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 후서 8장과 9장은 연보 즉 헌금에 관한 교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이 헌금에 대해 어떤 부분은 잘못 알고 시행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고린도 후서 8장과 9장을 통해 성서적인 헌금에 대해 바로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우리들에게 물질 문제가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보아지기 때문에 신앙 생활에 있어서도 헌금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갖고 시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우리들의 신앙 생활 전체가 마땅히 성경을 통해 점검되어져야 하겠는데 이번에는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헌금에 대해 올바른 교훈을 받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맨 처음 세워진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심한 흉년으로 인해 생활이 너무 어렵게 된 사실을 알고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복음을 전달받은 이방 지역 교회들 중 마케도니아 지역 교회들이 자기들의 생활 역시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위해 자원하여 풍성한 헌금을 모은 사실을 고린도 교회에 소개하면서 고린도 교회도 마케도니아 교회와 같은 풍성한 헌금을 모아 가난한 형제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에 보내도록 권장하는 말씀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소개받는 우리 모두가 마케도니아 교회가 보인 모범 된 연보를 본받아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주신 본문 말씀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이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고 그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마케도니아 교회의 모범적인 헌금(1-5) [2]고린도 교회에의 권장(6-15)입니다
[1]먼저 1절부터 5절까지의 마케도니아 교회의 모범적인 헌금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I절에 보면 ‘고린도 교회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케도니아 교회들에게 주 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라고 말문을 열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마케도니아 지역에 있는 교회들이 했던 모범적인 연보에 대해 알기를 원한다고 한 것입니다. 마케도니아 교회들이란 빌립보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 또 베뢰아 교회 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관심을 가져도 좋을 것은 사도 바울은 헌금을 은혜라고 부르고 있는 점입니다 은혜라고 표현된 내면에는 우리들이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이라는 뜻과 또한 하나님께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마케도니아 이방인들에게 구원을 허락하신 것이 무한한 은혜인데 이 은혜를 깨달은 마음에서 헌금을 바치는 것도 또한 은혜라는 것입니다. 주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남에게 나누는 것이 또한 은혜라는 것입니다.
마케도니아 교회들이 어떤 모범적인 연보를 했는지 소개받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는 연 보를 할 당시의 마케도니아 교회들이 처한 사회적 환경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그들 은 우리 한국이 일본의 압제를 받아 못살았던 것 같이 그 당시 로마 정부의 압제를 받고 있었는데 로마 정부의 과도한 세금 징수와 천연 자원의 강제 수용 등으로 물질적으로 가난했고, 또한 종교적으로 기독교를 핍박한 일로 육체적이요 정신적인 어려움을 당했는데 2절에서 이를 ‘환난의 많은 시련’ 또 ‘극한 가난’ 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연보할 당시의 교인들의 마음 환경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가난하고 또한 핍박 같은 시련을 당하게 되면 짜증이 나고 이기적이 되며 남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찾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나 마케도니아 지역 교인들은 물질적으로 아무리 가난하고 핍박이 심해도 구원 얻은 사실 하나 만으로라도 ‘넘치는 기쁨’을 가졌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핍박을 받았어도, 사업은 너무 잘 안되었어도, 한국 같으면 아이. 엠. 에푸 시대를 만났어도 구원받은 그 믿음 때문에 넘치는 기쁨 가운데서 마음의 여유를 찾고 복음으로 은혜를 입혀준 예루살렘 교회에 은혜를 갚을 마음의 여유를 보여준 양질의 헌금을 한 것입니다 우리들도 가난한 사람을 보면, 또 가난한 교회를 보면 동정심을 갖고 물질 얼마를 바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강조하는 것은 나타난 물질뿐 아니라 물질을 내는 마음 바탕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모든 헌금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서 넘치는 감사와 기쁨으로 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헌금의 양입니다. 마케도니아 지역 교회들은 질적으로 양질의 헌금을 한 것뿐만 아니라 양적으로도 양질의 헌금을 했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2절과 3절에 보면 그들이 얼마나 많은 양의 헌금을 모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들은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했다고 했으며, 힘에 지나도록 했다고 했습니다. 풍성한 연보라 는 말이나 힘에 지나도록 했다고 한다면 우리들의 형편에서 얼마를 했다는 것인지? 짐작이 되리라 봅니다. 풍성한 연보와 힘에 지나도록 연보를 할 수 있었던 것이 사업이 잘되고 모든 것이 풍성해서가 아니고 반대로 풍성한 연보를 하게 한 것은 오히려 극한 가난과 넘치는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무슨 뜻인지도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 높은 믿음임에 틀림없습니다
네 번째는 그들의 마음의 자세입니다. 누구나 생활이 불편하고 어려우면 누가 찾아오는 것도 피하고 싶은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오히려 구제 헌금을 보내게 해달라고 바울에게 간절히 요청을 했고 자원하여서 이 일을 했다는 사실이며, 또한 물질만이 아니라 자신을 먼저 하나님께 드려 헌신하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연보를 바쳤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물질뿐 아니라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으로 알고 자신을 먼저 드리는 헌신을 하고 또 헌금을 한 그들의 마음 자세는 정말 감동적인 연보임에 틀림없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의 헌금을 많이 칭찬하고 있는 편인 데 이들에 비하면 우리들도 더욱 양적인 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 더욱 힘써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멘 이십니까?
