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권의 참 목적 – 고린도후서 10:1-11

고린도 후서 전체는 모두 13장으로 되어있는데 이 고린도 후서는 사도 바울을 모함하여 사도 바울은 거짓 사도라고 했던 그들이 바로 거짓 선지자들이며 사도 바울 자신은 진짜 사도라는 것을 고린도 교회에 확신시키기 위해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인 것입니다. 다만 8장과 9장만 구제헌금에 대해 기록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가짜 사도요 자기들이 진짜 선지자이며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은 가짜 복음이요 자신들이 전한 복음이 진짜 복음이라고 고린도 교회를 혼란시킨 사건이 사도 바울 시대에 있었음과 같이 오늘날에도 자기는 진짜요 상대는 가짜라고 하는 유혹이 가능한 이 때에 각자의 현명한 판단이 요구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어려운 것은 가짜가 더 요란하고 번쩍이기 때문에 겉모양만 가지고 선택한다면 가짜를 진짜로 알고 속아넘어갈 판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속여서 범죄 하게 했던 뱀도 벌을 받았지만 뱀에 넘어간 책임은 아담과 하와 자신들에게 있었으므로 아담과 하와는 범죄의 대가로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사실을 우리들은 기억해야 합니다. 어느 교파가 진짜인지, 어느 교회가 진짜인지, 어떤 믿음이 진짜인지 정신차려서 바른 판단을 하면서 올바른 진리를 따라 살므로 최후의 심판 때에 합격의 판정을 받게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바울이 온유한 이유 [2]사도 바울의 병기 [3]사도직의 목적입니다

[1]먼저 바울이 온유한 이유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들어와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유혹했던 거짓 선지자들은 바울이 가짜 사도라고 매도하기 위해 몇 가지 점을 강조하여 고린도 교회 성토들을 공략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공략이 상당히 성공을 거두어 바울로부터 복음을 전해 받은 교인들 중 어떤 사람들이 강력하게 바울을 대항하여 반역적인 행위를 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들이 비난했던 것 중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사도 바울은 멀리 떨어져서 보내온 편지로는 아주 강하게 써오지만 실지로 사람을 대면하면 겁쟁이여서 말도 크게 못한다’ 든가 또는 ‘그가 문장력은 있어서 글은 잘 쓰지만 웅변술은 전연 없어서 말이 좀 어눌하다’입니다. 또 사도 바울은 신령하지 못하고 육체에 매여 육체의 욕심에 따라 살고 육체의 목적으로 남의 것에 탐이 나서 전도를 한다고 공략한 것입니다. 즉 이런 점을 종합해볼 때에 사도 바울은 분명히 진짜 사도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 중 일부가 거짓 선지자에 유혹되어 사도 바울에게 반역적인 행동을 했음에도 이에 대항하는 사도 바울은 편지는 강하게 쓰면서도 직접 만났을 때에는 부드러운 말 뿐이요 그것도 시원치 않게 말을 한다는 비난이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이 답변한 것은 사람을 직접 대면해서는 조용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데에서는 큰 소리를 친다고 너희들이 비난을 하는데 내가 온유한 것은 예수님께서 원수들에게 조롱을 받고 찔림을 받았어도 온유하셔야 할 때에는 도수장에 끌려가는 양같이 온순했던 것 같이 예수님의 모습을 닮기 위해 온유란 것이라는 것입니다. 강한 것이 속에 있으나 그들이 스스로 회개하기를 기다려서 온유한 마음으로 참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글로 강하게 씀같이 내 속에는 역시 강한 것이 있으므로 직접 만났을 때에 그런 강하고 엄한 것으로 벌하지 않도록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고칠 것은 고치라는 답변이었습니다. 그리고 온유하셨던 주님께서 어느 때에는 심판하러 오셔서 무서운 심판을 하실 것임과 같이 사도 바울 나도 지금은 온유하지만 회개의 기회를 주었어도 회개치 않고 복종치 않은 자들에게 벌을 주려고 준비하고 있다는 답변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참고 온유한 이유는 겁쟁이여서가 아니라 잘못을 저지른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함이라고 한 것입니다.

