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굳게 지키라 – 갈라디아서 5:1-12

우리들은 지금까지의 갈라디아서 강해를 통해 율법과 복음에 관한 충분한 지식을 얻었습니다. 복음은 율법보다 월등히 우월한 것인 반면,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의 임시법이요, 지키느라 최선을 다해도 죄인을 의롭게 할 수 없는 불완전한 초등학문에 불과한 것이며, 죄를 깨닫게 하여 그리스도께 찾아가도록 하는 몽학 선생 같은 길잡이이며, 종과 같이 자유를 누릴 수 없는 법임을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시기적으로 보아도 율법은 구약시대의 법이요, 내용적으로도 온전치 못하며, 결과적으로도 죄인들을 의롭게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죄인들을 얽어매는 법이므로 새 언약인 복음이 전파된 이후에는 율법은 마땅히 퇴출 당해야 할 법인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렇게 확인했지만 만일 누가 묻기를 우리 성도들은 십계명을 지켜야 합니까? 라고 물으면 지켜야 한다고 대답을 하리라 생각됩니다. 만일 성경에 있는 십계명을 지키지 않는다고 하면 이단 교회라고 할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을 마음에 두고 본문을 들으면서 정답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를 막 시작할 때에 소개해드렸지만 갈라디아서를 “기독교 자유의 대헌장”이라 부를 정도로 갈라디아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누릴 자유에 대한 진리를 선포하고 있는 서신인데 오늘 본문에서는 이 귀한 자유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들에게 주셨으므로 이 귀한 자유를 굳게 지키라는 권면을 주고 있습니다. 갇혀있는 자들을 갇힌 자리에서 해방을 시켜 주었다면 다시는 갇힌 자리에 들어가려는 자도 없으려니와 혹시라도 다시 갇힌 자리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자가 있다면 심히 어리석은 자이거나 정신나간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사도 바울은 귀한 자유를 굳게 지키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전달받은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 가치를 새롭게 깨닫고 귀한 자유를 만족스럽게 누리시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자유를 굳게 지키라(1-2) [2]자유를 누리는 방법(3-6) [3]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방해하는 자들(7-12)입니다.

 

