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둥병자를 고치심 – 마태복음 8:1-4

주님께서 지상에 내려오신 그의 사명을 감당하시는 첫 발을 산상 설교를 내 딛으시고, 산상 설교를 마치신 후, 이젠 병자들을 고치시므로 그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 하시게 됩니다.

7장 마지막 절에 주님께서 산에서 가르치심을 보고들은 청중들은 주님께서는 서기관들과 같지 않고 권세 있는 자와 같다고 감탄하였는데, 이것을 시발점으로 해서 이젠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심으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아버지의 권능으로 병을 고치심을 알게 하며, 주님께서 메시야이심을 증거 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기록으로는 병자고치는 시실 중 한 문둥병자를 고치신 사실이 맨 먼저 기록이 됩니다. 모든 말씀을 대할 때마다 한결같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지만, 오늘 본문을 가지고 설교 준비를 하면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새롭게 깨닫게 되어 매우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주 평범하고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 같지만 이 본문을 통해 하나님과 우리 각자의 관계, 주님과 우리 각자의 관계가 새롭게 정립되어 주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여 주님을 더욱 뜨겁게 사랑하시는 성도들 되시기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본문을 3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보며, 이 본문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을 찾고, 그 교훈을 우리 생활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겠는지 주님의 음성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문둥병자의 소원 (1-2)

[2]주님께서 들어주심 (3)

[3]주님의 지시 (4)

 

[1]문둥병자의 소원(1-2)

1절에 보니 “주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고 기록된 것을 보니 산상 설교는 큰 성공을 거둔 셈입니다. 산상 설교를 기점으로 새로운 지도자를 만난 청중들과 이에 대한 소문을 들은 많은 무리들이 주님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게 된 것입니다. 이 무리들 중 한 문둥병자가 주님께서 나타나서 주님께 그의 소원을 말씀드리는 사실이 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주님께 아뢴 그의 소원을 살펴보기 전에 예수님 당시의 문둥병 환자의 사회적 위치나 신분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문둥병은 그 당시 가장 끔직한 병으로, 너무 보기 흉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었으며, 문둥병 같은 험한 병은 죄의 결과로 오는 것으로 믿어왔던 것입니다.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모세를 원망하다 문둥병에 걸린 것이 그런 인식을 갖게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문둥병은 보통 말하는 천벌로 인식된 것 같습니다.

레위기 13:45-46에 보면 문둥병 환자는 남들이 쉽게 구별하도록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 입술을 가리우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라고 외치고 다닐 것이며, 병이 있는 동안은 부정하므로 혼자 살되, 진밖에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혹시 밖에 나와도 사람들과 그 당시 습관은 죽은 자 같은 존재로 여겨져 검정 옷을 입게 했고, 성문 밖에서만 살게 했으며, 인간 의술로는 불치의 병으로 알고 있었던 병이었습니다.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자로 자기 나라에서 치료받지 못하고 선지자 통해 병을 낫고자 이스라엘에 왔던 이유가 바로 그런 것이라 봅니다. 문둥병자들은 가조, 친구, 사회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버림받은 존재들로서 마음이 찢어지는 절망과 고통을 가진 신분의 사람인 것입니다. 그 사람 입장을 염두에 두고 본문을 이해하셔야 하겠습니다.

이런 문둥병자가 주님께 나타났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가장 추악한 죄인으로 간주되는 사람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가 주님께 나타나 주님께 자기의 믿음과 자기의 소원을 주여 원하시면 저들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가는 말씀드리게 되는데, 그가 주님께 드린 말 한마디 한마디에 관심을 기울려 보시고 그의 행동에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절을 한 것입니다.

그가 주님께 나타나 절을 했다고 했습니다. 절이란 보통 인사를 말하는 것으로 존경과 경의를 표시하는 태도를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께서 드린 말씀을 검토해 보면 보통 인사 정도를 넘어서 하나님 같은 존재에 드릴 수 있는 최대의 존경을 표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주님’이라고 부른 호칭입니다.

그가 주님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 당시 선생님이라는 뜻으로 랍비라고 부르는 것이 보통인데, 주인과 종의 관계에서 사용되는 주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음을 보게 됩니다.

셋째, “원하시면”이라는 단어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면”이란 말은 주님께서는 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심을 전제한 말로 다만 그 능력을 가지신 분이 고쳐 주시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막9:22에 벙어리 귀신들린 아들의 아버지라 주님을 찾아와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들 도와주옵소서“라고 할 때 주님께서 “하실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고 반문하셨던 것과는 너무 대조적입니다. 그렇지요?

넷째,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라는 그의 말입니다.

문둥병은 그 당시 인간 의술로는 불치의 병인 것을 잘 아는 그가 주님께서 원하시면 깨끗케 하실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을 받은 존재임을 분명히 믿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둥병을 중지시켜 달라는 고쳐달라는 정도가 아니고 깨끗케 한단 말은 완전 회복을 말합니다. 뼈와 살, 피부 모두가 깨끗해진 것을 말하므로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전능자의 존재로 믿었다는 증거가 됩니다. 문둥병자의 큰 믿음을 보면서, 죽은 지 이미 나흘이 된 나사로의 시체 앞에 서 계신 주님께 드린 마르다의 믿음이 우리가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께서 주실 줄을 아니이다”라고 했다는 큰 믿음입니다. 죽은 지 나흘 된 나사로를 주께서 원하시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을 우리 성도들도 다 믿으십니까? 아멘입니다.

