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2) – 마태복음 6:11-15

지난 주에 주기도문의 앞부분을 강해했고, 오늘은 주기도문의 뒷부분을 강해하게 됩니다. 주기도문의 앞부분은 하나님께 연관된 기도라 한다면 오늘 다룰 뒷부분은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연관된 기도가 되겠습니다. 앞부분도 3 가지 기도제목이 있었고, 뒷부분도 3 가지 기도제목이 들어 있는데, 오늘은 주기도문의 뒷부분 세 가지 기도 제목에 대해 하나하나 생각해 보고, 주기도문의 결론을 지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주기도문 강해를 통해 우리의 일상적인 기도에 잘 적용되는 유익한 말씀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1]“오늘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11절)입니다.

주기도문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있으므로 “나”가 아니고 “우리”라는 복수가 계속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에게 양식을,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우리” 죄를, 이것을 내 개인 기도로 좁혀서 기도한다면 하늘에 계신 나의 하나님 나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내”가 “나”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 준 것 같이 “내”죄를 용서하여 주옵시고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고쳐서 “오늘 날 나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11절).

오늘 내가 먹어야할 하루 분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주님 당시에 한 데나리온의 이랑을 받은 노동자들이 하루 벌어서 하루를 살아야하는 여유 없는 생활이었음을 짐작해 보면서, 혹시 몸이 아파서 일을 못한다거나 또는 일을 시켜주지 않는다면 하루 먹을 것에 구멍이 나는 형편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요사이 같은 불경기에는 실감이 나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한인타운 근처에 일을 시켜 주기를 바라고, 서있는 멕시칸들을 보십니까? 하루 종일 서서 일 시켜 주기를 가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생각을 해봅니다. 주님은 내일 일을 염려 말라는 분이십니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라고 한 분의 뜻은 내일 먹을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 아니고, 오늘 먹을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전도에 내 보내시며, 돈주머니도 가지고 가지 말고, 옷도 신도 지금 입고 있는 것, 신고 있는 것만으로 떠나지 두벌 옷, 갈아입을 옷도 준비하는 것을 금하신 분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우리 교인 중 오늘 하루 먹을 것을 놓고 기도하는 가정은 없으리라고 보는데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미국 땅에서도 지금 한 개의 밥이 필요한 사람이 있고, 이 지구상에서도 어제 밤에 굶고 이 아침에도 굶어서 일용할 양식을 주시라고 기도해야하는 인구가 엄청나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일용할 양식이 필요한 자에게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내일 먹을 것도 있고, 다음 주 먹을 것까지 쌓아둔 사람더러 오늘 먹을 것이 있는 사람이 주기도문을 그대로 해야 한다고 그렇게 기도했다면 그 기도는 속이는 기도이거나, 그 기도는 중언부언하는 기도라 할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아니 젖먹이 아이에게 젖을 줄려면 엄마가 무엇을 먹어야 젖이 나올 텐데, 먹을 것이 떨어진 가정에 아이 엄마가 굶는 것까지는 참을 수 있지만 젖먹이 아이에게 엄마가 못 먹어 젖이 나오지 않는 어머니의 지금 한 끼의 양식을 달라는 기도만큼 절실한 마음으로 백만장자가 잘 차려진 음식을 놓고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셨다면 이 음식을 어떻게 먹을 수 있겠느냐고 기도할 수가 있겠습니까? 물론 은행에서 몇 백 만 불이 저축되어 있어도 음식 주시지 않으면 굶을 수밖에 없다면 감사와 은혜를 알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니 우리 모두는 굶주린 사람 생각하며, 오늘 아니 지금주신 음식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기도와 함께 음식을 잡수시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때를 생각하고 가난한 자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잠언 30:8-9절에 보면“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아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 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한 비록 험한 내 아파트이지만 오늘 이 방에서 잘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매일 감사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다운타운에서 뿐만 아니라 이 지구상에 집 없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을 것이며, 내가 타고 다니는 차가 요사이 쉽게 말하는 후진차라도 없는 사람 생각해서 날마다 차 탈 때마다 감사하기도 하라는 주님의 가르치심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란 혹 양식이 있는 사람은 하루 순간마다 쓸 것을 주신 하나님께 삼사를 기도로 찬양으로 표현하라는 것입니다.

 

[2]“내가 나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저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12절)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서 하라고 지시하신 것, 또 하지 말라고 지시하긴 것에 순종치 않으므로 허다한 죄를 짖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지 말라는 것을 하지 않으므로 범죄지 않은 것으로만 생각하지만 우리에게 하라고 지시하신 많은 것들을 하지 못한 빚 진자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빚을 탕감해 달라는 기도가 필요한 빚 진자들입니다. 은혜에 보답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14절, 15절에 보니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하나님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말씀하심으로 내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려면 내가 나에게 준 다음에 내 죄 용서를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복잡한 사회이므로 인간관계도 복잡합니다. 일상생활에서 나에게 부담을 주는 나를 괴롭히는 주변 인물들이 상당히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나에게 크고 작은 손해를 끼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일을 만나도 참고 그들을 용서하고 그런 사실을 내 머리에서 잊어버리는 훈련이 잘되어 있지 않으면 결국 그 결과로 그 사람이 나를 괴롭히는 자체보다 그것을 되새기고 기억하고 괴로워하고 하는 것이 자기를 더 괴롭히게 됩니다. 즉 자기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남이 아니라 결국은 자기 자신이 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남의 실수, 잘못, 남이 내게 진 빚을 내가 너그러이 용서해 주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며, 이런 일이 먼저 있어야 그 다음 하나님께 자은 나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주기도문을 너나 나나 똑같이 외워서 공동적으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하고 기도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에게 빚 진자, 나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 주지 않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기도했다면 하나님 앞에 거짓말하는 일이요, 또 백날 그런 기도해도 중언부언이지, 자기의 죄 용서를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남의 죄용서 못하면 내 죄도 용서 못 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대단하게 남의 죄를 용서해주고 내 머리에서 잊을 수 있을 때 하나님께서도 내 죄를 온전히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의 머리에서 내 죄가 기억도 되지 아니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원수가 망하게 해달라고 혹 기도하고 있다면, 내 원수 지금 혼 좀 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면 주님의 가르치신 기도와 정반대의 기도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3]“나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13절)입니다.

