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 위로, 기쁨 – 고린도후서 7:5-16

오늘 주신 본문의 주제는 환난 후에 주신 기쁨입니다. 같은 기쁨이라도 심한 환난을 이겨낸 대가로 얻어진 기쁨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밥 한 그릇을 놓고 감사 기도를 한다해도 배가 고픈 자나 배가 고파본 쓰라린 경험을 한 자의 기도와 그런 경험 이 없는 자의 감사의 깊이와 넓이에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들이 고린도 전서와 고린도 후서 현재까지의 내용들을 통해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때문에 얼마나 고통을 겪고 있는지를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어떤 모양으로 사도 바울에게 고통을 안겨주어도 그들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책망하고, 격려하므로 결과적으로는 고린도 교회가 모든 잘못을 회개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친구들을 잘못 사귄 자녀가 나쁜 길을 걷다가 부모의 끈질긴 도움으로 올바른 길로 돌아왔을 경우에 부모의 기쁨이란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큰 기쁨을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표현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환난 중에도 비천한 자신을 긍휼로 돌아보시고 위로를 주시고 기쁨을 주신 하나님을 절실하게 체험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소개받는 우리 모두도 어떤 환난이 내게 닥쳐와도 비천한 자를 돌아보시고 위로와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하나님을 더욱 신뢰할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주신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비천한 자를 위로하시는 하나님(5-7) [2]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8-12) [3]기쁨을 주시는 하나님(13-16)입니다.

[1]맨 먼저 5절부터 7절까지의 비천한 자를 위로하시는 하나님께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5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당하고 있는 육적이나 심적인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가 말하기를 ‘우리가 마케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치 못하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고린도 교회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서 그것을 바로 잡아주기 위해 고린도 전서를 보냈고 효과가 없어서 직접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여 이를 시정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고린도 교회에 가서 심한 봉변만 당하고는 빨리 빠져 나온 쓴 경험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후 곧 사도 바울은 그들의 악행을 회개하도록 강도 높은 책망의 편지 즉 눈물의 편지를 써서 디도 편에 인편으로 보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자기에게 퍼부은 모든 말들로 인한 마음의 상처, 또 눈물의 편지를 보내놓고는 그 편지를 받은 고린도 교회가 과연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에 대한 불안과 초조, 또 예상했던 시일 안에 고린도 교회로부터 돌아오지 않고 있어 드로아란 도시에서의 복음 전도 사역을 포기하고 디도를 만나기 위해 그 다음 선교 활동 지역인 마케도니아에 도착한 사도 바울의 마음이 5절에 표현된 것입니다.

‘육체가 편치 못하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고 했습니다 그 때에만 해도 핍박이 심했으므로 외적으로는 기독교를 반대하는 들 의 강한 반대를 통탄 육체적 고통을 겪었을 것이고 마음으로는 고린도 교회가 자신에 게 퍼부은 배신적인 행위와 또 디도가 가지고 갔던 편지를 받고 디도에게도 자기에게 퍼부었던 그런 배신적인 행동을 할지도 모르고 이 편지가 오히려 고린도 교인들의 감정을 더욱 악화되도록 하지는 안 했을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으로 차있었던 모양입니다. 못 먹고 못 입고 모든 것을 희생하며 복음을 전한 사도가 이런 불안감까지 가져야 하는 지 안타깝기 짝이 없지만 그 불안, 초조 그리고 마음 아픔도 잠시였으며 하나님께서 그에게 큰 위로를 선물하신 것입니다.

어떤 위로가 바울에게 주어졌을까요?6절에 보니 비천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께 서 디도의 옴으로 위로해주셨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디도는 함께 있어야 할 꼭 필요한 조력자였기 때문에 디도가 무사히 돌아와 자기 곁에 있는 것으로도 큰 위로 가 되었던 토양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실상 외롭고 남이 모르는 고통이 있기 때문에 전도자 곁에는 힘을 북돋아주는 디도와 같은 동역자가 필요함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또 7절에 오니 디도의 온 것뿐 아니라 다른 큰 위로가 있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큰 위로란 고린도 교인들이 디도 편에 보낸 눈물의 편지를 읽고 회개하여 바울을 냉대했던 고린도 교인들이 디도를 위로하였었다고 디도가 상처받은 바울을 위로하였기 때문입니다.

또 바울을 냉대했던 그들이 이제는 바울을 보고 싶어 사모한다는 벗이며, 자신들의 잘

못을 뉘우치고 애통해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제부터는 사도 바울의 전도 사역을 위해 열심히 돕겠다고 한다는 그 기쁜 소식을 전해왔기 때문에 큰 위로가 되고 큰 기쁨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기쁜 소식을 전해들은 사도 바울이 이 편지 고린도 후서를 고 린도 교회에 써서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배신, 그리고 배신, 그러나 영적인 자녀에 해당되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해 사랑, 사랑, 책망 그리고 인내의 마라톤을 지속해온 사도 바울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위로와 기쁨을 하나님께 서 안겨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승리요 하나님의 승리인 것입니다. 또한 믿는 자들 중 그리스도의 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모든 사역자들에게 주어지는 위로와 기쁨과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목숨이라도 바쳐서 구원하겠다는 사도 바울의 희생적인 선교 정신에 보답하기는커녕 배신한 고린도 교회를 보면서 너무 안타까웠는데 오늘의 메시지를 소개받고 하나님께 할렐루야를 외치도록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께 정말 감사를 드립니다. 아멘이십니까?

