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부장의 하인을 고치심 – 마태복음 8:5-13

8장에서는 주님께서 병 고치는 사역이 연속되는데 오늘은 중풍 병에 걸린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주신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귀한 교훈을 주시게 됩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 백부장의 믿음으로 본 예수님을 우리가 소개받고, 백부장을 통해 나타내고자 하신 주님의 뜻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을 4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백부장이 본 예수님(5-9)

[2]찾는 자에게 나타내시는 주님(10-11)

[3]불신자에게 등을 돌리시는 주님(12)

[4]메시야적 권세(13)

 

[1]백부장이 본 예수님(5-9)

백부장이라 하면 100명의 병사를 지휘하고 있는 장교를 말하며, 주님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통치하에 있었고 로마 황제가 절대적인 통치권을 가지고 있었던 국가 체제 안에서 백부장은 로마 황제의 손발이었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본문이 소개하는 백부장은 중풍병 든 자기 하인을 고쳐달라고 주님 앞에 나타난 그로 소개됩니다.

먼저 백부장과 하인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백부장이 얼마나 사랑이 넘치는 인간미를 가진 인격의 소유자인지 알 수 있게 됩니다. 종이란 돈으로 사고, 파는 물건 정도의 신분이며, 고장 난 물건, 쓸모 없는 물건은 그저 버리면 되는 것 같이 병든 하인, 중풍 병 걸린 하인은 오히려 백부장에게 짐이 되는 정도인데도, 주인과 종의 관계이지만 그를 사랑하고, 어떻게든 그의 병을 고쳐주고자 누구를 만나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를 백방으로 알아본 본받을 만한 인물임에 틀림없습니다. 성경에 자기 부모, 자기 자녀, 작기 친구를 주님 앞에 데려온 사건은 있지만 자기 종을 데려올 일은 유일한 사건입니다.

두 번째로 백부장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백부장과 예수님의 관계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유대인들은 로마사람을 사회적으로 착취자요, 종교적으로는 이방인이었으므로 유대인들은 로마 군대를 경멸하는 사회적 편견이 있었고, 반면 로마사람들은 이스라엘을 피 지배국 사람으로 멸시하고 또 아주 편협한 사람들이라 생각하여, 피차 편견과 증오의 벽이 있었던 분위기였는데, 남의 눈도 있고, 사회적 체면도 있었지만 로마 장교가 유대인 전도자에게 자기 일도 아닌 자기 종의 일로 찾아와 예수님께 사정 사정을 한 인물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찾아와 “주여 내 하인이 중풍 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라고 간청을 하고, 그의 간청이 주님의 마음을 움직여, 주님께서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라는 영광스런 허락을 얻어내게 됩니다.

또한 백부장은 주님께서 자기 집에 오심을 감당할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자신과 주님의 위치를 비교할 때 자신을 바로 안 겸손한 자세이며, 또 주님의 능력을 바로 알았던 사실에서 온 것입니다. 자기도 부하들에게 오라하면 오고, 가라하면 가듯이 주님께서 직접 오실 필요 없이 말씀으로만 하라고 합니다. 주님께서 오시어 안수기도를 해 주셔야 낫겠다가 아니고,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말씀 한 마디로 명령을 내리신다 해도 병이 나을 거라는 큰 믿음을 보여 준 것입니다.

문둥병자가 주님을 보는 깊은 영적 통찰력이 있었듯이, 이 백부장도 주님을 바로 보는 아주 좋은 영적 눈을 가진 것입니다.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합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고 되어 있으니, 주님의 본질은 말씀이요, 그 말씀이 육의 모양으로 오셨으니 주님이 직접 오신 거나 멀리서 말씀만 하신 거나 전연 차이가 없음을 깨달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능력은 말씀이요, 그 말씀의 능력은 거리의 멀고 가까움에 제한을 받지 아니하고, 상태의 좋고 나쁨에 상관이 없음을 확신한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2]찾는 자에게 나타나시는 주님(10-11)

주님께서 백부장의 말씀 듣고 기이히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그의 믿음이 큰 것은 보고 놀라신 것입니다. 구약을 알고 예언서를 아는 택한 백성 이스라엘 사람, 유대인등에게서도 “말씀”만으로 가능하다는 고백을 들은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기이히 여기셨다는 기록이 막 6:6에도 있는데, 주님께서 자기 고향에서는 자기 본토 중 본토에서는, 아니 선민 중 선민에게는 대접을,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을 보고 기이히 여기신 일이 있었는데, 이젠 별로 들어본 기회도 없었을 텐데 놀랄 정도로 주님을 바로 알고 있으므로 기이히 여기신 것입니다.

