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를 사랑하라 – 마태복음 5:43-48

지난주에는 복수하지 말라는 제목으로 교훈을 받았는데, 복수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주 소극적인 말로 우리 귀에 들리나 주님께서는 적극적인 생활을 소개하시며, 인간 마음속에 깊이 뿌리 박힌 복수심을 버리도록 강조하셨습니다.

오른편 뺨맞고, 왼편까지 돌려대라고 하셨고, 오리 가자는 자에게 십리를 동행해주고, 겉옷을 달라는 자에게 속옷을 주며, 꾸고자하는 자에게 주라는 적극적 행동을 요구하셨습니다.

누가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세상 사람들은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에 세상에서의 어떤 손해도, 어떤 양보도 원치 않으므로 불가능하나, 그리스도를 닮기 원하여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의 제자들, 즉 작은 그리스도인들은 가능한 것입니다. 이런 것을 할 수 있으므로 이들을 새로 태어났다, 거듭났다, 새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백성, 즉 세상과 구별된 무리이며, 이 세상 사람아 아닌 하늘나라의 시민입니다. 지극히 낮은 자리에 처해있던 우리를 높은 곳까지 끌어 올려 주시고, 고귀한 자리에서 고귀한 인생을 살도록 격려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되기 위해 거듭났다는 증거를 보이기 위해, 하늘나라의 확실한 시민이 되기 위해, 왼편 뺨, 오른편 뺨, 오리, 십리, 겉옷, 속옷, 생활 철학을 머리에 두고, 해낼 수 있는 성도들이 다 되셔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산상 설교의 최고봉, 아니 주님의 교훈의 완성이라 할 수 있는 원수 사랑에 대한 교훈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는 교훈을 주시므로 하나님의 입장과 인간의 입장을 잘 구별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은 선인과 악인에게 햇빛과 비를 골고루 내리시는 분이고, 이간은 선인에게는 선을 베풀고, 악인에게는 멀리하고, 앙갚음을 주는 인간의 본성을 들추시는 것 같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하나님 안에서는 흑인이고, 백인이고, 멕시칸이고 구별 없이 모두 하나님의 가족들, 백성들이라는 것입니다. 모두 노아의 자손, 한 핏줄임을 말합니다. 우리 인간들로서는 이남과 이북이, 미국과 소련이, 전라도와 경상도가, 한인타운과, 흑인타운이 완전히 구별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는 모두가 우리입니다. 단지 우리 인간 세계에서만 나와 네가 구별되고, 내 식구와 남의 식구, 내 교회와 남의 교회가 완전 구별되는 것입니다.

며칠 전 월드컵 축구 본선 진출권을 놓고 축구를 했습니다. 일본과 한국이 붙었을 때, 한국이 일본에 완전히 졌는데 졌기 때문에 받은 상처가 온 국민에게 말할 수 없이 컸었습니다. 그 이유는 나라를 빼앗긴 국치일을 부끄러워하듯 운동 경기에 지난 국치일일이라 할만큼 상처가 컸던 것입니다. 상대국이 일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일본이 월드컵 축구에 못 나가게 되고, 우리 나라는 나가게 되어 그 기쁨이 엄청나게 컸는데, 그 큰 이유는 일본을 제치고 나갔다는 사실입니다. 설마 우리가 못 나가는 일이 있어도 일본이 나가는 것은 안된다는 것입니다. 아나운서가 한 마디 하는 것을 들어보니 일본에 대한 한국 사람이 갖는 적대 감정은 하나님께서도 봐 주실거라고 하더군요. 하나님께서 한국과 일본 중 어느 나라가 월드컵에 나가는 걸 원하셨겠어요? 아니! 미국과 이라크 전쟁에서 누가 이기기를 바라셨겠어요? 신자 권투선수와 불신자 권투선수의 타이틀전에서 누가 타이틀을 갖기를 바라시겠어요? 하나님의 입장은 그 누구든 상관이 없어요. 옛날 어른들이 하신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한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한 아들은 우산 장사, 한 아들은 나막신 장사였습니다. 비오는 날은 우산이 잘 팔리니 좋고, 비 오지 않은 날은 나막신이 잘 팔리니 좋고 비가 오든 햇빛이 나든 이 아버지께서는 문제가 될 것이 없으나 아들 각각에게는 울고, 웃어야 하는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원수 사랑이란 설교제목은 하나님과 인간을 아버지의 차원과 아들의 차원으로 구별해 주는 설교 제목이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제목을 보다 확실히 소화하도록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원수를 사랑하라 하십니다.

