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하는 삶 – 고린도전서 16:5-12

우리들은 금년 1월 2째주부터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를 통해 사도 바울이 교회를 개척하고 성도들을 양육하기 위해 얼나나 힘쓰며 밤낮 염려하고 있었음을 소개받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사도 바울의 일생의 삶을 축소시켜 한 그림으로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듯 합니다. 그의 일생이란 교회를 개척하고 개척된 교회를 돌아보며 성도들과 제자들을 양육하는 주님의 종의 삶이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종임과 같이 우리들도 하나님의 종임에는 틀림없으나 종 사도 바울은 자기 주머니가 전연 없이 종 생활을 한 종이요, 우리들은 종은 종이지만 내 주머니를 챙기고 종 생활을 하는 종들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을 소개받는 우리들은 사도 바울의 삶과 우리들의 삶과를 비교하여보고 충실한 종 사도 바울의 종의 삶을 본받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고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여행 계획(5-9) [2]디모데를 위한 배려(10-11) [3]아볼로를 위한 배려(12)입니다.

 

[1] 맨 먼저 5절부터 9절까지의 여행 계획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를 통해 자기의 여행 계획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여행 계획을 소개하게 된 배경은 사도 바울이 본래 세웠던 여행 계획은 마케도니아를 가는 길에 고린도에 잠깐 들리고 마케도니아를 다녀오는 길에 다시 고린도에 들렸다가 예루살렘으로 갈려고 했는데 여행 계획을 바꾸어 고린도에 들리지 못하고 마케도니아로 직접가게 되었으며 또 고린도에 짧은 기간만 들리려는 그의 여행 계획을 바꾸어 고린도에서 겨울을 지낼 정도로 오랫동안 머물 계획이었기 때문에 변경된 여행 계획을 편지로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가 있는 고린도 교회였기 때문에 고린도를 방문할 여행 계획이 변경되었다는 편지를 받고 일부 고린도 교인들은 약속을 변경한 사도 바울을 비난하게 되고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한 자기 해명을 고린도 후서 1장에서 하게 됨을 보게됩니다. 언뜻 보기에는 사도 바울은 자기 여행 계획을 자기 생각대로 이랬다 저랬다 한 것 같이 오해될 수도 있겠지만 사도 바울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움직였으며 가장 성과 있는 여행을 위해 움직였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5절에 보면 ‘주께서 만일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유하기를 바람이라’고 한 것을 보면 고린도에 가고 싶으면 고린도에 가고 에베소에 가고 싶으면 에베소에 자기 마음대로 가는 것이 아니고 자기는 종이므로 주인이 허락하면 여행을 떠나는 철저한 종의 삶을 산 것을 보게 됩니다. ‘주께서 허락하신다면’이란 뜻을 풀어본다면 내 개인의 사욕 때문에 여행하는 것이 아니므로 어떤 여행 계획이 복음 전도와 성도를 양육하는데 가장 효과적인지를 비교해보고 여행 계획을 결정한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즉 그가 마케도니아를 가는 길에 잠깐 고린도에 들리고 또 마케도니아를 다녀오는 길에 다시 고린도에 잠시 들리는 것보다는 마케도니아를 다녀오는 길에 3개월쯤 오랫동안 고린도에 머무는 것이 최선책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이렇게 여행 계획을 변경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 였다고 생각되십니까? 사도 바울은 지금 에배소에 있는데 에배소에 전도의 문이 열려 복음 전도에 너무 좋은 호경기를 맞았고 반면에 또 심한 핍박이 겹쳐 그대로 고린도로 떠나버리는 것은 마음이 놓이지 않으므로 지금으로서는 고린도에 가지 않고 에베소에 머물러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요, 또 차라리 잠깐 잠깐 고린도에 들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3개월 정도 고린도에 머물러 있으면서 고린도 교회의 많은 문제들을 시정해주고 오랫동안 함께 친교를 나눔으로 더욱 고린도 교회와의 두터운 관계를 유지하므로 앞으로의 다른 지역 전도에 고린도 교회의 후한 협력을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간주됩니다. 그 당시 풍습은 여행객이 떠날 때에는 여행을 위해 필요한 경비를 넉넉히 주어서 보내는 좋은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좋은 풍습을 새로운 지역의 하나님의 전도 사업을 위해 많은 협력을 기대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 당시에 근동 지방은 겨울 3개월 동안에는 바다로도 육지로도 여행이 거의 불가능하여 겨울 동안은 여행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불가능한 여행기간 동안에 고린도 교회의 많은 문제들을 풀어주고 또 보너스로 교인들과의 친숙한 관계를 얻어 가지고 가려한 것이 그의 계획이었는데 이 3개월 기간에 로마서를 기록한 다른 보너스까지 받았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여행 목적은 전도 아니면 전도된 교회를 방문하고 교회를 지도하고 성도들을 양육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여행의 선택은 어떤 여행이 보다 하나님께 더 좋은 여행인가였습니다. 고린도를 먼저 방문하거나 또는 마케도니아를 먼저 방문해야할지의 선택은 바울 자신의 즐거움과는 전연 상관없는 문제였던 것입니다. 요사이 라디오 코리아에서 브라질 여행을 권장하는 선전이 자주 나와 한번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경치가 너무 좋고 음식도 너무 좋다는 선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여행 목적은 첫째도 전도와 양육이요, 둘째도 전도와 양육이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의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종의 신분이었기 때문이며 심지어 전도 여행마저도 자기 마음대로 가고 싶은 곳을 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여행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는 행전 21:31에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불러놓고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고 한 것이나 살전 3:10에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의 부족을 온전케 하려함이라’ 한 그의 말씀을 통해 사도 바울의 삶의 목표와 실생활을 생생하고 보게 됩니다.

