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를 부르신 예수님 – 마태복음 4:18-22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맡기긴 사역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복된 소식을 전해 줄 제자를 선택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몇 제자를 택했던가요? 12 제자이지요. 오늘은 본문을 통해 12제자 중 첫 4제자를 선택한 사실을 중심하여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찾고 우리 신앙 생활에 적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을 잘 이애 하도록 하기 위래 3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첫 4제자의 소개

[2]불리움을 받은 첫 4제자의 자격과 환경

[3]불리움을 받음과 반응

 

[1]첫 4제자의 소개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첫 4제자의 이름이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 세베데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으로 소개해 주나, 누가복음은 첫 4제자의 선택에 대해 좀 모호하게 기록해 두었고, 요한복음은 첫 4제자들 베드로, 안드레, 빌립과 나다나엘(바돌로메)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언급하고 지나갈 것은 4복음서가 같은 사건을 다룰 때도 조금씩 다르게 기록된 것은 기록자의 관심에 따라 무엇에 초점을 두었느냐에 따라 기록이 빠지거나 또는 보다 자세한 기록을 보기도 하는 것입니다. 또 성경의 순서는 꼭 앞에 일어난 사건부터 순서적으로 기록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먼저 전재해 드립니다. 요한복음에 의한다면 4제자 중 제일 처음에 안드레가 자기 형제에게 가서 전도하여 베드로가 주 예수를 믿게 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베드로의 본명은 시몬으로 베드로와 게바는 반석이란 말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베드로는 마16:16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는 유명한 신앙고백을 하였고 이방인 고넬료 가정을 세례주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폭군 네로 황제에 의해 처형당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베드로도 그의 형제 안드레의 전도가 아니였다면 없는 것입니다. 안드레는 성경에 별 기록이 없습니다. 성경의 기록 중 그의 역할은 오병이어의 이적에서 아이에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다고 예수께 소개한 일과 예수 만나겠다는 무리가 있어 예수께 전한 정도(요12:22)입니다. 그도 순교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세베데의 아들 야고보는 첫 번째로 순교하였습니다(헤롯에 의해)(행12:2). 그는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그는 예수의 이모의 아들로 봅니다

요한은 요한복음, 요한 1,2,3서의 기록자입니다. 헬라어로 요한이라는 말 뜻은 여호와의 사랑하는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첫 4제자중 가장 오래동안 장수하였다고 전해집니다. 밧모섬에 유배되어 계시록을 기록하였고 자연사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나머지3명은 순교).

특히 베드로, 요한, 야고보는 3대 제자로 알려집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야고보서 기록자 야고보와 다른 인물이며, 야고보와 요한은 보아너게(우뢰의 아들)란 별명이 있습니다.

주님의 영광 중에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지만 요한만 이 남자 중 유일하게 십자가 곁에 있었습니다(“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요19:26).

 

[2]불리움을 받은 첫 4제자의 자격과 환경

18절에 보니 베드로와 안드레는 바다에서 그물 던지는 어부로 소개되며 또 21절에 보니 야고보와 요한은 아버지를 도와 그물을 깁는다고 기록하므로 역시 어부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즉 그들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는 어부였던 것입니다.

“어부”라는 말은 첫째 공부를 못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며, 지위가 낮다는 말과 가난했다는 말로 풀이가 될 수 있겠습니다. 즉 어부라는 말은 겸손하고, 낮은 마음을 가진 자들로서 주님이 오라 부르실 때 일어설 수 있는 부류를 칭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내놓으라는 사회 지도층 인물, 지식, 명예, 재력이 있는 자들이 많았는데도 갈릴리 바다의 어부 즉 가장 낮은 자리의 사람을 택한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무식해도 제자 되는 길에는 장애물이 되지 아니하며, 잘못 유식한 것보다는 오히려 낫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믿으십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무식해야 자격자가 되고, 가난해야 자격자가 되고, 사회 직위가 없어야 자격자가 된다기보다 대체로 사회적으로 높아지면 교만하게 되므로 오히려 유식한 재력이 풍부한 무리들 중에서가 아닌 낮은 자리에 있는 자들을 택했고, 제자 삼을 때 종교 교육 받은 어떤 학교나 종교 집단에서 찾다가 그 출신들을 찾은 것은 아니고, 그것과 전연 상관없이 겸손과 근면, 사랑, 협동의 자격을 갖춘 자를 선택했습니다.

네 명 모두 일터에서 열심히 자기 일을 맡고 있는 일군들을 택했고, 형제들이 협동하고, 또 아버지 도와서 사랑과 협력을 아는 유자격자들을 선택한 것입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에서 택하시지 않고 갈릴리 지방에서 택하셨음을 보게 됩니다.

할 일 없는 사람 중에 택하시지 않고, 현재 일을 하고 있는 자를 부르셨고 다른 일을 맡기신 것입니다.