[2]두 번째로 8절부터 12절까지의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기쁨이 오기까지의 과정에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큰 기쁨을 맛보고 있지만 눈물의 편지를 보내고 나서 처음에는 사도 바울이 후회하였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디도를 통해 눈물의 편지를 받은 고린도 교인들이 강하게 책망한 편지 내용을 읽고 처음에는 약간의 반발도 있었을 것이고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므로 당황과 근심 속에 마음들이 많이 불안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소식을 전해들은 사도 바울로서도 자기가 너무 강하게 책망한 편지를 보낸 것을 후회했었다는 고백인데 그러나 지금은 후회하지 않는 것은 고린도 교인들의 근심도 잠깐 동안뿐이었고 곧 근심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더욱 지금은 편지를 보낸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편지가 고린도 교인들로 하여 금 근심하게 함으로 그 근심이 결과적으로는 회개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근심이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세상 근심이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뜻 대로하는 근심인데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게 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룬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세상 근심이란 하나님의 나라에는 관심이 없고 이 세상의 명예나 권세 또 부를 누리기 위한 근심을 말하는 것이며, 또 가기가 지은 죄가 발각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쌓인 근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근심만으로 살아나가는 사람의 결국은 사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사도 바울로부터 죄를 지적 받고 잘못을 뉘우치는 과정에서 맛보는 근심은 회개를 낳게 되므로 결국은 구원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 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란 내가 지은 죄를 애통해 하는 근심, 내가 하나님께 혹시나 불경스런 행위는 하지 않았나 하는 근심, 또 나에게 맡겨주신 하나님의 일을 등한시하지는 않았나 하는 근심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을 보다 더 잘 섬기기 위한 걱정과 근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바로 이런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한 근심을 한 결과로 고린도 교인들이 자기들의 잘못을 시정하기 위해 얼마나 진지하여졌으며, 자신들의 잘못을 옳게 분간하고 이에 대해 얼마나 분통하게 생각하게 되었으며, 자신들의 잘 못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나 사도 바울을 대하기에 얼마나 두려움을 갖게 되었고, 이제는 사도 바울의 진심을 바로 이채하고 얼마나 만나보고 싶어 사모하게 되었으며, 또한 그의 사역을 돕고자 하는 열심을 갖게 되었고, 교회 내에서 사도 바울에 대한 나쁜 여론을 일으켜 교회를 소란케 한 거짓 교사들을 벌하게 만들었으며 결과적으로 고린도 교회가 잘못을 온전히 청산하여 깨끗함을 나타내게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영을 정결하게 하고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여 영원히 살도록 하는 반면 세상 근심은 우리의 피와 살을 마르게 하고 영까지 죽게 하는 것임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3]세 번째로 13절부터 16절까지의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자신들의 모든 잘못을 다 정리하므로 사도 바울과의 관계가 전과 같이 온전히 회복되어 많은 위로를 받는다고 전제하고 자신은 그런 위로 와 기쁨뿐 아니라 디도가 고린도 교회로부터 받은 위로와 존경을 인하여 기쁨이 더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사도 바울을 눈앞에서 대적한 고린도 교인들로서는 나이 젊은 디도에게는 더욱 못된 짓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디도를 보내면서 고린도 교인들이 본래 그런 교인들이 아니고 믿을만한 교인들이나 지금 시험에 빠져서 그렇다고 디도에게 한사코 고린도 교인들을 칭찬하고 자랑했는데 결과적으로 디도를 진심으로 영접하고 디도의 충고에 순종하였다는 소식은 사도 바울의 자존심을 충분히 살려 주었으며 디도에게 고린도 교회를 자랑했던 그 자랑이 맞아떨어졌으므로 기쁨이 한량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고린도 교회에 대해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는 위로와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이심에 대한 확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모하고 진리를 사랑하며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겸손한 자 즉 비천한 자에게 위로를 주시며 또한 말로 할 수 없는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란 사실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악인은 살아남고 의인은 살아남지 못하는 것으로 보지만 악인의 번성은 잠시요, 또한 의인의 환난과 고통도 잠시일 뿐이요 곧 하나님께서 비천한 의인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시는 것입니다. 악인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마귀의 말을 들어서는 아니 됩니다. 어떤 어려움에서도 진실과 진리를 굽게 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 순간을 어떻게 처리하는 가를 보시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곧 위로와 기쁨의 보따리를 가지고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천한 자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않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두 번째는 자랑이 헛되지 않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언제나 저는 우리 교인들을 자랑하게 됩니다. 우리 교인들의 소망은 이 세상의 그 무엇이 아니고 모직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교회에 오시는 목적이 어떤 직분이나 명예나 다른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말씀을 사랑하는 성도들로 말씀만이 자신들의 길잡이로 믿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전도자가 우리 교회 성도들을 자랑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자랑을 들으시고 인정하시리라 믿고 있습니다. 바로 그 자랑이 조금이라도 헛되지 않도록 우리 성도들이 보다 더 말씀에 마음을 쏟고 이 진리의 교회로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무한 감사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셔야 하겠습니다. 전도자가 바라는 것은 여러분의 통장에 들어 있는 돈이 아니고 여러분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기까지 하면서 세우신 그리스도의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입니다. 그런 면에서 전도자는 교회가 주는 생활비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먹고 살아가 는 것이라고 말하게 됩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모두 비천한 자를 돌아보시고 위로와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확신하며 전도자와 하나님의 자랑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각자의 신앙 성장에 더욱 최선을 다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