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보에 관한 교훈 – 고린도전서 16:1-4

교회에서 문제가 되는 대부분의 문제는 헌금에 연관된 재정문제이리라 봅니다. 교회가 운영이 되어야 하므로 큰 교회이거나 작은 교회이거나 재정 문제에서 해방된 교회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재정에 대한 문제가 없는 교회라면 거의 문제가 없는 교회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알라스카주에서는 세금을 받지 않은 주라고 하는데 그러나 알라스카에 있는 교회들이 헌금을 걷지 않는 것은 아니리라 봅니다. 헌금을 받지 않은 교회가 있다면 어떨까요?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블러일으키리라 봅니다.

 

교회에서 재정에 관한 어떤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나요? 헌금을 너무 강조하는 문제, 또 들어온 헌금을 교인들에게 보고하지 않거나, 또 재정을 맡은 사람이나 교역자가 헌금을 의심스럽게 관리하거나 사용하는 경우, 교역자가 자기 생활비를 더 많이 달라고 재직들에게 압박을 하는 경우, 직분을 주면서 직분에 따라 헌금을 지정하는 경우, 모금을 하기 위해 부흥회를 열어놓고 부흥 강사를 통해 교인들에게 반 강제로 헌금을 작정케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헌금을 강조한다고 불평을 하는 교인은 있을지 몰라도 헌금을 강조하지 않는다고 문제를 일으키는 교인은 없으리라 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헌금에 대한 바른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헌금이란 무엇이고 언제, 얼마를, 어떻게 드려야 하며, 헌금의 유익은 무엇인지를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헌금에 대한 자기 주장을 사도 바울이 교훈한 것과 비교해보고 올바른 헌금관을 바로 세워야 하겠습니다.

고린도 전서를 1장부터 계속 가르쳐 나가는데 오늘 본문은 헌금에 관한 말씀이므로 헌금에 관한 주제를 가지고 말씀을 증거 하게 되는 것이지 교회 재정이 어려워 호소하는 것이 아님을 아시고 마음 문을 열고 경청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세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헌금의 의미와 헌금의 권면(1) [2]헌금의 방법(2) [3]헌금의 관리(3-4)입니다.

 

[1]맨 먼저 1절의 헌금의 의미와 헌금의 권면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1절에서는 우리들이 교회에서 시행하고 있는 헌금을 “성도를 위하는 연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교회마다 헌금이라는 통일된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성경상에는 헌금이라고 직접 표현된 곳은 없고 우리들이 말하는 헌금에 해당되는 것을 ‘연보’, ‘성도를 섬기는 일’, ‘가난한 자를 위한 동정’, ‘서로 나눠주기’, ‘구제’로 신약성경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를 종합하여 헌금의 의미를 정리한다면 헌금이란 가난한 자를 돕고 전도 사업을 위해 교회에 바쳐진 물질을 말하는 것이겠습니다. 이것은 좁은 의미의 헌금을 말하는 것이고 보다 더 넓은 의미의 헌금이란 교회의 손길을 거치지 않고 내 개인적으로 가난한 자를 돕고 복음 사업을 위해 바쳐진 돈도 헌금이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정리하자면 헌금이란 이 세상에서 나를 위해 빼 쓸려고 세상 은행에 저축하는 것이 아니고 남을 위해 쓸려고 하나님의 나라에 교회를 통하거나 내 개인적으로 저축하는 것이 헌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헌금을 왜? 해야할까요? 사도 바울은 1절에서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들이란 사도 바울이 제 1차 전도 여행시에 세운 안디옥 교회나 마케도니아 지역의 모든 교회들을 말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린도 교회나 이 갈라디아 지방의 교회들은 예루살렘 교회를 통해 복음을 전달받은 교회들인데 예루살렘 지방은 그 당시 거듭된 흉년이나 또 기독교의 핍박으로 인해 예루살렘 교인들이 경제적으로 너무 어렵게 되어 복음의 빚을 진 이방 교회들에게 예루살렘 교회를 물질로 도와줌으로 형제애를 나누도록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헌금을 명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헌금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지 어떤 보상을 바라고 투자하는 성격은 전연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예배시에 행하고 있는 주의 만찬은 누구의 명령입니까? 주의 명령입니다. 주의 만찬을 비롯하여 기도도 명령이며 찬양도 명령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헌금도 하나님의 명령인 것을 우리들은 확인하게 됩니다. 명령이란 내가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꼭 해야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우리 모두는 헌금을 하도록 명령을 받은 몸들인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회에 명한 것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네 재물과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명령들의 일부입니다. 헌금은 다른 예배 요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2]두 번째로는 2절의 헌금의 방법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어떤 교인도 헌금 자체를 교회에서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최소한 설교 값은 내고 가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목사도 입에 풀칠을 해야한다는 동정심은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교회에서 문제된 것은 ‘헌금의 시행 방법’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라 봅니다. 2절에서는 언제 헌금을 할 것이며, 누가 헌금을 하는 것이며, 얼마를 해야 할 것이며, 어떻게 준비해야할 것인지를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언제 하라고 했습니까? ‘안식후 첫날에’ 하라고 했습니다. 안식후 첫날이란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지금의 주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다 모여 예배드리는 날이 바로 주일이기 때문에 그때에 하라는 것입니다. 헌금을 위해 따로 모이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2절에 누가 헌금을 하라고 했습니까? ‘너희 각 사람이’하라고 했습니다. ‘너희 각 사람’이란 가난하건 부자이건 수입이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생각할 때에는 헌금이란 부자만 하는 것으로, 구제란 부자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성경의 가르침은 부자이건 가난한 자이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중에서 물질의 수입을 얻은 자를 말합니다. 그 누구도 기도와 찬양을 하지 않아도 되거나 해서는 아니된 자로 제외되지 않음같이 헌금도 다 해야하는 것입니다. 물론 엄밀한 의미에서 수입이 있는 자가 하는 것이지만 수입이 없는 학생이 자기가 받은 용돈 중에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여 얼마를 준비했다면 학생도 헌금이 가능할 것입니다. 물론 헌금은 하나님의 명령이지만 찬양과 기도가 성도가 누리는 특권인 것 같이 헌금도 성도의 특권이 되는 것입니다. 부자만 헌금할 수 있게 허락한다면 특권을 빼앗기는 억울한 일이 될 것입니다.