[2]두 번째로 사도 바울의 병기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을 가짜 사도라고 공격을 했던 거짓 선지자들은 사도 바울의 볼품없는 외모를 들추어서 바울이 가짜 사도라고 하는데 이용을 했던 것입니다. 2세기에 기록된 바울과 데클라행전 이란 문서에 의하면 사도 바울은 작은 키와 외소한 체형, 두 윗눈썹이 일자 눈썹이요, 코는 매부리코요, 다리는 구부러진 O자형 다리를 가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께 세 번이나 고쳐주시기를 기도했으나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거절을 당 한 자기 몸의 지병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신체적으로 못난 모습을 가졌던 모양입니다. 이런 체형에 말까지도 시원치 않게 하므로 외모를 중심했던 자들 이 사도 바울을 심히 깔보았던 것입니다.

만일 사도 바울이 진짜 사도라면 외모로도 어떤 권위를 부리고 위엄을 부리는 풍체가 있어야 할 터이고 말로도 사납게 역 공격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고 때로는 주먹 힘으로도 상대방을 꺼꾸러 넘어뜨릴 힘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비판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전도자가 되려면 주먹 힘도 있고 외모도 풍채가 좋아 야 하고 남이 소총으로 쏘면 전도자는 대포로 대항하는 힘을 가진 자여야 하는 것입니까? 그리고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자는 불량배들을 동원해서 정리해야 리더쉽이 있는 전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까?

사도 바울은 그들의 그런 공격에 답변합니다. 우리가 비록 육체를 가지고 살고는 있지만 우리는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의 병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육체끼리 물고 뜯고 넘어뜨리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육적 싸움이 아니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도록 유혹하는 사단과의 영적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탄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힘이란 육체의 주먹 힘이나, 잘난 외모나, 지식이나 학벌 또는 누가 주는 추천서나 세상 빽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힘뿐이라는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전도자를 하는 사람이 세상의 어떤 힘만을 의지하려 한다면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에 들어와서 고린도 교인들을 유혹하고 충동한 거짓 선지자들은 이런 육적인 것을 내세워 자기들은 외모로 그럴듯하니 진짜 선지자요 사도 바울은 외모가 못났으니 가짜라고 했으며 그런 유혹에 넘어가 사도 바울을 배신했으니 그 때에나 지금에나 누가 진짜인지 누가 가짜인지 구별하기 힘든 대에 살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3]세 번째로 사도직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가짜 선지자들은 사도 바울이 진짜 사도라면 고린도 교회에 직접 찾아와서 주먹질도 하고 기물도 파손하며 난장판을 부려 자신을 반대하는 자들과 대판 싸워 각각 갈라서야 한다고 충동을 한 모양입니다. 그러나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도직이란 교회를 파괴하고 교인들과 갈라서기 위한 직분이 아니고 고회를 세우고 교인들과의 나쁜 관계를 화목케 하는 것이라고 답변하고 있습니다. 사도직의 사명은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이요 주님이 이 사도직을 주실 때에 바로 바른 방향과 목적을 위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가 배신당한 배신감만을 만회하기 위한다면 고린도 교회에 가서 하고 싶은 말을 다해버리고 생전 다시 안볼 사람들과 같이 갈라설 수 있지만 고린도 교회는 비록 자신이 개척은 했지만 하나님께서 개척하도록 모든 여건을 허락해주셨고 그 교회의 주인은 주님이시므로 자기 성질대로만 할 수 있는 문제는 전연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자기를 사도로 세운 목적은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많은 교회는 그 교회의 주인이 건물을 지어준 사람이거나 그 교회를 개척한 사람이 주인이 되어서 그 교회를 멋대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도 바울은 교회의 주인은 주님이심을 믿고 있기 때문에 아무 것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로직 탈선한 자들이 빨리 회개하여 사도 바울에게나 주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지 않도록 권면하고 책망하고 경고하는 일을 할뿐이며 그것도 자기 지혜로, 자기 지식으로 자기 힘으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의 힘으로 한다는 답변인 것입니다, 비록 자기가 그 교회를 개척했거나 그 교회를 위해 80% -90- %공로가 있다할 찌라도 그 교회를 파괴할 권한은 단 1%도 없고 그 교회를 이룩해야할 책임만 100%있다는 교훈입니다. 아멘입니까? 왜 그렇습니까? 교회의 머리와 주인은 잘난 어떤 사람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얻었으며 그 교

