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7장 12절 한 절만을 가지고 말씀을 증거하게 됩니다. 몇 절을 더해서 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 본문 말씀의 중요성 때문에 오직 한 절만 택한 것입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교훈을 보통 황금율이라고 부릅니다.
다 따라서 해보시기 바랍니다. ‘황금 율.’ The golden rule. 글자 그대로 황금 교훈인 것입니다. 달리 말한다면 이 황금 교훈만 갖자가 잘 지켜 왔다고 한다면 변화된 세상에서 우리가 지금 살고 있을 겁니다. 평소에 우리가 잘 아는 교훈이지만 지금 이 시간을 통해 새롭게 도전받고 실천하여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1]황금율의 의미
[2]황금율의 적용 범위
[3]황금율의 가치와 결과
[1]황금율의 의미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뜻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소극적 의미입니다. 황금율의 소극적 의미는 내가 싫은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으로부터 받은 대우가 내 속을 상하게 한다면 그런 대우를 남에게 베풀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이 나를 형편없이 대하던가요? 그런 대우받고 불쾌하셨다면 그런 대우를 남에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부간, 부모와 자녀간, 사업간, 직원간, 시어머니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해 억울하고 분한 경험이 있는 며느리라면 자기는 앞으로 며느리에 그런 대우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이 내 말을 한 것을 듣고 몹시 속이 상했다면, 나는 남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의 하는 잘못된 것을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얼마든지 실례를 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입을 벌리게 될 때, 기쁘다, 감사하다, 행복하다 라는 표현보다 불쾌하다, 억울하다, 속았다, 나쁘다 라는 량이 훨씬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우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불평하고 있는 것, 그런 것들을 우리는 남에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인 것입니다. 1만 달란트 빚진 자와 1백 데나리온 빚진 자의 비유를 잘 아시잖습니까? 사실상 우리 인간은 남에게는 함부로 하면서 나는 그런 대우를 받고 싶어하지 않는 약점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잘 실천하기 어렵겠지만 우리 성도들은 이웃에 대해 나와 똑같은 입장에 놓고, 내가 당했을 때 싫은 그런 피해를 이웃에게 베풀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성인이며, 사람은 못하되 성인은 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는 적극적인 의미입니다. 우리 인간은 남에게 정당한 최상의 대우받기를 원하는데 바로 그런 최상의 대우를 남에 베푸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내가 베푼 그런 대우로 갚지는 않는다 해도, 나는 내가 남에게 받고자 하는 그런 최상의 대우를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행동을 본다면 이런 대우를 할 필요 없다고 생각되겠지만, 나는 원치 않으나 주님은 최상의 대우를 해 주라고 하나 대우를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 대한 내 기준도 아니요, 그 사람이 기대하는 기준도 아닌 주님의 기준, 편견과 선입견 없는 최상의 대우, 사람은 못하나 성도는 할 수 있는 대우를 하라는 것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이 기본 뜻에 따라, 내 이웃을 바로 나로 생각해서 내가 존중받기를 바란 만큼 존중해 주는 것, 남의 경우를 내 경우로 생각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상대방 보다 내가 언제나 먼저 사랑을 베푸는 것, 희생적이요, 능동적이요, 적극적인 사랑을 베풀라는 것, 타인에게 기대하기 전에 자기가 먼저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황금율’이란 내가 받고 싶지 않는 대우는 남에게 하지 말고 내가 받고자 하는 그런 대우로 남을 대우하라는 것, 사람을 가리지 않고 그런 대우를 하라는 것입니다.
[2]황금율의 적용 범위
먼저 지역적 범위입니다. 자기 집, 남의 집, 자기 마음, 남의 마음, 자기 나라, 남의 나라를 초월하여 가정, 직장, 단체, 어느 지역, 어느 단체나 적용하며, 직장에서 내 일하듯 열심히 일해주고, 직장에서 내 것 쓰듯 아껴 써주고(물건), 직장에서 내 사업장 같이 깨끗이 정리해 주라는 것입니다.