주님은 선포하셨습니다.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입니다. 동서가 어디입니까? 구태여 유대 나라에 국한하지 아니하고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주님을 바로 알고 주님을 영접하는 자는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과 같은 선민 중 선민이 차지하고 있는 천국에서 그들이 누리는 같은 영광을 누릴 것이라는 선포입니다. 그를 찾는 자에게 나타내시며, 그를 부르는 자에게 응답하시며, 말씀의 능력을 믿는 자에게 보상해 주신다는 위대한 선포가 주어진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인 아브라함의 자손만이 누릴 수 있는 기득권, 맹목적 구원의 혜택, 특권에 대한 도전을 선포하시며, 이방인도 구원될 수 있는 이방 선교의 vision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나는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가 어느 민족이든, 어떤 족보를 가졌던 어떤 인물이든, 어떤 전통과 풍습을 가졌던 모든 장벽을 허시고, 믿는 자들이 선망하는 아브라함, 아삭, 야곱과 같은 대우를 우리도 받을 수 있다는 개방과 기회는 우리에게 주님이 주시는 최대의 축복인 것입니다. 감사하시며,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3]불신자에게 등을 돌리시는 주님(12)

찾는 자에게는 문을 열어 주심을 선포하신 주님께서 불신자에게는 등을 돌리심을 강력하게 선포하십니다.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선포하십니다.

나라의 본 자손들이란 누구일까요? 유대인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부하는 자들, 주님을 마땅히 영접해야할 자들임에도 주님을 거역한 자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난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어디가 바깥입니까? 천국 밖입니다. 어두운 곳이란 빛이 없는 곳, 주님이 계시지 않는 곳, 쫓겨난다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또 슬퍼하고, 울고 또 이를 갈 거라는 그들의 불행을 예고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4]메시야적 권세 (13)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 하시니 즉시로 하인이 나으니라” 고 기록되고 있습니다. 백부장이 무엇을 믿었는데 그의 믿은 대로 되라 하셨습니까? 비록 자기 하인이 멀리 떨어져 있지만 주님은 능력자이시니 말씀 한마디로 하인의 병을 낫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네 믿음대로 되라 선포하시니 즉시로 바로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나았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어 하나님의 능력을 지닌 구세주이심을 만방에 알리는 선언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발견한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오늘 발견한 주님은 비천한 자를 사랑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백부장이 병들어 쓸모 없는 하인을 사랑하여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그를 치료할 수 있는 주님을 찾고 만나서 애원한 사실은 우리 주님께서 아주 적은 자, 사회적으로 낮은 신분에 있는 모든 자에게 관심을 쏟으시고, 사랑하신다는 주님을 알게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고 지극히 아끼시고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는 방법을 찾고 계시라는 사실입니다. 내 처지를 아시고 내게 그의 사랑을 나타내시고 계심을 믿고, 주님의 사랑 받는 존재임을 스스로 깨닫고 자부심을 갖고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 각자를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우리 모두는 우리 주변의 미천한 자에 관심을 갖고 사랑하라는 교훈입니다.

 

만민을 초청하신 주님이십니다.

전연 편견이 없습니다. 내 형편, 처지, 내 모습, 내 과거의 죄 잘못을, 내 현세의 위치에 전연 연연하지 않으시고 공평하게 초청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받았던 초청장과 같은 초청장을 받았고, 아브라함이 앉아 행복을 누리는 그 자리에 우리도 함께 초청되었습니다. 공평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하셔야 합니다. 오직 우리는 그의 초청에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이 우리 몫입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그의 영광스런 초청자리에 다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믿은 대로 이뤄주시는 주님이십니다.

100리 떨어졌어도 말씀 한마디로 병을 고치실 수 있는 분으로 믿으면 그 말씀대로 될 것이고, 직접 주님이 오시어 아픈 곳에 손을 데시거나, 문지르고, 주물러야 병이 나을 것으로 믿으면 또 그런 정도의 능력자로 나타나시는 주님이십니다. 빈 수표에 큰 액수를 적으면 큰돈이 되고, 작게 적으면 작은 돈이 되듯, 주님의 능력은 절대적이시므로 내가 믿는 그의 능력의 양에 따라 그의 능력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어떤 장벽도 어떤 방해도 무너뜨릴 수 있는 분이시므로, 큰 믿음 가지고 주님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분으로 믿으시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주시기를 버리고 믿고 있습니까? 그것이 말씀에 근거된 믿음입니까? 믿은 대로 이뤄주신다는 확신을 갖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