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계획 변경에 대한 변명 – 고린도후서 1:12-24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여러 통의 편지를 보냈는데 그중 편지 두통 고린도 전서와 고린도 후서 두 편만 성경을 통해 우리들에게 알려지고 나머지 편지들은 문서로 남아있지 않습니다. 지난 주에 이미 소개해드린 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 후서를 고린도 교회에 써보내기 전에 고린도 교회에 잠시 들렸었는데 한마디로 심한 충격만 받고 돌아오므로 그 방문은 슬픔의 방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눈물어린 편지를 써서 디도편에 고린도 교회에 전달했는데 그 편지를 받은 고린도 교회가 자기들의 잘못을 깨닫고 변화하고 있다는 좋은 소식을 디도가 사도 바울에게 전해와서 쓴 편지가 바로 이 고린도 후서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잠시 고린도를 방문했을 때에 심한 푸대접을 받았다고 했는데 고린도 교회를 개척한 사도 바울이 받아야할 마땅한 좋은 대우는커녕 오히려 푸대접을 했으니 마귀의 장난에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함께 놀아난 결과라 볼 수 있겠습니다. 마귀의 장난이란 크게 일하는 사도 바울을 꺽어버리려는 마귀의 계획에 고린도 교회 교인들 중 어떤 사람들이 마귀의 손발노릇을 해주어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잠시 방문했을 때에 들을 수 없는 많은 비난과 욕설을 바울을 향해 퍼부었던 것입니다. 고린도를 잠시 방문했던 이유가 고린도 교회의 잘못을 시정해주려는 의도였는데 고린도 교회의 분위기는 너무 험악하여 오히려 부작용만 날 것으로 판단되어 사도 바울은 속히 에베소로 다시 돌아왔다가 눈물의 편지를 디도 편에 보내고 마케도니아에 와서 디도의 좋은 소식을 듣고 마케도니아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 중 어떤 사람들이 바울을 두고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비난과 욕설을 퍼부었는데 그들의 그런 비난을 고린도 후서 전체를 통해 변명하고 그들이 바울의 참 마음을 이해하고 고린도 교회와 바울 자신과의 관계가 정상화되기를 기도하며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여행 계획을 변경한 것을 꼬집어서 사도 바울은 진실성이 없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한 입을 가지고 두 말하는 사람이다, 그의 편지도 속과 겉이 다를 것이다, 분명히 그는 사도로 기름부음을 받지 않은 것이 틀림없다, 이곳에 오지 못하는 것을 보니 겁쟁이다 등 바울을 적대하는 일부 과격파들을 향해 사랑으로, 믿음으로, 진심으로 전달한 바울의 편지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주신 본문은 우리들에게 바울 같은 훌륭한 지도자도 심한 비난을 받았다고 하는 사실을 통해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자에게는 많은 핍박과 고난이 따른 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렇게 반대하는 대적자들을 사랑으로 권면하는 사도 바울의 위대한 지도자 상은 모든 지도자들에게 좋은 모범이 되어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교인들의 입장에서는 터무니없는 비난을 교회 지도자에게 퍼부어 교회 지도자들을 괴롭히고 마귀의 손발이 될 수 있겠다는 교훈을 주어 남의 말만 듣고 떠들어대는 실수를 하지 않도록 많이 주의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오늘 주신 본문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말씀을 이해하고 이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고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사도 바울의 자랑(12-14) [2]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신실성(15-24)입니다.

 

[1] 먼저 12절부터 14절까지의 사도 바울의 자랑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서서 소개한 대로 고린도 교회 교인 중에서 어떤 이들이 강력하게 사도 바울을 비난하기를 ‘사도 바울은 이랬다 저랬다 하는 일구이언을 하는 사람이므로 진실성이 없다, 믿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의 편지도 다른 의도가 있을 것이다’ 라고 비난하였으며 이런 비난자들을 향해 자기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 설득을 펴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자기에게 두 가지의 자랑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대했지만 특별히 고린도 교인들에게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대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이란 인간적인 때묻은 언행이 없고, 인간적인 이기적인 욕심이 없이, 속과 겉이 다른 이중 행동이 없이 깨끗하고 순진한 마음으로 대했다는 뜻입니다. 또 자기는 세상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했다고 했습니다. 세상 지혜란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 짜낸 지혜, 남에게는 손해가 되고 자기에게는 이익이 돌아오도록 꾸민 속임수, 곧 진실이 밝혀지게 되는 임시적인 방편을 말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로 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셨다는 은혜를 깨달은 자의 마음으로 행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사는 자의 행동은 어떤 거짓도, 속임수도, 어떤 임시적으로 눈가림 식으로는 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자기가 바로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했으며, 또 하나님의 은혜로 행한 사실에 자기의 양심이 증거 한다고 했습니다. 