[2]두 번째로 6절부터 15절까지의 고린도 교회에의 권장입니다. 사도 바울은 마케도니아 교회들의 모범적인 연보를 소개하고는 고린도 교회가 마케도니아 교회가 보인 모범에 따라 역시 풍성한 구제금을 예루살렘교회를 위해 모을 것을 몇 가지의 요점을 들어 권장합니다. 첫 번째는 한번 시작한 일을 끝을 내도록 권장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권고를 받는 고린도 교회는 그때로부터 1년 전에 보내진 고린도 전서 16:1-2을 통해 구제금을 걷는 일을 이미 시작했는데 끝을 맺지 아니하고 미루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생활 면에서도 풍성하고 믿음, 말, 지식 또 사도 바울을 사랑하는 일 등,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가난한 자 구제를 위한 일에도 풍성하기를 바란다고 하고 있습니다, 마케도니아 사람들은 이 구제 헌금 걷는 일을 늦게 시작했어도 이미 끝을 냈는데 고린도 교회는 1년이 지나도록 미루고만 있는 상태였으므로 권고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사랑의 실현이란 돈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며 또한 돈 이 없다고 못하는 것이 아님을 보게 됩니다 문제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귀하게 알고 있느냐가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마케도니아 교회는 가난한 자 같으나 모든 사람을 부요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케 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의 권고는 그리스도를 생각하여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계신 부요한 자이셨으나 우리 가난한 자, 곤고한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으며 또한 십자가까지 지셨는데 그의 많은 고난이 바로 우리를 부요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음같이 고린도 교회도 그리스도를 본받아 가난한 예루살렘 교회를 부요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생각한다면 마땅한 도리라는 것입니다. 은혜를 저버리지 말라는 경고인 것 같습니다. 자기가 은혜를 입었으면 은혜를 남에게도 베풀 줄을 알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남에게 사랑을 베풀므로 그리스도가 보이신 박애정신이 자기에게도 있음을 증거로 보이라는 것입니다. 말로만 말고 행동으로 실천해 보라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니 네 믿음이 과연 살아있다고 한다면 그 살아 있는 믿음을 내보이라는 권고인 것입니다.
세 번째의 권고는 있는 대로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가지고 구제하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융자받아서 하라고는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다음에 혹시 쓸 것에 대비하여 저 축만 하지 말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가난한 자를 도우라는 권고인 것입니다, 할 마음만 있으면 가난하든 부자이든 언제나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원리를 말해주 고 있습니다. 있는 대로 바치면 받으시는 하나님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위해 모은 구제금인데 하나님이 받으신다고 한 대목에 관심을 가지셔야 하겠습니다.
네 번째의 권고는 나눔의 원리를 따라 하라는 것입니다. 형제라면 마땅히 여유 있는 자는 가난한 자와 그 여유를 나누는 것이 마땅하므로 있는 것을 가지고 형제와 나누라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음지가 양지가 될 수 있을 것이므로 이런 나눔의 원리에 따라 도움 받은 형제가 우리가 가난할 때에 나눔의 원리에 따라 우리를 도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마땅히 나눔과 평준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은 자가모자란 자의 모자람을 채워서 서로 어느 정도 평준이 되는 것을 평준의 원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많이 거둔 자도, 적게 거둔 자도 남거나 모자라지 않았던 것이 바로 하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가족들이 나눔과 평준의 기본 진리와 원리에 나눔을 실천하라는 교훈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 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그 교
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들이 받은 교훈은 마케도니아 지역 교회들이 보인 모범적인 연보를 본받아 양질의 연보를 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의 연보란 단어는 물질과 함께 바쳐진 마음 이 포함된 헌금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헌금이 양질의 헌금이라고 했나요?
양질의 헌금이란 내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몸이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 된 그 은혜가 감사하여 바쳐진 헌금입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요 앞으로 주실 것도 하나님의 것이므로 내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차니라 하나님의 것을 드리는 마음으로 바치는 헌금을 말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커서 아무리 많이 바쳐도 부족하게 생각되는 마음 자세로 바치는 헌금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헌금은 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여 바쳐진 것이지 복을 받기 위해서 투자하는 투자성 헌금이 전연 아닌 것입니다.
또 양질의 헌금은 우리 자신을 먼저 드리는 연보여야 합니다. 돈만 던져주는 헌금 말 고 헌신이 먼저 있고 헌금을 드리는 자의 헌금이 참다운 헌금입니다. 너무 물질 만능 주의라 헌신하는 사람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헌금자의 명단만 주보에 공개하는 우리 교계의 헌금은 개혁되어져야 합니다. 자신을 먼저 드리고 물질을 드리는 헌금이 바로 양질의 헌금입니다. 이 헌금은 모든 말씀을 다 순종하고 물질도 드려지는 헌금이어야 한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또 양질의 헌금은 자원하여 힘에 지나도록 풍성히 드려지는 헌금이어야 합니다. 교회들이 주의 만근은 매주에 한가지도 행하지 않으면서 교인들에게 헌금을 많이 거두기 위해 헌금 명목을 십일조, 감사헌금, 주정 헌금, 윌정 헌금 등 여러 가지로 나누어 어떻게든지 많이 내게 하려는 강요가 포함되어 있는 헌금을 하게 하지만 양질의 헌금은 그런 강요가 없는 자원해서 드려진 헌금이었으며, 10의 1을 내므로 충분하게 생각하고 자만심을 갖기 마련인데 힘에 지나도록 이란 10의 1을 훨씬 초과한 액수를 말하는 것이며 풍성함이란 10의 1을 넘는 액수를 말하는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오늘 본문으로부터 교훈을 받은 우리 모든 성도들이 이런 차원의 헌금을 하는 귀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