인간은 시시때때로 세상 유혹에 빠지기 쉽고, 사단의 권세가 나를 지배할 수 있습니다. 사단의 위력은 깔보지만 말고 대신 하나님께 늘 기도하여 유혹에 빠지지 않고, 사단의 세력에서 온전히 지켜달라는 기도를 날마다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믿음이 좋다고, 교만한 것은 금물입니다. 사단은 나보다 큰 자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지배아래 있으므로 하나님 의지하여 내가 이길 수 있으므로 하나님께 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4]“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13절)입니다.

본문에 보면 이 부분은 괄호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찬송가에는 ‘대개’라는 단어가 들어있고, 성경 본문에는 빠져 있습니다. 대개라는 말은 For, 왜냐하면 이며 괄호 안에 들어 있는 이 구절은 유명한 사본에는 빠져 있는 부분입니다. 다만 기도 뒷부분에 하나님의 나라, 권세, 영광을 찬양하는 말이 들어가는 것이 장려될 일이므로 기도문에 들어있는 이 말씀을 감사히 맞아도 되겠습니다. 우리의 모든 기도는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문구가 들어가게 되는데 주기도문은 이것이 빠져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주간에 걸쳐서 주기도문 강해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왜 우리에게 이 말씀을 주셨을까요? 성경에 근거도 없는 사도 신경을 예배 때 외워야 정통이고, 외우지 않은 교회를 이단시하는 현 기독교계는 역시 또 성경에 근거가 있는 주기도문을 그대로 해야 하지 주기도문을 외워하지 않는 교회는 또 이상한 교회로 보는 현실이 현세 기독교계의 현 주소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한번도 주기도문을 그대로 외워서 기도를 대신해 본 일이 없습니다. 그 자체를 손질하지 않고 그대로 기도로 받지 못하고 주기도문을 기도로 대신하지 않은 이유는?

 

첫째, “나라이 임하옵시며”의 나라는 교회로 보기 때문에 그 교회는 이미 오순절에 세워졌으므로 이미 이뤄진 기도는 다시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며.

 

둘째,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의 본 뜻이 오늘 하루 양식을 달라는 진지한 기도인데, 부자나 가난한 자나 일률적으로 할 수 있는 기도가 되지 못하며

 

셋째,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라는 기도를 용서해 준 자나 용서 못 한자나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내용이 되지 못하므로 회중의 공통 기도문이 될 수 없으며

 

넷째, 기도문의 마지막에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내용이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와 같이 기도하라는 것은 이것을 외워서 그대로 천년만년 변화 없이 그대로 하라는 것이 아니고, 이 기본 정신으로 이 기본 제목으로 하하는 기도의 한 모양으로 받아들여 주님이 주신 기도문을 최대한 활용해야 함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리 기도에 적극 적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 했으니, 우리의 기도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영적 우리의 아버지이게 아버지께만 드리라는 것이며.

 

둘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 했으니 아버지가 받으실 거룩하심이 조금도 손상이 없이 최대의 영광을 받으시도록 우리의 생활을 거룩하게 지켜달라는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나라이 임하옵시며”라 했으니 내 마음에 통치자가 하나님이 도시는 천국에 내 마음에 이루어지게 하고 내 가정, 내 교회, 내 사회가 역시 하나님께서 통치자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했으니,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하나님의 뜻이 우리 중에서 나타나고 이루러지게 되기를 기도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에 절대 순종함이 있게 해 달라는 기도와 다짐이 있어야 하겠으며.

 

다섯째,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 했으니, 오늘 아니 지금 주신 음식을 놓고, 내게 큰 것을 주신 것과 똑같은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어야 하겠으며 음식 한 그릇이라도 하나님께서 내려 주심을 감사하고 그들이 의지하는 기도의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여섯째, 우리의 크고 잘못된 죄를 용서받기 위해 내게 잘못한 내 이웃 내 친구들의 잘못은 먼저 용서하고 잊을 수 있을 때 하나님께 간절히 내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빌며.

 

일곱째, 내 마음의 귀, 눈을 통해 얼마든지 유혹될 수 있는데 유혹되어 시험에 들어가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권세로 나를 제압하려는 사단으로부터 나를 늘 지켜 달라는 기도를 하라는 것이며

 

여덟째, 내 기도를 응답하실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찬양하라는 기도문의 교훈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기도를 드려 응답받으시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