 

[2] 두 번째로 9절로 10절까지의 디모데를 위한 배려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9절부터 10절까지에서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디모데를 잘 대우해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디모데가 이르거든 조심해주어 디모데가 두려움 없이 그곳에서 지낼 수 있게 잘 대우해달라는 것입니다. 잘 대우해주어야 할 이유는 디모데도 사도 바울과 같이 주의 일에 힘쓰는 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디모데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주어 사도 바울에게 되돌아올 수 있게 해 달라는 부탁을 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왜? 이런 걱정을 했을까요? 고린도 교회는 이미 분파가 생겨 사도 바울을 주류 파라 한다면 사도 바울을 반대하는 비주류파가 있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을 반대하는 비주류라면 그의 제자인 디모데를 환영하기는커녕 그를 무시하고 냉대할 가능성이 많으며 고린도 교회는 세상 철학에 높은 학문을 하고 잘난 자들이 많은데 디모데는 나이가 너무 젊고 경험이 적은 이유로 깔보고 자신들의 철학 이론으로 디모데를 곤경에 처하게 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런 냉대나 조소를 디모데가 받는 경우에 얼마나 낙담을 하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그런 모든 여건을 고려하여 고린도 교회가 나이가 젊고 경험이 적은 디모데에게 좋은 대우를 해주기를 부탁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전도 여행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또 개척된 교회를 다시 방문하여 성도들을 양육하고 훈련할 뿐 아니라 나이 젊은 후배 동역자를 교회가 충분한 대우를 해주도록 배려하는 그의 바탕은 정말 훌륭하고 완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디모데에게는 얼마나 큰 힘이 되었겠습니까? 전도, 양육, 그리고 후배 동역자의 격려는 사도 바울의 삶의 전부였습니다.

 

[3] 세 번째로 12절의 아볼로를 위한 배려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2절 내용을 보면 사도 바울이 아볼로에게 고린도 교회를 방문할 것을 여러 번 권했으나 지금 사정으로는 그가 갈 수 없으나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갈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사정을 모르면 이 내용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를 모르고 지나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당시 고린도 교회 사정으로는 아볼로는 인기인이었고 바울은 비인기인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고린도 교회에서는 디모데나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오는 것보다는 아볼로가 방문하기를 바라는 분위기였습니다. 즉 고린도 교회는 바울파와 아볼로파가 있어서 아볼로가 방문하면 아볼로파는 의기 양양할 것이고 반대로 바울파는 풀이 죽을 것이 뻔한 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런 분위기를 전연 머리에 두지 아니하고 아볼로가 고린도에 방문하도록 많이 권했음을 보게 됩니다. 사람 욕심과 사람 생각으로는 경쟁자이므로 아볼로를 시기하고 아볼로를 깎아 내리는 것이겠지만 사도 바울의 차원은 사람의 차원을 한단계 뛰어넘었음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에 고린도 교회가 나누어진 것은 교인들의 책임이지 바울이나 아볼로같은 지도자와는 전연 상관이 없었음을 확신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들은 사도 바울의 인생을 본받아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인생은 어떤 인생입니까? 그의 인생은 주님의 종된 삶이었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과 물질 그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이 바라시는 대로 잘 사용한 충실한 청지기의 삶을 산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의 기본적인 그의 사상, 그의 삶의 철학을 배워 실천하므로 우리도 그를 닮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의 기본적인 사상과 그의 기본적인 삶의 철학은 무엇이었던가요? 그것은 ‘주께서 허락하시면’ 사상입니다. 그의 종된 사상, 종된 철학이란 자기 스스로 여행 계획을 세워도 주께서 허락하셔야 떠날 수 있다는 철저한 종의 철학입니다. 즉 먹을 소도 있고 굶을 수도 있으며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어디로 여행갈 수도 있고 여행 계획을 바꿀 수도 있으나 모든 것은 내 유익을 위해서 하고 안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길을 택한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즉 그 길이 나만의 유익을 위한 계획이었다면 내가 결정한 것이 되겠고 만일 그 길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길이라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길이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사도 바울의 삶을 닮는다는 것은 지금까지는 모든 것을 내가 계획 세우고 내가 변경하며 내가 다 결정했는데 지금부터는 내가 계획을 세우더라도 최종 결정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도록 하나님의 뜻을 묻는 생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종은 주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임으로 종에게는 불편하더라도 주인이 시키는 일을 해내야 하는 존재임같이 때로는 내게는 불편스럽고 하기 싫어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해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삶이 종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종의 삶을 살도록 많은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상관을 모시고 사는 종의 삶의 훈련이란 일마다 하나님께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길을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묻지도 않고 자기가 세운 계획대로 다 해치우는 것은 종의 삶이 되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의 종의 삶은 결과적으로 전도와 양육, 그리고 전도자 격려로 나타났습니다. 우리들도 철저한 종의 삶을 훈련해 나간다면 우리들의 많은 시간과 돈과 우리의 재능이 전도와 양육과 전도자 격려의 일로 사용되리라 확신합니다. 사도 바울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가장 바라시는 길은 사도 바울이 살았던 길임을 믿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한 엄청난 일들이 주님 재림시에 다 불에 타 없어지겠지만 남는 것은 바로 사도 바울이 살았던 종의 삶을 살기 위해 투자한 것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한인 교회 전도자나 성도들 모두가 일평생에 목표를 세우고 살아나가야 할 삶이 바로 바울이 살았던 종의 삶입니다. 이 종의 삶을 실천해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