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1) – 마태복음 6:9-10

지난 주 부터는 기도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실천을 위해 유대교의 잘못된 기도 습관, 또 이방신을 섬기는 자들의 잘못된 습관을 지적해 주시고, 바른 기도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과 다음 주는 기도문의 모범이 되는 주기도문을 통해 우리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시게 됩니다. 주기도문하면 너무 우리가 쉽다고 생각하고 경솔하게 되는데, 주기도문을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것보다, 주님의 가르치심은 더욱 뜻이 깊고 분명한 것이어서 우리들이 새롭게 하나하나 조명해 보고 우리 기도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정통이라고 자부하는 큰 교단 작은 교단들이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문을 기도를 대신하는 기도문으로 그대로 활용하고 있는 현실에서 주기도문을 강해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신 하나님께 많이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강해를 듣고 말하기 전에라도 분명한 사실은 주님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시기 전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기도하는 의식적 기도를 지적하셨고, 또 말을 많이 해야 자기의 이방신이 들으시는 줄 알고, 아무 뜻도 없이 또 하고 또 하고 하는 반복 기도,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지적하시고, 하나님께 은밀히 하고, 간결하게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후,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기도를 바로 하도록 주기도문을 통해 기도를 가르치신 사실입니다. 그런 본래의 뜻이 잘못 전달되어, 3세기부터 주기도문이 예배에 기도문으로 사용되기 시작되므로, 주님이 지적하신 형식적, 기도의 잘못을 저질러오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무의미한 의식적 기도를 고쳐주려고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는데 이 주기도문 때문에 의식적 기도를 또 출생케 하는 실수들을 교회들이 저지르고 있는 현실인 것입니다.

원어를 알고 유명한 학위를 보유하고 있는 목사님들의 교회에서 아무런 부담 없이 그대로 주기도문이 기도문으로 사용되고 있음은 기독교가 주님의 가르침보다는 자기들의 전통과 자기들의 의견에 빠져있고, 자기만족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이런 현실을 보는 루터는 말씀하시기를 “주기도문은 최대의 순교자가 되어 있다”고 개탄하였다고 합니다. 주기도문의 본뜻을 죽여 버리고 활용하니 주기도문이 순교를 당한 셈이겠지요.

오늘 우리 성도들은 주님의 가르치심에 경청하시어 주님의 가르치심의 본뜻에 부합되는 기도를 해나가시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주기도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첫 부분을 하나님께 해당되는 부분과, 두 번째 부분은 사람에게 해당되는 부분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 해당되는 부분을 통해 교훈을 받게됩니다.

본문 9절 10절은 간단한 2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입니다.

 

이 두절을 5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1]“이렇게 기도하라”입니다.

성경대로 한 교회가 되기 위해 “이렇게 기도하라”는 대로 주기도문을 외워야 한다면 성경의 뜻은 모르고 문자만 지켜오는 교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란 주님께서 이미 외식적이며 중언부언적인 기도를 책망하셨고, “이렇게”란 단어의 원어인 “후토스”는 글자 그대로 하라는 뜻이 아니라 그 정신과 내용 및 순서 등에 대한 모범적 제안을 의미한 것으로 이 기도문을 외워서 하란 말이 아니고, 뜻을 이해하고 마음으로 하라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의 범주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라”는 “이렇게”를 꼭 고집한다면 이는 주님께서 지적하신 중언부언과 외식적 기도의 교훈과 마찰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하라하신 “이렇게”란 말을 만족시키기 위해 기도문이 주는 뜻을 하나하나 바로 살펴보고 있는 것입니다.

 

[2]“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입니다.

기도란 4가지의 핵심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나눔과 친교, 즉 단 둘이서의 만남을 통한 깊은 관계가 이뤄지지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 의뢰하는 것, 자신을 드리는 것, 즉 고백과 헌신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기도는 곧 commitment가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기도란 요구, 요청 즉 자신의 바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로 기도란 하나님이 절대 전능자 이심을 알고 그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의 4가지 핵심 중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하나님을 부르는 것은 첫 번째의 핵심인 하나님과의 나눔과 친교와, 두 번째의 핵심인 자신을 위탁하는 것, 자기 자신과 시간을 바치는 것, 즉 commitment(콤밑트먼트)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이란 하나님은 보이지 않은 영적 존재로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 한다는 기도의 방향을 제시한 것이며,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고 그의 아들이 하늘에 계시고 우리도 하늘에 소망을 둔다는 고백이요, 세상을 부인한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우리 신자들은 말하는 것으로 우리 속에 들어가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께 나아가 죄를 회개한 자여야 한다는 뜻이 들어 있으며, 우리를 아들로 양자 삼아주신 감사의 뜻이 들어 있고, 세상 아버지가 친근하듯 자상하고, 돌보시는 따뜻한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며 기도해야 한다는 뜻이고, 아버지의 자녀들인 성도들 모두는 한 형제, 자매임을 잘 아는 그런 마음으로 기도해야하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3]“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입니다.