 

2절에서 얼마를 헌금하도록 했습니까? ‘이익을 얻은 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많이 벌었으면 많이 하고 적게 벌었으면 적게 하고 돈번 비율에 따라 하라고 했습니다. 몇 % 인가요. 성경에서는 10의 1을 기준하고 있습니다, 10의 1이란 모세 율법이전에 아브라함도 멜기세댁에게 10의 1을 바친 기록이 있습니다. 물론 각자가 마음에 작정한 대로하겠지만 어떤 액수를 내도 필요하고 충분한 조건을 갖추는 것은 아니고 10의 1을 기준하여 감사한 마음으로 정한 액수를 바치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 더 많이 보물을 쌓기 원하면 더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2절에서는 헌금을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미리 준비하였다가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감사하여 하나님 몫으로 미리 정하고 준비된 것을 바친다면 억지가 되지 않을 것이고 후회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0의 1은 내 것이 아니라 헌금 몫으로 예산이 세워져야 할 것입니다.

[3]세 번째로 3절부터 4절까지의 헌금의 관리에 대해 함깨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3절에 보니 모금된 헌금을 ‘교회에서 인정한 사람에게’맡기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서 인정을 받은 사람의 손을 통해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됨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혹시 부정직한 사람의 손을 통해 전달하는 과정에서 돈이 축나게 된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고 고린도 교회는 시험에 들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정된 사람들에게 맡겨질 때에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유대인 교인들과 과 이방인 성도들끼리의 온전한 교제가 이루질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모금된 돈을 자기에게 주면 자기가 전달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에서 인정한 사람의 손으로 직접 전달하되 혹 자기도 갈 형편이 되면 함께 가겠다고 돈 관리에 대한 분명한 자기의 입장을 밝힌 것은 좋은 모범이기도 합니다. 교역자이고 교회의 다른 직분을 받은 자가 물질문제로 인격과 신앙에 손상을 받은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헌금에 대한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바른 헌금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우리들은 무엇이 헌금인지를 알았습니다. 헌금이란 이웃을 구제하고 전도 사업을 위해 바쳐진 물질을 말하는 것이나 좁은 의미로는 교회 헌금통에 넣어지는 물질을 말하는 것이고 넓은 의미로는 꼭 교회를 통하지 안더라도 개인적으로 구제하거나 선교비를 지원하기 위해 쓰여진 물질을 말하는 것이며 이런 물질은 하늘에 쌓여지는 보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구제 사업이나 전도 사업을 개인적으로 하는 것보다 교회를 통해하는 것을 권장하는 것은 자기 이름을 자랑코자하는 인간의 약점으로부터 오는 실수를 막아주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헌금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헌금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런 명령을 내리셨을까요? 우리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많으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여 성도들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헌금의 목적이 더 큰 물질적인 복을 끌어내기 위한 투자가 전연 아닌 것입니다. 남을 구제하는 이유가 남을 도와주고 그 사람으로부터 보상을 받으려는 것이 전연 아니라는 것입니다. 헌금은 마땅히 해야할 성도의 도리인 것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는 얼마를 드려야 할지를 배웠습니다. 액수는 자기가 이익을 얻은 대로입니다. 많이 벌었으면 많이 내고 적게 벌었으면 적게 내는 것입니다. 자기가 번 돈에 대해 10대 1의 비율은 하나님께 바친다는 기본액수를 정해놓고 이를 마땅히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실천해 나가되 억지로가 아닌 감사로 시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넷째는 헌금을 어떻게 드릴 것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성경에서는 헌금은 은밀하게 드리라고 했습니다. 사람에게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칭찬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칭찬을 받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주보에 헌금자를 싣고 공개하는 것은 세상 모금 운동에 불과 합니다. 또 헌금을 여러 가지로 구분하여 여러 형태로 헌금을 하도록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또 헌금을 하고 축복기도를 별도로 받기를 바라거나 축복기도를 따로 해주는 것도 헌금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선 냄비에 구제금을 넣는 정도의 마음 자세로 헌금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모든 헌금은 감사하여서 바치는 헌금이어야 합니다. 받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으로 바치는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실 것이며 그에게 어떤 목이 필요한지 그가 받아 마땅할 복을 다 아시고 복을 내리실 것입니다.

 

다섯 번째로 헌금의 유익에 대한 답입니다. 심히 가난한 유대인 성도들에게 전달된 구제금을 받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의 기쁨과 주는 자의 기쁨을 상상해보실 수 있으리라 봅니다. 주는 자에게 축복 기도가 따로 필요 없는 것입니다. 주는 것 자체가 큰 복이기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주는 자에게 후히 되어 누르고 넘치도록 주신다고 했으며,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모든 교회들이 다 시행하고 있는 그럴 듯한 헌금 제도를 우리 교회는 시행하지 않고 있습니다.그 이유는 바쳐진 헌금 모든 액수가 온전히 하나님 몫으로 돌아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온전하고 담대한 수준 높은 헌금을 바치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