인간적 범위는 형제, 친구, 이웃, 동료, 기독교와 비기독교나 보기 싫은 사람, 외국인, 이방인, 야만 나라에도 똑같이 적용되며, 미운 사람, 고운 사람 없어요. 왜 없어야 하나요? 하나님께서는 밉고, 곱고 간에 구별 없이 모두를 위해 사랑을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3]황금율의 가치와 결과
황금율은 마6:33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과 함께 산상 수훈의 2대 강령이라고 할만큼 위대한 교훈입니다. 이는 주님이 가르치신 교훈 중 가장 잘 알려진 교훈으로 산상 설교의 총결론이라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지대한 관심을 갖지만 타인의 이익에는 무관심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말씀으로 이웃과 올바르게 사는 방법을 가르치셨고, 이 말씀대로 인간의 삶이 이루어질 때 이 땅에는 완전한 평등과 평화가 실현될 것입니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 입장에서, 가난한 사람은 부자의 입장에서, 유식한 사람은 무식한 사람 입장에서, 무식한 사람은 유식한 사람 입장에서 상대를 위해 처신해 주므로 가난한 자, 부자, 지식있는 자, 무식한 자, 남자, 여자, 어른, 아이들, 권력층, 평민의 갈등과 gab이 없이 평등이 실현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지혜로 황금율에 따라 사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삶이며, 모든 이가 화합되고, 불평 불만이 있을 수 없게 됩니다. 지상에 천국이 이루어져, 가정도, 교회도, 사회도, 직장도, 천국 맛을 보게되는 결과가 됩니다. 황금율이란 단순한 대인 관계의 법이나 사회적 윤리적 측면에 관한 법이므로 계명의 핵심, 즉 율법과 선지자 됩니다. 황금율은 우리가 하나님께 어떻게 대우해 드려야할지 하나님의 심정을 우리에게 표현해 주신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아주 실제적인 설명이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그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박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하나님을 얼마만큼 사랑해야할 지에 대한 사랑의 방향과 이웃을 위한 사랑의 양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려분!
오늘 주신 본문 말씀을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하겠습니까?
이 세상 누구도 다른 사람들이 나를 잘 대접해 준 것을 싫어할 사람이 없습니다. 존경 받기를 원하고, 친절한 대우받기를 원하고, 나를 위해 희생적으로 도와주는 것을 보고 퍽 기분 좋아하고 행복감에 빠질 것입니다. 반대로 내가 받고자 하는 대우를 받지 못했을 때, 마음이 상하고 기분 나쁘고, 심하게는 자격지심과 열등의식을 갖게 되어 스스로 불행한 사람으로까지 전락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불쾌하게 하는지 너무나도 잘 아는 우리는 우리의 관심을 나에게서 이웃으로 돌려서 이웃을 즐겁게 기분 좋게 행복하다고 느끼게 해주라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또한 교회에서 상대가 나에게 내가 해준 대우만큼 해오지 않아도 계속하라는 것입니다. 상대가 나와 친하지 않거나 심지어는 사이가 나쁜 사람에게도 사랑으로 돌보라는 것입니다. 친절, 사랑, 물질, 시간을 나누어주라는 것입니다. 인색하고, 짜증내고, 불친절하고, 퉁명스럽고, 이기적이고, 양보할 줄 모르던 옛날 모습에서 완전히 변화되어 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변화된 모습을 통해 증거 해보라는 것입니다. 새해가 되더니 새사람이 되었구나! 하고 이웃이 내 변화를 읽을 수 있게 해 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많이 변했다는 소리를 들어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이런 참 성도가 있는 가정은 화목하고 행복할 것입니다. 이런 성도가 있는 교회는 평화스럽고 사랑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성도가 있는 직장은 화기애애한 좋은 직장 분위기가 될 것입니다. 되돌려 받기 위해 내가 헌신하고, 희생하고, 친절하고, 아껴주고 한 것은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사회에서 그를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그에게 모두다 칭찬과 좋은 대우를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날마다 좋은 대우를 받아야만 합니다. 아니 마지막 날에 심판 받을 때 나를 의인의 자리에 서게 해 주시는 대우를 받아야 합니다. 이런 대우받기를 바라는 우리는 매일 귀한 시간 드려, 귀한 정성 들여, 귀한 물질 드려, 그의 말씀을 이해하고, 그의 말씀을 지키고, 그의 말씀을 소개하는 일에 눈을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의 눈이 하나님께 집중해야 될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최선의 대우를 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도 나에게 최선의 대우를 하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들, 사람에게와 하나님에 높이 대우받으시기를 바라십니까? 받고자 하는 대로 내 이웃과 하나님에 눈을 돌려 최선의 대우를 해보십시오. 곧 내가 좋은 대우를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람마다 하나님께 좋은 대우받는 성도들 되시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