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하지 말라 – 마태복음 5:38-42

하나님의 법인 율법을 잘못 이해하고 잘못 지켜오고 있는 우리들에게 매주 주님께서 율법이 의도하고 있는 본 뜻과 더불어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전달받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살인, 간음, 이혼, 맹세에 대한 바른 교훈을 받았는데, 오늘은 보복, 즉 복수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을 받게 됩니다. 매주 말씀을 준비할 때마다 느끼고 있는 사실은 늘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 앞에 서있는 우리들을 주님이 온전하심 같이 우리도 주님을 닮아 온전하기를 바라시는 주님의 애태우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이 우리들에게 바라시는 수준까지 실천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 우리에게 약속된 유업을 다 받게되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의 제목은 “보복하지 말라”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우리 모두는 본능적으로 무슨 피해를 당했을 때 복수해야 한다는 복수심이 있습니다. 자기 방어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모든 권리를 주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때로는 자기 방어가 도에 지나쳐서 테러 같은 사회의 병폐로도 나타나고, 자기 권리를 침해받았다고 억울하게 느낀 개인과 집단이 폭력과 파괴로 자기의 분노를 나타내게 되는데, 지나친 자기 방어는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게 됨을 알게 됩니다.

아랍 계통의 테러, 4.29폭등, 가끔 잃어나는 총기난사 사건 등이 바로 “정의” Justice를 내세워 불법과 폭력을 행사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사건들입니다. 민주주의 창출을 위해 과도기적으로 발생하는 폭력, 파괴, 데모도 같은 유형입니다.

이와 같이 자기 권리 주장이 중요한 것만큼 남의 권리도 존중해 줄줄 알아야 하는데 남의 권리에는 등한하고, 내 이익, 내 권리만 내 세우는 결과로 우리 가정이, 우리 사회가 또 국가와 국가간에 마찰과 비극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충분히 인식한 주님께서 보복에 대한 우리의 마음가짐을 바로 제시해 주고 계십니다.

오늘 주신 본문 38절에 보니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치 말라”고 처방을 내려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율법에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운 것으로, 상하게 함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고 표현된 것을 보면서 어떤 느낌을 받게 됩니까? 율법은 너무 잔인하다고 느끼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남이 내 눈을 뽑았다면 그 사람도 눈이 빠져야 하는 그런 법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인간이 갖는 감정과 폭력을 통제하는 자비스런 법의 목적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보통 남이 나더러 10이란 크기를 때렸다면, 우리는 20, 30이란 숫자로 보복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실례이기 때문입니다. 화가 나서 자기 감정 콘트롤하지 못하고 있는 힘있는 힘 총동원해서 복수를 해주어야 승리한자 같이, 속이 시원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복수심은 상대가 내 이를 하나 뺐으면 나는 상대의 이를 2개 3개 뽑아주는 결과로 일이 커지나, 율법은 내가 손해 본 만큼만 복수하여야 한다는 복수 양의 통제, 즉 동해복수법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도 각 개인끼리 눈을 뽑고, 이를 뽑고 하도록 한 것이 아니라 법정에서 재판을 통해 집행하도록 되어있어 개인이 복수하는 것을 통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비록 율법에서는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받도록 보호하고 있으나 우리 기독교인들은 혹시 억울한 일을 당했다 하더라도 법을 통해 그 억울함을 보상받고, 상대에게 복수해 주고자하는 그런 복수심에서 벗어나 자기가 충분히 누릴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사양하고, 자기가 조금 억울한 일을 당해도 참으라는 교훈을 주십니다. 그러면서 실지로 네 가지 예를 들어 교훈 해주시게 됩니다.

 

첫째, “네 오른편 빰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는 것입니다. 상대방 오른편 빰을 치려면 내 손등으로 쳐야합니다. 유대 풍습에 빰치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꼭 아프라고 치기보다는 상대방에게 수치를 주고, 내 분노를 나타내는 표현이며, 더욱 손등으로 치게 된다면 그 수치나 모욕을 2배로 크게 한다고 합니다.