 

[3]불리움을 받음과 반응

19절에 보니 베드로와 안드레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를 따라 오너라.” 20절에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21절 22절에 보니 야고보와 요한에게도 부르시니 곧 배와 부친을 버려 두고 좇았다고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눈 여겨 볼 것은 첫째는 주님의 권위 있는 부르심입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라는 단도 직입적인 권위 있는 부르심입니다. 시간당 얼마를 주고, 또 1년 휴가는 어떻고 라고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는 곧 즉시 따라갔다는 사실입니다. 시간을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는 “그물을 버려 두고” 따랐다고 했습니다. 그물이 뭡니까? 자기들의 생업을 버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배와 부친”을 버려 두고 좇았다고 소개해 줍니다. “배”는 생업이요, “부친”은 자기를 낳아준 아버지입니다. 생업보다 주님이 먼저요, 나를 낳아준 부모보다 주님이 먼저라는 모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렇다고 부모 형제의 관계를 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세리 마태를 부르실 때도 마태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좇으라”하시니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일어나 좇았다고 기록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군대 영장이 나오면 어떻게 하지요? 모든 것을 버려 두고, 다녀오게 되는 것 같이 제자로 불리 움을 받은 그들은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주님을 따랐음을 보게 됩니다. 네 번째는 새로운 사명, 새로운 일을 주시려고 부르셨습니다. 무슨 일인가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도록 부르신 것입니다. 고기 잡는 일은 산 물고기를 죽이는 일이지만 사람 낚는 어부는 죽은 영혼 살리는 일을 하는 어부가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3년간 함께 먹고 자면서 주님의 하시는 일을 모두 눈으로 보고 배웠습니다. 인격적으로 생활 교육을 받았습니다. 제자 훈련을 잘 받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을 통해 우리가 받는 교훈은 무엇이며, 우리 생활에 적용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모두도 제자 삼으시겠다는 주님의 부름에 즉시 응답하여 주님의 수제자가 되고, 또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제자 삼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주님의 수제자들이 다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이 지켰던 그런 주님의 사랑 받는 제자의 자리에 앉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로 부르신다면 언제 응하겠습니까? 지금 당장 사업 정리하고, 은퇴하고 나서가 아닙니다. 지금 당장입니다. 그 길은 배와 그물을 버릴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부친을 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배와 그물이 무엇입니까? 주님께 찾아왔던 두 사람이 제안을 합니다. 한 사람이 내 아버지를 장사지내고 따르겠다고 하였을 때 주님은 장사 지내는 일은 믿지 않는 사람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아니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그런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명령하셨음을 보게되며, 또한 사람은 “송별회”를 하고 따르겠다고 하니 “쟁기를 든 자가 뒤를 돌아보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수제자가 되는 길은 배와 그물을 버리고 즉시 응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업, 직장, 바쁜 일, 아버지, 어머니, 아이들, 즉 세상 때문에 세상 일로 주님 섬기는 일을 뒤로 미루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 맨 먼저, 내일 뒤로, 주님 먼저, 세상일 두l로의 믿음이 철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가치관이 분명해져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 확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 같으면 아버지 장사지내고 온다고 주일 한번 빼 먹는 것 보다 아버지 장사지내고 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송별회 다녀온 후라도 얼마든지 주님 따르는 일이 가능할 터입니다. 주님의 제자는 조금이라도 세상에 연연하다 보면 마귀가 자꾸 새로운 변명을 갖다 주어 결국 제자가 되는 길을 막게 됨을 알기 때문에 사사로운 핑계로 당장 제자 되는 길을 지연시켜서는 아니 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왜 지난주에 교회를 못 오셨습니까? 무슨 일 때문에? 세상 때문에? 주님 섬기는 일, 주님의 제자 되는 길이 막히게 되는데. 반대로 왜 지난번 친구들 모임에 못 오셨습니까 왜? 그 사업을 그만 두셨습니까? 학교를? 결혼을? 왜? 무엇 때문에? 주님 때문에, 교회 가야하므로, 그 사업하면 주님 섬기는데 지장이 있으므로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가 행복했겠어요? 불행했겠어요? 말할 필요 없이 행복한 삶을 살았겠지요. 왜 행복했나요? 주님을 위해 세상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세상 때문에 주님 버렸다면 그렇게 행복하지 못했을 겁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가 주님 때문에 손해를 보았나요? 이익을 보았나요? 배와 그물을 버리고, 직장과 사업을 버렸으니 일시적으로 손해를 보는 것 같았지요? 결과는 어떻습니까? 현세의 어느 대통령, 재벌 그룹, 학교 총장과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비교할 수 있습니까? 상대가 되지 못하지요. 비록 일개 어부를 그토록 높게 만드신 이적은 주님 때문에 세상 버렸기 때문입니다. 쟁기를 들고 뒤를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는 제자를 삼으시겠다는 주님의 부름에 응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제자의 길은 주님 때문에 세상을 뒤로하는 길이며, 주님 때문에 세상을 뒤로하는 제자의 길은 행복한 길이며, 주님 때문에 손해 보았던 모든 것은 수 십 배, 수 백 배, 수 천 배로 갚아 주시리라는 사실입니다.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부르심을 듣고 배와 그물을 버리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배와 그물 버리고 주를 따르는 모든 성도에게 만 배나 갚아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행복 된 삶을 이웃에게 소개하는 제자 양육의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