하나님은 본래 거룩한 분이신데, 자녀들인 성도들의 조잡한 언어와 행동으로 아버지의 이름이 더럽혀질 수 있는 기능성이 있으므로, 나 때문에 그런 일이 있지 아니하고, 내 믿음과 내 실행을 통해 아버지께서 거룩하신 그 이름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며, 내 믿음 때문에 아버지의 이름이 다른 모든 신들의 이름보다 구별되고, 뛰어나도록 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내 생활과 믿음이 거룩하게 되므로, 내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할 수 있다는 말로 나를 거룩하게 살게 해주시어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해지고 영광되게 해주시라는 것입니다. 더 넓혀서 모든 인류가 그런 삶을 살아서 마땅히 받으실 영광을 다 받으시게 되기를 소망한다는 기도인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명예와 물질을 섬길 가능성이 있는데, 오직 하나님만이 예배의 대상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4]“나라이 임하옵시며” 입니다.

주기도문에 나와 있는 그 본래의 뜻은 천국인 교회가 세워지기 바란다는 뜻이며, 다시 다를 말로 푼다면 하나님께서 제 자신을 통치케 해달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목표와 기도의 초점은 천국, 즉 하늘나라가 내 마음에 늘 이뤄져 있는 것 24시간 하나님께서 나를 지배하시고 통치하시고 간섭하시게 되기를 소망한다는 뜻입니다. 지금도 천국 생활을 하고 미래에도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주님 통치 안에 들어가기를 소망한다는 기도인 것입니다.

 

[5]“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말로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우리의 계획, 우리의 뜻, 내 계획, 내 뜻은 꺾어지고, 아버지의 뜻이 실천되기를 바란다는 자기 부인의 의지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내 뜻대로 말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어지기를 바라셨던 주님의 기도와 뜻입니다. 솔직히 강력한 기도의 울부짖음은 아버지의 뜻을 양보 말고, 내 뜻 실천을 위한 것이나, 주님은 내 뜻을 사양하고, 하나님의 뜻만이 이뤄지기를 바란다는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절대적 순종과 복종을 고백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어떻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십니까? 주님으로부터 기도에 대해 무엇을 배웠습니까?

주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라”하시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며,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가르치셨는데, 이 말은 곧 주기도문이라 하여 주님이 가르치신 대로 하지 않고, 오히려 순종하기 위해 문자 그대로 암기하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기도하지 말라는 말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럼 어떻게 기도하라는 것이었습니까?

 

첫째, 우리가 영적 존재시며 나를 제일 사랑해 주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향해 기도하고 말씀드리라는 것입니다.

 

둘째, 나 같은 죄인을 양자 삼아주시어 아버지의 아들이 되게 해주심으로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계심같이 나도 하늘에서 살고 살 수 있는 소망을 주심에 감사하라는 것이며,

 

셋째, 씨족이 다르고, 종족과 색깔이 달라도 아버지의 가족에서 모두 한 형제, 자매의 정을 느끼게 해주셨음에 감사드리며.

 

넷째, 아버지는 거룩하시고 의로우시지만, 아들 되는 딸 되는 내가 세상에 빠지고 오염되어, 나 때문에 아버지의 이름에 아버지의 얼굴에 먹칠을 할 수 있을 가능성이 늘 있음으로, 나를 지켜주시어 내 믿음과 행동 때문에 아버지의 거룩하심의 명성이 그대로 유지되도록 해주시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다섯째, 내 마음은 늘 마귀가 주장하고 내가 주장하게 되므로 갈등과 모순과 불행이 있기 마련인데, 하나님의 성령께서 온전히 나를 간섭하시고 통치하시어 나와 마귀는 하나님의 지배를 받게 해주시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나라에 들어가게 되기를 구하는 기도를 하라는 것이며.

여섯째, 늘 내 욕심을 따라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기도하게 되고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내 삶의 목표와 내 기도의 첫째 목적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뜻을 이루기 위해 살게 해달라고, 내 뜻과 욕심을 두 번째 순위로 물러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의 우위를 두고 주기도문을 기도문으로 외우지는 않지만 우리는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를 주님을 통해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공적 사적 기도에서 주기도문이 응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의 응용이란 기도시 마다, 내 욕심을 채우는 내 요구로 기도를 채울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에 감사하며, 내 생활을 통해 그가 영광을 받으시며, 내 마음을 하나님께서 온전히 통치하시게 되기를 기도하며, 내 뜻보다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나를 통해 이루어지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즉 이 기도 내용은 내 삶의 목적과 방향 또 삶의 의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님 차원의 높은 기도를 하게 되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