[1] 1절부터 2절까지의 자유를 굳게 지키라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들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만민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돌아가셨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아래에서는 매년 동물 제사를 통해 속죄제를 드리듯 율법이 있는 한 죄는 언제나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말은 죄인을 죄인으로 인정하고 판단하는 율법을 십자가에 함께 못 박으므로 그 이상 율법은 효력이 없게 만드셨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율법을 폐하셨으므로 죄인들이 죄 없는 사람같이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자기 죄와 율법에 구속당하고 있을 때에 모든 얽매임에서 해방되도록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희생을 치르고 자유를 얻었으므로 다시는 자유를 모르는 구약 율법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믿거나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한다면 그들은 스스로 율법의 얽매임으로 다시 들어가는 자이므로 율법의 얽매임에서 벗어나도록 십자가를 지셨던 예수 그리스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을 한다면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는 사람이 잘 믿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그는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2]두 번째로 3절부터 6절까지의 자유를 누리는 방법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로 자유를 누리게 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는데 자유를 누리는 방법을 모르면 다시 종과 같은 생활을 하게 된다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만일 어떤 자가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믿고 할례를 받은 자가 있다고 한다면 그는 율법 전체를 지켜야할 의무를 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인간도 율법을 다 지킬 수 없으므로 이 사실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심으로 모든 율법에서는 해방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되고 구원되도록 하셨는데 율법을 잘 지켜서 구원받아 보겠다고 한 자가 있다고 한다면 그는 율법의 종이 되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은혜와는 전연 상관이 없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연관이 되고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있는 자란 율법을 행함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있는 자인 것입니다. 할례나 무할례가 사람을 의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유를 누리는 방법은 율법을 행함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밈음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3]세 번째로 7절부터 12절까지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방해하는 자들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복음을 받아드리고 자유를 잘 누렸는데 누가 너희들이 누리는 자유를 방해하더냐고 책망이 내포된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진리를 순종하는 일에 방해하는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누룩과 같은 것이어서 누룩이 반죽 온 덩이를 부풀게 함과 같이 그들의 음흉하고 거짓된 교훈이 온 교회에 번질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유대주의자들의 거짓된 교훈을 그 이상 용납하지 않을 줄을 주안에서 확신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평온했던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다른 마음을 품게 하여 혼동을 준 사람들은 누가 됐든지 간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사도 바울이 율법을 지켰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그는 남에게 핍박을 받는 위치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오히려 새 언약인 복음을 받아드린 자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는 공격적인 위치에 있었던 자였으나 그리스도를 만나고 복음을 받아드리고는 그 이상 필요 없는 할례를 버리고 율법을 본인도 지키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이상 율법은 무익한 것이므로 지키지 말도록 가르친 이유로 자신이 핍박을 받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 바울을 괴롭히고 또 갈라디아 교인들을 혼동케 하는 유대주의 자들이 스스로 잘못된 행동을 버리고 모두가 한 마음을 품을 수 있기를 소원한다는 말로 오늘의 말씀을 맺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 말씀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를 통해 얻은 자유를 온전히 누리며 살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얻은 자유가 무엇인가요? 율법과 죄로부터 우리를 온전히 해방시켜준 자유입니다. 복음을 받아드린 성도들은 모든 율법에서 온전히 벗어나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그리스도를 받아드리기 전에 지은 모든 죄로부터 온전히 해방되어 자유를 얻었으며 믿음을 가진 이후 지은 모든 허물도 회개함으로 죄로부터 온전히 해방될 수 있는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율법으로부터 온전히 해방되었다는 말은 많은 율법중 비록 하나라도 우리들이 지켜야 하는 법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미 몇 번 강조했지만 율법 그 자체가 초등학문에 불과한 것이므로 지킨다고 해도 온전치 못한 것이어서 지켜야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우리가 아는 십계명이란 율법의 골자를 뽑은 것입니다. 십계명이 율법의 골자라고 한다면 율법으로부터 온전히 해방을 시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들은 십계명을 지켜야 하는 얽매임에서 온전히 벗어나게 해주셨기 때문에 모든 성도들은 누가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우리를 강권해도 그 강권은 그리스도로부터 온 것이 아닐뿐 아니라 오히려 복음을 받아 구원받게 하는 일에 방해하는 자들임을 확인한 것입니다. 또 비록 십계명을 지킨다고 해도 십계명 자체가 초등학문인 것은 십계명중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율법적으로 보자면 마음으로는 미워해도 사람을 죽이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나 살인하지 말라는 복음적인 의미는 마음에 미워하는 것도 살인이 되므로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 성도들은 율법적인 십계명을 비록 지켰다 해도 그것은 그리스도가 바라는 수준에는 전연 미치지 못하는 초등학문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신을 만들지도 말고 섬기지 말라는 계명만 해도 우상을 만들지만 않으면 되고 다른 우상에게 절만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 율법이라면, 새 언약으로서는 마음으로부터 하나님보다 더 높인 것이 있다면 그 것이 사업이든, 자기 가족이건 우상 숭배에 해당하는 것이라 풀고 있으므로 십계명을 포함한 모든 율법을 지켜야할 의무도 없지만 지킨다해도 아무런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만일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면 우리들은 마땅히 안식일인 토요일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율법인 십계명 자체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새 언약에 따른 십계명의 정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율법은 살인하지 말 것을 요구하나 신약은 사람을 미워하지도 말뿐 아니라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율법은 초등학문이요 새 언약은 고등학문이므로 초등학문을 지킨다해도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율법 속에서 뽑아낸 십계명을 교인들이 지킬 것으로 가르치고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가 주신 교훈이 아니오 다른 정신을 가진 사람이 준 교훈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만일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면 구약의 모든 법을 지키겠다고 서약하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배웠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마땅히 안식일도 지키고 동물 제사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구약의 율법 정신은 율법을 하나 하나 다 지켜 나가므로 자기가 지킨 행위에 따라 사람이 의로와 져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것이나 어떻게 인간이 율법을 다 지켜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실 정도로 의롭게 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전연 불가능하므로 의롭게 되는 방법을 개정한 것이 바로 새 언약인 복음인 것입니다. 복된 소식이란 율법을 다 지키지 않아도 하나님께 인정될 수 있는 의로운 자가 다 되게 해주시는 새 길을 안내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지신 십자가의 뜻을 믿고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는 자에게는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의로운 자가 되게 해주신 것입니다. 율법을 열심히 지켜도 죄인일 수밖에 없는 인생들에게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의롭게 해주셨으니 이것이 기쁜 소식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율법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있는 자유를 하나님께서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 주셨는데 다시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 자가 있다면 그들은 갈라디아 교회를 괴롭히고 사도 바울을 괴롭히는 유대주의자들과 똑같은 당에 속한 자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하나님께서 율법과 죄의 속박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있도록 자유를 주셨으니 우리들은 죄와 율법에 다시 얽매이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온전히 누리시는 자유인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