율법으로 말한다면 오른편 뺨을 상대가 나를 때렸으면 법을 호소하여 상대방 오른편 빰을 치게 해야 하겠으나, 주님께서는 그 권리를 사양할 뿐 아니라 오히려 왼쪽 뺨까지 치도록 돌려대라는 것입니다. 대개 오른쪽 뺨을 친자가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게 하기 위해, 아니 그들 전도하기 위한다면 법정에 가서 그에게 뺨을 때리는 것보다는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고 오히려 하나 더 때리라고 왼편 뺨을 돌려대므로 상대의 악이 선으로 회개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주님은 잘 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런 행위를 그리스도는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사50:6에 보면 그리스도의 모습을 예언한 것인데 “나를 때리는 자들에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내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십자가상에서 충분히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주님은 그들 따르는 그리스도인 들에게 이를 실천하라고 명하십니다.

 

두 번째,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겉옷은 밤에 잘 때는 이불 대용으로 사용하였던 관계로 이스라엘 법으로 겉옷은 저당을 잡지 못하고 저당 잡았어도 저녁 전에 주인에게 돌려줘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법이 준 권리나 보호는 겉옷은 아무도 빼앗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혹시 누가 재판을 하여 내 속옷을 가져가겠다고 하면 속옷을 안 빼앗기려고 욕하고, 싸우고, 있는 말, 없는 말 해대거나 변명하지 말고 속옷을 그대로 줄 뿐 아니라 법이 보호하는 겉옷까지 주라는 것입니다. 속옷을 빼앗기고 겉옷까지 줄 때 얼마나 고통이 심하겠습니까? 그러나 법의 보호까지도 양보하므로 상대방이 오히려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여, 주님을 믿을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세 번째,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라”고 교훈하십니다. 로마가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때에 로마 군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오리의 거리를 우편배달이나 어떤 짐을 지고 가도록 강제 징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어서 누구에게나 오리를 가자고 하면 의무적으로 가야하므로 이런 강제 징용을 당하면 기분이 나쁘고 속이 상하기 마련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까지 간 사람은 구레네 시몬인데 이 구레네 시몬도 십자가를 지고 가자는 군인들의 강제 징용을 당한 셈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강제 징용을 당했다 하드라도 오리를 가자고 하면 오히려 기꺼이 10리를 가 주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과 비그리스도인의 차이가 그런 것이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내게 시간적 손해가 있고 노동을 요구해 오더라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힘없는 자가, 가난한 자가 필요한 자가 내게 도움을 요청할 때 그 도움을 거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게 물질적 손해가 되는 일을 감수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순간적으로 결론을 못 내릴 것입니다. 그 때 생각하며 주님이 주시는 지혜에 따라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이 너무 게으르고, 악해서 우리들에게 물질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때마다 주님의 입장이라면 어찌했을 것인가를 생각하며 인색하지 말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너그러운 풍성한 사랑을 나누어주라는 것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진리를 실천해 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의 차이를 보여 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을 통해 말씀을 소개받으면서 어떤 교훈을 받게 됩니까?

 

하늘나라에서 주실 유업 즉 상급을 소망하여 이 세상의 모욕, 권리의 사양, 물질의 손해, 시간의 손해를 감수하라는 것입니다.

세상 악인들을 대할 때 그들이 악하게 한대로 나도 악으로 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 수 위의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의 전부이나 우리는 하늘나라에서 소망이 있음을 확신하고, 세상 것을 양보하고 하늘 나라 것을 차지하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의 마음을 품지 말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저는 구약에서는 이런 말씀이 없는 줄 알았으나, 레위기 19:18에 “원수를 갚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벧전 3:9에는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여 하심이라” 했습니다.

로마서 12:17에도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은, 주님의 뜻은, 악은 악으로 갚지 말고 오히려 선으로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했습니다. 아니 또 선한 것을 심으면 선한 열매를 맺는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악한 자에게 악을 사용하면 악인과 함께 악으로 망한다는 결론입니다. 내 권리 주장, 내 손해를 보상받기 위해 싸우고, 헐고, 뜯고 하다보면 내게도 손해가 나고, 내 가정도 손해가 나고 상대방이나 내가 둘 다 죽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 오른편 뺨을 때리는 자에게 왼편도 돌려댄 사람을 세상 사람들은 이를 보고 바보, 천치 그렇게 세상 살다가 너도 네 가족도 다 죽게 될 것이라고 하겠지만 주님은 그렇게 살라고 하십니다. 오리 가자는 자에게 십리를 동행해주라 하시며 속옷을 빼앗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주라고 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시지 말고, 주님의 교훈에 귀를 기울려 세상에서 승리하시고, 주님이 예비하신 하늘나라의 상급을 다 받는 성도들 되시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