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에 대한 바람직한 태도와 그 결과 – 고린도후서 9:1-15

고린도 후서 8장에 이어 9장에서도 헌금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주제 설교를 하지 않고 성경의 어떤 책을 택하고 계속적으로 강해해 나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주제에 대한 설교자의 선택권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주어진 말씀이 헌금에 관한 것인데 이 설교를 다시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앞으로 수년 아니면 십여 년이 지나야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헌금에 대한 교훈이 성경에 드물게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말씀을 듣는 성도님들은 과연 헌 금에 대해서 성경에서는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마음을 다해서 경청하시므로 헌금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올바른 헌금 생활을 하시게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고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연보의 준비성(1-5) [2]연보의 유익(6-15)입니다.

[1]먼저 1절부터 5절까지의 연보의 준비성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 주신본문에서는 고린도 교회에 세 사람을 보낸 것은 구제 헌금을 미리 준비케 하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자원하여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모금 운동을 1년 전에 시작하였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이 자랑스런 모금 운동을 마케도니아 교회에 자랑을 하였고 이 고린도 교회의 모금 운동 소식을 소개받은 마케도니아 교회는 격려 받고 자극을 받아 지극한 가난 속에서도 풍성한 연보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모금을 시작한지 1년이 지나도록 끝을 맺지 못했고 오히려 마케도니아 교회는 늦게 시작하였으나 이미 끝을 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도 바울이 디도와 다른 두 사람을 고린도 교회에 보낸 이유는 이제는 이미 마케도니아 교회들이 모금 운동이 끝이 났으므로 각 교회가 모은 돈을 거두어 가기 위해 사도 바울과 또 각 교회 대표들이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게 될 터인데 사도 바울 일행이 고린도 교회에 도착하기 전에 I년 전에 시작했던 일을 끝을 내도록 격려하게 하기 위해 세 사람을 보낸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사도 바울과 마케도니아 교회의 대표들이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기 전에 모금운동을 끝마쳐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고린도 교회나 사도 바울이 망신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마케도니아 교 회에 고린도 교회가 모금운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고 자랑을 하였는데 아직 끝을 맺지 못한 것을 마케도니아 사람들이 와서 본다면 고린도 교회의 체면이 말이 아니오, 또 사도 바울이 진실하지 못한 사람으로 오해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며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큰 실망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두 번째로는 미리 준비해 두지 않고 있다가 사도 바울 일행이 도착한 이후에야 모금을 한다면 체면상 억지로 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억지로 한 연보는 참 연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헌금이란 마땅히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그 은혜가 감사하여 자원해서 기쁨으로 드려져야 함에도 만일 헌금이 사람의 얼굴 때문에 마음에 없는 헌금을 억지로 낸다면 하나님이 받으시는 참 헌금이 되지 못한다는 교훈인 것입니다.

[2]두 번째로 6절로 15절까지의 연보의 유익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참다운 연보를 하므로 어떤 유익이 있다고 했는지 관심 있게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뿌린 것을 거두는 유익이 있다고 했습니다. 씨뿌리는 자가 넓은 밭에 씨를 많이 뿌리면 많이 거두는 이치와 같이 많이 뿌린 자는 많이 거둔다고 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뿌릴 씨앗도 주시고 거둘 열매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말을 한다면 헌금하는 그 헌금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요 헌금을 하므로 얻어지는 많은 복도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뜻입니다. 뿌릴 씨앗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셨기 때문에 뿌릴 수 있는 것이요 거둘 열매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실 것이므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로 말미암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단 한푼이라도 헌금할 수 있겠습니까? 단 한시간이라도 헌신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을 주시는 자가 하나님이시므로 주신 자의 은혜가 감사하여 하나님께 풍성히 드린 자에게는 풍성히 갚아주신다는 결론인 것입니다. 물론 이 풍성히 갚아주신다는 말을 꼭 물질로만 해석해서는 아니 됩니다. 많이 바친 자에게 여러 모로 풍성히 채워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 또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8절에 보니 하나님께서 모든 은혜를 넘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모든 면에서 우리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풍성한 은혜를 우리들에게 베푸신 것은 받은 은혜를 통장에 저축해 두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에게 건강과 물질의 복을 내리신 이유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를 풍성하게 축복하신 이유는 모든 일을 항상 넉넉하여 착한 일을 넘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축복 관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물질과 육과 영의 축복을 풍성히 내리신 것은 나 혼자 잘먹고 잘 살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이웃을 위한 모든 일에 언제나 도울 수 있어서 착한 일을 넘치게 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시킨 것이라는 벗입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로 착한 일을 언제든지 많이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준비시키신 것이므로 그 축복을 많이 써버린 자에게는 더 많이 다시 보충해 주셔서 일하게 하실 것이고 하나도 사용치 않고 있는 자에게는 더 주실 필요가 없기 때문에 주실 필요가 없다는 뜻인 것입니다. 달란트 비유의 교훈과 똑같은 맥락의 교훈이 되겠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많이 봉사한 사람에게는 더 일을 많이 하도록 더 채워주시고 일을 적게 하는 자에게는 적게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색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 써버리면 채워주실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께서는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한 것입니다. 많이 심는 자가 많이 거둔다는 성경 말씀을 돈에 욕심이 있는 교회 지도자들이 남용하기도 하지만 지금 드리는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의 유익은 의의 열매를 거둔다고 했습니다,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대접하면 그 상을 잃지 안는다고 했으며, 지극히 가난한 자를 돌아보고 대접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대접하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교훈대로 우리들의 연보를 통한 구제의 일은 하나님 앞에 의로 인정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바치는 헌금, 선교를 지원한 헌금, 가난한 이웃을 돕는 사랑 모두는 하나님 앞에 의로 인정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상을 받을 수 있는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의 유익은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바친 헌금이 사용되어 선