43-44절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라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시간에 관심을 가질 것은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씀입니다. 지난주 설교 중에 레위기 19:18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소개하며, 구약에는 이런 말씀이 없는 줄 알았는데 주님의 말씀과 같은 말씀이 구약에도 있음을 강조한 일이 있습니다. 우리의 머리 속에는 구약은 분명히 “원수는 미워하라”는 말씀이고, 신약은 “원수도 사랑하라”는 각각 다른 말씀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착각입니다. 분명한 것은 구약에도 “원수는 미워하라”는 말씀은 전연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특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했으니 이웃은 사랑하고 멀리 있는 사람은 미워하란 말이라고 독자적 해석하고 말을 붙인 것입니다. 이웃이란 자기 나라, 자기 민족, 자기 신앙 가진 자는 이웃이요, 다른 이 즉 아랍이나 기타 이방은 원수로 이런 원수들은 미워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인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범하고있는 같은 실수들을 우리들도 범하고 있어, 내게 잘하는 사람에게는 잘 하고, 내게 손해를 끼치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원수로 인식하고, 그들을 미워하고, 어떻게든 그 원수들이 망하고, 혼 줄이 나기를 바라고 그들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공격하고, 욕하고 해야 마련인 것입니다.

즉 원수란 인간들이 구분 짓고 만들어 놓은 구별이요, 하나의 환상이지 원수란 실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북과 이남이 철천지 원수인줄 알았는데, 어쩌면 머지 않아 친구가 될 가능성이 있는데, 마치 소련과 미국이 이미 친구가 된 것과 같은 것 일겁니다. 인간도 국가간에도 원수란 각자가 나눈 것이지 담을 헐고, 선을 행하면 바로 친구라는 것입니다. 팔레스틴 해방기구와 이스라엘의 화해가 산 증거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교훈 하시기를 원수같이 생각되는 자들에게 내가 욕을 하고, 대항하고, 미워하고, 앙갚음을 하면 원수가 더욱 화가 나서 내게 더 큰 원수가 될 것이니 그렇게 하지 말고 결과적으로는 그 원수와 친구가 되고 화해가 될 수 있는 목표와 목적을 염두에 두고 또 회개하고 구원받을 수 있도록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해 주시는데, 어떤 공격 앞서서 핍박하는 원수를 위해 기도하라 하십니다. 그 원수가 잘못하고 있는 죄를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도록 기도하며, 그 원수와 내가 평화 하도록 기도하며, 그 원수가 구원되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원수를 위해 기도하였으면, 원수에게 품었던 나쁜 감정이 많이 누구러지고 오히려 서서히 사랑의 감정으로 바뀌어지고, 그가 불쌍하게 느껴지며, 그들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게 되니, 그 불쌍한 사람에 대한 나의 책임감을 분명히 알게 헤 주실 것입니다.

48절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원수인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아버지를 닮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갚으며,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는 것입니다. 원수를 위해 축복해 주고 저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47절에 우리에게 질문하십니다. 우리가 남보다 더 나은 것이 즉 불신자보다 다른 교인보다 더 나은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는 미워한다면 남과 불신자와 다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도인 내가, 거듭났다는 나라면, 주님을 닮은 제자라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원수를 사랑하고, 기도하며, 축복해줄 수 있어야겠다는 것입니다.

45절에 보니 너희가 이렇게 한즉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이 된다 하셨습니다. 요1서 4:8,16에 보면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본성이 사랑이시란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 되신 우리도 같은 본성을 들어내어 원수를 포함된 모든 이에게 선을 행하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죄인도 원수도 사랑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 13:35에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서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하신 것입니다. 선을 악으로 갚는 사람은 죄인이요, 선을 선으로 갚는 사람은 양심이 있는 사람이요, 악을 선으로 갚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아버지를 닮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눅 6:36에 보면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하심으로, 인간의 복수심리, 원수 미워하는 본성을 버리고, 하나님의 본성으로 체질 개선되기를 강조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을 통해 어떤 결단을 갖게 됩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내게 간절히 바라시는 소원이 무엇임을 깨닫게 됩니까?

 

남과 달라야 상을 받는다는 결론입니다.

내게 잘하는 사람에게 잘해주고 내게 잘못하는 사람은 싫어하는 것은 남도 아니 세리도 이같이 한다는 것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자도, 비 기독교인도, 세상 사람도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과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과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다워야 한다는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듭난 자가 가지고 있는 I.D, 새사람이 갖는 증거를 보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은 신자는 원수까지 포함한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원수 사랑하는 것이 인간 내 본성에 맞지 않지만 그리스도의 본성에 따라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를 만났을 때 부드러운 말을 하고, 예의 바르게 선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 계속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 원수를 사랑하신 하나님과 주님의 사랑 생각해서 같은 아가페 사랑을 내 이웃에게 전달하라는 것입니다. 내 이웃이란 온 세상에 있는 모든 민족, 나와 의견을 달리하는 모든 사람인 것을 새롭게 인식하고 그들과 새로운 관계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제일 맘에 들지 않는다고 관계가 나쁜 사람과 관계 개선이 없다면 남과 똑같은 것이 되고 맙니다.

원수 사랑, 원수 축복, 원수 선대, 원수 위한 기도, 이것은 나의 인격이요, 내 자부심이며, 주님과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나의 체면이며, 아니 더 나아가 아버지의 핏줄로 양자 된 우리의 본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의 목표와 실천의 목표는 남과 다른 사람입니다. 아니 내 본성과 다르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우리도 온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증을 늘 가지고 다니시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