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과 감사 – 고린도후서 1:1-11

오늘부터 고린도 후서를 강해하게 됩니다. 오늘 주신 본문 강해에 들어가기 전에 고린도 후서에 대해 짧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고린도 후서도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보낸 편지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이 1년 6개월간 고린도에 머물면서 복음을 전도한 결과 세워진 교회인데 그후 교회 내에 분파문제, 근친 상간 문제, 우상 숭배문제, 예배에 관한 문제 등 많은 문제가 교회 안에 있는 것을 안 사도 바울이 고린도 전서를 써서 이를 시정하려고 하였고 또 디모데를 직접 보내서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노력했으나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디모데를 푸대접했으며, 또한 사도 바울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마케도니아 방문을 마치고 고린도에서 3개월 정도 머물면서 겨울을 날 계획이라고 고린도 전서에 써서 보냈었는데 에베소에서의 심한 핍박과 또 고린도 교회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하여 에배소를 떠나 고린도에 잠시 방문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의 일부 교인들이 사도 바울을 지나치게 비난하고 그를 무시하는 불상사가 일어나 사도 바울의 방문은 가슴 아픈 방문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를 떠나와서 그들이 뉘우치도록 눈물의 간절한 편지를 써서 디도편에 보내고 마케도니아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디도로부터 소식이 오기를 눈물의 편지를 받고 고린도 교회가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듣고 쓴 편지가 바로 고린도 후서인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의 내용을 보자면 사도 바울은 주님의 선택받은 사도라는 자기의 사도권에 대한 변호가 총 13장 중에서 8장에 걸쳐 써있고, 2장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연보에 관한 것이고 나머지는 고린도 교회와의 올바른 관계 회복을 위한 글이 써있습니다. 이 고린도 후서를 사도 바울의 자서전이라고 부를 정도로 사도 바울의 생애와 인간적인 모습이 잘 담겨 있는 문서이기도 합니다. 고린도 후서에 대한 소개는 이 정도하고 오늘 주신 본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환난과 감사입니다. 다 함께 따라서 하시기 바랍니다. “환난과 감사” 환난이란 어려운 시험을 말하는 것으로 그 누구도 환난 당하기를 원하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이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환난이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전파한 이유에서 당하는 모든 어려운 수난을 환난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받는 고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들에게 아무런 환난을 당하지 않도록 하실 수도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견디기 어려운 환난을 그의 제자들에게 허락하고 있는 이유는 그 환난을 통해 인내심을 길러주고 어려운 일을 통해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는 훈련을 쌓게 하며, 환난을 통해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또 환난을 당하고 위로를 받은 체험을 통해 환난 받은 자들에게 진정한 위로를 줄 수 있는 체험자들이 되게 하기 때문에 환난 그 자체는 많은 아픔을 주지만 환난의 터널을 지나므로 얻어내는 값진 것들이 있기 때문에 환난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바울의 체험적인 신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소개받는 우리 모두는 환난의 의미와 환난이 우리들에게 가져다주는 참 가치를 새롭게 깨닫고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고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문안 인사(1-2) [2]환난중의 위로(3-11)입니다.

 

[1]먼저 1절부터 2절까지의 문안 인사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1절과 2절에서 이 편지를 쓰는 자가 바울 자신이요 이 편지를 받는 자는 고린도 교회 성도를 비롯하여 너 넓은 지역인 아가야 모든 지방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한다는 발신자와 수신자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편지를 쓰는 바울 자신을 소개하기를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강조되고 있는 말은 자기가 예수님의 사도라는 것과 사도 된 것은 자기가 되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되었다는 사실을 많이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강조하고 있는 이유가 있겠지요? 고린도 교회 성도들 중에는 사도 바울은 진짜 사도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만든 사도라고 사도 바울의 사도 됨을 불신한 연고로 사도 바울이 자신의 사도 된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이 문안 인사를 통해 표현된 것은 ‘형제 디모데입니다.’ 디모데는 고린도에 보냄을 받고 방문했으나 나이도 젊고 경험도 적었으며 또한 바울을 반대하는 세력 때문에 심한 푸대접을 받고 많이 실망해있을 가능성이 있는 디모데를 고린도 교회가 그를 우대하도록 하려는 의도에서 그의 이름을 고린도 후서의 기록자의 대열에 써넣은 것이라 생각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형제라고 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형제요 또 고린도 교회나 다른 모든 교회의 성도들의 형제인 것입니다. 바울과 디모데는 우리들의 형제도 되는 것입니다. 디모데나 바울의 나이가 몇 살이든지 상관없이 그들은 우리들의 형제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는 나이가 많으나 적으나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영적 가족이므로 다 형제 자매가 되는 것입니다. 아멘 입니까?

