기록대로 실제의 아기 예수로 오셨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며 묻히셨다가 다시 살아나셨고 살아나신 후에 제자들을 중심한 몇몇 사람에게 실지로 나타나 음식도 잡수셨고 또 제자중 도마에게는 못 자국과 창 자국에 손을 넣어보게 하시므로 못 자국과 창 자국에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는 도마를 믿게 하신 역사적인 사실이었음을 믿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어 몇몇 사람에게 나타내 보이신 증언을 통해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실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들은 4복음서를 통해 주님께서 부활 후에 누구누구에게 나타내 보이셨는지를 정리할 수 있겠으나 지금 사도 바울은 어떤 기록을 보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실지로 체험하고 아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게바에게 나타나셨다고 했습니다. 게바가 누구인가요?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수제자 베드로를 말합니다. 또 열두 제자와 오백여 형제에게 나타나셨다고 했는데 사도 바울이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한 오백여 형제들이 그 당시 태반이 살아 있다고 말하므로 이 편지를 받는 고린도 교인들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던 사건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 야고보에게 나타나셨다고 했는데 이 야고보는 예수님 살아 계실 때에는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믿지 않았던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로 보고 있습니다. 또 모든 사도에게 나타나셨다고 했는데 모든 사도들이란 12제자를 포함하여 바나바와 실라 같은 제자들을 포함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 자기에게 나타나셨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핍박한 죄인 중 괴수인 자기 자신에게 나타나셨을 뿐 아니라 어떤 사도보다도 자신에게 주의 일을 많이 하도록 함께 하셨음을 중거하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실을 더욱 강력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3] 세 번째로 12절부터 19절까지의 성도의 부활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이 없다는 사상이 타당성이 없음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부활이 없다면”이란 역설적인 논리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논리는 만일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다시 살아나셨겠느냐는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성경만을 통해 그리스도를 만난 우리들로서는 그리스도란 역사적인 실제 인물로 받기에 실감이 나지 않지만 사도 바울만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과 자람에 대해 잘 알고 그의 죽음도 알고 그가 죽은 후에 그를 따르는 자들을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기도 했으며 부활하신 주님을 뵈온 일이 있고 그 일을 계기로 그의 인생에 변화를 받아 주님을 위해 누구보다도 많이 일을 한 입장에서 볼 때에 만일 부활이 없다고 한다면 그리스도가 어떻게 부활했겠느냐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에게나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의 부활이란 현실적인 사실인데 부활이 없다고 한다면 살아나신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살아나셨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이요 현실적인 사실이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이 있는 것을 볼 때에 부활이 없다는 사상은 정설이 될 수 없다는 논리인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이 분명히 없다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였을 것이요, 그리스도가 다시 살지 못하였다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되므로 하나님께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전파한 우리들은 하나님의 거짓 증인이 될 것이며, 우리들이 그 동안 전파한 것도 헛것이요 이를 믿은 자들의 믿음도 헛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가 다시 사셨다고 전파한 복음을 듣고 믿는 자는 현세에서도 구원을 받고 주님의 재림 때에는 예수님이 부활하시듯 부활하게 될 것으로 소망하고 있는데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도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오므로 복음도 믿음도 소망도 다 헛것이 되며 이를 전한 자는 거짓 증언자가 될 뿐 아니라 미래에 소망이 끊기므로 가장 불쌍한 자가 된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말을 바꾸면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다시 살으셨음으로 우리가 전한 복음을 믿고 굳게 지키는 자는 현세에도 구원을 받고 주님 오실 때에는 주님이 다시 사시듯 주를 믿다가 죽은 자들도 다시 살아 날것이라는 변증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다시 사셨다는 사실에 대해 확신을 가져야 겠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처음에 복음을 받고 믿을 때에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을 믿었을 터인데 이 믿음이 견고하지 못하여 어떤 이들이 믿기를 부활이 없다고 함 같이 우리들도 확신이 부족하면 흔들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다시 사심을 확신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나심과 죽으심 그리고 다시 사심은 구약 성경에 이미 기록된 사실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요, 무덤에 장사 지내고 로마 군인들이 무덤을 지킨 것도 사실이나 삼일이 지났을 때에는 무덤을 막았던 돌이 굴러졌고, 무덤 안에는 시체를 쌌던 수의만 있고 시체가 없었으며, 부활 후에 여러 제자들에게 직접 나타나신 사실 모두는 예수님께서 다시 사셨음을 확증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빈 무덤은 주님의 부활을 증거해주는 웅변이요 또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주님을 보고 실망하여 다 도망을 쳤던 제자들이나 또 믿는 자를 핍박했던 사도 바울이 목숨을 내놓고 전도한 사실은 주님의 부활의 사실을 강력하게 뒷받침하고 있는 증거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믿는 자는 주님의 죽으심을 믿는 자이며 주님의 죽으심을 믿는 자는 우리가 죄 사함을 받은 사실을 믿는 자이기 때문에 주님의 부활을 확신한다는 것은 절대 중요한 믿음의 본질입니다. 반대로 주님의 부활에 대한 확신이 없는 자라면 그가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사실에도 확신이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속죄에 대한 확신도 있을 리가 없을 것이라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부활을 확신하는 것은 진정으로 복음을 받아 구원받았다는 것과 같은 것이므로 절대적으로 필요한 믿음입니다. 주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사실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자도 다시 살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태여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태어나셨고, 죽으셨으며, 다시 무덤에서 일어나셨습니다. 무덤에서 일어나신 이유가 그를 믿는 누구든지 그도 역시 주님 재림시에 다시 살 것을 믿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루고자하는 뜻을 다 이루지 못했다고 못내 아쉬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또 이 세상에서 아무리 부귀 영화를 누린다고 해도 지나치게 뽐내서는 아니됩니다. 이 세상이 끝이 아니고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자 다이아나도 세상을 떴으며 가장 가난했던 테레사 수녀도 세상을 떴습니다. 화려한 자와 지극히 가난한 자가 이젠 더 이상 구별이 되지 않은 때에 이르렀으며 부활의 때만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살아날 때에는 썩지 않을 영원한 몸으로 부활 할 것이므로 현세의 어떤 고생도 참고 소망을 갖고 살 수 있는 것이며 어떤 부귀 영화도 크게 자랑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사실이 바로 복음이라고 했는데 이 복음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받고 주님 오실 때에 죽음에서 일어나 영원히 썩지 않을 새로운 몸으로 부활 할 것임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이 복음을 믿고 받아드리며 또한 이 복음을 전파하시는 귀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