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기도 – 마태복음 6:5-8

지난주에는 은밀한 구제에 대한 교훈을 받았는데 오늘은 은밀한 기도에 대한 교훈을 받게 됩니다. 성경 공부 시간에 기도에 대한 교육을 이미 받은 대로 기도란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자는 우리의 대화의 대상이긴 하나님을 바로 알고, 진지한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달리 말한다면 우리와 대화하는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는 바를 기도란 불가능하단 말입니다. 우리의 대화자 하나님은 세상의 창조자이시며, 좁은 의미로는 바로 나 지신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또 하나님은 만물의 주인이시므로,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어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시기까지 하시면서, 우리를 양지 삼으셨으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이시어, 우리의 속마음을 꿰뚫어보시는 분이시며, 하나님은 모든 인류가 이 세상을 떠나서 영원한 나라에서 살고, 그곳에서 상 주시려고 우리를 간섭하시며, 인도하시며, 늘 돌보시는 분으로 24시간을 언제, 어디서나 그의 눈이 우리를 관찰하시며, 늘 함께 하신 분이시며, 하나님은 우리를 하늘나라의 존재로 보존하시기 위해 우리가 순수하고, 거짓이 없이 진실하며, 세상보다는 하늘나라의 소망을 두고, 살기를 바라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이를 요약한다면 기도란 하나님과의 대화인데, 하나님은 창조자요, 나는 피조물, 하나님은 아버지시오, 나는 그의 자녀, 하나님은 사랑이시오, 진실이시오, 영원한 영적 존재이시며, 하나님은 언제 어디에나 계시므로 언제, 어디서든지 대화할 수 있는 분이신데, 하나님은 우리와 늘 함께 하시기를 바라시고, 자녀와 우리가 아버지께 기도하시기를 대화하시기를 바라시는 모든 일을 함께 의논하고 아버지의 의견에 따라 우리가 살기를 바라시는 아주 자상하신 아버지이신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이런 아버지와의 대화는 모든 기독교인들이 하루 24시간을 연속적으로 가져야할 필수적인 것인데, 주님께서는 그 당시 유대인들의 잘못된 습관을 지적하시면서 우리들에게 바를 기도를 가르쳐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본문 5-8절까지에서 주님이 주시는 3가지 요점이 있습니다.

 

[1]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하지 말라(5절)

[2]골방에서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께 기도하라(6절)

[3]중언부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7-8절)

하나하나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하지 말라(5절)

신자들에게 그토록 중요한 만큼 서로 다투어 열심히 기도를 해오고 있는 과정에서 기도의 본질이 변화되어 오열되고, 부패된 기도가 현실적으로 존재하게 되었으므로, 주님께서는 이를 지적하신 것입니다. 귀한 것일수록 뭐가 많은 줄 아세요? 가짜가 많은 것입니다. 귀하지 않을 것을 가짜로 만들 필요 없어요. 기도가 그토록 중요하다 하심은 가짜 기도가 있어서임을 알게 됩니다.

기도는 누구에게 하는 거라 했지요? 하나님에게. 하나님 중심의 기도여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루에 3번씩 오전 9시, 정오, 오후 3시에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또 매일 드리는 기도문 두 가지가 있어서, 이런 기도문을 암송해온 경과를 거치며 몇 가지 기도의 불순물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기도가 성도에게 늘 따라야할 중요한 것이므로 자기의 경건을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귀의 생각이 마음속에 찾아 와서 기도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 눈에 보이도록 자랑을 위해, 자기가 아주 기도 열심히 하는 경건한 교인, 경건한 교회 지도자임을 보이려고 일부러 사람이 많이 모이는 길거리에나 회당에서 기도 흉내를 낸 것을 주님의 꿰뚫어 보시고, 이를 지적하시며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과 전연 상관없는 기도를 했으므로 하나님이 주실 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을 외식하는 자, 즉 위선자라 지적하신 것입니다. 이들은 기도시에 하나님 이름을 여러 번 들먹거렸으나 입술만 움직였지 마음으로는 않고, 사람의 눈을 생각했으며, 기도는 소리 크게 질러 하나님께 들리도록 한 것 같지만 그 기도는 결국 사람 귀의 높이까지만 올라가고 그 이상 올라가지 못한 기도가 되므로 하나님이 들으실 몫이 없으므로 하나님이 주실 상은 없고, 본인의 인간의 눈을 의식했던 대로 그 보상만으로 사는 어리석은 짓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아들을 팔아 우리를 샀는데 우리는 하나님 팔아 사람을 산 행위와 같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기도를 하지 말도록 권하십니다.

 

[2]골방에서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께 기도하라(6절)

6절 말씀은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아버지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진정코 아버지께 얻기를 기도하는 자에게 아버지께서 응답하실 거라는 것입니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라는 말은 첫째, 내가 기도하는데 내 주변에 들러리가 필요 없고, 증인이 있을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오로지 나와 하나님 둘만의 장소요, 시간이라는 뜻입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아니하고 내 속마음을 그대로 털어놓고 전달할 수 있는 밀실을 말합니다. 골방이란 연극배우와 같이 사람을 의식하여, 소리를 크게 해야 한다든지, 이상한 소리를 내서 기도의 사람을 과시해야 한다거나 이상한 몸짓하여 능력이 역사한다는 흉내를 내서 보여야할 어떤 외적 요소가 없는 분위기를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골방이란 아주 작은 공간을 말하는 것으로 조용하고, 아무 방해받지 않은 곳을 말합니다. 아니 아무리 넓은 들에서나, 산에서도 그 누구의 방해 없이 하나님과 내가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와 마음가짐이라면 그 곳도 골방이 될 수 있으며, 수 만 군중 틈에서도 이웃의 귀, 눈과 상관없이 내가 하나님께 온전히 기도드릴 수 있다면 그 곳도 골방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작은 골방에서도 내 마음이 집중이 되지 아니하고 설레 이는 마음으로 안정이 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 온전히 기도할 수 없는 곳이 되므로 골방에 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께만 은밀하게 드리는 기도에 응답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기도는 골방에서 하라는 참뜻을 깊게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기도원에 가서 하는 것이 통념인데 혹시 기도원에서 내가 했던 기도가 골방에서 기도하라는 의미에 어긋난다면 40일 금식기도도 받을 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40일 금식 기도의 상은 누구에게 받을까요? 세상 사람들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골방에서 은밀히 기도하라는 권면이십니다.