양심에 조금도 거리낄 것이 없도록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위해 진실 되게 행했던 사실이 바로 사도 바울의 자랑이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의 자랑은 사도 바울이 써보낸 편지도 써진 그대로이며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며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지금은 서로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주님 오실 때에는 모든 것을 온전히 드러나 이해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주님 재림시에 사도 바울이나 사도 바울의 가르침의 영향을 받고 신앙 생활한 고린도 교인들이 다 함께 주님 앞에 들림을 받게 될 터인데 그 때에는 사도 바울이 진실된 택한 사도임이 입증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의 눈물과 수고로 천국에까지 인도된 고린도 교인들은 사도 바울의 자랑이 되고 또 고린도 교인들이 천국 백성이 되도록 만들어 준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자랑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두 가지의 자랑을 강조하므로 자신이 진실된 하나님의 택한 사도임을 증거하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두 번째로 15절부터 24절까지의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신실성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신실하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성을 의존함을 보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를 보내기에 앞서서 다른 편지를 통해 마케도니아에 가기 전에 고린도에 들리고 또 마케도니아에서 돌아올 때에 다시 고린도에 들리겠다고 하고는 고린도 전서에 이를 변경하여 마케도니아에서 돌아올 때에 들리겠다고 여행 계획 변경을 했는데 이에 대해 고린도 교회 교인들 중에서 물고 늘어진 것입니다. 무엇인가 책을 잡아야 하겠는데 자기들 눈에는 공격용 좋은 허점을 발견했다고 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여행 계획을 변경한 사실이 사도 바울의 인격이나 도덕성에 관계되거나 자신의 어떤 이기적인 이유로 변동된 것이 아니고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또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위한 결과에서 였음을 강조합니다. 또 자기들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진실되고 충실됨같이 자신들도 진실되고 성실한 일꾼임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여행 계획을 세울 때에 경솔하게 세웠기 때문에 여행 계획이 변경된 것이 아니었음을 강조합니다. 두 번 고린도에 방문하므로 두 번의 상면 기회를 통해 기쁨을 누리려고 확신을 가지고 계획을 세웠으나 첫째는 에베소 지역의 전도 활동의 중요성이 우선적이요 또한 고린도 교회의 무질서를 잡기 위해서는 심한 책망이 전제되어야 함을 고려할 때에 고린도 교회가 수습되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에 상처만 남겨둘 가능성이 많으므로 시간을 좀 벌고 시간이 좀 흐른 후에 방문하는 것이 하나님께나 고린도 교인들에게도 좋을 것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에 변경한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또 사도 바울은 자기가 같은 일을 가지고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증인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약속을 지키시는 분으로 한번 예한 것을 아니라고 하시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고린고 교인들도 이 사실에는 모두 긍정하리라고 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시고 그리스도는 그 약속을 믿으시고 예하시므로 약속을 이루셨으며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예하므로 하나님의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이나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기름을 부었으며 성령을 통해서 택한 백성으로 보증을 해 주셨으므로 모든 성도는 하나님께 속한 자이므로 거룩하고 진실만이 있을 것이지 어떤 거짓이나 일구이언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종합적으로 사도 바울 자신이 두 말을 하는 사람, 신중하지 못하고 경거 망동하는 사람, 자신만의 유익을 위해 마음을 수시로 바꿀 수 있는 사람, 고린도 교인들이 무서워서 못 오는 겁쟁이, 하나님의 택함이 없이 자시 스스로 사도가 된 사람이란 비난은 사도 바울이 받을 화살이 아님을 논증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행한 자들이 다 되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믿는다고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지혜보다는 사람의 지혜로 사는 우리들에게 좋은 교훈이 되겠습니다. 세상 지혜란 세상 두뇌 싸움을 말합니다. 남을 죽이고 내가 사는 지혜가 여기에 속한 것입니다. 세상 지혜는 진실성이 빠지고 순수성이 빠지고 탐심과 불의가 들어있는 지혜인 것입니다. 자기가 살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행하는 지혜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 눈에는 승리자같이 보이나 결과적으로는 패배자가 되는 지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함이나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생활이란 인간의 두뇌로서는 수긍이 가지 않는 지혜로 하나님께서 가라하는 곳에는 가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는 하나님의 길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길은 일시적으로 손해도 보고 피해를 당하는 것 같지만 최후의 승리를 가져다 주는 것이며 하나님 나라에서 보상받는 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원수를 사랑하는 지혜요, 정직과 순전을 지켜나가는 지혜인 것입니다. 아무리 급해도 사람들이 많이 가는 넓은 길을 가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좁은 길을 가는 것을 지혜입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의 눈보다는 하나님의 눈을 더 두려워하며 사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현대판 교회 지도자나 교인들이 세상 지혜로 살기 때문에 교회는 시끄러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커녕 하나님께 욕을 돌리며 세상 사람들의 빛이 되기는커녕 세상에 어두움을 뿌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깨는 영광을 돌리고 세상에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입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오직 세상 방법, 세상 지혜를 버리고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로 살아왔다는 사실을 자기의 양심이 증거하고 성령이 이를 보증하며 이것이 바로 자신의 자랑거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이 남에게 자랑할 수 있는 자랑거리는 무엇입니까? 우리들도 하나님의 거룩함과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을 우리의 양심과 성령이 보증하며 이것이 우리들의 자랑거리가 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삶을 살아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많은 이웃들에게 빛을 발하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