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지 말라, 맹세하지 말라 – 마태복음 5:31-37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는 율법의 본래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히 가르쳐 주신 주님께서 오늘은 이혼과 맹세에 대한 바른 교훈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미 살인과 간음의 제목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살인과 간음이란 육적 범죄는 물론이려니와 마음의 범죄까지도 포함시키므로 성도들이 정결해야 함을 강조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받게 되는 교훈을 준비하면서 주님의 바라시는 수준에 이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오늘 주어진 두 제목 이혼과, 맹세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먼저 이혼하지 말라 입니다.

제일 어려운 주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율법에 보면 신 24:1에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 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으로 내어 보낼 것이요”라 하여 이혼 조건을 주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두 개의 학파가 있었는데 하나는 보수적 학파인 샴마이학파와, 힐렐학파 였습니다. 보수학파는 해설 내리기를 수치 되는 일이란 음행만으로 규정하였고, 자유주의 학파인 힐렐학파는 남편의 눈에 부정하게 보이는 것이 있거나 또 심지어는 아내와 함께 사는 것이 싫증이 나도 이혼할 수 있는 일로 해석을 내렸던 것입니다. 이런 풍조가 막연해져서 31절에 표현된 대로 예수님 당시에 그들에게 적용되었던 율법이란 31절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주라”고 되어 있어 이혼 증서만 써주므로 얼마든지 이혼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되어 막말로 하루 살기 위해 결혼했다가 이혼 증서만 주고 헤어지는 결혼에 대해 무책임하고 여성을 경멸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바리새인들이 질문한 것이 바로 본문에 나온 “이혼 증서만 주면 얼마든지 이혼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음행한 연고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든 자도 간음함이니라”고 답을 합니다.

본문이 주는 뜻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는 것이 원칙이며, 정말 헤어져야 한다면 음행의 연고만을 인정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아내를 버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일부 일처제의 사상에 따라 첫째는 여자들을 보호하셨음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요사이는 풍조가 많이 바뀌어서 여자에게 남자들이 쫓겨나는 정반대의 시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미국의 법은 여자와 아이들에게 우선적인 대우를 하는 편이 아닌가요? 남자들이 맨손 들고 쫓겨날 수 있는 곳이 미국입니다.

본문에서는 이혼을 하지 말라는 것이나 정반대로 이혼을 당했으면 어떻게 할까요? 고전 7:10에서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갈릴자라도 그냥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하였는데 이것은 정결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 다른 말씀은 고전 7:9에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고 하여 역시 마음의 정결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물론 고전 7:9은 이혼 당한 자에 대해 하신 말씀은 아니지만, 주님께서 마음의 정결을 강조하시고, 마음에 음욕이나 정욕이 타는 것을 간음이라 말씀하고 계시므로 적용해 보는 것입니다.

앞으로 마 19장에서도 또 한번 이혼에 대해 다루게 되므로 오늘 미흡한 것은 19장에서 더 보충하겠지만, 다루어야할 결혼을 바로 이해하므로 이혼에 대한 숙제가 풀려질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이 바라시는 다시 합해 살라는 것은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는 기본적인 관계를 개선하고 건전한 가정의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전제한 것이지 이혼을 성경에서 금하고 있으므로 비록 멀리 떨어져 별거생활을 하면서라도 이혼 수속을 안 한다고 고집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부부가 어떤 이유로든지 6개월, 1년 떨어져 있어야한 그 이유와 결과는 주님이 말씀하시는 음행의 원리에 접촉되므로 성서적으로도 보더라도 이혼의 원인과 이유가 된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전 7:3-5에 보면 “남편은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의하여 합의상 얼마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2]맹세하지 말라 입니다.

본문에서 보니 33절에 “헛맹세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로 시작하며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고 땅으로도 말고 예루살렘을 두고도 하지 말고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고 맹세의 중지를 선포하고 계십니다. 감히 자기 머리카락 하나도 희고 검게 할 수 없는 자가 하늘이 또 땅이 또 예루살렘 성이 자기 것이나 된 것같이 그런 것을 담보하여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하도 불신시대이므로 상대방에게 진실을 이야기해도 믿지 아니하는 시대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진실이라는 것을 설득시키려고 여러 가지 말은 많이 하게되는데,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만 하지 너무 수식어를 많이 붙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솔직히 가짜가 더 번쩍거리는 시대이므로 거짓말은 지나 놓고 보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거짓이었는지 잘 알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두고, 맹세했으면 꼭 지켜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고, 하나님 이름 이외의 하늘이나, 땅이나 성전 등을 두고 맹세한 것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통용되었다고 합니다. 맹세도 입버릇입니다. 현실에서 우리는 보통 뭐라고 맹세를 합니까? 무엇을 빌리려고 약속을 지키겠다던지, 이 말이 참말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뭐라고들 하나요? 하늘을 두고, 성경에 손을 얹고, 거짓말 하나도 더하지 않는다면 그런 걸 하지 말라는 거여요. 글자 그대로 말하는 거여요. 참기름이면 참기름이지 진짜 참기름, 순 참기름, 진짜 진짜 참기름이라고 선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 받은 교훈은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결혼을 보다 엄숙하게 받아드리고, 한번 결혼했으면 일평생 함께 살라는 것입니다.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정도의 결혼은 차라리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일시적 감정에 치우친 결혼, 또 돈보고 또 출세하려고 기회주의 적인 결혼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혼 조건으로 간음의 경우에는 이혼할 수 있다고 준 것은 이혼의 길을 터 주기 위함이 아니오, 근본적으로 이혼을 막으려는 의도였던 것입니다. 또 결정을 유지하도록 하는 방편이었습니다. 사랑이 존재하고 정결이 유지되는 가정을 유지해야한다는 권면이지, 사랑 없이 또 부 정결한 생활을 피차 하면서도 이혼이라는 서류정리만큼은 해서는 아니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이혼을 원치 않게 당했다면 본문이 최선을 다해 정결한 자기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이웃에게 덕이 되도록 계속 혼자 살던지 다시 결혼하던지 주님을 위한 길을 택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약속은 빚입니다. 헛맹세는 거짓이 됩니다. 사람 앞과 하나님 앞에 진실 된 사람이 되려면 되도록 말을 줄여야 합니다. 허풍, 자랑도 삼가야 하겠지만 무엇을 믿게 하려고, 지나친 맹세나 약속을 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있는 대로 진실대로 믿든지 안 믿든지 그대로 이야기하라는 것입니다.

주님 주시는 교훈의 말씀을 가슴 깊이 간직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