찌그러지고 손 매듭이 빠지고 눈도 이상히 된 문둥병자가 주님이 원하시면 깨끗케 될 수 있다는 믿음에 우리 모두 아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주님께서 들어 주심(3)

3절에 보니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 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험상 굿은 무섭고, 더러운 문둥병자에게 손을 대셨습니다. 샤워를 1달 안한 사람 옆에 얼굴 찌푸리지 않고 서 있을 수 있어요? 문둥병자와 6자 거리를 두어야 하는데 주님께서는 그에게 손을 대셨습니다.

이 대목에 와서 주님의 사랑에 새삼스럽게 감동을 했습니다. 우리가 문둥병 들었을 때, 주님이 우리 몸에 손만 대주셨다고 해도 우리는 일평생 그를 기억하고 그 뜨거운 사랑에 감동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손을 댄 정도가 아니고, 우리를 위해 죽어 주셨는데도 우리는 큰 감동 없이 덤덤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반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손을 대시고 문둥병자의 소원대로 “내가 원한다”고 하시고 “깨끗함을 받으라”고 하니, 즉시 깨끗하여졌다고 했습니다. 점점도 아니고, 또 그 다음날 또 안수해 주지 않았으며, 그 병이 낫도록 두들기며 패는 안찰을 하지 않았고, 오직 깨끗함을 받으라는 능력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문둥병이 어느 정도 나온 것도 아니고, 깨끗해 졌다고 했으니 완전한 새 모습, 새 사람이 되었다는 말인 것입니다.

 

[3]주님의 지시(4)

문둥병을 낫게 해 주신 주님께서 이 사람에게 두 가지 부탁을 합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것과, 제사장에게 보이고 모세가 명한 대로 예물을 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는 뜻은 앞으로 하실 일이 많이 남았는데 이런 일로 제사장들이 시기, 질투하며, 주님의 사역에 공연히 해가될 수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으로 풀이해야할 것입니다. 그런데 막1:45에 보면 나가서 많이 전파하여 주님께서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제사장에게 보이라고 한 것은 그 당시 문둥병이 완치됐다는 판정을 받고 증명을 얻어 사회생활이 모든 제한에서 해방되도록 할 뿐 아니라, 문둥병자가 완치 됐을 때 정결케 하는 의식을 위해 바쳐야할 예물, 산새 두 마리, 백향목, 홍색실, 우슬초를 드리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당시 율법대로 지키도록 명한 것이나,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성소 휘장이 찢어지므로 이런 율법의 많은 의식들을 그 이상 지키지 않아도 되게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으셨으며, 우리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본문을 통해 육적이요, 영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육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육적인 병이나, 육적 문제에 부딪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도저히 풀 수 없는 일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문둥병자가 주님 찾아가듯 주님께 나의 문제를 털어놓아야 합니다. 하실 수 있거든 좀 해결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면 해결될 수 있음을 진심으로 믿고 주님께서 “내가 원한다”고 답을 하시도록 주님의 마음을 움직여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능력을 진심으로 믿고, 진심으로 부탁을 드리며 가능하다는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많은 문둥병자들이 있었지만 다 나음 받은 것 아닙니다. 주님께 찾아간 사람만이 나음을 입었습니다. 병이나 가정문제, 어떤 문제든 주님이 원하시면 하실 수 있으십니다. 믿으십니까? 아멘. 믿고 구하는 분들의 숙제를 하나님께서 풀어주실 것입니다.

 

두 번째, 영적 문제입니다.

문둥병자에 손을 대신 것은 주님의 사랑을 나타낸 것이며, 또한 말씀으로 낫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미 우리에게도 손을 대셨습니다. 그의 십자가 통해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의 죄 사함과 많은 축복을 선포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네 소원대로 되라”는 축복을 성경 안에 많이 선포하고 계십니다. 오직 가장 더러운 문둥병 환자가 주님 앞에 내 놓고 주님의 은총을 사모하듯, 문둥병 같은 큰 죄를 가지고 있더라도 주님께 자복하고 “주님께서 원한다면 완전히 깨끗하게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주님 앞에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문둥병같이 더러운 죄들을 깨끗케 해달라고 주님께 내 놓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더러운 죄는 내가 선한 일을 아무리 한다고 씻어지는 것 아닙니다. 사치스런 의복이나 장식품으로 덮어지지도 아니합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들의 육적이거나 영적인 문제를 깨끗이 해결 받기를 원하십니까? 아멘.

내 지식으로는 불가능할지 몰라도 주님께서 원하시면 무엇이든 깨끗이 해결할 수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겸손하게, 그리고 진심으로, 그리고 꾸준히 부탁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응답하실 때는 즉시 완전하게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엡3:20에 보면 주님은 우리의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것이라고 소개합니다. 아멘입니까?

문둥병을 얻은 고로 주님을 만나고 그로부터 큰 축복 받음같이 우리 각자가 가진 문제 때문에 주님으로부터 큰 축복 받는 결과가 오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