 

또 문안 인사에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기원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심이 표현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주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도 주시오 그리스도도 주 즉 하나님이시라는 표현이 되겠습니다. 하나님 되시는 분들로부터 오는 한없는 은혜와 평화가 이 편지를 받는 자들에게 함께 있기를 기원한다고 했습니다. 이 본문을 소개받는 우리들에게도 이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기를 기원하는 문안 인사입니다. 한인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두 번째로 3절부터 11절까지의 환난중의 위로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우리들 각자가 체험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사도 바울은 자기가 체험한 하나님을 찬양하며 3절과 4절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비의 아버지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같은 죄인을 구원해주신 하나님을 자비의 하나님이라 고백하며 찬양하고 있습니다. 또 그가 주님을 알고부터 당한 참을 수 없는 환난을 만날 때마다 꼭 큰 위로를 보내주신 하나님을 위로의 하나님이시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또한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체험하도록 하시어 환난 받는 모든 자를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에게 큰 환난이면 큰 환난일수록 역시 그만큼 큰 위로가 넘쳤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 자기가 받는 환난이나 위로의 체험도 자신의 유익뿐 아니라 환난을 당한 모든 자를 위로케 하기 위함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얼마나 어려운 환난을 견디어 냈는지 본보기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가 당한 환난은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이었다고 했으며, 지나치게 심한 고생이라 살 소망까지 끊어져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전연 살아나지 못할 줄 알았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이 큰 사망에서 건지셨으며, 앞으로도 또 건지시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 체험을 통해 바울은 또 깨달았습니다. 전연 살 소망이 없었다는 것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가망이 없기 때문에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었으므로 하나님께 전적으로 매달린 결과 환난에서 구출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하나님께 전적으로 매달리므로 어떤 환난에서도 건지실 것이라는 확신을 얻은 것입니다.

 

11절에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도 하나님께 온전히 매달려 기도하겠지만 또한 이웃들의 중보 기도도 필요함을 깨달은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바울을 위해 기도함으로 바울의 전도를 방해하는 모든 위험에서 건짐을 받을 뿐 아니라 이를 위해 기도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기도가 응답된 사실을 고린도 교인들이 알므로 이를 하나님께 감사하도록 하기 위해서도 기도를 부탁한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라고 환난을 당하기 위해 일부러 환난 있는 소굴에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그도 기도를 부탁한 것을 보아 알 수 있듯이 어떤 환난도 자기 앞에 닥치지 않기를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큰 그릇 사도 바울이 주님께 더 크게 쓰임 받게 하기 위해서는 그런 환난의 과정이 필요함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큰 환난을 하락하신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는 우리들 자신의 소명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에 의해 사도가 됐다고 자신의 사도직의 소명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습니다. 우리들을 성도로 삼아주신 분은 누구입니까? 바울을 사도로 부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아들로 딸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한 무리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성도의 직분을 귀히 알고 성도의 삶을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환난과 감사입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들에게 환난이 닥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끔 우리의 믿음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크고 적은 환난 당함을 허락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잘 믿었던 사도 바울에게도 죽을 정도의 환난이 있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환난은 우리들에게 많은 유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환난 때마다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도록 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하며, 또 환난 때마다 하나님께 의지하여 간구함으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는 삶을 가져다주며, 많은 환난을 경험케 하므로 환난을 통해 체험한 것들을 가지고 환난 당한 이웃 성도들을 진심으로 위로와 격려를 줄 수 있는 능력을 갖도록 하기 위해 환난이 주어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자녀들을 기를 때에 아무런 어려움을 모르고 다 커버린 자녀와 어려움을 알고 그 어려움을 다 견디어 낸 자녀 중 어떤 자녀가 되기를 바라십니까? 누가 더 마음의 폭이 넓고 깊으며 쓰임 받는 자녀라고 믿으십니까? 우리들은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마음의 아픔을 많이 당해보고 그 많은 아픔들을 믿음으로 이겨낸 믿음의 용사들이 남의 아픔을 장 이해하게 되므로 교회 안에서 더욱 쓸모 있는 일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혹시 라도 어려운 환난이 자기에게나 자기 가정에 닥쳤을 때에 하나님께 매달려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얻어 넉넉히 이겨내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환난 뒤에는 많은 유익이 있을 것을 믿고 충분히 참아내야 합니다.

 

어떤 어려운 시험이 자기에게 닥치면 왜? 하필이면 많은 사람 중에서 나에게 이런 고통이 찾아왔느냐고 자기에게 닥친 고난을 의아해할 수밖에 없으나 고난이 다 지나고 날 때에는 그 고난이 주고 산 값있는 선물을 깨닫게 되어 감사한 마음으로 지나간 아픔을 회상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모든 일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룬다는 확신을 갖고 환난을 감사로 받을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살 소망까지도 다 끊겼으나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건져주신 사실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에 믿음으로 잘 이겨내어 환난으로부터 오는 모든 유익을 다 누리시는 귀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