교사를 돕거나 또 가난한 자를 도울 때에 도움을 받는 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므로 구제 사업을 위한 연보는 형제를 돕고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는 유익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의 유익은 도움 받는 자가 두터운 형제애를 더하게 해준다고 했습니다. 구제 헌금을 받은 자들이 감사하여 도움을 준 자들에게 더 큰복을 내리실 것을 하나님께 간구하며 사모하게 되어 도움을 준 자들과 도움을 받은 자들간의 두터운 사랑이 줄이 단단하게 메어진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

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헌금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고 실행하라는 것입니다. 준비성 있는 헌금을 할 뿐 아니 라 인색하지 않는 풍성한 연보를 하라는 것입니다. 물질을 얻었으면 그 물질이 하나님 이 주신 사실을 깨닫고 그 은혜가 감사하여 하나님께 드리고자하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드리되 풍성하게 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풍성히 주셨는데 나는 하나님께 인색하게 드린다면 하나님에 마땅한 도리가 아닌 것입니다. 또 물질을 주실 때에는 선을 위해 사용하도록 주신 것임을 알고 하나님께서 내리신 하나님의 목적대로 잘 사용하므로 물질의 가치를 극대화 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질을 저축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니라 물질을 잘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너그럽게 쓸 줄 아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교인들로부터 헌금을 많이 거두기 위해 헌금을 강조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돈에 메여 있고 돈에 끌려 다니는 교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헌금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하고 헌금을 통한 은혜와 복을 누리게 해야 합니다. 우리 교 회, 우리 교회 교인들은 돈을 지배하는 교회와 돈을 쓸 줄 아는 교인들이 되어야 합니 다. 한푼이라도 더 땅에 묻어두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고 한푼이라도 세상 돈을 하나님 의 나라로 옮겨 놓는 지혜로운 자들이 다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전도자로서 우리 교 회 성도를 모두가 저금 통장에 한푼이라도 더 많이 저축되기를 바라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되도록 윤택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상 통장에 들어 있는 돈은 단 1달라도 하나님의 나라에 저축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통장에서 빼서 연보를 통해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사용된 돈은 하늘 나라의 자기 창고에 차곡차곡 쌓여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삶의 소망은 이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너무나도 이 세상의 살림만 생각하고 인색해져서는 심히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맙니다. 우리가 죽을 때에는 이 세상 돈을 한푼도 쓸 수 없는 화폐 개혁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화폐 개혁이 일어나기 전에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가장 가치 있게 쓸 줄 아는 지혜로운 자들이 다 되셔야 합니다.

이런 지혜로운 자들에게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께서 모든 은혜로 풍성히 채워주시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또 큰상으로 갚아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도자로서 소망이 있습니다. 온 교인들이 헌금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고 헌금의 축복

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즉 헌금을 할 수 있는 것이 은혜요 축복으로 믿고 그 은혜 와 축복이 감사하여 헌금함에 풍성한 은혜를 렇고 그 풍성한 은혜가 또 풍성히 사용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런 성도들의 삶은 얼마나 풍성하며 은혜스러운 삶이 되겠습니까?

물질을 잘 쓸 줄 아는 선한 청지기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