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는 온유한 우리들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우리들은 교회 생활을 하면서 남 이 내가 잘못했을 때에 나는 잘 참고 있는데 주변에서 말하기를 그런 사람은 그냥 두 면 안되고 끝장을 봐야 한다고 충동하는 자들을 만나게도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믿음이 좋은 사람에게도 사단이 들어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어 떤 사람의 말이 사단의 충동인지 성령의 충동인지를 분간하고 행동에 옮겨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불화가 있어서 충돌이 일어났을 때에 자기를 어디로 운전해 나가야 할지 를 바로 파악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교훈은 상대방의 잘못을 참을 수 있는 온유의 한 면을 교훈해 주고 있으며 또한 상대방의 잘못을 돗 본 체하는 방관이 아니라 잘못을 회개하도록 권면하는 온유의 다른 면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잘못 오해하고 있는 온유란 성격이 무던해서 아니면 힘이 없어서 그냥 참는 것으로 온유가 잘못 이해 될 지 모르지만 성격이 급하고 상대방을 넘어뜨릴 힘이 있음에도 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참는 온유를 갖도록 교훈하고 있습니다. 교회 내에서, 또는 교회 밖에서라도 우리의 다툼과 싸움은 세우기 위서 싸우는 건설적인 싸움이어야지 남의 충동에 말려들어 파괴적인 싸움을 해서는 아니 된다는 교훈입니다. 사도 바울의 온유는 결국 고린도 교회를 살렸고 또한 사토 바울과 고린도 교회와의 관계가 다시 회복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온유를 우리 모두가 실천하여 내 생활 주변의 얼크러진 모든 문제들이 다시 회복시키는 능력자들이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두 번째로는 믿음은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어떤 교회가 가장 좋은 교회일까요? 정답은 좋은 교회의 판단 기준을 외모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수가 많이 모이는 교회이거나 아니면 수가 적게 모이는 교회라는 판단은 옳지 않으며, 교회의 프로그램이 다양한 교회이거나 아니면 프르그램이 없는 교회가 될 수 도 없는 것입니다. 그 교회 전도자가 많이 배웠어야 하거나 못 배운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 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런 외적인 요건이 좋은 교회라는 기준이 될 수 없고 내적인 요건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적 요건이라면 무엇을 말하는 것이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주님의 말씀을 세상 그 무엇보다도 높이는 교회여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는 주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분명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요 그 오신 목적이 바로 인류 구원이기 때문에 말씀을 우선 순위에 두는 교회라면 주님이 그 교회의 머리로 모시는 교회이며 그런 교회라면 주님이 세우신 교회의 목적인 구원을 이루기 위한 교회일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말씀 위에 사람이나 교단이나 헌법이 존재하는 교회라면 이미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을 무시하는 교회이므로 모양은 좋으나 좋은 교회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는 대접을 받지 못하고 인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말씀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일군이 주님의 바른 일군이요 그런 교회가 바른 교회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소개받은 우리 성도들은 참다운 온유한 자가 되시고 남과 내가 하나님의 나라에 함께 입성하도록 진리 안에 살고 진리 안에 살도록 권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