 

 

[3]중언부언하지 말라 입니다(7-8절)

갈릴리 지역은 이방인들이 이웃에 살았고, 또 이방인들이 함께 섞여 살았던 관계로 갈릴리 지방에 있는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의 이방신에게 드리는 기도 모습에 오염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방신 앞에서 반복하여, 오랫동안 질질 기도를 끌어감으로 이방신도 지겹고 기도하는 사람도 지겹게 되는 기도 습관이 있었는데, 유대인들도 이를 닮아 오래 기도 하는 것은 경건의 정도를 의미하며, 오래 기도할수록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져, 기도를 오래하는 것으로 이력을 삼은 사실을 주님이 아시고 시정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중언부언이란 반복 기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언부언이란 오래 기도를 해야 철야를 해야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줄 알고, 특별한 의미도 없이 간절함도 없이, 감동도 없이, 시간을 늘리는 기도를 말할 수 있습니다. 중언부언이란 기도의 형식을 갖추어 있고, 좋은 기도의 낱말로 잘 짜여진 기도이나 내 마음이 살러지지 않은, 감동이 없는 외워진 기도나, 글로 써진 기도를 읽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중언부언이란 준비 없는 기도로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본인도 모르고, 듣는 이들로 혼잡케 하는 기도를 말할 수 있습니다. 중언부언이란 기도의 참뜻을 모르고 기도의 원칙을 전연 무시한 혼자만의 중얼거림일 수도 있습니다. 또 중언부언이란 기도하는 동안 생각을 딴 곳에 두고 하는 기도나 입버릇처럼 주님과 할렐루야를 섞어가며 이를 경건미를 내는 것이라 여기는 입버릇의 기도라 할 수 있겠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에 똑 같은 기도를 반복적으로 3번 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은 3번이지만 더 많이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배를 탔는데, 파선되어 있다고 가정합시다. 밤새도록 ‘주여 살려주십시오’를 수 백 번 반복했어도 나를 중언부언이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 전능 자 하나님이 계시고, 능력자의 힘을 필요로 하는 갈급함이 있고, 진실 된 표현이 있다면, 아무리 여러 번 반복되어도 중언부언이라 하지 않을 것입니다.

7-8절에 보니 이방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시는 줄 아는데 아버지께서는 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있어야할 것을 아신다고 했습니다. 구할 것을 다 아신다는 말은 또 기도란 필요가 없다는 말로 해석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깨어서 기도해야 한다는 주님의 요청을 잘 알고 있으나, 필요 없이 긴 기도, 엿가락 느리듯 늘리는 기도를 중지시키기 위해 표현하신 말씀인 것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기도가 길어진 기도의 이유가 뭐겠어요? 그것은 길게 해야 한다는 오해, 준비 없는 기도, 하나님께서는 일이 되어진 상황 설명까지 다 설명이 필요하신 분 인줄 아는 기도, 하나님께 성경 공부를 시키는 기도, 지금 기도하는 참 목적을 바로 모르고 방황하는 이유로 기도가 길어질 수 있습니다.

전 5:1-2에 “너는 하나님 앞에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은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친한 아버지라도 준비하고, 정중하고, 진실하며, 요약하며, 분명하게 기도하므로 중언부언의 기도에서 치료될 줄 압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모두는 각자의 기도 습관으로 기도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습관과 자기 경험도 좋지만 주님이 주신 기도의 처방에 따라 치료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는 기도가 있다고 지적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자신의 기도를 진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사람을 의식하고 사람의 귀에 관심이 가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온전히 하나님을 향하지 아니하고 인간을 가르치거나 인간의 귀에 들려주기 위한 기도를 하고 있는지 자기 기도가 중언부언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내 기도가 거리와 회당 즉 교회에서나 사람 보는 대해서만 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아니 기도원에서만 하고 있고, 그런 것만 좋아하고 있는지? 기도원 기도를 높이 평가하고 골방에서 혼자 하는 기도를 소홀히 하는지, 소리 내어 떠들어대는 기도를 조용한 소리로 드리고 기도보다 더 좋아하는지 우리 기도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사람과 전연 상관없는 장소에서 우리 둘만의 은밀한 장소에서 대화하기 원하십니다.

어떤 이유로도 둘 사이에 방해가 되는 아무 것도 있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기도가 하나님과의 대화 이외의 다를 목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위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루에 세 번 기도하는 것보다 24시간 언제 어디서나 통화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누구 통해 소식 듣는 것 말고 직통 전화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아침에 일찍 QT Time을 갖고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연속적인 경건과 기도가 이어져야 합니다.

 

주님이 바라시는 진실 된 기도 통해 믿음이 더욱 향해지고 소망과 사랑과 확신을 늘려주는 그런 기도가 매일 연속되기를 원합니다. 짧은 기도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마음이 실려진 기도가 응답 받는다고 했습니다. 응답 받는 기도로 우리의 생활이 더욱 활력이 넘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